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88)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87화(88/377)
< 87편 >
‘여긴 어디야!’
그는 마지막 순간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집 앞에서 뛰노는 누구 집 애인지 모를 아이들, 그리고 가로수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 그리고 어둠.
어둠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아주 짧은 사이에 눈앞이 어두컴컴하게 변했고 입과 코는 막혔다. 너무나도 순식간이라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게 ‘납치’라고 불리는 행위였다는 사실 정도였다.
머리는 숙취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깨질 것 같았다. 마치 머리가 유리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잔뜩 금이 간 유리 제품 말이다. 비명을 지르려고 해도 입에서는 비명이 아니라 작은 신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테이프 따위로 입을 막아놓은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고개는 돌릴 수 있었는데, 그저 그뿐이었다. 시야와 청력 그리고 후각까지 박탈당하자 현실 감각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본인이 지금 앉아 있는지 아니면 누워있는지 혹은 거꾸로 매달려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내, 내 이름.’
그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머리가 미친 듯이 아픈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두통이 딱히 기억에 혼선을 주는 건 아닌듯싶었다.
‘제임스, 제임스 휴이시. 그게 내 이름이다.’
직업은 심판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래가 유망한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을 맡고 있었다. 머잖아 2주 사이로 호주 공항에서 미국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올림픽에서 심판을 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2주? 2주라. 그러고 보니까. 지금 며칠이나 지난 거지?’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신변에 닥쳐온 위기인지, 아니면 심판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러러 나온 위기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 둘 전부인지조차 구별이 되질 않았다.
“아, 드디어 일어나셨군!”
‘누군가 있다! 누군가 있어!’라며 몸이 어떤 상태인 줄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몸부림치다가 순식간에 그만두었다. 여기서 몸부림을 친다고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납치한 게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놈의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줘야 했다.
무엇보다 그 누군가가 자신의 청력까지 빼앗은 건 아니라는 사실에 제임스 휴이시는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적어도 아직 까지는 자신의 몸이 성하다는 사실 하나는 인지할 수 있었으니까.
“입에 방수 테이프라니, 무슨 냉전 시대도 아니고.”
제임스 휴이시의 입에서 쫙 소리와 함께 은색 덕 테이프가 뜯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 수염도 좀 뽑힌 모양인지 입 주변에서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보지.”
“당신은 누구요?”
“생각보다 침착하군. 내가 누구일 거 같나? 내 이름을 말해준다고 해서 자네가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제임스 휴이시는 이게 자신이 아는 목소리인지 찬찬히 생각해봤지만, 결국에는 처음 듣는 목소리라고 인식했다. 비슷한 목소리는 많이 있었지만, 이토록 유쾌함 속에 잔인함이 묻어나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억양이 결코 호주인도, 미국인도 그렇다고 영국인도 아니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요?”
제임스 휴이시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이 자신에게 대충 감이 오고 있었다. 돈이야 모을 만큼 모았지만 그렇다고 납치까지 당하면서 누군가가 협박해올 만큼 많은 부를 거머쥐진 못 했던 탓에 돈이 목적은 아니리라.
인간관계가 썩 원활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납치를 당할 정도의 원한을 사고 다닐만한 짓은 하지 않았고 누군가를 등쳐먹은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당연히 자신의 직업인 심판과 관련된 것 아니겠는가? 제임스 휴이시라는 남자는 자존감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지만, 실로 슬프게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사람들을 동원하여 본인을 납치까지 대해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오로지 2002년 솔트레이크에서 벌어질 심판 때문이었다.
“편파판정이오? 어느 나라의 손을 들어주면 되겠소? 귀하가 시키는 방침대로 판정을 하겠소! 내가 원하는 건 내 오로지 안위와 영달뿐이오!”
“아, 귀청 떨어지겠네. 입 막아.”
“아니, 그럼 뭘 원하냐고! 뭘 원…! 읍! 으으읍!”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신음으로 변하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으로 제임스 휴이시가 한 가지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이 있었는데, 적어도 이 납치에 관련된 게 방금 대화한 이 남자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저 남자가 이중인격 미치광이가 아닌 이상에야 분명 최소 둘 이상이 움직이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런데 이러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이중인격 미치광이면 어쩌지?’
그러니까 진짜 웬 미친 연쇄살인범 한 놈이 이번에는 자신의 수집품 리스트에 심판 직업을 가진 남성 박제를 추가하고 싶다면서 이러고 있는 거라면? 인체 신비전을 벌이기 전에 다 잡은 사냥감에 자신의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성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공포심을 심어주는 게 이렇게 뜸을 들이는 목적이라면?
‘시발! 이건 안돼!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 절대로 이럴 수는 없어! 자유를 갈망하며 몸부림쳤다. 이윽고 쿵 소리와 함께 온몸에 충격이 내달렸다. 그리고 제임스 휴이시는 자신이 의자에 강제로 두 팔이 묶여서 앉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 야야야. 진정 좀 해봐. 또 기절시키기 전에.”
“으읍! 읍!”
“야, 안 되겠다. 원래는 평온한 모습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공포로 질린 모습도 나쁘진 않지.”
‘이런 시발!’
진짜였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인체를 박제하고 전시하기를 즐기는 개싸이코 새끼였다! 식칼인지 뭔지 모를 칼을 가는 소리가 제임스 휴이시의 고막을 고통스럽게 찔러댔다. 그냥 숫돌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라인더로 가는 것 같았는데, 공사장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쇠 깎는 소리였다.
‘혹시 칼이 아니라 꼬챙이 같은 건가?’
