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9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90화(91/377)
< 90편 >
본디 인간이란 궁금증으로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온 생물인지라 궁금한 게 있으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즈음은 발을 들이미는 게 사람이라는 족속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말을 듣는다고 해서 몸이 아픈 건 아니잖은가?
어쨌거나 이 정도까지 미끼를 쥐고 흔들고 있으면 헛소리라 예상을 하고 있어도 들어는 보고 싶은 법이다. 말을 듣는 것만이라면 공짜가 아닌가? 만약 장성택이 이를 개소리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혹시 모르지.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철천지수에 백년원수지만,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내가 아닌가.
그동안 그가 원하는 모든 일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보란 듯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에 대한 욕구란 불길과도 같아서 위기가 바람의 형태를 빌어 불어오면 도리어 더 활활 타오르는 법이다. 저을 노 하나 없이 녹아가는 유빙을 타고 망망대해를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장성택이 그저 부시의 말을 무시하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좋아. 들을 준비가 된 것 같군.”
무언은 긍정이라 하였다. 무시일 수도 있으나, 저 부릅뜬 눈깔은 도저히 무시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삶에 대한 욕구로 불타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가슴속에서부터 우러러나오는 순수한 분노던가.
어쨌거나 어느 쪽이든 한번 들어는 보자는 표정이었다.
“나는 이렇게 할거요.”
망망대해에 등대가 하나 솟아올랐다.
* * *
김정일 측근이 아닌 사람이 보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정일의 집무실에서 나오고 있는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달립니다! 달립니다!! 달립니다!!”
왜냐면 김정일이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프로그램이 남조선 방송인 것도 모자라서 올림픽 생중계였으니 말이다.
“안톤 오노! 아폴로 안톤 오노! 선수! 아~! 넘어! 지고! 말았! 어요! 정말로! 아쉽! 습니다!”
해설자는 전혀 아쉽지 않은 말투였다. 성대결절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인 주제에 그 안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기래 길티! 저 일제와 미제가 섞인 잡종을 제치라우!”
정말로 놀랍게도 김정일은 올림픽을 즐기고 있었다.
개회식을 보고 나서 이 집무실에 있던 TV는 물론이거니와 이 건물 안에 있는 TV란 TV는 모조리 부서져야 했지만, 김영남과 거의 한 시간에 걸친 통화로 어느 정도 사태를 파악하고 장성택에 대해 정상참작을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경기에 대해서는 일단 일제놈들보다는 미제놈들이 나았고 미제놈들보다는 중국하고 러시아가 나았고 중국하고 러시아보다는 남조선이 나았고 남조선보다는 북조선이 나았다.
그러나 저 빙상경기장 트랙 위에 북조선의 인공기를 단 선수가 없으니 김정일은 자연스레 남조선을 응원하게 되었다. 스포츠 앞에서는 국경이 없다더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 말이 증명된 셈이다.
“어딜 감히 일제놈이랑 미제놈이 우리 조선인을 이기려 드니!”
그렇게 요리사를 갈궈 만든 초밥과 값비싼 코냑을 마시며 스포츠 정신에 불타오르고 있던 찰나, 갑작스레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김영남이가 전화를?”
혹시나 경기에 눈이 팔려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나 싶어 시계를 흘낏 올려다봤지만, 역시나 정기 보고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큰 사달이 났거나, 도저히 김영남 스스로는 판단하기 힘든 사안이 생겼음이 확실했다.
“뭐니? 말해보라.”
「김정일 장군 동지.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습네다.」
사람의 목소리를 무미건조하게 만들기 십상인 통화음임에도 불구하고 김영남의 당혹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한 탓에, 혹여 다른 마음을 품고 있지 않나 의심할 정도의 인간이거늘. 뭐 이리도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낸단 말인가?
“뭬야? 통제가 불능해?”
김영남이나 되는 사람 입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지금 김영남이 대면한 상황이 진짜로 통제 자체가 불가능한 긴급을 요하는 일이란 말이렷다.
“어서 빨리 말해보라!”
