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아버지의 나라 (1)
크리스마스 당일.
태주는 차용석과 함께 휘황찬란한 고급 호텔에 도착했다.
바로 다음 날 일본에서 열리는 ‘당누봄’ 팬미팅을 가야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곧바로 촬영이 이어지는 바쁜 일정이다.
그렇기에 태주는 연말 파티를 참석할 시간이 없었지만.
장희재 대표가 특별히 그를 초대했다기에 예의상 얼굴은 비출 생각으로 온 것이다.
“저 잠깐만 있다 갈게요. 대본 볼 시간도 부족한데 파티는 무슨……”
“그래, 대표님만 뵙고 빨리 가자.”
옆에서 차용석이 든든하게 그의 보디가드를 자처했다.
그들을 따라오던 이중협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올해는 왜 이렇게 화려하게 하냐, 무슨 오스카 시상식 파티도 아니고.]‘형이 있을 때도 연말 파티가 있었어요?’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의미에서 장 대표가 매해 열어주기는 했어. 그런데 이렇게 호텔에서 한 적은 처음인걸.]여러 복도를 지나 커다란 홀에 들어가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들 드레스와 양복 차림으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중 태주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곤 돌진했다.
손우현이 그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술잔을 흔들었다.
“태주야, 오랜만이다. 술 한잔할래?”
“네.”
“오늘은 우아한 와인이다! 짠!”
태주는 손우현과 술잔을 나누었다.
그를 이런 자리에서 본다는 게 신기했다.
그들은 ‘낭만 고양이’를 같이 찍는 사이였지만, 아직은 한 장면 안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손우현이 흐뭇한 미소를 그에게 날렸다.
“너 뉴스에 나왔더라. 설채빈 몰카범 잡아줬다면서?”
“아, 뭐……. 그렇게 됐습니다.”
“너는 애가 참 선해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었어.”
“누가 선한데?”
옆에서 불쑥 끼어들은 건장한 남자의 등장에 태주는 긴장했다.
사진으로 수없이 봤던 얼굴, 그동안 수없이 말을 들었던 인물.
드림액터스의 장희재 대표였다.
그는 넉살 좋은 웃음을 흘리며 태주와 악수했다.
“안녕, 태주야.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다.
여느 연예인들만큼이나 빛나는 아우라가 인상적인 그.
태주는 깍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에이. 너무 깍듯할 필요 없어, 우리 태주 배우님. 아, 내가 반말하는 거 불편한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역시 우리 스타. 마음도 넓구만.”
장희재는 태주에게 눈을 찡긋했다.
“우리 태주 배우님 덕분에 요즘 살맛 난다니까. 연기도 잘하지, 잘생겼지, 매력도 화수분이고.”
손우현이 신이 나서 거들었다.
“그래, 장 대표. 솔직히 태주만 한 애가 어딨냐. 드라마 촬영 중에 바다에 빠진 사람 구하고, 몰카범 잡고. 얘는 복덩이야, 복덩이.”
“원래도 배우 한태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대단했었는데. 이런 선행까지 하니까 그 관심이 더욱 폭발하고 있어.”
장희재가 태주와 짠, 했다.
“이제 내년 상반기에 나올 작품만 두 개 남았지?”
“드라마 하나, 영화 하나,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 기대하고 있으니까.”
대표가 자신을 격려하자 태주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처음 만나는 장 대표는 생각보다 따뜻했고, 보기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만만한 인물은 아냐. 그러니까 백시영만 데리고 1인 기획사 차려서 이렇게 성장시키지.]‘그러게요.’
태주는 이중협의 생각에 격렬히 동의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장희재가 떠나자, 의외의 인물이 다가왔다.
능글맞은 미소를 띤 백시영이었다.
“야, 이게 누구냐. 한태주 아냐?”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백시영은 태주의 예의 바른 태도에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그렇게 거리를 두지 말라고. 나 말이야, 너같이 떠오르는 후배들을 꽤 예뻐하는 사람이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후배님.”
그가 내민 손을 태주가 어색하게 잡았다.
