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마스크 스타 (2)
회사에서 대본 연습을 하던 중.
태주는 차용석에게 불려갔다.
드라마 본방이 곧 다가왔고, 오늘 촬영은 저녁부터였다.
“왜요, 촬영이 앞당겨졌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봐봐, 태주야. 네 인터넷 갤러리 엄청 활성화됐어.”
태주는 차용석이 보여주는 갤러리를 보았다.
그도 종종 들어가 눈팅하는 곳이었다.
그가 소속사에 들어가기 전에 찍힌 버스를 타는 모습, 그와 임강현이 카페를 갔던 모습 등등이 아직도 올라와 있었다.
그중에서 태주가 한 게시글을 클릭했다.
추천수와 댓글수가 어마어마한 이건 다름 아닌, 그가 임강현의 팬미팅에 참석한 날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가 연단에 올라 임강현을 위해 최애곡을 불러주는 모습.
그와 임강현이 살짝 포옹한 순간.
모든 사진이 예쁘게 보정된 채 올라와 있었는데, 태주가 눈을 비비며 보았다.
“꼭 저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기 여드름 났었는데 다 없어졌네.”
“내 배우 예쁜 모습만 보고 싶다면서 금손 팬분들이 이렇게 멋지게 보정해 주신 거지.”
설렘에 가득 찬 차용석이 고개를 들었다.
“아 참. 지금 팬클럽 1기 모집 끝났거든? 그런데 와, 대박이야. 첫 모집인데 5만 명 이상 몰린 건 우리 회사 창사 이래 처음이야.”
“5…, 5만명이요?”
태주가 입을 쩍 벌렸다.
그 정도면 웬만한 대형 아이돌급 아닌가?
내가 그 정도 급인가?
[나도 네 팬클럽 들어가고 싶다. 이왕이면 대빵으로.]옆에서 같이 흥분한 이중협이 불쑥 물었다.
[그런데 네 팬분들 별명은 뭐냐? 내 팬들은 초코였는데. 나는 민트였고.]과거 회상에 빠진 이중협이 아련하게 말을 이었다.
[내 팬들은 잘 있으려나. 민트초코같이 우리들, 정말 끈끈하게 잘 지냈는데.]“아무튼. 그래서 팬클럽장도 뽑고 팬미팅도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팬분들 애칭을 정하는 거거든. 혹시 생각해 둔 거 있냐?”
차용석의 말에 태주가 고민도 안 하고 말했다.
“금쪽이?”
“금쪽같은 내 새끼들에서 따온 거야?”
“네. 제가 태희 부를 때 종종 사용하는 건데요. 팬분들은 그만큼 소중하시니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직원들의 귀가 쫑긋거렸다.
“금쪽이 좋은데요? 태주 씨가 팬분들 아끼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한 것도 같고요.”
“그럼, 금쪽이로 진행하는 쪽으로 가볼게요.”
“그러자. 아 참, 태주야. 여기에 너 인사말 좀 써라.”
태주는 아예 차용석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 측에서 개설한 팬카페에는 이미 수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었다.
다들 태주를 간절히 찾는 게시판에 그가 인사말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한태주입니다……. 이 정도면 됐나요?”
정성을 다한 1,000자 정도의 글을 본 차용석이 입을 쩍 벌렸다.
“너… 평소에는 말도 별로 없더니. 넷상에서는 투머치 토커였구나.”
“제가 입은 느려도 손은 빠르잖아요.”
“뭐, 팬들에게 이러는 건 나쁘지 않지.”
그가 글을 올리자마자 속속들이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반응이 오는 모습에 태주가 즐겁게 하나하나 읽었다.
-낭만 고양이 진짜 기대돼요. 빨리 첫 방송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스페셜 방송도 꼭 챙겨볼게요, 태주 오빠 파이팅!
-영화는 언제쯤 개봉해요?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어요~
-올해 최고의 기대작 ‘광대’의 가장 기대되는 배우는 바로 우리 한태주 배우님이죠.
-올해 상반기는 정말 재밌게 보낼 수 있을 듯요. 태주 배우님의 드라마에, 영화에 볼거리가 넘쳐요!
