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8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88화(89/377)
< 88편 >
2002년 2월 8일. 21세기 최초의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시작되었다.
TV 화면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올림픽의 성화였다. 절대로 꺼지지 아니하는 성화가 전달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온갖 동계 종목 장면과 미국인들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한껏 도취하기 위해 제2의 국가인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노래 경찰관이라 불리는 테너 성악가인 다니엘 로드리게스가 열창했다.
미국에서 준비한 막대한 돈지랄이 섞인 공연이 지나가고 나선 각국의 선수들로 만들어진 행렬이 이어졌다. 입장할 때마다 국가의 이름을 부르고 각국을 상징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행진곡 메들리에 불과했으나 이런 곳이 부시가 바꿔놓은 부분이었다.
상대적으로 국제적 위상이나 인식이 뒤떨어지는 선수들은 자신의 국적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단체복을 입었고, 그렇지 않은 강대국 선수들은 평범한 옷을 입고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국기를 열심히 휘둘렀다.
그러나 딱히 그것이 국가 인지도에 중점은 둔 건 아닌 모양인지, 그냥 국가 기관에서 꼴리는 대로 입힌 듯싶었다. 당장 스위스만 해도 웬 은갈치 같은 망토를 두르고 입장을 했는데, 이게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의상인 건 확실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감상을 주는지는 제쳐두더라도 말이다.
‘아, 드디어 나오는군.’
“Korea!”
한국은 일단 영어로는 ‘K’ 카테고리였기 때문에 케냐(Kenya) 선수단 다음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선수단이 입장하는 모습은 부시의 기억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북한과 남한이 양손에 각자 자신의 국적을 상징하는 인공기와 태극기를 휘두르고 있었고 두툼한 흰색 패딩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옅은 하늘색으로 한반도가 있었다.
따라서 행렬도 가장 앞에 한반도기가 선행하고, 그 뒤를 인공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입장했다. 음악은 아리랑을 서양 악단에 맞게끔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평화가 걸어들어오는군. 제법 괜찮은 광경 아닙니까?”
부시의 뒤에는 온갖 국적의 언어를 섭렵한 천재 통역관이 서 있었다. 오늘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통역관이었다. 듣기로는 단순 실생활을 넘어서 현지인 이상으로 실무에서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27개나 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사람을 부리는 사람이지.’
부시는 오랜만에 권력다운 권력을 누린다며 득의양양하게 등골을 쫙 폈다. 적어도 지금의 부시는 이것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부시가 도대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느냐면.
“기렇습네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좋긴 좋죠.”
“한반도에 평화가 와서 좋군요.”
“평화가 좋긴 좋지.”
순서대로 장성택, 리커창,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장성택이 이곳에 온 이유는 별거 없었다. 눈깔이 돌아간 김정일이 김영남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보냈기 때문이었다.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으로 치면 국회의장 같은 존재였는데, 쉽게 풀면 ‘상징적 국가원수’였다.
그리고 장성택은 ‘조선로동당 청년 및 3대혁명 소조부 부장’ 자리를 지니고 있었는데, 북한 국내에서는 공공연하게 ‘1부장님’이라 불리며 실질적으로 김영남과 함께 북한의 이인자에 근접한 자리를 맡고 있었다. 이인자는 아니지만, 이인자에는 한없이 가까웠다.
요컨대 북한은 성의를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고 시위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것도 이거지만, 장성택과 김영남을 시켜 저 미치광이 전투기 대통령을 눈앞에서 똑똑히 보고 분석해오라는 의도도 어느 정도 있었다.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북한을 움직인 건 고작 쌀 ‘15t’이었다. 경수로 사건 이후로 잠시간 대북 지원이 끊겼는데, 이는 대북 지원의 첫 물꼬를 트는 것이었다. 훗날 쌀 지원을 만(萬) 단위로 하기 위한 트럭 몇 대 말이다.
정말로 이 트럭만이었다면, 김정일도 별생각 없이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겠지만, 문제는 망할 그 뒤에 따라붙는 ‘미국 동계 올림픽에서 공동입장’이라는 문구였다.
단순히 문구만 본다면 이 제안을 ‘나 김정일이를 비롯한 북한 전체를 엿 먹이는 것이다!’라고 성명을 낼 수도 있겠지만, 김정일은 참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만 명석했다. 처음에는 ‘15t’이라는 말에 격분했으나 공동입장에서 기어코 냄새를 맡았다.
