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7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73화(74/377)
< 73편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대 아세안 특사라는 감투를 쓴 칼 로브가 인도네시아 대미 외교관들이 앉아 있는 미국 대사관 회의실에 들어와서 꺼낸 첫마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두둑한 뱃살만큼이나 그 작태가 거만하기 짝이 없었고, 말하는 꼬락서니는 단어 하나하나에서 오만방자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강자의 미덕은 겸손이라 누가 그러던가? 그런 건 일부 도덕을 좋아하는 이들이 가지는 환상에 불과했다. 예의란 한때 천하의 지배자였던 중국의 유교 사상에 근원하고 있었으나, 시대가 흘러 룰 브리타니아를 거치자 어느새 예의라고 하면 영국 신사를 떠올리게끔 대중의 심상을 뒤바꿔 버렸다.
그렇다면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서 예절이란 미국식 예의를 뜻함이라.
“나는 별로 시간이 없습니다. 빙빙 돌리지 말고 빨리 해결합시다.”
딱히 그렇다고 미국에서 칼 로브가 예의 있고 바른 사나이라는 말을 듣는 부류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미국 대사가 무엇을 하더라도 본국의 가벼운 징계만으로 용서가 되는 시대였다.
“거, 예의가 참으로 바르시군요. 우리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본받으라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업신여기는 태도를 명백히 비꼬는 반응이었지만, 이에 비꼼에 대해서 정작 칼 로브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면 당연했는데, 그가 이 상황 자체를 의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무슨 분에 넘치는 과찬을. 그런데 그게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닌 것 같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 소리를 들은 인도네시아 외교관 중 가장 직책이 높은 사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디 한 번 해볼 태면 해보라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도대체 귀국이 원하는 게 뭐냔 말입니까? 난 오늘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 백악관에서 인도네시아 미국 대사관까지 날아왔습니다.”
칼 로브의 목소리에서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짜증이 묻어나왔다. 다만 이 부분은 칼 로브 본인은 연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현장을 주도하기 위해서 가짜로 자아낸 역정이 아니라 진짜로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짜증이 나오고 있었다.
이는 워낙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가 천장을 박살 내고 우주로 나아간 탓도 있었지만, 급하게 결정된 출장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애당초 이 회의가 소위 말하는 문명인답게 점잖게 진행되는 건 칼 로브가 인도네시아의 습도 높은 공기를 폐부에 저장했을 때부터 불가능으로 정해져 있었다.
“좋습니다. 우리는 투자를 원합니다. 그러나 더는 귀국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자! 드디어 뜨거운 감자인 ‘모순’이 튀어나왔군.’
주제가 한 번 튀어나왔으니까 다신 도망치지 못하게 꽁꽁 묶어야 했다. 그걸 위한 압박이었고 그걸 위한 짜증이었다. 이쪽은 입이 하나인 만큼 기세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머릿수에서 밀리고 마리라.
“지적하고 싶은 게 한 아름이지만, 일단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도대체 다른 이들은 전부 어디로 간 겁니까?”
칼 로브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다른 아세안 회원국을 뜻함이었다. 여기엔 오로지 인도네시아 관련자밖에 없었다. 그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건 순전히 인도네시아 외교관 앞에 각자 종이와 아크릴로 만든 명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회원국은 우리와 뜻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이 말을 사실이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에 이 협상을 반쯤 위임하고 있었다. 다만 필리핀만은 예외였는데, 이미 어떠한 경우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미국의 투자를 받을 의향이 있다고 먼저 이야기를 보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애당초 필리핀은 간섭부터 투자까지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긴 했다. 그들은 국민부터 정부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골수 친미파였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인도네시아는 자신들의 뜻을 아세안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하여 동남아시아의 목소리로 뭉뚱그려냈다. 그래도 정확히 하자면 필리핀 말곤 딱히 반대하는 나라도 없었으니 동남아시아의 의지라고 해도 허언은 아니었다. 다만 과언이 아니냐고 물으면 그건 또 대답하기가 곤란한 부분이었다. 협상을 온전히 인도네시아에 유리하게, 또 인도네시아의 뜻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세안 회원국들이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을 테고. 그렇다면 그런 손해까지 완전히 감수하고 인도네시아를 챔피언으로 내세운 건가?’
