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134
제 목: [연재] 독문무공(136)
당가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충격적인 패배는 모두를 할말이 없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천지문의 패잔병들에게 이런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한 것은 씻을 수 없는 치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그들을 너무나도 업신여기고 안이하게 대처한 때문입니다.”
당문성은 그렇게 말하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당가의 수뇌 중에 팔대장로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이번 전투에 나가지 않았다. 물론 가주와 당문성은 나갔지만 가주의 형제라고 할 만한 주요 고수들이 출정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고수가 부족하여 피해가 커진 면도 많았다.
당문성이 말하는 것은 자신의 숙부들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말이 없이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 피해의 원인은 문성이의 지적대로 본가에서 너무나도 그들에 대하여 주의를 하지않았고 몇몇은 방관을 하였다는데 원인이 있다. 그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인 실수이다.”
당윤휘의 말에 동 항렬인 당가의 인물들은 면목이 없는지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우리 당가가 어느 순간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몸을 사리는 것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인가? 향후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하여 나서야 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이번 일이 어떻게든 마무리가 지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아미나 청성에게 발목이 잡힐 것이 뻔합니다. 결국 천하문의 추격대에게 붙들려서 정리가 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천하문의 움직임입니다.”
당문성의 말에 부끄러워하던 당가의 수뇌들이 고개를 들어 보았다.
“현재 천하문은 사천에 들어오는 순간 삼백여명의 무사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천하문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세력이 어느 순간 사천에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준비로 인하여 천하문의 활동은 날개를 달은 것처럼 원활하게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당문성의 말에 당가문인들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돌았다.
이번 피해가 지대하다고 정예는 그리 다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소극적인 참여를 질타 당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크게 적정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아니 지금부터 천하문의 사천공략이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도 은연중에 들어와서 활동을 하고 있는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공략을 한다면 그들과 자웅을 결해야 합니다. 그 때에는 이번과 같은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당문성의 말에 그들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어렸다. 천지문에 비한다면 천하문의 사천진출은 더 큰 일이었다.
“문제는 그들의 사천진출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힘으로 막을 성질의 일이 아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들에 대하여 진출을 허락한 것은 그들을 막을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진출을 교묘하게 합리적으로 방해를 해야 합니다. 자칫 성급하게 힘으로 막다가는 천지문과 같은 공격을 자초할 수가 있습니다.”
당문성의 말에 그들은 당문성이 실질적으로 대권을 휘어잡다시피하여 천하문에게 양보하듯이 행동한 것에 대하여 따지려고 하던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분명 당문성은 집안에서 비난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런 점 때문에도 천지문의 대응에 소극적으로 임하였다. 차라리 천지문을 도와주어서 천하문과 정면대결을 하였으면 하는 자들이 토벌에 불참한 것이다. 워낙 엄청난 실패이기에 그들은 입이 있어도 자신들의 주장을 하지 못하였지 불만은 있었다.
“자칫 경거망동을 하다가는 무림맹을 움직이는 천하문의 계략에 의해 무림 공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멸문을 각오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성급한 분기를 이기지 못해 그들을 적대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그들을 막되 명분에 어긋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당문성의 말에 그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표출되고 있지만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기에 모두 분을 삭이고 있었다.
“하나 현재의 상황에서 길이 없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가휘는 당문성을 제일 못마땅해 하는 숙부였다. 그렇기에 당문성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현재의 상황에서 길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천하문이 최대한 사천에서 세력을 팽창하지 못하게 막는 방안뿐입니다.”
당가휘는 지금의 상황에서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 같아서는 천지문이나 만상문과 연합하여 이번에 사우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하였고 그렇기에 천지문의 토벌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천지문을 그대로 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가지 하기도 하였다.
당가휘는 당문성의 말에 미간을 찡그리고 벌떡 일어서서 탁자를 내리쳤다.
“어찌 차기 당문을 이어갈 자가 어린애가 말해도 그보다는 나을 말을 한다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답을 내려야 하지 그렇게 애매한 말로 최대한 팽창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인가?”
훈계조로 참석하지 않은 것을 질책하는 말을 들어야 했던 울분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표출한 것이다.
천하문이 사천에 들어오면 힘으로 눌러버리면 그만이라고 아직도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고 그 선두에 서 있었다.
