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연예계의 그림자 (1)
촬영이 끝난 후.
태주가 줄 위에서 내려오자 수많은 사람의 박수가 또다시 쏟아졌다.
조금 전 리허설 때와는 결이 다른,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박수였다.
“진짜 잘했습니다, 태주 씨. 어쩜 연기를 이렇게 잘하죠?”
“줄 타면서 연기하는 거 정말 힘들 텐데. 섬세한 표정 연기, 정말 좋았어요.”
태주는 괜히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주변을 살피던 이중협이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중요한 분이 오셨나 보네. 영화 투자배급사에서 사람을 보냈나 봐.]저편에서 이탁원과 환하게 웃으며 대화하던 김인석.
태주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조금 전 연기, 잘 봤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연기였어요. 어떻게 21살이 이런 연기를…….”
태주는 자신에게 악수를 청해온 김인석을 마주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듯 그의 얼굴이 한껏 붉어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한껏 고무되어 있던 이탁원 감독이 태주에게 김인석을 소개했다.
“태주 씨, 이쪽은 TL 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투자 김인석 본부장이세요.”
“반갑습니다, 본부장님. 배우 한태주입니다.”
김인석은 흥분에 가득찬 눈을 태주에게 고정했다.
“이번 영화, 정말 기대됩니다. 임강현 씨, 염수정 씨, 주세진 씨도 다들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지만. 저는 특히 태주 씨의 연기에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어요.”
“아니, 뭘 그렇게까지…….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겸손할 필요 없어요. 잘하는 건 잘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태주 씨,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김인석은 확신에 찬 시선을 반짝였다.
“이번 영화, 분명 큰일 낼 거라고 장담합니다.”
* * *
다음 날.
“TL이 현필름에 붙었다고? 이탁원 영화 그거?”
XJ 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부장, 강철수가 피식거렸다.
“현필름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자기 돈으로 제작비 충당 가능하다고 큰소리 떵떵 치더니 TL하고 손을 잡네.”
“다급한 것 치고는 제법 좋은 곳과 손을 잡았죠.”
옆에 있던 직원이 빠르게 덧붙였다.
“그리고 소문으로는, TL에서 이 영화, 내년 상반기 대표작으로 팍팍 밀어줄 모양이더라고요.”
“내년 상반기, 이 영화로 승부수를 띄울 모양이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돈으로는 우리하고 승부가 안 되는데.”
본부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직원은 몇 번이나 입을 달싹였다.
본부장이 저렇게 자신감에 찬 이유를 알았기에.
톱스타 백시영의 귀환작이자 톱스타 고윤하와 라이징스타 고성열의 영화 데뷔작, ‘언더커버’.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흥행 불패라는 ‘재난영화’라는 장르다.
게다가 흥행감독 최준모가 제작하고, 스타 각본가 출신의 변태준 감독의 연출은 매우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영화판에는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톱스타를 몇이나 주연으로 써도, 수백억의 투자비를 부어도 망할 수 있는 게 영화였기에.
그런 의미에서, ‘언더커버’의 미래도 불확실한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현장에서 불협화음이 들려오는 요즘은 더더욱.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최준모 감독과 톱스타 고윤하의 노출, 그리고 전무후무한 톱스타 백시영이라는 비장의 카드가 존재했다.
“게다가 우리한테는 백시영이 있잖아. 백시영 하나면 게임 끝이야.”
“하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백시영이 잘 먹히긴 하죠. 해외를 6개월 가까이 돌고 왔는데도 아직 건재한 걸 보면.”
“그렇지. 명불허전 백시영이잖아.”
“그런데 한태주도 요즘에 제법 기세를 치고 올라왔던데요.”
본부장의 눈치를 보면서도 직원은 말을 이어 나갔다.
“저번에 9시 뉴스에 사람 구한 게 나가, 드라마하고 영화 둘 다 반사이익을 봤더라고요.”
“그래봤자 한때야.”
“한태주가 과거에 국민 아역배우였잖아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한태주에게 관심이 많아요.”
“아까부터 계속 한태주, 한태주! 그만 좀 하지.”
결국, 본부장의 분노를 받고서야 직원은 멈췄다.
그러나 입이 비죽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본부장에게 안 들릴 만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대세가 그쪽인데, 뭘 어떡하라고.”
* * *
동 시각.
드림액터스 대표실에서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서둘러 서류를 넘기던 장희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TL 엔터가 태주 영화에 150억 투자한다고 하네.”
“와, 대박 사건.”
탁시준 본부장은 놀란 듯 눈썹을 씰룩였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80억 더 투자했네요. 김인석 본부장이 현장에 다녀갔다더니, 심봉사도 눈 뜰 그런 장면을 봤나?”
“차 팀장 말로는 그날 태주가 크게 한 건 했다더라고. 김인석이 태주 연기에 홀딱 빠졌대.”
“한태주 연기야 워낙에 정평이 나 있죠. 그리고 거기엔 다들 연기 잘하는 배우들밖에 없잖아요. 염수정, 주세진. 그리고 임강현까지.”
“그래도 한태주라는 이름값이 제법 높아진 건 사실이지. 예전에 아역 배우 할 때의 그 아성을 서서히 따라잡고 있는 것 같아.”
장희재가 미소를 머금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대략적인 개봉 일이 정해졌어.”
“아, 그래요? 언더커버랑 광대, 둘이 겹치지는 않죠?”
“둘 다 내년 3월 초. 개봉일도 거의 동일해.”
“아…….”
탁시준이 안타까운 숨을 내뱉었다.
“제가 뭐랬어요, 둘이 집안 싸움할 거라고 그랬잖아요.”