‘예뻐하기는 무슨, 싫어하는 거 아닌가?’
애써 못마땅한 마음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태주였다.
그의 태도에 백시영은 만족했는지, 태주에게만 들릴 소리로 자그맣게 말했다.
“너 이따가 시간 있냐? 내가 좋은 데 데려가 줄게.”
“좋은 곳이요?”
그가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물 좋은 데로 말이야. 고성열도 안 데려간 특 A급으로.”
‘물 좋은 곳? 고성열도 안 데려간 특 A급?’
어이가 없던 태주의 귓가에 이중협의 대노한 목소리가 들렸다.
[후배한테 좋은 거 가르친다, 좋은 거 가르쳐! 시영이 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태주가 짐짓 모르는 척 백시영을 공손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물 좋은 곳이 어딘데요?”
“답답하네, 진짜로. 너 지금 모르는 척하는 거지?”
백시영이 여전히 새끼손가락을 흔들거리며 그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괜찮은 여자들로 쫙 깔아줄 테니까, 가자고.”
그 말에 태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대외적으로는 기부 천사에 매너남인 백시영이 뒤에서는 이런 짓거리를 하고 다녔나?’
“괜찮습니다, 저는.”
“선배가 가자는데 왜 그러냐.”
“내일 스케줄도 있고, 빨리 집에 가서 쉬려고요.”
태주가 거절하자 백시영의 얼굴이 굳었다.
그 나름대로는 태주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 한 거였다.
술집에 데려가는 아주 불건전한 방법으로.
고성열과 달리 태주한테는 이런 방법이 안 통한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를 않았다.
“뭐야, 성인 나셨구만.”
“아니요, 그게 아니라…….”
“하긴, 넌 몰카범을 잡은 위대한 한태주셨지. 그렇게 도덕적인 네가 뭐, 여자를 알겠냐.”
백시영은 태주를 한껏 비아냥대더니 덧붙였다.
“너 그렇게 해서는 연예계 생활, 오래 못 버틴다.”
태주가 뭐라고 대답을 할 새도 없이, 그는 그 자리를 떴다.
이중협이 씩씩거렸다.
[지가 뭘 안다고 저런 소리를 해? 태주야, 잊어버려. 저런 헛소리 따위 귀담아들을 필요 없어.]‘네, 알아요.’
태주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소 짓는 백시영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백시영의 이중적 태도에 점점 의구심이 생겼다.
겉으로는 성인군자,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그.
톱스타 자리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이중생활을 했을까?
그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첫인상과 뒷모습이 이렇게나 다른 사람은.
여러모로 거슬리는 인물이었다.
* * *
12월이 얼마 남지 않은 막바지.
태주는 여러 배우와 함께 일본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예정되었던 ‘당신도 누군가의 봄이었다’ 팬미팅을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성인 배역뿐만 아니라 아역들도 이렇게 참석하는 건 의례적인 일이라 했다.
성인 배우들만큼이나 아역 배우들이 신드롬을 일으켰다나 뭐라나.
종영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당누봄의 아역들은 획기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일례로, 공항에 내린 태주가 엄청난 인파를 마주했다.
“꺄아악! 한태주다!”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기 전.
건너편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쉴새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태주의 코트 주름을 탁탁 털어주던 차용석이 씩 웃었다.
“샵 들렸다가 오길 잘했지? 쌩얼로 팬분들 앞에 서면 얼마나 부끄러웠겠냐.”
“피곤하긴 한데, 보람차네요.”
태주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팬들에게 인사했다.
“아침부터 수고하십니다.”
그리고 또다시 힘찬 환호.
태주가 길을 건너자 팬들에게 가까워졌다.
정신없이 그를 보던 눈동자들이 점점 하트 모양으로 변했다.
“와, 대박이야. 엄청나게 잘생겼어! 키도 완전 큰데?”
“역시 최고의 배우야, 얼굴도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고.”
“태주 오빠, 사랑해요!”
40대를 훌쩍 넘어 보이는 아줌마가 익살스럽게 외치는 소리에 태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능글맞게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손가락 하트를 꺼내 들어 보였다.
