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87)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86화(87/377)
< 86편 >
“이게 뭐지?”
김지훈 대통령은 솔직히 꿈을 꾸고 있는 줄 알고 자신의 뺨을 강하게 쳤다. 소리가 얼마나 찰졌는지 집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김지훈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현실에서 보기 힘든 과장된 행동이지만, 현실에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게 눈에 보이면. 다시 말해서 ‘헛것’을 보게 되면 이렇게라도 해서 악몽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악몽이 별거인가? 자신의 인지를 뛰어 넘나드는 무언가가 눈에 보이면 그게 악몽이지.
“아직도 꿈인가?”
다음에는 책상에 머리라도 박아볼까 하던 차에 이상함을 느낀 비서실장이 다가와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그럼 내 눈앞에 있는 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란 말인가?”
「미국 대통령이 직접 도정된 쌀 북한에 15t 공급을 요청. 비용은 연방에서 대기로 함.」
“이상할 게 있습니까?”
김지훈 대통령은 ‘이상하다마다! 그 전투기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그렇지!’라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기적과도 같은 인내심을 백방 활용하여 가까스로 참아냈다.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김지훈 대통령 안에서 부시의 인식은 그 ‘전투기’로 굳어 있었다.
‘평화를 위한다면서 전투기를 타고 날아온 새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도 오로지 이 새끼뿐으로 몇백 년이 지나도 전무후무할 거다.’
“공짜로 공급하려는 건 아닐 거 같습니다만.”
“요청. 아니, 요구가 있긴 하군.”
요청이라고 적혀 있긴 했는데, 이 정도면 그냥 억지로라도 하라고 종용하는 거다. 거기다 김지훈 정부는 이런 제안을 거부할 상황이 못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곳간에 묵은쌀이 썩어 넘치는 나라다. 남아도는 쌀을 보관하는 비용만 몇천억 원이었고 식량농업기구가 권고하는 공공비축량의 2, 3배에 가까운 수치를 비축하고 있었다.
기초생활 수급자나 독거노인 등 경제 사정이 넉넉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민간에 푸는 정부미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재고 처리가 불가능했다. 애당초 보관상태가 영 좋지도 않은데다 살인 농약을 뿌렸느니 정부미를 먹으면 죽느니 하는 소문이 도는데 이걸 먹고 싶어 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군필자 대부분이 짬밥이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탓에 밥맛이 없는 탓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게 다 짬밥이 묵은쌀을 쓰기 때문이다. 민간에 풀리는 게 정부미고 군대에 들어가면 그게 군량미였다. 정부 기관에서는 이 정부미를 썼는데, 이게 훗날 나라미로 불리는 쌀이다.
어쨌거나 공공기관에도 풀어 보고 여기저기 풀어봐도 창고에는 쌓이고 또 쌓였다. 그러나 마침 대북 지원이라는 개념이 활성화되면서 이 묵은쌀들을 창고에서 해방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대북 유화 정책에 편승해서 곳간의 묵은쌀을 뿌려 곳간 관리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말이 이런데 쓰이던가?’
어쨌거나 미국에서 날아온 외교문서는 쌀을 주고 올림픽에서 김지훈 정부의 정치 성과를 극대화하라는 요청이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요청이라고 쓰고 요구라고 읽는 서류였다.
‘우리야 못 할 것도 없긴 하지만. 김정일이 이걸 받아들일까?’
김정일은 그 어떤 때보다도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무엇보다 김정일은 고작 쌀 15t에 넘어갈 위인이 아니었다.
‘이거 의도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라는 건가? 아니면 서로 사전에 이야기라도 되어 있는 건가?’
외교문서가 좀 두툼하면 모를까. 한 장인데 그 한 장에 내용도 그리 많지도 않았고 실속 없는 글자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래도 적어도 미국 대통령이 이상하리만치 한국 정부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미국 대통령이 한국 문화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국내의 모든 미국 전문가를 동원해도 이상한 가설만 튀어나올 뿐. 제대로 된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이게 적어도 한국을 엿 먹이려는 의도가 아닌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 이상한 미국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미국의 우방이었다. 비록 최상급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급이 낮다는 소리도 아니었다. 구태여 따지자면 0순위는 되지 못하더라도 1순위는 되었지.
“이걸 거절하면 어쩌죠?”