당가휘의 말에 당문성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그들의 움직임은 원천적으로 봉쇄를 하여야 합니다. 사천에 어느 사이에 그들의 첩자가 몇 백이나 생겨나 있고 그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활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호의를 입지않은 자들이 사천에 전무한데 낭인들은 그들에게 빌붙어 꼬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들이 안이하게 대처하여 그들이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이오. 이 기회에 천지문과 부딪친 후에 기진맥진해 있을 천하문의 잔당마저 정리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당가휘의 말에 당문성을 비롯한 몇몇은 얼굴빛이 변하고 말았다. 그런 생각을 하여 보았지만 그 것은 실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문제가 많은 일이었다. 지성룡이 그런 그들의 포위망을 탈출하는 날에 돌아올 후환은 감당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설사 성공한다고 하여도 그 것은 당가의 멸망으로 이끄는 길이었다. 천하 무림인의 공적으로 몰리는 사태가 불을 보듯 뻔하였다.
“동생. 지금 그 것을 말이라고 하는가? 사람이란 생각하는 것을 모두 말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네. 우리라고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보아도 길이 없기에 포기하는 것일세. 실현가능성도 없고 설사 성공한다고 하여도 감당할 수가 있는가? 그 일이 일어난다면 당가는 더 이상 천하에 발을 붙일 수가 없네. 어린애 같은 소리는 자네가 하는 것이네.”
당윤휘는 소리를 버럭 질러 당가휘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고 말았다.
그로서도 그렇게 말하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화약에 불을 붙이는 것에 불과한 어린애 같은 짓이었다.
당가휘는 당윤휘가 그렇게 화를 내고 말아버리자 머쓱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천하문에게 있어 천하제패를 눈앞에 둔 마당에 가장 걸림돌은 사천의 진출이라고 생각한다. 사천에 천하문의 힘이 미치지 않는 한 천하문은 천하제일세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고 또한 천하문이 들어와서 기반을 잡을 때까지는 우리들의 운명도 불안한 지경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하북팽가나 사마세가나 제갈세가나 위지세가나 천하문이 그들의 영역에 들어와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도 예전에 비하여 몰락하였다고는 할 수가 없다. 즉 그들과 연합을 하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을 수 있고 만일에 버틴다면 연합하는 것보다 손해가 나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들과의 연합을 두려워 할 것도 없다.”
당윤휘의 말은 당가의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문제는 우리가 그들과 연합을 한다고 하여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이번 천지문의 일에 모두가 일치단결을 하여 나섰다면 이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몇몇이 이일에 대하여 반대한다고 하여 소극적으로 나서고 우리도 그들을 경시하여 이렇게 피해를 키운 것이다. 앞으로 분란을 조장하는 자들은 가주로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당윤휘는 정색을 하고 상황을 정리하여 버렸다. 이런 정리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시간부로 천하문의 사천진출에 대하여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그들과 충돌을 일으키지 말아라. 그 일은 당가의 존망을 뒤흔드는 행위로 엄단할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을 하려고 획책하는 자들은 내가 그들의 직책이나 권한을 박탈해서라도 철저히 막을 것이다. 제발 앞날을 내다보고 행동해 주기를 부탁드리오.”
당윤휘는 당가휘 근처에 앉아있는 자들을 말을 마치고 바라보았다.
지성룡 일행은 사흘 후에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고 멈추어 서있는 천지문을 따라잡았다.
천지문으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청성과 아미의 무사들이 유리하(琉璃河)라는 강을 마주하고 대치하였기 때문이다.
유리하는 장강의 지류로서 폭이 오십장이나 하천이나 산에서 내려오는 하천이라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빨랐다. 이런 강이기에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지성룡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다.
이런 강을 건너려고 한다면 그만큼 위험이 컸다. 수상에 배를 띄운다면 활이나 화공에 노출이 되어 불리한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위로는 험준한 산이 이어져 있어 도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 십리 밖에 천지문의 잔당들이 배수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궁지에 몰린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자칫 큰 희생을 낼 수가 있습니다.”
위지강천은 지성룡이 막사로 들어가자 상석을 내어주고 보고를 하였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머물면서 저들의 동태를 살피도록 합시다. 그러나 척후를 내보내어 저들의 동태를 최대한 살피고 지형을 숙지하여 그들에게 자칫 유인당하여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성룡은 그동안 강행군을 하여 천하군단의 무사들이 지친 것을 감안하여 휴식을 주장하였다. 지금 지친 이들을 이끌고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최소 한나절이상 휴식을 취한 천지문을 공격하는 것은 불리한 상황을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휴식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동이나 불의의 기습을 감안하여 최대한 경계는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지강천은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깍듯한 예우를 갖추어 보고를 하였다.