김정일은 그 출중한 재능과 감각적 본능을 최대한 활용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북한에서 대규모로 미군이 주둔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다소 온건하다고 분류되는 비서실장마저 이것을 빌미로 군을 움직일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이는 대한민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15t. 몇 번을 눈을 씻고 봐도 비상식적인 처사에 대한민국 정부마저 그놈의 파운드 야드 법처럼 혹시라도 단위가 잘못된 건 아닌지 몇 번이고 미 대사관을 통해서 확인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오로지 ‘쌀 15t이 맞다.’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일단 대한민국 정부는 ‘그 전투기가 이럴 리 없어! 1g이라도 북한에 쌀을 지원해 준단 말인가?’와 ‘그 대통령이 고작 15t이라고?’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당황하긴 했으나, 일단 미국의 요청대로 움직이긴 했다.
그동안 미국이 낸 결과가 좋았고, 너무나도 비상식적인지라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있겠지.’라고 지레짐작해 버렸다.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 다음과 같았다. 고작 쌀 15t으로 북한에서 김정일 다음가는 사람들을 중 두 명을 미국 땅에 끌어들이는 ‘쌀 15t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벌써 한반도에 통일이 보이는 듯합니다.”
리커창은 후진타오가 점찍어둔 당의 후계자였다. 리커창은 참으로 희귀한 인재였는데, 중국 공산당에서 한 줌조차 되지 않을 온건파 중에서도 가장 최핵심 권력과 가까운 인재였다. 후진타오가 점찍긴 했지만, 일단은 예전부터 자오쯔양 측근이었으며 자오쯔양은 천안문을 지지했던 참 중국인이었다.
물론 자오쯔양 본인은 공산당에서 완전히 실각 되어 연금 타 먹으며 골프장이나 전전하는 신세가 되긴 했지만, 좌절된 중국 민주화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가 이곳에 직접 온 이유는 푸틴이 부시와 이야기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담판을 짓고 싶어 했다.
물론 노골적으로 묻지는 않겠지만, 의향을 탐색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하여 직접 무거운 몸을 이끌고 미국으로 날아왔다. 일단은 전직 KGB 요원이기도 했으니 사람의 속을 떠보는 능력 또한 출중했고 푸틴은 부하에게 판단을 시키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이 우리 독일처럼 통일했으면 좋겠군요.”
사실 부시의 근처에 있는 이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동계 올림픽 참여국부터 참여국이 아닌 나라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수장이나 수장 대리가 미국의 대통령인 부시를 중심으로 몰려 있었다.
덕분에 이곳은 완전히 한순간에 V를 몇 개를 붙여도 모자랄 정도로 VIP존이 되어버렸고 경호원들의 눈은 그 어떤 때보다도 충혈되어 있었다. 그들은 총기 난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어떤 미치광이가 이쪽으로 폭탄이라도 던질지 몰라서 전전긍긍해야 했다.
“A-23번 석에 테러 의심 제보 들어옴.”
“D-1번 석에 거동수상자 발견.”
작은 소란, 작은 움직임, 작은 말까지 매의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고 군사 위성을 동원하고도 온갖 첨단 장비를 사용해서 VIP존을 지키고 있었다. 온 세상 지도자와 지도자 대리가 이곳에 모여있었기 때문에 따라서 그 지도자들을 경호하는 이들도 참으로 많았다.
잠시 경호 체계에 대해서 혼선이 빚어졌지만, 결국 모든 경호와 책임을 미국에서 지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연계되지 않은 경호는 도리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평소에 배는 민감한 경호팀의 측은한 모습을 보며 부시가 입을 열었다.
“미스터 장이라고 했던가?”
이는 장성택을 말함이었다. 통역관은 처음에 갖은 고초를 지녔다. 왜냐면 말하는 입은 많은데, 통역관은 한 명이고 듣는 사람인 부시도 한 명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말을 통역하고 어떤 말을 통역하지 않을지 스스로 결정하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심지어 멀리서 말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저쪽으로 뛰어가야 했기 때문에 심적으로나 신적으로나 고되고 힘이들었다.
다만 그 꼴을 보고 있던 부시가 자신이 원하는 이들만 통역해달라고 말하고 나서야 통역관의 방황은 끝이 났다.
“예?”
“그대는 나름 이인자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까?”