“정말 재밌을 겁니다. 두 작품 모두.”
태주가 행복하다는 미소를 짓자 그런 그를 본 차용석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 태주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 * *
며칠 후.
태주는 아침 일찍부터 비밀스럽게 움직였다.
오늘은 대망의 ‘마스크 스타’ 녹화 날이었다.
미술팀에서 정성 들여 만든 마스크는 이미 회사에 전달됐다.
아마 차용석이 차에서 전해줄 것이다.
그가 오늘 목표로 하는 건, 두 곡을 완벽히 노래하는 거다.
1라운드에서 상대 여가수와 함께 부르는 듀엣곡과 1라운드에서 떨어졌을 때 부르는 솔로곡.
솔로곡으로는 개인적으로 태주가 제일 좋아하는 ‘본능적으로’를 선곡했다.
세련된 멜로디와 랩이 섞인, 다소 트렌디한 곡이라. ‘극장의 유령’과는 달리 자신의 담백한 원래 목소리를 잘 드러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고모가 현관에서 그를 배웅했다.
예능 녹화 때문에 늦게 들어왔던 태주가 몇 시간 안 자고 아침 일찍 다시 나가는 게 안쓰러웠다.
“어제 새벽 3시에 들어온 거 아니야? 피곤해서 어떡하니.”
하품을 애써 참은 태주가 결연한 주먹을 꼭 쥐어 보였다.
“피곤하지만 열심히 해야지.”
“즐기면서 해, 1라운드는 꼭 통과하고.”
“뭐야, 그 모순적인 격려는.”
고모는 할 말이 많은 입술만을 달싹였다.
“근데 이번에 무슨 곡 불러? 나한테만 좀 알려줘.”
“비밀. 나중에 본방으로 봐.”
태주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나가자 그녀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궁금한데, 좀 알려주지.”
어찌나 비밀스럽게 연습하던지, 그가 어떤 곡을 부르는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목욕할 때 문밖으로 살짝 들렸을 뿐이다.
문에 귀를 대고 몰래 엿들은 태희가 말하기로는, 천상의 목소리라 했다.
솔직히 기대되는 게 사실이었다.
특히 저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더더욱.
* * *
“하-암.”
메이크업과 의상 피팅을 마치고 밴에 올라탄 순간까지 태주는 입버릇처럼 하품했다.
그리고는 박카스를 연신 들이켰다.
차용석은 그런 그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이제 박카스는 그만 마셔. 몸 상한다.”
“일단 정신부터 깨우고요.”
태주가 이렇게 피곤해하는 이유.
전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진행됐던 ‘라디오 토크’ 예능 때문이었다.
동료 배우 윤수안과 함께 드라마 ‘낭만 고양이’ 홍보를 하고 온 태주였다.
개그맨 김혁동 등 3인의 연예인이 진행하는 토크쇼인 ‘라디오 토크’.
라디오에 몇 번 출연해 봤던 태주는 긴장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엠씨 김혁동은 짓궂지만 날카로운 질문들도 많이 했다.
그리고 토크쇼 제일 마지막 순서인, ‘좋아하는 노래’ 부르기에서는 태주의 목소리를 듣고 혀를 내둘렀다.
“이분, 배우가 아니라 가수로 나가야 하겠는데?” 하면서.
사실 태주도 자신의 노래 실력에 놀란 터였다.
마춘길 어르신의 능력을 받은 이후, 노래 실력이 늘었다.
아니, 는 정도가 아니라 압도적이었다.
마춘길 어르신의 성악 능력을 받은 덕분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노래를 들었던 이중협도 말했다.
[일전에 강성광 능력 받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데. 성량도 아주 쩌렁쩌렁 늘었고, 무엇보다 표현력이나 감정 표현이 아주 좋아. 정말 심금을 울리는 노래라고 할까.]아무튼 그래서 약간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보컬 레슨도 받은데다가 노래 연습도 했고, 마춘길 어르신의 능력도 얻었으니.
적어도 100표 중 20표는 얻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했다.
* * *
태주는 차용석과 함께 ABS 방송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리허설부터 했다.
