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연예계의 그림자 (2)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태주는 경기도 인근 촬영장에 나와 있다.
새벽 3시에 기상해 졸릴 법도 하지만, 태주는 긴장감에 휩싸여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찍을 광고는 ‘베리폰’.
당대 핫한 연예인들을 모델로 쓰는 광고로 유명하다는 것도 중요했지만, 태주에게는 이전 모델이 백시영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제가 백시영 선배님의 아우라를 계승할 수 있을까요?”
“너는 너만의 아우라가 있는 거야. 그래서 베리폰 측에서도 널 광고 모델로 쓰고 싶다고 한 거고.”
차용석은 태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자신감을 가져, 태주야. 넌 지금 연예계에서 제일 주목받는 배우라고.”
“아악, 형, 그거 너무 부담스러워요!”
“부담스러워도 어떡하냐. 그게 사실인걸.”
태주가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던 차용석.
그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속으로 삼켰다.
회사 내에서도 태주는 가장 주목받는 원석이었다.
톱스타 백시영이 꽉 잡고 있던 판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그를 전력으로 신뢰하던 장희재 대표도 이제는 떠오르는 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게 바로 한태주였다.
분명 백시영과 장희재는 의형제 그 이상의 관계라고 할 정도로 끈끈했었다.
그런데 할리우드를 다녀온 이후, 그사이에 균열이 조금씩 가기 시작했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분명한 건, 장희재 대표가 태주에게 눈독을 들였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근거는 여러 가지였다.
얼마 전 영화 ‘광대’에도 추가 투자했고.
현재 회사에서 제작하는 ‘낭만 고양이’에도 고성열 대신 태주를 밀어준 걸 보면.
그리고 무엇보다, 백시영의 ‘베리폰’ 재계약 대신 태주를 그 자리에 집어넣어 줬지 않는가.
‘장 대표가 백시영을 놓아버리려는 걸까? 이제 재계약도 다가온 그를? 도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차용석은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다.
아마 이 관계를 아는 이는 일전에 그의 사수였다 지금은 C&K 엔터로 옮긴 그 형뿐일 것이다.
‘현식이 형…….’
깊은 상념에 빠진 그를 태주의 목소리가 깨웠다.
“형, 저 촬영하는 거 영상으로 찍어주세요. 이따가 확인 좀 하게요.”
“어, 알았어.”
저 멀리 태주가 조명 속으로 뛰어든다.
목덜미 단추 몇 개를 푼 와인빛 셔츠와 검은 슬랙스를 매치한 모습이 늘씬해서 보기 좋았다.
태주를 정신없이 보던 차용석에게 이중협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또한 태주를 흐뭇하게 보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곧이어 폴라리스의 노래가 신나게 흘러나오고, 태주는 신나게 프리스타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집에서 고모와 태희, 이중협을 앞에 두고 열심히 연습한 그 춤이었다.
빨강, 초록, 파랑 등의 화려한 조명이 그에게 오롯이 쏟아진 순간.
화려하게 팔다리를 놀리던 태주가 바닥을 한 손으로 짚었다.
탁!
그리고는 다리를 하늘 높이 치켜든다.
카메라에 잡힌 역동적인 동작에 다들 눈이 반짝 빛났다.
“춤을 잘 춘다더니, 이건 보통 잘 추는 게 아닌데요?”
“저번에 Mcom에서 설채빈, 하강웅이랑 같이 했던 무대 안 봤어요? 아이돌한테도 안 밀리더라고, 한태주 씨가.”
“확실히 젊은 피가 좋네. 한태주 씨랑 비교하니까 백시영 씨가 조금은 올드한 감이 있어요.”
“‘Young, Wild, and Free’라는 슬로건에 꼭 들어맞아요.”
모든 스태프가 열광하며 태주를 바라보던 그때.
태주는 손에 쏙 들어오는 플립형 핸드폰을 달칵, 열었다.
카메라를 응시하던 그가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를 후, 불었다.
그리고 장난스럽고도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유로움의 끝, 베리폰.”
* * *
동시각.
차용석의 보고를 받은 탁시준 본부장은 그대로 대표실로 향했다.
장희재는 기다렸다는 듯 그를 맞았다.
“베리폰 광고, 잘 찍고 있대?”
“촬영장에서 아주 난리랍니다. 한태주가 백시영하고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로 밀고 나가는 모양이에요.”
“애초에 그쪽에서도 백시영의 점잔 떠는 이미지에 질려서 재계약을 안 한 거니까. 근데 한태주, 애가 좀 얌전하지 않아?”
“지금 브레이크 댄스 추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애가 춤도 잘 추잖아요. 웬만한 댄서보다 더. 차 팀장이 영상 보내왔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장희재는 탁시준이 보여준 영상에 집중했다.
화려한 조명 속, 태주가 길쭉한 팔다리를 시원스레 휘저었다.
스테이지를 장악하고서는 핸드폰을 들고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게 멋있었다.
“몸을 사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과감하네.”
“당연히 그래야죠, 여기 걸린 돈이 얼만데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애가 끼가 있다는 거야. 스타로서의 끼가.”
잘하면 백시영만큼 키울 수도 있겠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장희재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계약을 4개월밖에 안 했네. 이러면 다음 모델 찾기 전에 한태주는 땜방이라는 것밖에 더 돼?”
“그래도 베리폰은 당대 핫한 연예인들만 할 수 있는 광고 아닙니까. 한태주가 얻을 이익이 상당히 큽니다.”
“무조건 재계약 성사시켜.”
장희재가 생각에 잠긴 채 손가락을 책상에 두드렸다.
