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98)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97화(98/377)
< 97편 >
노인 하나가 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담배가 유해무익하다지만, 세상 고심을 덜어주는데 술과 담배만 한 것도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렴한 궐련을 피우기 마련이지만, 올해 100세가 되는 할아버지는 파이프를 피우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파이프를 피우다 궐련을 피우면 궐련에서 엿 같은 쓰레기 맛이 나기 때문에 파이프를 고집했다.
담배 파이프는 투박하여 나무로 만든 것이었는데, 담배를 모르는 사람이 한눈에 봐도 관리가 아주 잘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파이프를 몇 번 툭툭 털어내자, 파이프가 재채기와 함께 찌꺼기 한 덩어리를 내뱉었다. 잘게 썬 담뱃잎을 넣고 다시 한번 불을 붙이자 불로장생의 비밀이 연기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막다른 골목길은 노인의 담배 피우는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하기 짝이 없었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었다. 골목은 노인의 것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것이기도 했다.
“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세요!”
“빨리요!”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노인의 온몸에 배어있는 열대과일을 훈제한듯한 달콤한 향을 좋아했다. 따로 향이 첨가된 궐련이 아니고서야 담배에서는 나기 힘든 향이었지만, 이 달콤한 향은 몇몇 담배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이었다.
이는 노인이 버지니아 계열을 선호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덕분에 사내가 나이를 먹으면 내뿜는 쉰내를 감출 수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싫어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건 다른 어른들이 들려주지 않고 할아버지만이 들려주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한 번은 짓궂게도 남녀의 교접에 대한 명강의를 일타강사 뺨치게 나불거렸다가 부모님들로부터 원성을 좀 들었다.
그런데 알게 뭔가. 아이들도 세상을 알 권리가 있었다.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다. 노인이 어릴 땐 저 나이면 알 거 다 알았고 집안이 좀 괜찮다 싶으면 이미 아내까지 점지 되어있는 경우가 빈번했다.
“허허, 애들이 말이 많구나. 조금만 기다려보렴.”
이야기 할아범은 이야기보따리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냈다가 접어 넣으며 가다듬더니 이내 혓바닥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옳다구나! 오늘은 기분이 좆같으니 이 이야기면 되겠구나!’
“DDS를 알고 있니?”
“알고 있어요!”
“엄마가 우리 도시를 지키는 아저씨들이라고 했어요!”
“허허, 요놈들 참으로 맹랑하구나. DDS는 두테르테의 주구란다.”
“주구요?”
“껄껄, 아주 개새끼라는 소리란다.”
“와!”
아이들은 참으로 순진무구하다. 선악에 대한 관점이 흐릿하며 그저 자극적인 이야기를 갈구한다. 요즈음 아이들이 즐겨보는 슈퍼 히어로라는 것들만 봐도 그렇다. 영웅 여럿이서 악당 하나를 괴롭히는 게 주요 콘텐츠 아닌가?
“DDS는 평소 눈여겨보던 범죄 조직을 여건이 되는 데로 족치기 시작했지. 그저 마구잡이로 말이야. 관련자라면 일단 임시 수용소가 터지도록 잡아두기부터 했어. 수용소라곤 해도 심문 대기실에 가깝긴 했지만.”
거기까지 말한 노인은 담배를 몇 번 머금었다. 이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담배를 달라고 몇 번 조른 적이 있지만, 노인이 아무리 막 나가도 아이들에게 담배를 권할 정도로 개방된 사람은 아닌지라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곳이 운영된 지 채 3일이 되질 않았지만, 몹시 비위생적이었고 병마가 득시글거렸어. 하긴 일단 범죄자가 보였다 하면 총부터 갈기던 DDS치곤 굉장히 이례적인 행정처리였지. 그렇게 선별 과정이 끝나면 모조리 두테르테에게 데려갔어.
그중에는 무고한 사람도 있었지만, 눈이 뒤집힌 두테르테에겐 전부 범죄자로 보였을 뿐이었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 자신의 안위와 생명을 위해서 뽑은 시장께서 이젠 자신의 안위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니!
