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연예계의 그림자 (3)
안경을 진행요원에게 넘긴 남자가 얼굴을 푹 숙인 채 빠르게 행사장을 벗어났다.
그 모습을 보던 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한태주가 설채빈 몰카범 잡았대요.”
“진짜로요? 실화?”
“몰카 안경으로 설채빈 가슴 찍고 있었다나 봐요.”
“저 파렴치한 놈 같으니.”
몇몇 사람들은 대포 카메라로 그 남자를 찍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에게 향했던 렌즈를 사람들은 태주에게로 돌렸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잠시 중단된 팬 사인회.
설채빈의 눈은 한껏 붉어져 있었고, 한태주는 그런 그녀를 위로 중이었다.
화면 가득히 태주의 얼굴이 담기던 순간.
다정한 눈매, 따뜻한 시선을 마주한 팬들은 함성을 터뜨렸다.
“진짜 한태주 진국이다, 진국.”
“저 정도면 설채빈 보디가드 아니에요? 매우 다정하네.”
“둘이 진짜 사귀는 거 아니죠?”
“아닌 거 같아요. 저번에 열애설 났을 때 확실히 해명했잖아요.”
“그래도 설채빈이 한태주한테 의지하는 게 눈에 보여요.”
“나 같아도 그러겠어요, 바로 앞에서 몰카범 잡아줬는데.”
“태주 씨 진짜 멋지다.”
앞에 있던 팬들이 하트 뿅뿅한 눈길을 태주에게 보냈다.
“내가 이래서 한태주한테 빠졌다니까.”
* * *
몇 시간 후.
팬 사인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중간에 몰카 안경남을 잡는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지만, 설채빈은 씩씩하게 끝까지 사인회를 잘 마쳤다.
헤어지기 전.
태주는 설채빈에게 악수를 건넸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채빈아. 나 사실 오늘이 첫 팬 사인회였거든. 많이 긴장했었는데 네가 옆에서 능숙하게 많이 도와준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제가 더 고맙죠, 오빠.”
설채빈이 반짝거리는 눈을 그에게 고정했다.
“저 사실 그 몰카범 때문에…… 많이 무서웠거든요.”
“그랬구나. 금방 씩씩해져서 괜찮아진 줄 알았어.”
“팬분들한테 약한 모습 보일 수는 없잖아요. 좋은 모습만 보여야지. 근데 혼자였으면 계속 생각나서 팬사인회, 끝까지 못 했을 거 같아요…….”
코를 훌쩍이던 설채빈은 태주의 다정한 시선을 마주쳤다.
“아무튼 지금은 괜찮아요.”
“괜찮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진짜 신기해요. 제가 힘들 때마다 오빠가 옆에서 도와주는 게…….”
태주를 힐끔거리던 설채빈의 얼굴이 또다시 발그레 물들었다.
“진짜 히어로인가…….”
옆에서 이 모습을 보던 이중협이 괜한 심술에 중얼거렸다.
[히어로는 나 아니냐, 나.]* * *
얼마 후, ABS 예능국.
‘마스크 스타’ 팀에서 수 명의 직원들이 설전을 벌이는 중이다.
피디 박진주는 조연출에게 물었다.
“한태주 출연한대? 대답은?”
“가능할 것 같아요. 아마 1월 중순에서 2월 초로 잡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팀원 전체가 손뼉을 쳤다.
“오케이, 됐어!”
“와, 한태주가 마스크 스타에 오다니. 진짜 기사라도 내서 홍보하고 싶다.”
열광도 잠시.
팀원들은 진지하게 회의에 돌입했다.
“그런데 한태주랑 누구를 붙이면 좋을지 모르겠네. 아이돌 이런 애랑 붙일까? 레이븐 승현은 어때? 그만하면 레벨이 맞을 거 같은데?”
“에이, 피디님. 그건 아니죠. 태주 씨가 훨씬 노래를 잘하잖아요.”