잔뜩 흥분한 김정일의 목소리를 들은 김영남이 후폭풍을 대비하기 위해서 아주 잠시만이지만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각오를 다진 듯 입을 열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솔트레이크시티에 장성택을 영구 대사로 하여 북한 대사관을 짓고 싶다고 합네다!」
“지랄 말라!!! 당장 돌아오게 하라!”
아니나 다를까 김정일은 휴대 전화에 달린 송수화기가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의 성량으로 분노를 토해냈다. 덕분에 김영남의 휴대 전화는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쇳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이게 장성택의 주체였다면 충분히 제 선 안에서 정리할 수 있습네다. 그러나 미제의 수괴놈이 억지로…!」
“이, 이게 도대체!”
미국에 누군가를 보내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차라리 아무도 보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장성택을 죽일까도 생각해봤지만, 그게 도저히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영남이!”
「예. 장군 동지.」
김정일은 당장이라도 손에 쥔 휴대 전화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김정일의 안에서 들끓는 생존본능이 이를 거부했다. 이대로 넘어가면 필시 이 끝이 김정일 정권 멸망의 길이라는 사실이 두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뇌내에서 온갖 화학물질이 핑핑 돌아가며 기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류 최고봉에 도달한 생존본능이 수십 가지 계략을 마치 뜨개질하듯 서로 묶었다가 풀어헤치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음흉한 직조물로 창조해냈다.
“이렇게 된 이상 상황을 가장 유효하게 활용하는 수밖에는 없지. 아니 그렇디?”
「그렇습네다.」
김영남은 김정일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정일의 분노가 가라앉아서가 아니다. 김정일의 목소리가 밝아진 이유 탓이다. 김정일은 유년 시절부터 궁지에 몰리면 이상하리만치 대단한 계책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김영남은 김정일의 비상한 머리를 믿고 있었다.
김정일이 완성한 뜨개질의 첫 코는 도대체 왜 미제의 수괴가 연락 사무소, 대표부, 영사관을 한 번에 뛰어넘어 최상위 외교공관 되시는 ‘대사관’을 짓고 싶어 했냐는 것이었다. 원래 외교라는 게 순서가 있는 것 아닌가.
다른 외교도 아니고 무려 북미수교다. 북미수교. 제아무리 막 나가기로 유명한 제트기라지만, 이건 너무 나가도 막 나가는 거 아닌가? 이건 칼에 목을 들이밀고 거의 억지로 수교하겠다는 소리였다.
이 세상은 신들이 주사위를 끊임없이 굴리는 세상인지라, 그 어떠한 일들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조지 부시와 장성택 사이에 이상한 브로맨스라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감당할 수 없는 미래는 잠시 접어두자.
‘노벨 평화상.’
그것이 바로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분명 노벨 평화상일 기야. 딱히 다른 가설이 떠오르지 않는구먼, 기래.’
적어도 김정일이 아는 선에서 현실의 파편을 조합해내 자아낸 최고의 가설이었다. 평소에는 뇌가 우동사리 수준에 불과함에도 이런 일만 벌어지면 바이트 수준의 데이터나 처리할 법한 고물 두뇌가 급속도로 메가 두뇌로 진화하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그까짓 대사관 지으라고 하라우.”
김정일은 마음을 아예 달리 먹었다. 급류는 함부로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급류를 만나면 물길을 타야지 정면으로 맞서선 절대 승산이 없다. 도리어 잘된 일이었다. 미제에 주는 북조선이 주는 만큼 돌려 받아먹으면 그만이다.
대사관이 북한과 미국에 있으면, 그만큼 뭔가 얻어먹기가 수월해지겠지. 공산주의가 별거인가? 당장 주체사상만 해도 공산주의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닌가? 당장 중국놈들만 해도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미국에 한 방 먹기 전에는 잘만 나가고 있었다.
미제놈들 자본이 좀 들어온다고 한들 어떠리, 경제가 활성화되어 인민들의 집안 사정이 좋아지면 모조리 김정일의 공으로 돌리면 그만인데. 주체사상이 좀 희석된다고 한들 어떠리, 주체사상이 무너진다고 독재가 무너지는 것은 아닌데.
