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마스크 스타 (3)
아는 사이 아니냐는 말에, 태주는 가슴이 철렁,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가면으로, 옷으로 정체를 단단히 가렸는데 알아보는 건 또 뭐야.
“여기요, 신발.”
하강웅이 하이힐을 주워주는 그때, 태주와 손이 스쳤다.
태주는 서둘러 풍성한 소매로 자기 손을 가렸다.
하강웅이 눈을 반짝거리며 보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호 형이죠, 맞죠? 손 보니까 지호 형인데.”
‘응?’
당황한 태주를 앞에 두고 잔뜩 흥분한 하강웅이 재잘거렸다.
“맞네, 지호 형! 얼마 전부터 우리 몰래 밤마다 나가더니, 이거 준비한 거였구나.”
태주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허둥지둥 신발을 챙겼다.
하강웅은 그런 태주에게 재빨리 소곤댔다.
“암튼 형 힘내요. 꼭 가왕 자리에 올라서 월계관 쓰고, 응?”
어색하게 고개를 한번 끄덕인 태주는 이중협과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쉰 건 덤이었다.
[재가 단순해서 진짜 다행이다. 널 윤지호로 착각할 줄이야.]‘그러니까요. 십년감수했네요, 휴.’
[그나저나 윤지호가 밤마다 나간다는 건 도대체 뭐냐? 데이트라도 한 건가?]‘멤버들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거라면, 데이트일 수도 있겠네요.’
태주는 이중협과 함께 대기실로 돌아와 뜯어진 하이힐을 스타일리스트들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걸쇠가 뜯어졌어요.”
“어머, 빨리 고쳐 드릴게요!”
그 사이, 차용석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어라? 태주 너 먼저 돌아와 있었구나?”
“형, 저 하마터면 정체를 들킬 뻔한 일이 있었어요.”
“뭐!”
태주는 아까 하강웅과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래도 걔가 절 윤지호라고 오해해서 다행이죠. 안 그럼 제대로 들킬 뻔했어요. 목소리 변조 장치도 안 찬 상태라 난감했거든요.”
“윤지호가 너랑 키도 비슷하고 체구도 비슷해서 오해했나 보네. 아무튼, 안 들켜서 다행이다.”
“태주 씨, 여기 다 고쳤어요. 한번 신어 보세요.”
스타일리스트가 그에게 하이힐을 다시 건넸다.
단단하게 신고 나서 태주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태양왕이 늠름하게 서 있었다.
긴 검은 머리 가발을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황금색 재킷을 입은 채, 누구보다도 빛나는.
태주가 태양왕처럼 오만함과 도도함을 두른 채 거울을 보며 포즈를 취해보는데.
옆에서 빤히 보던 차용석과 이중협이 동시에 박수를 쳤다.
“태양왕의 포스가 제대로 느껴지네.”
[그대로 쭉 연기해라, 아주 보기 좋다.]태주는 멋쩍은 듯 헛기침하며 괜히 가발을 만지작거렸다.
“제 인생에서 태양왕을 코스프레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그때, 스태프가 똑똑 문을 두드리더니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태양왕 님, 이제 곧 녹화 들어가실 시간입니다.”
차용석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즐기고 와라, 태주야. 그렇지만 지는 건 용납 못 해.”
고모와 똑같은 소리를 하는 차용석.
즐겨라, 하지만 이겨라.
태주가 어이가 없는 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리며 하이 파이브를 세게 때렸다.
“최선을 다하고 올게요.”
스태프를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막중했는데, 지금은 재밌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그는 프로 가수도 아니었고, 열심히 연습하기는 했지만, 그보다 뛰어난 참가자들은 널렸으니까.
그의 목표는 최선을 다하는 무대였지, 가왕전 진출이 아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몇 주간 경연을 준비하며 느낀 중압감과 ‘마스크 스타’에 나간다는 걸 숨긴 부담감들이 끝을 맺는다.
그 후련함에 태주는 절로 콧노래가 났다.
옆에서 이중협이 그를 와락 부르기 전까지는.
[콧노래 부르면 어떡하냐, 네 정체 다 알려질 텐데.]“어휴, 깜짝이야.”
이중협이 그를 졸졸 쫓아온 듯했다.
‘형, 어디까지 따라올 생각이에요? 대기실에서 용석이 형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관중석에 있으려고. 그래야 널 잘 볼 수 있으니까.]그가 백스테이지 너머 관중석을 가리켰다.