“그렇다고 김연성 같은 가왕급이랑 붙일 수는 없잖아.”
목소리에 열을 내던 조연출이 열성적으로 덧붙였다.
“그분은 어때요? 폴라리스에 윤지호.”
조연출의 제의에 피디가 혀를 내둘렀다.
“에이, 윤지호 씨하고 한태주 씨를 어떻게 붙이냐. 그건 한태주 씨한테 너무 잔인하지, 금방 떨어질 게 뻔한데.”
“어차피 한태주 씨, 영화 홍보 때문에 여기 나오는 거잖아요. 그럼 1라운드에서 깔끔하게 무대하고 바로 마스크 벗는 게 낫죠.”
“어차피 1라운드는 듀엣 무대라서 잘하는 사람한테 묻어가게 되어 있잖아요. 태주 씨한테도 좋을 것 같은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들이 끼어들었다.
“한태주 씨 노래 엄청나게 잘한다고요. 그렇게 쉽게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아요.”
“맞아요. 저번에 윤지호 솔로 앨범에 피처링했었는데, 그때도 윤지호한테 전혀 안 밀리더라고요.”
“오히려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하던데.”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수많은 의견.
피디는 서둘러 그들의 의견을 정리했다.
“그럼 너희들 생각은, 한태주가 웬만큼 잘하는 가수들하고 붙어도 쉽게 깨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거지?”
“네.”
조연출이 눈을 초롱 거리며 덧붙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센 사람하고 붙여도 재밌을 것 같아요. 혹시 알아요? 윤지호랑 붙여도 동점 나올지.”
“혹시 아예 정통 성악 쪽으로 가는 건 어때요?”
다른 스태프가 의견을 냈다.
“이번에 ‘청춘 합창단’에서 심자연 씨 있잖아요.”
“심자연 씨 좋다. 워낙에 목소리가 아름답잖아.”
조연출도 격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극장의 유령’ 같은 거 부르게 하면, 그것도 좋을 것 같네.”
“에이, 태주 씨가 바리톤 역할 소화할 수 있겠어요? 성악 전공도 아닌데.”
“태주 씨 노래 실력이면,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던데?”
피디가 손을 들어 흥분을 가라앉혔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우선 한태주랑 붙을 만한 가수들 리스트부터 뽑아 보자고. 이참에 우리, 아주 재밌는 그림을 만들어 보는 거야.”
피디가 재밌다는 미소를 번들거렸다.
한태주가 요즘 연기 판에서도, 예능판에서도 최대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그가 우리 예능에 왔으니, 맛있게 요리해줄 것이라 다짐했다.
그가 반짝반짝 빛나게, 아주 제대로.
* * *
며칠 후, 저녁.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태주와 고모, 그리고 태희는 거실에서 커다란 상을 펴고 파티를 준비 중이다.
잡채와 양념치킨, 케이크와 스콘 등등 다들 좋아하는 음식을 떡 벌어지게 차려놓았다.
태주도 드라마 촬영, 영화 촬영, 팬 사인회 등 모든 걸 내려놓았다.
오늘만큼은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부엌에서 여러 음식을 나르던 태주는 고모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가 음식 간을 맞추느라 등을 돌리는 사이.
그는 후다닥 방으로 뛰어가 얇은 봉투를 가져왔다.
“고모. 이거 선물.”
“오, 이번 선물은 뭘까? 목걸이인가? 아니면 반지?”
평소 태주가 살뜰히 선물을 챙겼기에 고모는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그가 건네는 봉투에 그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열어봐.”
천천히 열어보자 그 안에서 나오는 황금빛 지폐들.
“이게 몇 장이야……. 태주야, 너! 돈 모아야지, 고모한테 다 주면 어떡해!”
“그냥 받아.”
태주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껏 고모가 나 키워주고 돌봐줬는데, 이렇게나마 은혜를 갚고 싶어.”
고모의 망설이는 표정에 태주는 괜히 강하게 밀어붙였다.