박제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고문을 하고 나서 저지를 모양이었다. 어차피 가죽만 보존하면 되는 게 박제 아니던가? 박제에서는 눈알도 어차피 썩지 않는 유리 의안을 쓸 텐데, 그럼 설마 가장 먼저 눈부터 찌르는 건가? 그걸 위한 꼬챙이인가?
‘안돼! 제발!’
제임스 휴이시는 몸부림치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졸도했다.
“엉? 기절했네?”
“씁. 귀찮게.”
기절한 제임스 휴이시 근처에는 건장한 사내 둘이 있었다. 건장하다고 하긴 했는데, 한 놈은 정말로 빼빼 말랐고 한 놈은 정말로 덩치가 우람했다. 어쨌든 빼빼 마른 놈의 손에는 태우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마법의 담배가 들려 있었고 우람한 놈은 국적 불명의 군용 나이프로 면도를 하고 있었다.
이 둘은 남미 출신의 CIA였는데, CIA 주제에 왜 대마초로 증기 기관차를 운행하고 있느냐 물으면 남미에서는 대마가 합법인지라 CIA가 좀 피운다고 하더라고 그 누구도 무어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법상으론 불법이었지만, 시장에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경찰한테 당당하게 묶음으로 할인까지 해주며 팔고 있는 곳에서 이걸 불법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업무 도중에 대마초를 피우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애초에 그들이 그런 스타일인 걸 어쩌랴. 거기다 이 철통 보안을 뚫고 나가봤자 제임스 휴이시가 맞이해야 하는 광경은 이 남미에 끝없이 펼쳐진 아마존 정글뿐이었다.
“여기서 한 달을 버텨야 한다니, 참으로 끔찍하군. 하도 심심해서 이야기라도 해보려고 했더니만, 기절이나 하고.”
그는 수염을 깎던 군용 나이프를 다트판에 던졌다. 그러나 다트판에는 이미 일곱이나 되는 군용 나이프가 꽂혀 있는지라 나이프에 부딪혀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전파조차 통하지 않는 이 은신처에서 즐길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유흥거리였다.
“그런데 한 달 뒤에 다시 이 친구 집안에 풀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렇다고 하잖나. 위에도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럴 거면 호주에서 하든가. 왜 남미까지 데리고 와서 지랄이여 지랄은.”
무엇보다 이 후덥지근한 곳에서 가진 것이라곤 작은 이동용 발전기 하나와 선풍기 2개뿐이라는 현실은 조국에 대한 헌신 같은 걸 넘어서서 너무나도 짜증 나는 일이었다. 조국에 대한 헌신도 몸이 편하고 통장이 두둑해야 우러러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은밀과 긴급성을 요구하는 1급 사안이라고 해서 이러고 있긴 한데, 하는 짓이라곤 이렇게 무슨 망부석처럼 지키고만 있는 일이니 말 다 했다.
‘하긴 러시아 크렘린궁에 들어가서 간첩질하는 것보다는 났긴 하지.’
“그냥 정기 보고나 올려. 쟤는 그냥 수면제를 계속 투여해서 한 달 정도 계속 자게 두자고. 원래 방침도 그거였으니까. 빨리 침대로 옮겨.”
「정기 보고 : 이상 무.」
그가 작성한 정기 보고서는 부시의 집무실 책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부시가 그 보고서를 보고는 살짝 표정이 오묘해졌다. 사실 처음에는 ISU를 어떻게 해볼까 생각해봤는데, 그냥 ISU를 건드리기엔 미국이 만들어낸 건 맞지만 캐나다도 엮여 있고 하니 좀 껄끄러워졌다.
그리고 안톤 오노도 어떻게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적어도 지금 김갑환 본인은 미국인이잖나. 제임스 휴이시만 없으면 알아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탈락할 인간이었다. 더불어 딱히 편파판정이 없더라도 부시는 미국의 저력을 믿고 있었다.
늘어난 예산과 효율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법이었다. 운동계에서 단기간 내에 효능을 보긴 힘들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기초 운동 능력이 증진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부시는 이번 기회에 올림픽이 끝나면 ISU를 한 번 제대로 흔들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궁금한 건 러시아 자본이 정말로 ISU에 침투했느냐였다. 물론 침투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도리어 침투당하지 않았다고 하면 진짜 그거야말로 놀랄 노 자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얼마나 침식당했는지가 궁금했다.
‘어쩔 수 없지. 이건 한 번 제대로 터지지 않으면 훗날 더 끔찍함으로 돌아오고 말게 틀림없어.’
부시가 두들기는 것보다 세상에 직접 나오는 게 더 빨랐다. 붕대로 대충 가려진 상처는 나중에는 웬만한 외과 수술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썩어 곪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개막식은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그거면 충분하지. 뭘 더 바라나?”
“공화당의 입맛을 확실히 사로잡기 위해서 개막식에 군을 넣는 게 나쁜 선택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직접 나오지는 않더라도 영상으로서는 나오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혹자는 올림픽에서 군이 나오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군이 열심히 중동 개입으로 허공에 삽질하면서 욕을 먹고 있을 때의 경우였다. 그러나 지금은 빠른 종전으로 세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즉, ‘세계의 경찰’이라는 칭호가 아직 멀쩡한 이상 미군은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 부분은 더는 논하지 말지. 대신 개회 선언 연설 말이야.”
그리하여 부시는 개막식을 최대한 건들지 않기로 했다. 그가 알고 있던 것과 똑같은 개막식이었지만, 의미가 전혀 남달랐기 때문이다. 다만 세세한 부분에서 변경이 있었는데, 묘하게 애국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다.
그렇기에 부시는 딱 한 부분만 건드리기로 했다.
“예, 대통령님께서 하시기로 되어 있죠.”
“자네들이 짜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