“그럼 잘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지성룡은 막사에 있는 천하칠걸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묵묵히 자리에서 지성룡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부드러워 있었다.
“또한 여러분들에게도 각별한 경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내일 그들과 부딪친다면 지금까지의 전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오. 당가에서 당한 것을 보더라도 그들은 약한 존재가 아니오. 그러니 준비에 만전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성룡은 천하칠걸을 보면서 다시 한번 부탁을 하였다.
무정선사를 비롯한 무림정의군에 좇기는 만상문과 천지문의 잔당은 천섬관(川陝關)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 곳으로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 쪽에 대한 준비가 없던 무림정의군이었지만 그들이 그 쪽으로 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삼천여명에 육박하는 자들이 먹어야 할 식량이 없기에 그들은 결국 인가를 찾아 천섬관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도망가는 것이 급하다고 하여도 굶으면서 도망가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대비는 없었어도 이들은 각지에서 몰려든 낭인들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들이 천섬관을 넘는다는 소식을 들은 낭인들은 천섬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한시라도 도망가는 것이 급한 그들에게 지형적인 유리함을 차지하고 기다리는 낭인들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무려 그 수가 천을 넘어 이천에 육박하기에 그들을 헤치고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인근의 장원에서 속속 이들을 막기위해 몰려오고 있는 상황이기에 나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곧 무림정의군이 몰려와서 뒤를 공격하자 나가지도 못하고 물러나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정발은 상황이 이상하게 변하자 결국 나가는 것을 결단하였고 이 것은 천섬관을 넘기로 한 것이다.
뒤에서 몰려오는 무리정의군이 있기에 다소 무리한 일이지만 만상문도와 천지문도는 죽기를 각오하고 천섬관으로 진격해 왔다. 실력이 없거나 시기를 놓쳐 무림정의군에 참여하지 못한 청년무사들로 이루어진 섬서의 낭인들은 실력에서 이들을 압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의 발목을 잡기에는 충분하였다. 이들이 일순간에 돌파하지 못하고 주춤하는 사이에 무림정의군이 그들의 배후를 공격하고 말았다.
그 순간 첨섬관은 실로 일만에 이르는 무인들이 싸우는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양면으로 협공을 당하는 천지문과 만상문도는 죽기 살기로 저항을 하였고 최후의 전쟁이라고 인식한 무림정의군은 악착같이 그들의 앞길을 막거나 그들을 추격하였다.
일부는 탈출하여 섬서방면으로 나아갔지만 섬서에서 다가오는 낭인들에게 가로막혀 결국 발목이 잡혔고 이들을 쫓아온 무림정의대에게 다시 추살되고 있었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되자 천지오장로와 만상문의 수뇌부는 산을 타고 도주를 하여 버렸기에 지휘자가 없어 항복을 할래야 항복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죽지 않기 위해 그들은 죽이려 달려들었고 끊임없는 살육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편 만상문과 천지문의 수뇌부들이 험준한 산을 타고 도망가는 것을 목격한 무정선사와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그들을 추적하여 따라갔다.
수뇌부를 놓친다면 지금까지의 일이 쓸모가 없는 일이 되어 버리기에 그들도 놓아줄 수가 없었다.
저들이 탈출한다면 두고두고 후환덩어리가 될 것이기에 사대문파의 장문인들도 그들을 놓아 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들의 추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기 시작되었다. 실로 천섬관의 전투는 꼬박 하루에 걸쳐 살육이 이어지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소혜는 걸음을 재촉하였지만 마음 먹은 대로 갈 수가 없었다.
황영지의 부탁을 들은 호위대의 수뇌부는 영소혜의 건강을 생각하여 무리한 행로는 하지 않았다. 영소혜의 상태가 중요한 시점이기에 아기를 생각하는 그들의 염려 때문에 무리하게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이미 그 어른은 돌아가실 때가 되었으니 서둘러 돌아가야 할 것이나 복중의 아이도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다. 그대들이 돌아가는 동안 각별히 신경을 써서 무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일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추후에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황영지의 협박을 들은 그들이기에 누구도 무리를 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들의 생각에도 사마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인물이었다. 그런 사마보다는 황영지의 협박이 더 무서운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늦지는 않아 사마는 세상을 떠나지는 않고 있었다.
