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75)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74화(75/377)
< 74편 >
방음 설비의 한계를 시험하며 카탈로그상의 성능이 실제 성능과는 다름을 보여주며 좀비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오던 낡은 회의장의 문 안은 비어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고요하고 스산해 보였다. ‘사실 땅을 파고 도망친 게 아닐까?’라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너무나도 조용하여 문을 지키고 있던 요원에게 불안감을 부추겼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정신 나간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실 요원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썩 무리는 아니었다. 괜스레 고풍스러운 문짝에서는 귀신이라도 붙었나 착각할 정도로 차갑게 끈적거리는 음기가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때마다 요원은 짬을 내서 주기도문을 외우기까지 했지만, 영화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는 사람이 가장 먼저 죽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자신을 비웃고 다시 경비나 똑바로 서라며 다그쳤다.
하긴 원귀가 붙어 있어도 그들의 지금 이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는 인물을 목도하면 차라리 제 목을 졸라서라도 성불이 하고 싶어지리라.
그렇게 생각한 요원은 뒤로 크게 물러났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련의 사건에서 자신마저 화를 입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디 통조림이 잘 익었는지 볼까?”
그 사람이란 바로 이 참혹한 현장을 만들어낸 장인이자, 세상에서 가장 사람 험하게 다루기로 소문난 고용주.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였다.
“어이쿠! 세상에 맙소사.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문 뒤에 나타난 풍경은 부시가 기대하고 있던 광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부시가 기대한 건 유용한 아이디어가 잔뜩 써진 서류 뭉치였지, 폐기된 아이디어가 잔뜩 써진 종이뭉치가 아니었다.
깜지 수준으로 시커멓게 모든 면적을 매운 A4용지가 구겨져 공처럼 변한 게 그 수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있었는데, 한군데로 모으면 거의 과장 좀 보태서 사람 키만 한 산을 이룰 수 있을 정도였다. 그뿐인가? 수십 자루의 만년필과 볼펜이 볼썽사납게 꺾여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장소였고 그 장소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심했다.
일단 기본자세가 의자에 퍼질러 앉아 있는 것이었고. 용모단정과 체면을 가장 중시하는 정치인답지 않게 옷의 상태가 도저히 못 봐줄 만큼 심각했다. 머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산발해 있었고 얼굴에 드리운 음영과 흑륜은 이곳에서 당장이라도 내보내 달라는 무언의 아우성이었다.
통조림이 된 지 하루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상태만 봐선 거의 일주일은 된 것 같았다.
다만 그중 유일무이하게 단 한 사람만이 부시의 한마디가 만들어낸 아수라장 속에서 위풍당당하게 두 발로 대지를 딛고 부시를 맞이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앤드루 카드. 부시가 그 누구보다도 신뢰해 마지않는 비서실장의 직책을 가진 자였다.
“워우.”
사실 부시는 어떤 꼴이 되어 있더라도 눈감아 줄 생각이었는데, 꽤 멀쩡해 보이는 모습에 절로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뭐가 좀 나왔나?”
“총 세 가지 방안이 나왔습니다.”
고작 하루 만에 세 가지씩이나! 거참 많기도 해라. 부시는 귀를 열고 한 번 그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대통령 각하께서 싫어하실 방안입니다.”
참으로 당돌하지 않은가? 가장 처음이 부시가 싫어할 방안이란다. 그러나 말하고 있는 대상이 대상인만큼 부시는 한 번 참기로 했다.
“내가 싫어하는 방안이라? 뭐 북한에 햇볕이라도 쬐어줄 생각인가?”
고작 단 하루뿐이라지만 일단 세계 제일의 최강국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을 갈아 넣어 만든 농축액 같은 대답 아닌가? 부시가 세상 모든 진리가 적혀 있다는 에메랄드 석판 수준을 원하는 건 아니었으나 적어도 자신의 안에 가시처럼 박혀 있는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정답 정도는 원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부시는 자신도 모르게 비서실장의 입에서 나올 대답을 필요 이상으로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지도상에서 북한을 지워버릴 방안입니다. 항모 전단 여섯 개를 배치하고 벙커 버스터를 사용하여 밤낮으로 그동안 파악해온 핵심 군사시설과 땅굴, 벙커에 무차별 폭격을 가할 겁니다.”
“허, 고작 시위에 대한 대응치곤 너무 과잉 진압이군. 아주 좋아. 계속해 봐.”
아마 여기에 김정일이 있었다면 그게 고작 과잉이라는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꺼이 지적했겠지만, 여긴 미국이었으므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자칫 남한도 같이 지워버리겠는데?”
북한에서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진 않을 터니 남한도 꽤 타격을 받을 거다. 미사일은 어찌 격추할 수 있어도 포탄을 격추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포탄이 그냥 어디 강원도 산간오지에 떨어지겠는가? 대한민국의 온갖 주요 도로, 공장, 항구 군사 주둔지 및 공군 활주로에 떨어지겠지.
다만 일본과 일본에 주둔한 주일미군이 있으니 미국은 입을 피해가 별로 없었다. 냉전이 끝난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밀어주는 건 어디까지나 중국 견제를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당장 북한을 멸공 통일하더라도 이론상 미국의 동아시아 중국 견제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부시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한국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가장 좋아하지 않을 방법이라 표현한 것이리라.
“다음은?”
“핵무기 개발 의사로 간주하고 경수로고 나발이고 완전히 옥죄는 겁니다. 여기에는 한반도에 운용될 정찰기와 군사 위성을 늘리고 육군을 동원하여 중국-북한 국경 사이에 오가는 모든 수출을 차단하여 북한을 완벽하게 고립시킵니다.”