그렇게 그들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을 얻었지만, 그 가르침을 활용할 수는 없었어. 정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란다!”
“와!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알아요?”
“내가 어제 당했거든. 빌어먹을 놈들. 100세짜리 노인네가 죽을 때가 되니까 테러를 한다고? 참 나 어이가 없어서.”
그는 파이프에 있는 잔여물을 털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잎을 채워 넣고 라이터로 몇 번 나눠서 불을 붙였다. 몇 번 막대로 꾹꾹 눌러 줘야 했는데,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신경 쓰질 못했다.
“이야기 끝, 끝! 이놈들아 저리 가라 저리 가.”
한껏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더니, 이내 크게 내뿜어 아이들이 도망치게 했다. 아이들은 그래도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자기가 가장 먼저라는 듯 골목 사이 사이로 뛰어갔다. 그 모습이 자신의 어릴 적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구수한 담배가 쓰게만 느껴졌다.
“콜록, 콜록. 이런 젠장. 그래도 어떻게 용케 빠져나왔군.”
겉멋으로 100년이나 살아온 게 아니다.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범죄자 취급하는 DDS 녀석들이 조금 거슬렸을 뿐.
‘들킨 줄 알았잖아!’
그는 과도하게 들이킨 담배 연기로 인해 맺힌 눈물을 훔치며 실컷 낄낄거렸다. 그가 다바오 폭발의 주범 중 한 명인 것은 분명했다. 다만 다른 무분별한 폭발과는 달리, 그가 한 짓은 테러보다는 보험 사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규모도 다른 폭발에 비하면 실로 작은 것이었는데, 그 크기가 집 하나를 날려 먹는 선에서 그쳤다.
‘그 누가 자기 집을 터뜨렸다고 생각하겠어? 그렇지?’
알 카에다에 발을 들인 건 80대 언저리였을 거다. 정확히는 그땐 무자헤딘이었지. 육체노동이나, 전선에서 싸우기보다는 머리를 쓰는 일에 능하여 장교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일어난 이후에는 아무도 모르게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단은 알 카에다 소속이 되었다. 정확히는 여기저기에 걸쳐둔 다리와 소속이 한둘이 아니기에 알 카에다 소속만이라고 하기엔 꽤 무리가 있었기에 ‘알 카에다 소속이기도 했다.’가 맞는 말이었다.
‘알 카에다가 바뀌고 있군.’
중구난방 점조직이었던 알 카에다는 최근 들어 점점 전문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허울만 좋은 명분이었던 조직원 보호도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보통 보호세라고 부르던가?
알게 뭔가. 남은 인생이 며칠이나 될지도 모르는데, 즐길 만큼 즐기고 가면 그만이었다. 노인은 가족이 없었다. 대신 혼자서 생활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와 긍정적이고 명석한 두뇌가 있었다.
“어제는 DDS의 주구가 나를 잡으러 오더니 오늘은 알 카에다의 주구가 납셨군. 여기는 또 웬일이야?”
노인은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뿜어내어 자신 앞으로 조심성 없이 다가온 사내의 시야를 가렸다.
“콜록! 콜록! 이런 시발! 제발 말 좀 조심하십시오. 누구 죽일 일 있습니까?”
그 사내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두테르테의 모습을 가지고 투덜거리던 회사원이었다.
“요 근처는 사람이 없어서 괜찮아. 당장 근처를 둘러보게. 이것들이 뭐로 보이나?”
“건물이요?”
“그래, 건물이지. 그것도 5년 전부터 사람이 사라진, 완전히 버려진 폐가.”
노인은 서너 번을 거쳐서 뻐끔거리더니, 혀끝부터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견과류의 맛을 충분히 느꼈다.
“그래서 왜 온 거야?”
“영감님 저희 조직에서 영감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럼 도리어 반대로 돌려주게, 100살 먹은 노인네가 시내까지 그 무거운 폭탄을 어떻게 끌고 갈지 말해보라고.”
“걔들은 그게 상관이 없던 모양이던데요? 거기다 조직 쪽 인간이 한 놈 잡혔는데, 지금까지는 영감님이 유일하게 잡혔던 사람입니다. 거기다 영감님의 신앙을 의심하고 있어요.”