영소혜는 위독한 사마를 보자 마음이 아파왔다.
한 때 천하를 호령하던 기세는 다 사라지고 그저 숨만 붙어 있는 노인네였다.
“다녀왔습니다.”
영소혜는 울음이 나와 사마의 손을 잡고 속삭이듯이 말을 하였다.
“죄송해요. 이렇게 늦게 와서….”
“아니다. 이렇게 라도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라도 왔으니 다행이다.”
사마의 얼굴에는 영소혜를 보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혹시 태기는 없느냐?’
사마는 다른 모든 것을 접어두고 그 것을 제일 먼저 물었다.
“예, 있습니다. 손자가 나는 것을 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영소혜는 그렇게 말을 하였다. 이미 사마의 얼굴에 드리어진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지만 그래도 아쉽기에 미련을 접지 못하고 끝내 말을 하며 울먹이고 말았다.
“이미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이렇게라도 정리가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마는 영소혜를 보자 안도가 된 듯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혼몽의 상태로 들고 말았다.
영소혜는 앙상한 사마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황영지가 도착한 것은 영소혜가 도착한지 하루가 지난 후였다.
영소혜는 생각지도 못한 황영지와 지용운의 방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심이 크겠구나. 일단 어르신을 뵈었으면 한다.”
지용운은 영소혜를 보자 사마를 보자고 재촉하였다.
“예, 들어오시지요.”
영소혜는 지용운과 황영지를 안내하여갔다.
사마의 처소에 들자 사마는 마침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어르신 인사드립니다. 천하문의 지용운이라고 합니다. 손자 애가 일이 바빠 오지 못한 것이 못내 송구하오이다.”
지성룡이 와서 임종을 하지 못한 것을 죄송하다고 말을 건네었다.
“못난 늙은이 때문에 사돈어른이 이렇게 먼 길을 여행하게 되어 송구하오이다. 아직 불민한 딸아이 하나만을 남기고 가는 것이 못내 미안하오이다.”
사마의 얼굴에 다행이라는 표정이 되었다.
“또한 부인께서도 오셨구려. 모쪼록 혜아를 잘 부탁드립니다. 부인께서 혜아를 아량으로 감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마는 황영지를 보고 부탁의 말을 전하였다. 황영지는 사마를 보자 불현듯이 비명에 간 이기가 생각나 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들은 사마를 보자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어르신, 혜매와는 잘 지낼 것이오니 걱정을 하지 마시옵소서,”
황영지는 아직도 간절하게 바라보는 사마의 눈을 보자 그렇게 약속을 하였다. 사마에게 있어 이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었다.
지성룡이 있다고 하여도 영소혜에 대한 앞날을 약속받고 싶어할 것이 뻔하였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황영지도 서둘러 온 것이다.
“그렇게 말하니 이제 한시름이 놓이네.”
그렇게 말하는 사마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맑고 또렷하였다.
그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었다.
“혜아야, 미안하다. 나의 실수로 너에게 엄마를 빼앗아 버린 것이…… 용서하려무나. 저승에 가면 용서를 빌어야 하겠다. 그러나, 네가 이렇게 잘 자랐으니 그래도 볼 면목은 있을 것 같구나.”
사마는 못내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영소혜는 그 말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그래도 나를 네 엄마 옆에다 묻어주기 바란다.”
사마의 말은 영소혜에게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다. 모두 눈시울이 벌겋게 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소혜는 사마에 대한 마지막 원망을 지우면서 그렇게 말하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시절에 내색은 하지 않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항상 원망하였던 일이었다. 조금만 현명하였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사마를 원망하였던가?
그 것도 이제는 씻어야 하는 것이다. 영소혜는 그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들 사이에 금기로 삼았던 이야기를 사마가 먼저 꺼내어 용서를 구한 것이다.
“항상 신중하게 생각하여 행동하여라. 아무리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을 저지르지 말아라.”
그렇게 말한 사마의 눈동자는 점점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영소혜의 손을 잡고 있던 사마의 손이 스르르 풀려갔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사마도 못내 안타까운 딸의 손을 마저 놓고 세상을 떠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