“집안 싸움하면 어때? 이참에 백시영의 흥행에 맞서는 한태주의 저력도 확인하고, 좋은 기회지.”
탁시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장희재를 흘끔거렸다.
도대체 장 대표가 무슨 생각인지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분명 그는 백시영을 싸고돌아야 하는데.
왜 한태주를 저렇게 아끼는 걸까.
꼭 그가 한태주를 다음 타자로 점찍은 것처럼.
“시준아. 연말에 식구들, 한데 모으자고. 매년 하던 것처럼, 식사 한번 하게.”
생각에 잠겨있던 탁시준이 머리를 부르르 떨었다.
“애들 사이만 더 나빠질 텐데요. 저번에 화보 찍을 때도 시영이가 태주한테 은근히 시비 걸었다고 하더라고요.”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야.”
장희재가 손을 비비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한태주가 많이 컸나 보네. 천하의 백시영이 위협을 다 느낀 거 보면.”
* * *
며칠 후, 저녁.
촬영으로 바빴던 태주는 오랜만에 집에 있다.
저녁을 준비하는 고모를 도와주니 벌써 저녁 7시 반이었다.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냐. 벌써 연말이야.”
“그러게요.”
“너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오랜만에 집에 있는데, 맛있는 거 해줄게.”
국의 간을 보던 고모가 태주를 힐끗거렸다.
그 말에 태주는 생각에 잠겼다.
고모는 요리를 열심히는 하지만, 잘하지는 못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고모가 해주는 건 다 맛있어요. 그냥 아무거나 해주세요.”
“야,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제일 어려워. 정확히 뭐 먹고 싶은지 세 개만 대봐.”
옆에서 이중협이 신이 난 듯 재잘거렸다.
[난 먹고 싶은 거 많은데. 대창구이. 닭똥집튀김. 해물파전, 그리고…….]멍하니 파를 썰던 태주가 이중협의 답을 그대로 중얼거렸다.
“대창구이, 닭똥집 튀김, 해물파전……”
“뭐야, 그거 다 술안주잖아. 술 마시고 싶니?”
고모가 눈썹을 씰룩였다.
옆에 따라붙었던 태희가 고모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오빠 술 마시고 싶어?”
그 말에 태주가 화들짝 놀랐다.
“술? 아니!”
“애가 술 땡기나 보네. 뭐, 언제 날 잡아서 고모랑 술이나 한잔하자.”
고모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우리 대스타 한태주 씨하고 술 약속도 잡고. 영광이다.”
“무슨 대스타야.”
“대스타지, 암. 너 저번에 너희 회사 배우들이랑 찍은 화보 있잖아. 그거 이번에 나왔거든. 그런데 계속 문의가 오고 있어. 너 단독 컷 없냐고, 자꾸만 풀어달라고 하더라.”
“오, 그래?”
태주의 관심에 고모가 신이 났다.
“그래서 조만간 너 단독 컷 찍은 거 공개할 계획이야. 여성 독자들이 너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 * *
며칠 후.
드라마 촬영을 위해 차용석과 이동하던 중.
그가 태주에게 얇은 잡지를 건네줬다.
“12월 특집으로 나왔어.”
드림액터스 배우들끼리 찍은 화보였다.
태주는 천천히 여러 장을 넘겨봤다.
단체 사진 다음 장에는 백시영과 그가 등을 맞대고 찍은 사진이 실려있었다.
유심히 보던 이중협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잘생겼단 말야, 우리 태주. 나하고 같이 찍었어도 좋았겠다.]‘그러게요. 형하고 찍었으면 정말 멋졌을 것 같아요.’
순순히 동의하는 태주에게 이중협이 당당히 외쳤다.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너는 역시 나하고 잘 맞는다니까!]“올해 최대 판매량 경신이라더라, 이번 호가.”
빨간불을 틈타 차가 정지한 사이.
차용석이 잡지를 이리저리 넘겼다.
윤수안과 태주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페이지를 크게 차지했다.
윤수안은 태주의 품에 쏙 안기고, 태주가 그녀의 머리에 턱을 올린 포즈가 사뭇 귀여웠다.
그걸 본 차용석이 히죽 웃었다.
“미용실에서 이 사진만 찢어가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더라.”
“에이, 설마요.”
“우리 팀 서영 씨가 그랬어.”
한참 이야기를 하던 차용석이 태주를 바라보았다.
“아 참, 내일은 핸드폰 광고 촬영있어. 그리고 다음 주에는 시에나 몰에서 너 팬 사인회 있고. ”
“팬 사인회요?”
“일전에 GQ 화보 찍었었잖아. 거기서 마련한 사인회야. 그리고 다음 주 목요일에는 일본 갔다 와야 해, 당누봄 해외 팬미팅이 잡혔거든.”
“잠깐만요. GQ 화보 팬사인회 말이에요. 채빈이도 참석하나요?”
“어, 너희 둘이. 그러고 보니 당누봄 해외 팬 미팅에서도 만날 것 같네.”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본 지 오래됐는데, 이번에 이렇게 만나네요.”
“그러게. 아, 그리고 너 예능은 생각해 봤니? 마스크 스타.”
“네.”
태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갈게요. 한 라운드만 무대 꾸미고. 탈락하면 그대로 가면 벗고, 영화 홍보하면 되잖아요.”
“뭐, 그렇지. 그런데 태주 너, 네 실력에 너무 자신 없는 거 아니냐? 나는 적어도 너 2라운드까지는 진출할 거로 생각하는데.”
[그래, 저 말이 맞지. 너 솔직히 노래도 웬만한 가수만큼이나 잘 부르고, 춤도 웬만한 댄서들만큼 잘 추잖아.]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이중협과 차용석을 보며 태주가 말했다.
“1라운드부터 강한 사람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