덩치가 좀 커졌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중국도 지금은 청나라제 목줄에 잡혀버렸으니 북한 측에서 남는 인맥이 그나마 러시아나, 중동의 시리아를 비롯한 구공산권 국가들 정도였다.
중동은 2001년 9월 11일 이후로 쭉 개판이었으니 답이 없었고, 러시아는 날이 빠진 낫을 숫돌로 갈고 망치 손잡이를 새로 다느라 어디에 눈을 돌릴 상황이 아닌지라 당장은 미국과 전면전은 피하려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모든 무역로가 완벽히 차단된 북한은 밀수출이나 밀수입도 불가능할 터.
“추가로 해외에 거주 중인 북한 노동자를 전부 돌려보내는 겁니다. 이 권고를 무시하면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는 본인들이 더 잘 알겠죠.”
그렇지 않아도 북한 핵 개발 자금의 대부분은 북한에서 파견한 해외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외화였다. 해외와 모조리 차단해버리고 정말로 평양을 비롯한 모든 인민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암흑의 나라로 만들어버리면 그때 즈음에는 생각이 바뀔 터였다.
다만 이 방법에도 단점은 있었다.
“방법은 좋은데, 너무 오래 걸려.”
부시 임기 내내 혹은 부시 임기 이후에도 이 짓을 해야만, 비로소 과실을 맺는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그 과실이 영양가 있고 당분 가득한 신선한 과실일지. 푸석하기 짝이 없는 저승의 과실일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는 점도 이 방안이 꺼려지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방안이 하나 더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기다렸다는 듯 휴대전화 판매점의 판매원처럼 능숙하게 다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게 마지막인가? 어디 한번 말해봐.”
방금까지만 해도 여유가 넘쳤던 비서실장은 그 소리를 들은 직후 무의식중에 목울대가 크게 맥동하는 것을 느꼈다. 저 말에 담긴 뜻 자체는 별거 없었다. 이거까지 마음에 안 들면 부시 뒤에 열려 있는 문이 다시 닫히고 부시의 가슴에 열려 있는 마음의 문도 굳게 닫힌다는 소리였다.
“경수로에 불을 지릅니다.”
“그거참 끝내주는 생각이군.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건진 모르겠는데, 구체적으로 이번 자주포 훈련 표적으로 쓰고 싶어질 정도로 아주 참신한 생각이었어.”
부시는 이 난장판에 속에서 잔뜩 긴장한 이들을 둘러보더니 이내 공포가 서린 아가리를 열었다.
“그래서 이 감동적인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누구지?”
“제 아이디어입니다.”
입을 연 건 비서실장이었다. 비서실장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자신이 말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떠맡기로 했다.
“흠.”
부시는 최소한 헛소리가 아니길 기대하면서 턱짓으로 비서실장에게 설명을 촉구했다. 그나마 최고 심복인 비서실장씩이나 되니까 ‘경수로를 불태우자!’라는 말도 안 되는 방안에 대해 들어주는 거다.
부시는 참을 인이라는 한자를 가장 혐오하는 인간이었다. 그런 부시가 벌써 두 번씩이나 인내하고 있었다. 터지면 영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건 그 누구보다 비서실장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느 때보다도 긴장하고 있었다.
비서실장은 어느샌가 바짝 말라 갈라지고 있는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갈라진 틈 사이로 약간의 철분과 소금기가 느껴졌다.
“경수로에 불을 질러서 저희 군이 개입할 틈을 만드는 겁니다.”
과연 적어도 헛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비서실장의 입에서 나올 만큼 그럴싸해 보이는 방안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계속해. 더 말해보란 말이야.”
“저희 CIA와 한국 측이 국정원을 통해 예전부터 비밀리에 포섭한 북한 주민들이 시위대에 섞여 있습니다. 신호를 주면 이들이 경수로에 들어와 불을 지를 겁니다.”
현재 경수로의 경비는 북한군과 한국군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이를 화합의 상징이라 표현했고, 북한 정부는 이를 굴욕의 상징이라 이를 갈았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김정일을 위시한 북한군의 고급 간부 정도였지만. 그 윗대가리 생각이 곧 인민의 생각이 되는 동네니 썩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경비를 서고 있는 건 북한군과 한국군이었기 때문에, 북한군이 경비를 서고 있을 시각에 경비가 뚫리고 경수로에 불이 난다면 북한군의 경비 및 통제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미군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흠…. 다 좋은데 말이야.”
부시는 신음을 내며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자꾸만 턱을 쓰다듬었다.
“혹시 문제가 있습니까?”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데.”
그것이 실은 부시의 안에서 이 계략과 어떤 장면이 자꾸 오버랩이 자꾸 일어났기 때문이다.
‘분명 이라크 침공도 그렇게 망하지 않았던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망한 이유는 출구 전략이 없고 점령한 주제에 현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유를 꼽자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해서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점이었다.
‘뭐, 하긴 원래 계략이란 게 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지.’
그러나 미국의 계략이 걸린다고 해서 손모가지가 날아갈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의 말을 누가 믿어준단 말인가? 그들이 호소해봤자 중국이나 러시아 정도였는데, 이 둘은 장외에서 그로기 상태였다.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 퇴짜 때리고 문을 닫으렵니까?’라는 말은 목구멍으로 삼켰다. 비서실장은 눈을 감은 체 턱을 괴고 명상하듯 고민하는 부시를 아련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저기서 나오는 대답에 따라 저 문이 닫힐 수도 열릴 수도 있었으니까.
총 스물 하고도 두 쌍의 눈깔이 이 회의실을 빙자한 감옥에서 석방의 열쇠가 될 부시의 입만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부시의 입술이 사이로 말이 튀어나오긴 했다.
“불 말고.”
“예?”
“불 말고 폭탄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