관중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벌써 녹화가 시작되었다.
MC 류동영과 판정단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태주는 살짝 긴장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부담 없이 하는 노래라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 앞에서의 공연이다.
‘실수 없이, 최선을 다하자.’
[긴장하지 말고, 쨔샤. 내가 기운 팍팍 넣어줄게, 팍팍!]이중협의 너스레에 태주는 큭큭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는 곧 관중석으로 날아가 가수들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는, 주먹을 휘두르며 파이팅을 여러 번 외쳤다.
꼭 어릴 적 같았다.
촬영장에서 긴장하던 그를 위해 어머니는 늘 카메라 뒤에서 까꿍 놀이를 해주곤 하셨다.
‘정말 다행이야. 날 지탱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점차 마음을 가라앉히던 태주에게 스태프가 말했다.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제 결전이다.
태주는 씩씩하게 백스테이지를 떠나 무대로 향했다.
* * *
1라운드가 시작되자 두 명의 참가자가 무대에 들어섰다.
중세풍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등장에 객석과 판정단으로부터 기대 섞인 환호성이 들려왔다.
레이디 엘리자베스는 화려한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자태가 아름다웠다.
그러나 단언컨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태양왕이었다.
화려한 가면, 긴 검은 머리 가발, 반짝이는 중세풍 옷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모델과도 같은 그의 늘씬한 자태 때문이었다.
특히나 스타킹을 신어 자연스럽게 드러난 그의 각선미와 빨간 구두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관중석에서 태주를 보고 연신 수군거리자, 판정단도 술렁였다.
“저분은 노래보다 패션에 더 신경 쓰신 것 같은데. 누구지?”
“체형을 보니 모델인데?”
“어차피 1라운드 끝나고 공개될 건데, 조금만 기다리자고요.”
다들 태주의 노래보다는 외양에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
자신을 얕잡아 보는 듯한 기분에 태주는 피식 웃었다.
‘이런 반응이면 자존심이 상하지.’
목표가 수정됐다.
단순히 무대를 즐기자는 것에서 실력을 120% 보여줘, 이기는 것으로.
“레이디 엘리자베스와 태양왕의 대결입니다. ‘극장의 유령’, 함께 감상하시죠!”
전주가 흐르기 시작하자, 태주가 단단히 붙잡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제 쇼타임이었다.
* * *
“꿈인가 환상인가, 노래하면 보이는 당신의 얼굴~”
레이디 엘리자베스가 포문을 연 ‘극장의 유령’.
그녀가 감미롭게 부르는 목소리에 다들 빠져들었다.
가녀린 몸매와 잘 어울리는 가련함도 한 스푼 섞여 있었다.
그리고 남자 파트가 되자, 태양왕이 마이크를 들었다.
다들 별 기대 없이 그를 보는 순간.
“나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 네가 부르는 노래의 선율을 타고 내려오는 나~”
바리톤의 웅장한 목소리가 경연장의 모두를 강타했다.
“뭐야, 잘하잖아.”
“뮤지컬 배우인가? 노래 왜 이렇게 잘해?”
다들 놀라서 태양왕을 바라보는 가운데.
태양왕은 오직 레이디 엘리자베스만을 눈에 담을 뿐이다.
그녀가 자기 여인인 양, 열렬히 바라보며 헌신적인 선율을 바친다.
“Ghost of the Theater~ 네 곁으로~”
낮고도 어두운, 나른하면서도 정열적인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이디 엘리자베스만이 아닌, 이 공연장 모두가 그에게 홀린 듯 입을 벌렸다.
선율을 주고받던 레이디 엘리자베스가 곡이 클라이맥스로 치솟음에 따라 태양왕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자 태양왕이 커다란 손에 쥐었다.
그리고 카리스마 가득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퍼져나갔다.
“노래해, 나를 위해서 제발!”
상대편에서 낭랑한 아리아가 터져 나오자, 그는 점차 그녀를 독려했다.
“나를 위하여, 노래를!”
자신의 목숨을 다 바쳐서라고 사랑할 여자를 보는듯한 정열이 그의 눈에 비쳤다.
그런 태양왕을 보던 여러 관중이 정신없이 버튼을 눌렀다.
비록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의 눈빛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에 홀리는 느낌이다.
다들 그의 매력에 마법처럼 하나둘씩 빠져드는 가운데.
“노래를 선사해 주오, 나의 천사여!”