“저도 사랑합니다!”
“꺄아악!”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태주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기 시간이 거의 다 된 지금, 서둘러야 했다.
[세상에, 네 팬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지 뭐야.]‘저도 몰랐어요.’
이중협과 태주가 엄청난 팬의 규모에 혀를 내두르던 중.
공항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알립니다. 도쿄로 가는 항공 XX 편에 한태주 님, 차용석 님은 속히 게이트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캐리어를 화물 신청하고 돌아온 차용석이 태주를 끌고 황급히 뛰었다.
“놓치면 안 돼!”
* * *
숨이 턱까지 차올라올 만큼 달려온 태주.
겨우 비행기를 타고는 헉헉거렸다.
“물 좀 드세요, 오빠.”
옆자리에 앉은 설채빈이 그에게 물병을 따서 건네주었다.
“고마워.”
태주가 꿀꺽꿀꺽 물을 마시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왼편에서 핸드폰을 하던 윤수안과 눈이 딱 마주쳤다.
어색함에 태주가 고개를 돌리자 윤수안의 눈이 와락 커졌다.
‘좌설 예매가 누가 의도해서 한 것처럼 됐네. 하하.’
오른쪽에는 설채빈, 왼쪽에는 윤수안이었다.
바로 앞에서는 하강웅이 머리를 불쑥 디밀었다.
“근데 형,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 그게…… 팬분들한테 인사하느라 좀 늦었어. 사람들 몰릴까 봐 따로 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모여서 같이 탈 걸 그랬다.”
“인파가 엄청나긴 했죠. 역시 형이 요즘 대세라니까요.”
짓궂은 미소를 짓던 하강웅이 순간 설채빈한테 고개를 돌렸다.
“야, 설채빈. 나랑 자리 바꾸니까 좋냐?”
그 말에 설채빈이 와락 고개를 들었다.
“뭐?”
“너 태주 형 옆에 앉고 싶어서 나랑 자리 바꾼 거 아냐? 근데 고맙다는 말도 없고 말이야.”
설채빈이 태주를 힐끔거리다 하강웅의 입을 손으로 확 틀어막았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읍, 읍-읍”
“그만해라, 진짜.”
“고객님,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무슨 말을 더하고 싶은지 하강웅이 드릉드릉했지만, 결국 스튜어디스의 제지로 바르게 앉았다.
태주는 설채빈과 윤수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배낭을 뒤적거리더니 리본으로 묶은 사탕을 꺼냈다.
딸기 모양의 길다란 탕후루였다.
각각 윤수안과 설채빈에게 하나씩 건넸다.
“늦었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저랑 사촌 동생이 같이 만들었어요.”
“어머, 예쁘다.”
윤수안이 눈을 곱게 휘며 태주와 눈을 맞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딸기인데.”
옆에 있던 설채빈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저, 저도요! 저도 딸기 제일 좋아해요!”
그 말에 태주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분명 예전에 포도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새 바뀌었나?
옆에서는 이중협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히죽거리고 있었다.
* * *
한 시간 후, 도쿄에 도착했다.
공항 직원들은 당누봄 배우들을 VIP 통로로 안내했다.
옆에서 들려오는 일본어 안내방송에 이중협이 귀를 쫑긋한다.
[확실히 일본 맞네, 못 알아듣는 소리만 잔뜩이야.]‘제가 해석해 드릴까요?’
[뭐야, 너 일본어 할 줄 알아?]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략은요. 중학교 때 학교에서 일본어 배웠거든요. 고모가 제 2외국어 하나쯤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학습지도 했었고요.’
[와, 너 진짜 대단한 녀석이구나?]이중협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태주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분위기가 삼엄해지는 것 같다.
꼭 엄청난 스타라도 모시는 것처럼.
그때, 옆에서 안내하던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밖에 사람들이 너무 몰렸다는데? 터미널 A 대신 B로 안내해야 할 것 같아.
-짤막한 기자회견이라도 하고 싶다고 기자들이 다들 진을 치고 있다나 봐.
-다들 한태주를 벼르고 있던데.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