“고모, 하나뿐인 조카가 선물하는 것도 못 받아줘?”
“아니, 정말 고마워서 그렇지…….”
태희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왜 그래, 엄마? 오빠가 나한테는 인형 세트 줬는데, 엄마도 그거 받았어?”
“더 좋은 거 받았어.”
“응?”
눈물을 글썽이던 고모는 눈가를 쓱, 훔치며 태희에게 단언했다.
“너 앞으로 태주 오빠처럼 커. 알았지?”
“어떻게 태주 오빠처럼 커? 나는 여자인데.”
엉뚱한 태희의 말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태주는 태희를 데리고 상을 차리다 낯선 음식을 발견했다.
“고모, 이 마라탕은 뭐야? 태희랑 나, 매운 거 잘 못 먹는 거 알잖아.”
꽃무늬 앞치마를 매고 주방에서 나온 고모가 황급히 다가왔다.
“아, 그거. 그냥 새로운 시도 한 거야. 한번 먹어봐.”
[아까 배달 음식 시킨 것 같던데.]태주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마라탕을 한 숟갈 먹어 보았다.
마라탕 특유의 매콤한 맛이 확 살아났다.
“으아, 맵다.”
“많이 맵니?”
“엄청 매운데? 도대체 누구 주려고 이거 한 거야?”
그러고 보니 고모의 낯선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족끼리 집에 있을 때는 화장도 안 하고 수수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뽀얗게 화장도 하고 향수도 뿌린 듯 은은한 장미 향이 났다.
“사실은 태주야, 오늘 손님을 초대했는데…….”
딩동.
기가 막히게 울리는 초인종.
태주가 문을 열어주자 차용석이 양복을 쫙 빼입고 서 있었다.
손에는 붉은 장미꽃 한 다발을 든 채였다.
“……용석이 형? 여긴 웬일이에요?”
당황스러운 태주 앞에 차용석도 귀까지 붉어진 얼굴을 숙였다.
그는 냅다 태주에게 장미꽃을 안겼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태주야.”
“네?”
“용석 씨, 들어와요.”
안에서 고모가 차용석을 불렀다.
태주는 도끼눈을 뜨고 그 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더한 충격은, 태희가 차용석에게 와락 안겼다는 사실.
“태희야!”
“이 아저씨 오빠만큼 키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착해. 난 이 아저씨 좋아.”
테이블에 둘러앉은 네 사람.
고모는 차용석에게 마라탕을 한 그릇 퍼주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용석 씨. 저희 태주 봐주시느라 항상 수고가 많으세요.”
“아닙니다, 유경 씨. 제가 태주랑 다니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훨씬 큰걸요.”
‘유경 씨?’
태주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으이그, 저 둘 내가 보기에 최소 썸 타는 사이다. 그럴 것 같더라니.]‘언제부터 저런 관계가 되었는데요? 왜 나는 전혀 눈치를 못 챘지?’
[너야 뭐 연애 감정에는 둔하기로 소문났잖냐. 아무튼, 저 둘,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놔둬. 둘 다 좋은 사람들이잖아.]‘알죠, 아는데…….’
그 순간, 차용석과 고모는 태주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태주야, 왜 그러고 있어? 얼른 먹지 않고.”
그들이 자신을 다정히 바라보는 게, 마치 부모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주는 묘하게 널뛰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알고 보니 차용석과 고모는 친분을 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차용석이 태주를 데리러 오거나 스케줄 마치고 데려다줄 때, 오며 가며 본 사이였다고 한다.
오늘 이곳에 초대한 건 태주를 지극정성으로 챙기는 게 고마워서라고.
[내가 볼 때는 용석이가 너희 고모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제가 보기엔 고모도 용석이 형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요. 안 그럼 저렇게 과일까지 예쁘게 깎아서 대접할 리가 없잖아요.’
평소에는 태주가 과일을 깎는데, 오늘은 웬일로 고모가 차용석에게 과일을 깎아준다며 칼을 뺏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보는 토끼 모양의 사과가 나왔다.