악마도 매력적이라 칭할 매혹적인 목소리가 천상의 아리아를 감쌌다.
관중석에서 정신없이 보던 이중협이 혀를 내둘렀다.
[태주가 어쩌면…… 1라운드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태양왕에 홀린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중석의 대다수 사람이 입을 벌린 채 태양왕을 집중하는 이때.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연예인 판정단도 서로 수군거렸다.
“누구지, 쟤? 윤지호 아니었나?”
히트 작곡가 이동석이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윤지호는 저렇게 성량이 안 커. 봐봐, 마이크를 저렇게 떨어뜨리고도 쩌렁쩌렁 공연장 울리는 거.”
패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은 많아. 그렇지만, 난 저렇게 마음을 울리는 가수를 근래에 본 적이 없어.”
“노래만 듣는데도 행복하네요.”
태양왕의 노래가 세상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다.
공연장 내 모두가 아무리 고민해 봐도, 태양왕의 정체를 쉬이 짐작할 수 없다.
“도대체 누구야?”
모두의 시선은 태양왕에게 꽂혀 있었다.
* * *
노래가 끝났다.
태주는 가면 뒤에서 애써 숨을 골랐다.
하도 열심히 불렀더니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 연습한 것만큼 실력이 나온 것 같아서.
그리고 확실히 실력이 는 것 같아서.
마춘길 어르신의 ‘성악’ 능력을 받은 덕분일 것이다.
대학 시절 성악을 전공하셨다던 어르신은 뛰어난 재능과 연습으로 촉망받는 유망주셨다고 했다.
쩌렁쩌렁한 성량과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 호소력 있는 톤.
마치 맹수의 포효를 방불케 하는 실력이었다.
거기에 노래에 몰입한 태주의 자연스러운 연기까지 합세하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태주는 애써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엠씨 류동영이 그와 레이디 엘리자베스를 한데 불러 모으자 고막이 터질 만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저히 멈출 줄 모르는 박수에 엠씨가 간신히 좌중을 진정시켰다.
“자, 자. 열광의 도가니에서 잠시 빠져나와, 판정단의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
마이크를 넘긴 판정단은 서로 자신이 의견을 말하겠다고 아우성쳤다.
개그맨 남유준은 태주를 보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태양왕 님 정말 대박입니다. 사실 무대 전까지만 해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걸. 와, 정말 닭살 돋았어요.”
그의 마이크를 옆에 있던 개그우먼 장재영이 뺏어 들었다.
태주를 보던 그녀의 눈에는 하트가 가득했다.
“태양왕 님, 저 이따가 가기 전에 전화번호 좀 찍어주고 가세요.”
“뭐라는 거야, 이 양반이.”
“노래하는 목소리가 저렇게 잘생겼는데, 당연히 얼굴도 잘생겼을 거 아니에요.”
그 말에 태주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구애를 받는 건 언제나 부끄러웠다.
엠씨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어라라, 태양왕 님. 지금 좋아하시는 거죠? 그렇죠?”
태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중석에서 꺄악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작곡가 이동석은 권위적인 목소리를 냈다.
“레이디 엘리자베스 님은 음색도 예쁘고 무척 청량했습니다. 그런데 태양왕 님.”
그가 태주에게 대뜸 물었다.
“혹시 몇 살이세요? 정말로?”
엠씨가 질문을 커트했다.
“잠깐만요, 이동석 씨.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이게 보통 내공 아니면 힘들거든요. 엄청난 성량, 관록 있는 창법, 자유자재로 변하는 목소리. 무엇보다, 저 거칠면서도 애절한 태양왕의 노래.”
작곡가 이동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이렇게 매력적인 팬텀을 태어나서 본 적이 없어요.”
“혹시 뮤지컬 배우 제이 님 아니세요? 조금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아니야, 저분만큼 다리가 예쁘지 않다고. 각선미가 대단하잖아, 저분은.”
“그럼 모델 아닐까요?”
“저렇게 노래 잘하면 왜 모델을 해, 가수를 하지.”
여기저기서 태주의 정체를 추리하려 다들 애를 쓰는 가운데.
방송인 김혁동이 단호하게 마이크를 잡아 들었다.
“매력적인 중저음과 심하게 수줍어하는 모습. 그런데도 노래만 했다 하면 무대를 확 휘어잡는 카리스마.”
태주를 빤히 보던 방송인 김혁동이 씨익 웃어 보인다.
“저는 태양왕 님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저는 저분을 만난 적 있는 것 같습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