“어쩌긴 어째. 그걸로 끝나는 거지.”
그런데 도저히 ‘그 전투기’가 이걸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김정일이라면 이걸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 만약에 김정일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거다.
“고저 내 측근한테는 그래도 배불리 먹여준 거 같은데, 먹으란 건 안 막고 농약이라도 뒷구멍으로 처먹고 드디어 뇌가 맛이 간기야? 아니면 내래 드디어 화를 참지 못하고 머리에 구멍이 난기야?”
김정일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외교문서와 이걸 가져온 관료를 몇 번이고 번 갈아가면서 욕설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오늘은 김정일의 기분이 유독 좋지 않은 날이었다. 이 문서를 가져온 관료는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린 셈이었다.
부모 출타와 성추행. 그리고 인신공격이 함유된 욕을 배 터지도록 먹는 게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으나, 이 욕으로 위태위태한 관료 본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놈의 ‘숙청’만 아니면 다 좋았으니까.
솔직히 김정일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면 북한에서는 그놈의 다이너마이트 재고 조사 때문에 당장이라도 숙청의 칼날이 춤추기 일보 직전인데, 여기선 ‘평화!’라면서 소리치고 있으니 복장이 뒤집어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실제로도 ‘정치범 수용소가 포화상태’였다. 아무리 막 나가는 북한이라지만 이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막 나가고 있었다. 그만큼 김정일이 이성을 점점 잃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러나 잃어가는 이성과는 별개로 사람의 몸은 솔직해서 거의 30분에 가까운 언어의 형태를 한 폭력을 휘두르고 나자 김정일 본인도 혀가 마르고 입이 아파졌다. 덕분에 드디어 욕설이 멈추고 본론이 나올 수 있었다.
“남조선에서 도정미 15t을 공급할 테니,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공동 입장을 하자고? 이 시국에? 이거 완전히 미친 거 아니니?”
솔직히 안될 건 없었다. 마음만큼은 도리어 받아들이고 싶었다. 어차피 출전도 아니고 그냥 공동 입장을 하자는 거니까.
‘그런데 니미럴. 왜 하필 미국이란 말이니?’
그게 문제였다. 하필 동계 올림픽 주최국이 미국이었다. 미국.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는데, 미국은 북한에 있어서 언제까지고 ‘백년원쑤’이자 ‘미제’였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열린 올림픽에 아예 참가한 전적이 없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북한은 이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람홍색공화국기를 당당하게 휘두르며 출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똑같던가?
불법 침입한 악독한 미제 무리가 평화의 상징 위에서 전차를 타고 회색 기침을 토해내고 있었고 이제는 세를 점점 불려 나아가고 있었다. 오랜 세뇌 기간을 거친 덕분에 그 꼴을 본 인민들이 좀 더 똘똘 뭉친 덕분에 인민 대중을 통제하기는 매우 수월해졌지만, 이게 그런 것으로 넘어갈 문제인가?
당장 미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대화의 창을 닫아버리겠다고 협박할 수도 있었지만, 미국의 수괴를 직접 배알을 해본 바에 의하면 군대를 이끌고 이 이북 땅 위에 인류가 이륙한 모든 문명을 한 줌의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이 줄곧 이야기하는 ‘석기시대’ 말이다. 김정일은 베트남전의 양상을 보고 그동안 이를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지 부시를 직접 만나보고 생각을 달리했다.
‘그놈은 빈말은 하지 않아. 한다면 하는 놈이다.’
물론 부시가 이를 직접 들으면 헛소문 퍼뜨리지 말라며 친히 행정 명령을 내려 군대를 움직였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자리에 부시는 없었다. 그는 김정일의 분노조절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주치의였다.
그렇게 김정일이 그저 흐르는 데로 사고의 바다에서 노를 젓다 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도정미 15t. 으음. 도정미….”
욕만 하던 인간이 갑자기 신음을 흘리자 어디 잘못되기라도 했나 싶어 급하게 말을 걸었다. 병으로 인한 사망이든 요절이든 잘못되기라도 하면 암살범으로 엮여서 정치범 수용소에 입성하거나 총살당할지도 몰랐다.
정치란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특히 공화국의 정치는 더욱더!
“장군 동지, 왜 그러십네까!”
결과만 따지면, 장대한 헛발이었다.
