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90)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89화(90/377)
< 89편 >
선언이라 하면, 보통 ‘제 몇 회 올림픽 개회를 선언합니다!’로 개회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부시가 대놓고 살짝 길어질 것이라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에 방송국들은 부시를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 엄청난 악전고투를 치러야만 했다.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서 찍을 영광은 공화당이 밀어주는 FOX에 돌아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꼭 명당이 하나인 건 아니잖은가.
어쨌든 드디어 부시가 단상에 올랐다.
‘장성택’과 함께 다정한 분위기로 손에 손을 맞잡으며 말이다!
물론 다정이라고 한 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시선에 불과했고 단상까지 끌려 나오다시피 한 장성택은 졸도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신의 몸 하나는 건사하겠다고 다짐했던 장성택은 꿈나라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디로 가도 숙청 아니면 죽음밖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은 표지판 꽂힌 갈래 길 앞에서 방황하고 있는 장성택만이 남아 있었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광경에 모든 좌중이 술렁였다. 대부분이 장성택이 누군지도 몰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설령 장성택이 누군지 안다고 하더라도 별로 바뀔 것도 없었다.
구태여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차이점을 서술하자면 장성택을 모르면 단순히 누구지 싶은 정도로 끝나지만, 장성택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눈이 튀어나오도록 경악하는 수준 정도였다.
“제19회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개회식을 선언하기 전에 잠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에 북한에서 일련의 사건이 있었던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삼자 회담 등 좋은 일도 있었지만, 경수로 폭발사건을 비롯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소리가 나오자 모두가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경수로 폭발사건은 북한의 자작극으로 판명이 나긴 했지만, 아직 까지는 의혹은 남아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부시 앞에서 이게 언급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가장 피해야 할 사람 입에서 그 사건이 언급되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특히나 옆에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도 아니고 육성으로 듣고 있는 장성택의 심정이 가히 가관이라 부를 만했는데, 그 폭파사건 때문에 지금 북한이 어떠한 고초를 겪고 있는지를 상기하니 당장이라도 저 뻔뻔한 놈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싶은 검은 충동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이토록 격렬한 감정은 김정일이나 김일성한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북한이 겉으로는 화해 청하고 속으로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 않나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입으로 평화를 외침에도 군대의 규모를 점점 늘려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는 훗날 화전양면 전술로 불리는 것으로, 북한의 한국을 대하는 기본 외교 전술이었다. 북한의 정부가 김씨 집안인 한 미래영겁 바뀌지 않을 전술이었다. 이를 듣고 장성택은 제 발에 저려 입술을 한번 훑었다. 장성택의 마음처럼 입술 사이를 삐져나온 혓바닥에 2월의 싸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까 북한의 제1 부장인 미스터 장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지도층과 국민은 방향성이 약간 다를 뿐, 모두가 평화를 원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뚱딴지같은 소리에 좌중은 물론 장성택까지 들썩였다.
평화, 좋지 평화. 솔직히 말하면 북한이 극한으로 추구하는 게 평화는 맞았다. 정확히는 전 세계가 김씨 왕조 아래에 적화통일된 북한만의 평화였지. 서방 세계가 말하는 평화가 아니었단 말이다!
솔직히 여기까지 올라와서 고작 립 서비스 한 번 못 해주겠나? 얼마든지 ‘예! 우리 북조선은 평화를 원합네다!’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언제나 그랬듯 훗날 그것은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면서 말을 바꿀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장성택이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였다.
북한으로 돌아가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가히 상상이 갔다. 무얼 돌려 말하겠는가? 숙청이다! 숙청! 인민부터 지도층에 이르기까지 김정일 빼곤 모두가 두려워하는 숙청 말이다!