「아, 그런데 미제가 요구한 사항이 있습네다. 미 대사관을 굳이 남포항에 짓고 싶다고 합네다.」
“남포항에?”
북조선의 수도인 평양이 아닌 것이 약간 의아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또 저 미치광이가 무슨 이상한 꿍꿍이를 생각 중인 것 같았다. 구태여 추측해보자면 남포항이 그나마 유사시에 대피하기 쉬운 곳이라는 점 정도였다. 그것도 아니면 미제 자본주의의 침략을 남포항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하거나.
“마음대로 하라고 하라우! 내래 이번만큼은 관대함을 보여주갔어. 다만 이번 수교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물어보라!”
설마 진짜 수교만 하고 땡 치지는 않겠지. 일시적인 지원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기반 시설과 석유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김정일은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만 충족되면 상관없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사치라는 건 아무리 해도 모자라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날고 긴다고 하는 부자들이 왜 돈에 더더욱 집착하겠는가?
나라가 좀 더 부강해지면 좀 더 많은 사치를 할 수 있지 않겠나? 다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김정일은 북조선을 제 몸처럼 생각했다. 조선 시대 왕이나 할법한 발상이지만, 실제로도 가진 권위나 하는 짓이나 왕과는 별다를 게 없었으므로 거기서 거기였다. 심지어 나라 이름에 조선까지 들어가지 않나?
어쨌든 그 땅에 살아가는 인간이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기 나라가 부강한 게 좋지, 빈약한 게 좋겠나? 인민들의 배가 부르고 나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니 뭐니 하며 온갖 별 시답잖은 시위라도 할지 모르지만, 중국처럼 강경하게 대항한다면 별문제가 없으리라.
거기다 이미 천안문과 파룬궁이라는 매우 훌륭한 표본 또한 있으니, 적당히 따라 하면 그만 아닌가? 모든 것을 부숴버릴 태풍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북조선의 앞날은 이리도 창창했다.
“내래 남포항은 생각해본다고 하고, 이 건에 대해서는 시간과 무관하게 보고하라.”
「알겠습네다.」
그것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미치겠구먼, 기래.’
김영남은 되는 일이 없다며 통화하기 전에 불을 붙인 담배를 마저 피우기 위해서 입으로 가져다 데려다 비명을 질렀다.
“아악!”
그는 담배를 내팽개치곤 발로 짓밟았다. 거의 필터까지 타가고 있던 탓에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데인 손가락 사이가 화끈거렸다. 도시의 더러운 눈을 한주먹 집어 몇 번 움켜쥐더니, 이내 화끈거림이 가셨는지 새로운 담배를 입에 꼬나물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다가 새 담배를 태우기 위해서 담뱃갑을 열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담뱃잎 가루뿐이었다. 김영남의 발치에는 총 다섯 개비가 떨어져 있었다.
담배란 개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사람이 좆됨을 알려주는 지표였는데, 한 개비는 별일이 아니다. 두 개비는 조금 심각하지만,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일이다. 세 개비는 공개적으로 일이 수틀렸음이고. 네 개비부터는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대처할 수 없는 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다섯 개비는?
“내래 완전 좆되지라.”
미제 수입 전선에 선 것도 모자라서, 가장 선두에 서게 생겼으니. 이게 좆됨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다만 이미 북조선은 미국 할아버지. 그러니까 100달러에 그려진 벤저민 프랭클린이 최고라며 암시장에서 달러로 계산하고 있긴 하다만, 이건 앞이 아니라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었다. 엄연히 ‘암’이 붙어 있는 짓이란 말이지.
‘끝이다. 끝. 북한 정권의 종말이 눈에 보인단 말이지.’
다른 곳도 아니고 미제와의 수교라니,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독재자의 주구 주제에 무슨 깡이 있다고 거부하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락&롤과 올림픽 경기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굵직한 눈송이와 함께 떨어지는 어두컴컴한 뒷골목에서 김영남은 다짐했다.
‘김정일 수령동지의 위대한 조선인민공화국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