“왜?”
“영감님이 지금 열심히 피워대고 있는 거 때문이죠.”
노인은 눈썹을 몇 번 꿈틀거리더니 이내 진정한 듯 논리정연하게 말을 꺼냈다.
“이런, 시발, 멍청한 놈들. 그럼 내가 조직에서 빠지길 바라나? 내가 인맥으로 도와준 게 도대체 몇 번인데! 병신 같은 머저리들!”
논리정연이라고 했던가? 원래 개념이란 게 항상 관측자의 시점에 따라 만화경처럼 변하는 것 아니겠는가? 적어도 노인의 머릿속에서는 이보다 논리정연할 수 없으리라.
자신의 폐가 허락하는 만큼 논리를 내뱉은 노인은 신경질적으로 파이프를 깔짝거렸다. 파이프 입구에서 올라오는 뜨뜻함이 오늘따라 괜히 짜증이 났다. 파이프에 불을 붙이려 라이터에 달린 부싯돌을 몇 번 돌렸지만, 수명 다한 라이터가 내뱉는 것이라곤 요란한 불티뿐이었다.
“이런 젠장. 가스가 끝났군. 혹시 라이터 있나?”
회사원이 주머니를 뒤적거려 황금색 지포 라이터를 내밀었다. 황금색이라고 해도 순금은 아니었고 아주 얇은 도금이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도금이 아니라 순금으로 된 라이터를 가지고 싶었지만, 그의 예산이 허락해주질 않았다.
“지포 라이터?”
노인은 회사원이 내민 지포 라이터를 보더니 인상을 왕창 찌푸렸다.
“지포 라이터는 휘발유 맛이 난단 말이야.”
“그럼 안 쓰실 겁니까?”
노인은 몇 번 무어라 구시렁거리더니 파이프를 빨아들이며 지포 라이터로 몇 번 걸쳐 담뱃불을 지졌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담배 향을 해치는 휘발유 맛이 났다. 어쩔 수 없이 폈다지만, 맛있음이 거세당한 파이프 담배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그래도 네다섯 번 들이쉬니 맛이 돌아왔다.
“알게 뭐람. 자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예?”
“자네는 내가 나이를 헛먹었다고 생각하지 말게. 내가 아는 자네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애가 강해. 알 카에다에 가입한 것도 쓸모없는 충돌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돈이 좀 나가더라도 여기저기 양다리 걸치고 있으면 편하니까 말이야.”
“어르신이 그걸 어떻게?”
어느새 노인에 대한 호칭이 영감에서 어르신으로 변해있는 회사원이었다. 더불어 순순히 인정한 이유가 있다면, 애당초 그가 이 노인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기 때문이었다.
“나도 비슷하게 살고 있거든.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라서 올해 들어 돈이 떨어지긴 했다만.”
그래서 폭탄으로 보험 사기까지 벌였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지만, 언제까지고 이 운이 따라와 줄지도 몰랐다. 거기다가 알 카에다가 노인을 의심하고 있다면, 고작 의심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노인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앞에서 어물쩍거리고 있는 측은한 젊은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휩싸였다. 이대로 알 카에다를 물 먹이자니 눈앞의 젊은이가 마음에 걸렸다. 이대로라면 탈주한 노인 대신 희생양이 되고 마리라.
“두테르테가 마약을 그렇게 싫어한다지?”
“예, 뭐 그렇죠. 마약이라면 눈깔이 돌아가서 다 잡아 죽이고 있으니까요. 몇 번은 자기가 직접 쏴 죽였다고 하던데요?”
애연가들에게 있어서 담배란 생각이다. 노인은 이게 마지막 들숨임을 인지했다. 따라서 이렇게 100년짜리 심모원려를 다룰 수 있는 것도 이번 들숨으로 끝이라는 거다. 담뱃잎도 마침 동이 났기 때문에, 노인은 더는 파이프를 태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왜요?”
“너, 나하고 같이 큰 그림 하나 그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