“시끄럽다! 내래 지금 집중하는 거 보이지 않디? 당장 꺼지라우!”
그에겐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김정일로부터 축객령이 내려왔다. 축객령과 함께 날아온 만년필에 맞아 이마가 좀 찢어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뭔가 이상해. 이 15t. 뭔가가.’
평소라면 관료가 다치면 더 화를 내 거나, 무어라 반응이라도 보였을 김정일이었지만, 지금은 자기가 만들어낸 가설에 완전히 집중하느라 그 어떠한 반응도 외부로 표출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생존 능력’ 하나만큼은 인류 전체를 통틀어도 0.1%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지 않은가? 김정일은 기어코 본능만으로 도정미 15t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게 뭔지는 확실히 알아차리긴 한 발자국 정도 모자랐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심상찮다는 느낌이 당최 떠나질 않았다.
‘일 처리 방식은 남조선의 것이 확실한데, 그렇다고 2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이걸 걸어와? 참으로 수상하다 수상해. 뭔가 확실히 있긴 있구먼, 기래?’
일단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잡아내자 심증이 댐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다.
‘제아무리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동계 올림픽 참여국 유치에 목이 말라 있다곤 하지만, 이것저것 하다가 보면 무리가 올 텐데 내가 말하기만 하면 참가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일 터. 한국과 국제올림픽위원회 사이에 이미 이야기가 끝나 있거나, 그 뒤에 누가 있거나. 그리고 만약 그 뒤에 누군가가 있다면 필시 그건 미국이리라. 별로 대단한 추론도 아니었다.
‘동계 올림픽 주최국이 미국이고, 한국의 뒷배는 미국 아닌가?’
거기까지 사고가 미치자 차라리 전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냥 싹 무시해버릴 수 있었으니까. 막말로 쌀만 받고 내는 모른다면서 입 싹 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후자면 이게 상당히 복잡해진다. 미국이 겉으로 표출하진 않겠지만, 크게 분노할 것이고 지금 북한 땅에 미군이 몇 배로 늘어나리라. 이게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고 최악은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조선인민공화국과 인공기가 남한의 역사책에서나 뒤적여볼 수 있는 유물로서 남는 것이었다.
김정일이 자신의 생존 능력을 최대까지 놀려 생각하기에 최악이 아니라 그 중간까지만 가도 ‘공화국에게도 역사가 있었다는 증거’ 같은 것이라도 남으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물론 실제로 미제 놈들과 전쟁을 하면 전 국토를 불태우지 않겠지…. 아니 태울 거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죄다 모조리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거 같단 말이야?’
“이런 빌어먹을!”
김정일은 욕지거리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봤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김정일의 착잡한 기분이 한결 나아지긴 했다.
‘별수 없지. 이를 가장 유효하게 활용하는 수밖에.’
김정일이 턱으로 까딱이자 뒤에서 서 있던 호위총국 경호원이 아까 김정일이 던진 만년필을 주워왔다. 상아에 작은 보석을 박아 만든 예술품이었는데, 평소 험하게 다루어 그런지 드디어 그립에 금이 가 있었다.
“새것으로 하나 가져오라!”
그리고 김정일은 그런 만년필을 아주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인민들에게 들어갈 돈은 궁색해도 본인을 치장하고 아끼는 데에는 김정일만큼 관대한 사람이 없었다.
‘내래 섶 위에서 자며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해주겠어.’
비록 섶은 손꼽히는 부자들이나 쓸법한 고급 침대였고 쓸개는 쓰지 않게 조리된 고급 요리겠지만, 김정일에겐 그마저도 굳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김정일은 이에서 소리가 나도록 바득바득 갈았다. 얼마나 거세게 갈았는지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입에서 비릿한 쇠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김정일이 내린 결론은 ‘승인’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와, 이게 되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서 군대는 움직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언제는 군대를 움직이면 손해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던 적도 있죠. 그런데 다시 계산해보니까 썩 그렇게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건 아닌지라. 어차피 주북미군도 늘려야 하니 말입니다.”
“하하하! 주북미군이라! 남포항을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군!”
부시는 그렇게 한참을 웃더니 에스프레소가 들어 있는 잔을 기울여 보였다. 그 검은 물 위엔 광기와 심연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비서실장이 비추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