차라리 장성택이 아니라 김영남이었으면 상관없었다. 김영남은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고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확실하게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장성택은 아니었다. 장성택은 어디까지나 조선로동당 청년 및 3대 혁명 소조부 부장일 뿐이었다. 권력의 핵심이자 최고 요직이긴 했지만, 국가를 대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것을 거부하자니 저 미친놈이 무슨 일을 벌일지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북한으로 돌아가서 벌어질 일은 상상이 갔지만, 이 만리타향에서 벌어질 일은 상상이 가질 않는단 말이다!
차라리 손으로 이끌 무렵에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도망갔으면 좋았을 것을!
이 경기장의 모든 사람이. 아니, 전 세계의 인간이. TV를 보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장성택의 입술을 주목했다.
“자, 말씀해주시오.”
북한은 그 누구보다도 서방 세계식 ‘평화’를 원하고 있다고.
* * *
인류는 밟기만 해도 푹푹 들어가는 설원과 미끄러지는 얼음 위를 이동하기 위해서 많은 발명을 해냈다. 스케이트, 설피, 스키, 스노보드, 무한궤도 등 개발된 이동수단이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정점은 스키와 무한궤도가 달린 스노모빌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단순 스포츠로 따지면 단언컨대 ‘스키’를 따라갈 종목이 없었다. 스키는 가히 동계 올림픽의 만병지왕이라 할 수 있다. 혼자서 스키를 사용한 종목만 번외 격인 바이애슬론까지 합쳐 일곱이었다. 그 와중에 세부종목으로 따지면 고작 한 종목인 프리스타일 스키가 10개의 세부종목을 가질 정도로 많았다.
그 다음가는 종목이자 부시가 동계 올림픽의 꽃이라 부른 스케이트가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 스케이팅’까지 고작 셋이라는 점을 상기했을 때 이는 엄청난 숫자였다.
그리고 지금 그 만병지왕이 힘차게 눈 사이를 해치며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점프대 위에서 예술성을 논하더니, 이내 안전히 착지해 관객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다만 부시만큼은 이를 순수하게 즐길 수 없었는데, 본래 오늘은 눈이 오지 않는 날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뭘 그런 걸 다 기억하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날이 김갑환에게 있어서 유독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늘에서는 폭설에 가까운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경기를 중지할 정도는 아닌지라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들이 공중 곡예를 할 때마다 카메라로 담아내는 족족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는 비장미를 연출했다.
‘그래, 나비효과란 이런 것이겠지.’
이러한 점만 제외하면 부시는 최대한 일을 미리 처리해두고 올림픽을 만끽하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새로 생기는 일은 쌓이겠지만, 그래도 중간에서 비서실장이 걸러주니 그럭저럭 처리할만했다.
모두가 각국이 이길 것이란 희망을 지니고 가슴을 졸이는 참으로 평화로운 날이었다. 적어도 스포츠에서는 선수를 제외하고 승패에 목숨을 걸진 않지 않은가? 그들이 패배하더라도 관중이 얻는 것은 상대인 박탈감뿐이다.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전쟁보다야 수천 배는 낫지. 아니 그렇습니까?”
이곳에 있는 모두 사람이 올림픽을 즐기고 있었다.
“…맞는 말입네다.”
영혼이 뼛속까지 털린 장성택만 제외하면 말이다!
공포감이란 본디 더 무서운 쪽에 굴복하는 것 아니겠는가. 장성택이 좀 더 강력한 공포와 친구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김영남과 함께 온 걸 껄끄러워했지만 도리어 김영남이 없었으면 사달이 날 뻔했다.
김영남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치를 채고 발 빠르게 전화를 걸어 직접 김정일에게 부시가 억지로 시켰다면서 커버를 쳐주지 않았다면,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그가 갈 수 있는 장소는 오로지 정치범 수용소나 사형장뿐이었을 터니 김영남은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미제에 굴복한 늙은이라면서 죽을지도 몰랐지만, 아주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하는 것과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났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압도적으로 전자 아니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이 성악설의 화신과도 같은 자가 장성택을 붙잡고 당최 놓아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피곤합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온갖 사람이 붙어서 장성택에게 호사를 누리게 해줬다. 하다못해 ‘혼자 있고 싶습니다.’라는 말에는 본인을 제외하고 주변에 사람을 물려주었다.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말이 딱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살려주세요.’라는 말이었다. 김영남이 말을 해주긴 했지만,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누군가가 ‘아니, 북한이 제아무리 독재국가라지만, 그래도 행정부가 있고 정치가 있는데 숙청이 그리도 자주 나느냐?’라고 물으면, 장성택은 이렇게 대답하리라.