어쩌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밉보이기 싫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이 작용했을지도 몰랐다.
아세안에서 가장 강대국인 인도네시아와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두고 비교해 봤을 때 당연히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동네 골목대장보다는 경찰이었지만, 그 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있잖은가.
심지어 평생을 보고도 후손 대대로 봐야 하는 나라인데 외세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옆에 잔뜩 성난 우두머리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긴 했다. 도리어 비정상적인 친미 성향으로 ‘인도네시아 조까!’를 외치는 필리핀이 아주 특이한 경우였다.
그리고 이 순간 칼 로브의 안쪽에 있던 의문 하나가 완전히 풀렸다.
‘모르긴 모르되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싶다는 건 순전히 인도네시아의 생각이겠군.’
간단한 이야기다. 다른 건 몰라도 아세안만큼은 확실하게 인도네시아가 주도하고 싶었으니까.
미국이 기존처럼 물주나 협력국 수준으로 영향력을 투사하는 건 인도네시아도 두 팔을 들어 환영할 일이었지만, 이렇게 미국이 직접 아세안이라는 국가 연합의 뿌리를 이루는 헌장이나 군사 체계까지 영향력을 투사하게 되면 동남아시아를 국가 연합으로 묶기 위한 기관이 미국의 동남아시아 영구적 종속 및 수탈을 위한 기관으로 변질할 우려가 충분히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인도네시아의 사정이었고, 미국의 관료인 칼 로브가 알 바 아니었다. 그가 가져가야 하는 성과는 퍼즐 조각처럼 형태와 크기가 정해져 있었고, 칼 로브는 부시가 그린 큰 그림에 어울리도록 최대한 다듬어 볼 예정이었다.
“투자는 받고 싶은데, 영향력을 받고 싶지 않다는 건 한 마디로 개소리(Bullshit) 아닙니까?”
너무나도 직설적인 욕설은 통역관을 거칠 필요도 없이 인도네시아 관료들의 귀에 똑똑히 박혀 들어갔다.
“개소리라니!”
“원조를 받아도 어떻게든 영향력이 들어가는 판국인데, 투자를 받고도 영향력까지 배제 받고 싶다는 건 너무 억지라는 말입니다. 뭐, 무상으로 천만 달러라도 달라는 거요 뭐요?”
이 부분은 칼 로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고 또 괴이했다. 무슨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 징징거리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미국의 돈만 먹고 튀고 싶다는 생각을 이렇게 역력하게 내비칠 까닭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원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투자를 받고 싶습니다.”
그중 유일하게 흥분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직함이 부통령이요. 이름이 함자 하즈였다. 나머지 관료들은 듣도 보도 못한 인물들이었지만, 칼 로브도 함자 하즈만큼은 알고 있었다.
‘아, 과연. 저놈이 이 판에서 가장 큰 거물이구먼?’
왜냐면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반미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CIA로부터 정기적으로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가장 위험인물이었다.
“말이 헛도는군. 그럼 우리가 하는 게 투자지, 뭐요?”
“그대들이 하려는 건 동아시아 권리 침탈이오.”
함자 하즈의 태도에는 흥분은 서려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말에 묵직한 힘을 실어서 한 치 물러설 생각도 없음을 확실하게 피력했다.
“이보시오. 당신들이 보여준 선전포고 같은 서류는 아주 잘 받았소. 하지만-.”
‘서류?’
아마도 대통령의 명령으로 행정부 인원을 갈아 넣어 만들었다는 ‘그 서류’ 같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칼 로브도 그 서류를 본 적이 있다. 서류의 정식명칭은 ‘미국-동남아시아 협력 체계 구축’이었지만, 부시 행정부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부시 독트린’으로도 불렸다.
부시 독트린은 초기에 ABM이나 교토 의정서 협약 준수, 테러리스트 압박 등이었지만, 지금 와선 그 의미가 완전히 변질하여 가고 있었다.