“내년 4월 계약이 끝난단 말이지. 그럼 그때는 한태주 몸값이 천정부지로 높아져 있겠군. 우리한테 훨씬 유리하네.”
“그쪽이 안종현이랑 접촉한다는 말이 있던데, 한태주한테 또 재계약을 제안할까요?”
“할 거야.”
장희재가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낭만 고양이랑 이탁원 영화. 그 두 개 무조건 성공한다에 내 손목을 걸지.”
* * *
며칠 후, 서울 XX 몰.
갈색 코트 안에 베이지색 니트와 청바지를 받쳐입은 태주가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새벽부터 샵에 들려 단장한 외모는 블링블링 빛났다.
GQ 화보 판매량이 올해 최고치를 찍은 기념으로 마련한 팬사인회.
화보의 주인공인 태주와 설채빈이 참석하는 자리다.
태주가 먼저 등장하자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팬들의 우렁한 함성이 들렸다.
“꺄악! 한태주다!”
“잘생겼어요~. 실물 깡패다!”
“여기 좀 봐주세요, 오빠~.”
태주는 쑥스러워하며 그들에게 잠시 다가갔다.
손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니 팬들이 꺄악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리고 설채빈이 등장했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살이 조금 빠진 상태였는데, 태주를 보고는 환히 웃었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하얀색 목폴라와 연분홍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은 모습이 매우 예뻤다.
태주는 그녀와 팬사인회가 진행될 테이블에 앉았다.
“잘 지냈니? 지호 형한테 들었어. 너희 그룹, 컴백 준비하느라 바쁘다면서.”
“안 그래도 맨날 무대 연습만 계속하고 있어요. 그러다 이렇게 오빠 보니까 좋아요. 헤헤.”
“탑 아이돌과 함께 팬사인회를 진행할 수 있어, 영광이야.”
설채빈은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손가락을 감았다.
“하하. 오빠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스타의 자리에 오른 거 아니에요? 저번에 드라마 촬영하면서 어린애 바다에 빠진 거 구했다면서요. 완전 히어로 같이.”
“히어로는 무슨, 누군가는 해야 했던 일을 한 거지.”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설채빈이 중얼거렸다.
“아니에요. 오빠 히어로에 잘 어울려요.”
“그래?”
태주가 씩 웃었다.
“잘 봐줘서 고맙다.”
그 말에 설채빈이 얼굴을 붉혔다.
* * *
곧이어 본격적인 팬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줄을 지어 몰려오던 무리 중 반절은 태주의 팬들이었다.
태주는 자신을 보고 울고 웃는 그들에게 감동했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한태주 배우님. 이날만을 기다렸다구요! 저 진짜 팬이에요! GQ 화보도 제 평생 가보로 간직할 거예요! 완전 멋있어요!”
“하하, 감사해요. 저도 제 팬분들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뵈어서 정말 기분 좋습니다.”
“도대체 팬클럽은 언제 만들어요? 배우님 스케줄도 공식적으로 받아보고 저희도 제대로 된 활동 시작하고 싶은데, 기다리기 너무 힘들어요~.”
“곧 생긴다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저도 얼른 팬분들하고 한자리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그렇게 많은 팬의 좋은 기운들을 받으니 태주도 덩달아 신이 났다.
여기저기서 그 모습을 찰칵, 찍는 소리도 들려왔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차용석도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새끼지만 참 잘났단 말야.”
팬 사인회가 끝을 향해 달려가던 도중.
태주의 앞에 건장한 남자 팬이 다가왔다.
그에게 턱, 하고 사인할 잡지를 내밀고는 시선은 다른 데 두고 있다.
그의 눈은 설채빈을 향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랑해요, 채빈 씨!”
열렬한 고백을 하는 남자에게 설채빈은 당황스러운 눈빛을 했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팬을 대하는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설채빈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중협은 포악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뭐야 저 녀석. 지금 자기가 누구 앞에 있는 건지도 모르는 건가?]‘설채빈 팬인가 보죠.’
펜을 든 태주가 남자를 마주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태주가 부르는 목소리에 남자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했다.
“그쪽 사인은 필요 없는데요.”
“그래도 이왕 오셨으니 받아 가세요.”
태주가 사인해주는데도 그의 시선은 설채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설채빈 팬이어도 그렇지, 사람을 앞에 두고 이렇게 무시하다니.’
[저런 비매너 같으니. 사람 개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우리 소중한 태주한테!]불만스러운 듯 남자를 노려보던 이중협.
금방 잠잠해졌다.
[근데 이 녀석, 왜 설채빈 가슴을 보는 것 같냐?]그 말에 태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진짜로요?’
[이 새끼 안경도 이상한 거 끼었네. 안경테가 유난히 두꺼운 것도 그렇고, 여기 정면에 동그란 거 박힌 것도 그렇고.]이중협은 더욱 험악해진 얼굴로 말했다.
[뭐야, 이거 몰카 안경 아냐? 예전에 수정이가 이거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았었는데!]태주는 남자를 빠르게 훑었다.
안경을 쓴 그의 시선이 집요하게 설채빈의 가슴 쪽을 훑는 것이, 확실히 수상했다.
그는 즉시 손을 들어 진행 요원을 불렀다.
“죄송하지만 이 남자분 안경이 몰카 안경인 것 같아서요.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알겠습니다.”
“무, 무슨 소리야?”
그 말에 진행 요원도, 남자도 당황했다.
옆에 있던 팬들도, 설채빈도 잔뜩 얼굴이 굳었다.
“선생님, 안경 좀 확인하겠습니다.”
진행 요원의 단호함에 남자는 굳은 얼굴로 안경을 건넸다.
요원은 안경에 요리조리 핸드폰 불빛을 비춰 보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맞네요, 몰카 안경.”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