북한에서 숙청이란 물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 수분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물질인지라 좋든 싫든 매일매일 마시고 또 마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딱딱 정하고 물을 마시겠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마시는 거지.
숙청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일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바로 하늘나라 행이었다.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한번은 김정일이 색다르게 죽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모양인지 진짜 미사일에 사형수를 묶어놓고 하늘을 향해 발사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국가 간 문화교류는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竹─帳幕)을 계승하여 그대로 21세기까지 쇄국한 주제에 홀로 온갖 해외 문물을 섭렵하는 김정일답게 이를 두고 ‘더러운 폭죽’이라 칭했다.
어쨌거나 혼이 빠져나간 지금 장성택은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내가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시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질 못하고 부시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자마자 나갔던 혼이 제 발로 전력 질주해서 몸으로 뛰어 들어왔다. 차가워졌던 가슴이 자동차 엔진의 연소반응처럼 거세게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고작 수초 사이에 눈깔이 시뻘겋게 충혈되고 얼굴에 모든 피가 몰리는 게 느껴졌다. 단순히 기분 상이 아니라 얼굴에서 새하얀 김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합네까?”
‘이 빌어먹을 아메리칸 개새끼!’
“내가 그대를 확실히 살려줄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쪽으로 귀화는 하지 않겠습네다.”
이 말은 한국인들에게 일본 돈을 먹고 일본으로 국적을 옮기라는 말과도 같았다. 물론 자본주의에 충실한 인간이나 기업들은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지만, 통상적으로는 미친놈 소리 듣기 십상이었다. 물론 장성택의 경우에는 고작 돈이 아니라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긴 했지만, 미제에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이것을 논하는 대상이 이 상황을 만든 부시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큰 반감을 지닐 거 같지는 않았지만, 하필 이 논제를 거론하는 인물이 부시였다.
“미제에 굴복한 제1 부장이 이대로 돌아가면 좋은 꼴은 못 볼 텐데?”
“내래 더는 당에 적을 두진 못해도 목은 멀쩡할 거요.”
장성택은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표정을 와락 구겼다. 원래 나이를 먹으면 늘어나는 게 경험이고 경험은 고집이 된다. 그래도 이유 없는 고집이 아니라 다 이유가 있는 고집이었다. 그냥 ‘나는 싫어!’가 아니라 남들이 무어라 할지라도 이것만큼은 그동안 살아온 경험에 입각하여 절대로 못 하겠다고 하는 거다.
따라서 장성택은 자신의 영달이 전부 사라지고 이팝 대신 잡곡밥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귀화는 못 하겠다 이거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지금 논하고자 하는 건 귀화가 아니라 그대의 목숨이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네다만.”
“김영남의 신기루와도 같은 보증수표가 아니라 내가 그대를 죽지 못하게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이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슈퍼 솔져 프로젝트니, 뭐니 하더니 불로불사라도 개발한 기야? 아니면 드디어 저 아메리카 폭격기가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장성택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너무나도 허황한 소리 덕에 얼굴을 장악하고 있던 뜨거운 열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축축한 장갑 위에서 녹아내린 눈이 식은땀에 섞여 반투명한 얼음장이 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공상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닙네까?”
“흠, 통역으로 하느라 의미가 잘못 전달된 모양이군.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대가 천수를 누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이오.”
그 소리를 들은 장성택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일그러진 얼굴은 필시 그가 태어난 이후로 가장 해괴한 얼굴이었으리라.
당연하겠지만, 입에서는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