태주도, 상대도 가면을 쓴 채 리허설을 진행했다.
연습 때도 봤었던 상대, ‘레이디 엘리자베스’의 쭉쭉 올라가는 고음은 가히 경이로웠다.
그렇지만 웅장하게 내지르는 태주의 힘 있는 저음도 만만치 않았다.
각자 파트에 맞춰 절정으로 달려가는 노래에 여기저기서 스태프들이 빠져들었다.
리허설이 끝날 때쯤에는 다들 박수를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진짜 대박이다, 이거.”
“리허설이 이 정도인데 본 촬영에서는 얼마나 잘하려나.”
“이게 가왕전 아니야?”
스태프들도 그들의 정체가 누군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다들 이 둘의 대결이 이번 회차의 하이라이트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다들 태양왕이 누군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그런 가운데, 태주는 얼른 대기실로 튀어갔다.
스태프들은 태주의 대변신에 총력을 쏟았다.
생전 처음 입어보는 중세풍 의상이었다.
풍성한 프릴이 달린 하얀 셔츠, 그 위에 붉은 조끼와 붉은 반바지, 그리고 하얀색 스타킹까지.
그리고 높지 않은 빨간색 힐까지.
“남자 의상인데 힐을 신어요?”
“이게 태양왕 루이 14세 스타일이에요.”
스타일리스트가 스타킹을 신은 태주의 다리를 가리켰다.
“각선미를 살리려고 항상 힐을 신으셨다네요.”
“그래도 제법 잘 어울려요, 태주 씨. 가발하고 스타킹, 하이힐 3종 세트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 흔치 않아요.”
[좋네. 알아볼 사람 아무도 없겠다,]이중협이 킬킬대며 그를 빤히 감상했다.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뭐가 됐든 난 노래만 잘 부르면 됐지.’
태주는 노래를 연습함과 동시에 눈앞의 거울을 확인했다.
노란 햇살이 얼굴 가득히 붙어 있는 찬란한 가면에 어깨 밑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쓴 모습이 보였다.
옆에서 쓱 지나가던 차용석이 그에게 요구르트를 내밀었다.
“태양왕 태주 14세 씨, 이거 드시고 하세요.”
장난스러운 그의 말에 태주가 펄쩍 뛰었다.
“아, 형! 보안 유지가 이렇게 허술하면 어떡해요!”
“너 긴장한 것 같아서 장난친 거야. 아 참, 너 화장실 가고 싶지는 않냐? 복도에 지금 사람들 없는데, 이럴 때 다녀와야지. 많아지면 정체 들킬까 봐 가기 어려울 거, 아냐.”
[맞는 소리네. 얼른 다녀와.]태주가 벌떡 일어나 보안을 위해 모자와 마스크를 쓴 차용석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태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왔으나.
역시 차용석은 아직도 안에 있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형, 아직 멀었어요?”
“먼저 나가, 뒤따라갈게.”
언제나처럼 예민한 장이 그를 괴롭히는 것 같다.
[쟤는 진짜 장이 문제다.]‘요구르트로도 해결이 안 되나 봐요.’
[저건 병원에 가봐야 한다니까.]태주는 이중협과 함께 조심스레 복도로 나왔다.
벽에 찰싹 붙어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걸어갔다.
게스트랑 동선이 달라서 화장실은 편하게 다녀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중협이 위급한 목소리를 냈다.
[뭐야, 저거 하강웅 아냐?]‘쟤가 왜 여기에 있지?’
태주가 다급하게 머리를 굴리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
하강웅이 이번 회차 때 게스트로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을 했었다.
‘근데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지!’
[어서 고개 숙여, 숙여, 숙이라고!]고개를 푹 숙였는데 하필이면 신고 있던 하이힐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헐거웠던 걸쇠가 풀리고 오른쪽 신발이 저쪽으로 날아가자.
하강웅이 그를 도와준답시고 저쪽으로 날아간 신발을 후다닥 가져와 그에게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태주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다정함과 호기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물론, 호기심이 더욱 강했지만.
태주의 가면을 들여다보던 강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우리, 아는 사이 아니에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