처음 시도해서 그런지 모양이 아주 특이했지만, 차용석은 이렇게 예쁜 토끼는 처음 보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고모가 살포시 미소 짓자 태주는 괜히 떨떠름해졌다.
고모 취향이 운동하는 남자인 건 알았지만, 그게 용석이 형이었나?
그는 사과를 깨작이며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태희가 9시 뉴스를 봐야 한다고 해, 그들은 10분째 뉴스를 시청 중이다.
그때.
티비 속 앵커가 상기된 표정으로 해당 사건을 소개했다.
“배우 한태주 씨가 아이돌 설채빈 씨와 함께 팬사인회를 하던 중, 설채빈 씨의 특정 부위를 찍던 몰카범을 잡아냈다는 소식입니다.”
태희가 신이 난 듯 태주에게 말했다.
“오빠, 또 뉴스에 나왔다!”
* * *
드림액터스 홍보팀.
휴일인데도 바글바글한 직원들이 한데 모여 티비를 시청하고 있다.
티비 화면을 가득 채운 한태주와 설채빈의 팬사인회 영상에 기자의 목소리가 덧입혀졌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당신도 누군가의 봄이었다’ 커플, 한태주 씨와 설채빈 씨는 GQ 화보에서 또 한 번 호흡을 맞췄는데요. 해당 팬 사인회가 진행된 이곳 쇼핑몰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태주 씨와 설채빈 씨를 보러 온 팬들로 복잡하게 붐볐습니다.”
티비를 보던 직원들이 중얼거렸다.
“진짜 붐비기는 했다. 발 디딜 틈이 없네.”
“저 대포 카메라 좀 봐, 도대체 몇 대야?”
“차 팀장님이 그러는데 저기 숨 쉴 산소가 없었다고 하더라. 그만큼 사람들로 붐볐대.”
티비 속 기자는 열띤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몰카범이 사용했던 도구는 바로 이 몰카 안경. 다른 안경보다 안경테가 두꺼운 게 특징으로, 얼핏 보면 조금 특이한 안경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태주 씨는 해당 몰카범이 설채빈 씨를 몰래 찍고 있는 것을 예리하게 알아차리고, 즉시 진행 요원에게 알려 신속히 처리했습니다. 한편, 설채빈 씨의 소속사 원스타 엔터테인먼트 측은 이러한 불법 몰카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며,현장에서 발 빠르게 대응해준 한태주 씨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뉴스가 끝나자 누가 뭐랄 것 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예상치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한태주는 휴일에도 일을 크게 치네. 하하.”
“사실 이거 며칠 전부터 커뮤니티에서 떴던 사건이에요. 반응 장난 아니었어요. 한태주 무슨 수호천사냐고.”
“솔직히 자기 사인하기에도 바쁜데 남 몰카범 잡는다는 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
“평소에 태주 씨가 연기에만 몰입하는 것 같아도, 은근히 주변도 잘 돌보고 남들을 잘 챙겨.”
홍보팀장이 뜨거운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그러니까 저런 것도 잡을 수 있었지.”
“와, 지금 태주 씨 실검 2위까지 올라왔어요.”
인터넷 사이트를 체크하던 직원이 빠르게 덧붙였다.
“아무튼 한태주 씨가 은근히 이슈 메이커라니까요. 백시영 씨하고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요.”
“백시영하고 한태주가 비교가 되나. 백시영은 속에 능구렁이 백마리가 든 사람인데.”
그 말을 하던 홍보팀장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근데 내일이 드림액터스 배우들 연말 파티하는 날 아니야? 백시영도 온다니?”
“대표님이 꼭 나오라고 했으니, 올 거예요.”
“호텔 통째로 대관해서 파티 진행한다고 했지?”
“네.”
“아무튼. 내일 아무런 잡음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를 기도하자고.”
홍보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렸다.
“원래 흥겨운 파티에는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잖아.”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