장성택은 대가리를 야구 방망이로 후려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진짜로 후려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뒷머리를 부여잡았다. 다행스럽게도 외상은 없었지만, 장성택이 받은 내상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알고 한 말인지, 모르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북한에는 이인자에 가까운 사람은 있어도 이인자는 없었다. 왜냐면 북한의 통제권을 쥐고 있는 김정일이 서로 아군끼리 죽이는 것을 즐기는 희대의 변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이들은 무조건 김정일의 아래였고 또한 김정일의 아래에는 확실한 서열이 없었다.
구태여 따지자면 김정일의 총애를 얼마나 받느냐가 서열의 기준이었다.
그건 그렇고 뭐 이렇게 사람이 돌리지 않고 직구로 말한단 말인가? 진정 이 사람이 미제의 수괴가 맞단 말인가?
별의별 오만가지 가설이 장성택의 뇌를 겉돌다가 멍청한 얼굴을 한 마리 학이 되어 훨훨 날아가고 나자 미국의 대통령씩이나 되는 인물이 이걸 모를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내 자신이 놀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잔뜩 화가 난 장성택은 머릿속 혼잡함을 일거에 베어내어 이성을 되찾고 정성스레 정치적 용어로 포장한 준비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당의 모든 결정은 당 중앙, 위대한 령도자, 인민의 어버이,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정일 동지께서 정하십네다.”
자신의 발언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다만 통역관은 이 장황한 칭호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일축했다.
“아니 이인자가 맞냐고 물었더니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이봐, 제대로 전달한 거 맞나?”
덕분에 가운데 끼인 통역관만 죽어 나가고 있었다. 통역관 본인도 이제 자기가 진짜로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의심이 되어가고 있을 수준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물리적으로나 정치학적으로나 너무나도 복잡했다.
사실, 이 정도나 되는 통역관이었기에 이만큼이나 정신줄 붙들고 통역하고 있는 거지 일반적인 통역관이었으면 벌써 정신이 능욕 되어 인원 증가나 교체를 요청하고 있었을 터다. 사실 부시 또한 저 정도로 힘들어할 줄은 모르고 있어서 살짝 미안해지긴 했다.
‘천재라니까 별생각 없이 알았다고만 했지 뭐.’
그리고 장성택은 이 통역관 이상으로 몰려 있었다.
‘이 빨래판에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미제 애미나이가 오늘 나를 죽이려고 하는 기야?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북한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숙소로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정일의 명령은 ‘확실히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오라우!’였으니 말이다.
물론 명령을 무시하고 미국 대통령이 쫓아냈다고 거짓말을 한 뒤에 자리에서 도망칠 수도 있겠지만, 하필 이 자리에는 지금 장성택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영남! 하필 왜 이 간나랑 같이 보내서!’
그렇다. 증인이 있었다. 자신의 휘어잡고 있는 부하들은 상관이 없었지만, 김영남은 장성택이 어쩔 수 없는 존재였다.
“음, 뭐 좋습니다. 그럼 북한은 남한과 ‘평화 통일’을 할 의사가 충분히 있는 거요?”
이건 또 쉬웠다. 이 질문에는 이미 김정일 장군 동지가 교시하신 모범 답안이 있었으니까. 장성택은 한시름 놓았다며 속으로 안심했다.
“우리 북조선은 언제나 남한과 화해를 통해 통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합네다.”
“하하하, 그것참 마음에 드는 말이군요!”
정말이지 말이다. 그런 부시의 입장에서는 시답잖은, 장성택의 입장에서는 지옥과도 같은 대화가 오가는 동안 경기장 하늘에서는 폭죽이 쉴 틈 없이 터졌고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성화가 입장했다. 모두가 USA를 외쳤고 그리스의 올림피아부터 미국 솔트레이크시티까지 무사히 봉송된 성화는 미국 선수의 손에 의해서 가스로 된 도화선을 타고 오르고 올라 나선탑 가장 최정상에서 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빛을 세상에 밝혔다.
“2002년 최초의 동계 올림픽의 시작이군. 개회식 선언만이 남았나.”
그렇게 어느새 부시의 개회선언 시간이 되었다.
“다녀오십시오.”
‘드디어 이 마귀 같은 작자에게서 풀려났구나!’
장성택은 속으로 만세를 몇 번이고 외쳤다. 다소 유치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이 몰리고 몰리면 원래 가면이 벗겨지는 탓에 원색적이고 유치해지는 법이다.
그걸 보고 있던 부시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하하하! 무슨 말입니까?”
“예?”
“본인도 같이 가시는 겁니다.”
“네?”
‘이 미친 사탄의 종자가 무슨 말을 하는 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