우선 교토 의정서 같은 경우는 부시 정부 극초기에 탈퇴한 지 오래였고 ABM. 즉, 국제 핵 안전조사 활동에서는 손을 놓고 직접적인 제재로 방향을 돌려버렸다. 그렇게 남은 건 테러리스트 압박 정도인데, EU와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나서버리니 정작 미국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EU나 러시아가 주도하고 거기에 팔 하나를 빌려주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다만 이 부분에 있어선 미국에 있어서 호재라면 호재였는데,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격이었다. EU와 러시아가 나선 덕분에 미국의 해외 대테러 예산 부분이 상당히 절감되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국내 대테러 작전에 더 많은 예산을 분배하고도 1200만 달러가 남아 다른 곳에도 나눠줄 수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서류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세안 헌장에 대한 조언. 정치, 경제, 안보, 사회, 문화를 엮는 방안. 미국이 이 아세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동남아시아 무기 체계 통합 방안과 통합군 창설 대안과 방안, 아세안-중국의 남중국해 분쟁 종결 방안. 도대체 이게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바로 그거요.”
“뭐요?”
“당신들이 우리 아세안에 하려는 짓이 너무 많단 말이오. 그 서류는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고 있지. 당신이 우리 아세안의 입장이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소?”
그제야 칼 로브는 머릿속에 끼어있던 안개가 싹 사라진 기분이었다. 논리 안에 산재해 있던 파편이 모여 드디어 그림을 만들었다.
‘그래서 투자는 받고 싶은데 간섭은 불허하겠다는 소리였군?’
요는 너무 자세히 서술했다는 점이었다. 부시는 아세안이 자력으로 문제들을 다루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아세안이 바로 윗동네에 중국이라는 강력하고 막대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EU처럼 필요 이상으로 긴밀한 관계 꾸리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았다.
이를 미국이 가진 파워로 어떻게 억누르려는 형태가 되다 보니까 아세안 입장에서는 미국이 덩치로 아세안을 미국 수탈 식민지로 만들려는 형태로 보였으리라.
더불어 동남아시아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서역 국가에 의해서 오랜 기간 수탈되었던 전적이 있는 나라다. 거기다 전 세계에서 군림했던 룰 브리타니아가 무너지는 것도 목도한 적이 있는 나라였다. 그 꼴을 봤으니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쉬이 몸을 맡기지 못하겠지.
‘하긴. 경계하지 않으면 더 이상하겠지. 차라리 투자한 다음에 천천히 바꿔놔야 했나.’
이제 보니까 불간섭을 원하는 건 딱히 인도네시아만의 의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칼 로브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에잉. 돌려서 말하지 말고 직관적으로 말하면 될 것이지. 이렇게 마지막까지 돌고 돌리기는!’
칼 로브는 인도네시아 특사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과 부시의 진의 사이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지 가늠을 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당신들의 뜻은 아주 잘 알았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바꿉시다.”
“이야기를 바꿔?”
인도네시아 부통령의 눈이 꿈틀거렸다.
“서류에 적혀 있는 내용이 다소 불미스러운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서류에 적힌 내용의 최종 목표는 어차피 당신들을 ‘중국을 압박하는 방벽’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중국 압박’ 이게 우리의 진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5년 이내로 아세안이 어떤 형태로든 준 국가 경제 연합에서 국가 연합이라 할만한 형태가 되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우리는 투자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5년?”
단순히 말하면 동남아시아 국가끼리 좀 더 긴밀해지라는 의미였고, 조금 더 자세하게 파고들면 앞으로 수십 년의 세월을 고작 5년 이내로 단축하라는 횡포이기도 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과연 그 말에는 제아무리 굳건한 평정심의 소유자인 함자 하즈라도 아주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인지 목에서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핏대가 점점 보이는 게 겉으로는 그동안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흥분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심점이 있으면 금세 뭉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도네시아 부통령?”
“그건 또 무슨 헛소리요?”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중국에 압박감을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니까!”
칼 로브가 그동안의 보복이라는 듯 실속 없는 뜬구름 같은 소리만 남발하자 이번에는 함자 하즈가 된통 당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본 칼 로브가 속으로 실실 쪼개더니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여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인도네시아 주도로 통합군을 창설하십시오. 무기는 우리가 싸게 팔아드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