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마스크 스타 (5)
자정에 가까워진 시각.
3라운드 경영을 위해 백스테이지에 선 태주.
2라운드와 달리, 3라운드는 후공을 맡았다.
그의 상대로 올라온 ‘전국 팔도 명창’은 완벽한 발라드를 선보였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사랑한다면’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판정단은 새로운 가왕의 탄생이라며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태주의 차례가 되었다.
가면 뒤에서 그는 깊은 침묵에 젖어있었다.
대기실에서부터 이런 상태였던지라 주변에서는 그가 부담감을 느끼는 거라 걱정했다.
그러나 곁에 있던 이중협은 그게 아닌 것을 알았다.
태주에게서 느껴지는 이 감정은 긴장감도, 부담감도 아니었으니까.
알 수 없는 감정이 태주의 눈에 넘실대고 있었다.
[각오가 남다른 것 같다, 너.]‘네, 이번 곡은 제게 좀 특별한 곡이라서요.’
3라운드 때 부를 곡은 ‘너를 위해’.
생전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던 노래였다.
태주가 이 곡을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제작진은 살짝 걱정한 바 있었다.
-1970년대에 발매됐고, 잘 알려진 노래도 아니네요. 이 곡으로 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더욱이 난이도가 쉬운 곡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곡은 기교보다는 진정한 가창력과 감정이입이 필요한 곡.
프로 가수가 아닌 배우인 태주이기에 제작진은 당연히 염려했다.
그래도 태주는 이 곡을 부르기로 했다.
이번 무대는 아버지께 바치고 싶었다.
태주가 무대로 나오자 이전 참가자의 열기가 언제 후끈했냐는 듯, 주변이 고요해졌다.
잠시 후 잔잔한 반주가 시작되고 낯선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작곡가나 평론가들은 예상치 못한 곡의 출현에 눈썹을 씰룩거렸다.
“이 곡을 한다고? 이거 어려울 텐데.”
그리고 이 곡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태주가 마이크를 든 순간.
마냥 맑은 것도, 마냥 청량한 것도, 마냥 슬픈 것도 아닌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낯선 곡에 헛헛했던 관중들이 몰입한 건 그때부터였다.
네게 위로가 필요하면 내가 위로해 주고, 네가 괴로울 때는 내가 옆에 있어 주겠다는 가사의 내용.
태주는 담담하게 그 가사들을 노래했다.
마치 친구에게, 연인에게, 부모에게 말하듯이.
“네가 필요할 때, 내가 늘 곁에 있을게. 너를 위해.”
노래의 마지막에 흘리듯 말한 내레이션.
정신없이 노래에 집중하던 사람들은 곧 눈물을 흘렸다.
“끝났다.”
다들 기립박수를 치며,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기 바빴다.
하강웅 또한 눈물을 훔치다 순간 눈을 반짝였다.
“저거, 태주 형 목소리랑 비슷한데?”
* * *
태주가 마지막 가사를 흩날리듯 내뱉는데, 채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모두가 일어섰다.
감정에 벅차오른 표정들이 압권이었다.
“어헝헝……. 나 진짜 울어버렸잖아.”
“모르는 노래라서 그냥 편하게 들으려고 했는데, 이거 뭐야. 심장이 계속 쿵쿵대는데?”
“아무튼. 너무 좋았어, 너무나도.”
다들 좋다는 말만 정신없이 반복하며 손뼉을 쳐댔다.
노래를 평가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노래가 너무 좋아서, 노래가 그들에게 깊게 스며들었을 뿐.
일반인 판정단도, 연예인 판정단도, 카메라 뒤에 있던 제작진도 한마음이 되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귀를 메운 순간.
태주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마이크를 입에서 떨어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래에 완전히 빠져버린 관객들이 보였다.
몇몇은 울었고 몇몇은 웃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온 마음을 다해 불렀을 뿐인데.
그때, 관중석에서 보고 있던 이중협이 날라오더니 그를 냉큼 껴안았다.
[너 정말…….]태주의 어깨에서 간신히 고개를 들은 이중협.
그의 눈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눈물이 글썽거리는 건 왜일까.
그건 이중협이 태주의 노래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 거다.
태주가 담담하게 읊조린 모든 가사가, 꼭 그에게 하는 말들 같았기에.
-네가 필요할 때, 내가 늘 곁에 있을게. 너를 위해.”
그는 어느새 태주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를 성불해줄 사람으로, 지금은 동생이자 친구로서.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시 한 번 태주를 와락 껴안았다.
실체감이 없어야 할 대장 귀신의 포옹임에도 무언가 느껴졌다.
뜨거운 애정이 가득한 그의 마음이.
[나도 널 지켜줄게, 우리 태주.]* * *
그 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나……, 3라운드도 이긴 거, 맞지? 아빠, 제가 해냈어요. 마지막까지 지켜봐 주세요.’
3라운드를 멋지게 치러낸 태주는 대기실에서 가왕 방어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난 회차 가왕, ‘달의 여신’은 발라드를 선보였던 평소와 달리 KPOP 가요로 승부수를 띄웠는데.
음색이나 음정이 잘 어울려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작곡가 이동석의 ‘새로운 모습의 발견’이라는 말에 다들 공감했다.
어느덧 새벽 1시가 다 된 시각.
방어전이 끝나자 태주가 무대 위로 나왔다.
그의 등장에 다들 얼굴이 환해져서는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손에 결과를 든 엠씨는 더없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 태양왕 씨, 달의 여신 씨. 서로 인사들 나누시죠.”
태주는 달 가면을 쓴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태주의 어깨에 겨우 오는 달의 여신이 수줍게 멈칫하더니, 냉큼 그에게 뛰어가 안겼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태주가 순간 흠칫했지만, 다정하게 그녀를 안아 주었다.
늘씬한 키의 태양왕이 조그마한 달의 여신을 안아 주는 모습에 여러 여성 관객들이 꺄악거렸다.
엠씨는 힘겹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이크를 들었다.
“자, 자. 두 분은 라이벌입니다. 이렇게 안겨서 죽고 못 살 관계가 아니라요.”
변조된 여성의 목소리가 신이 난 듯 흘러나왔다.
“저는 오늘 떨어져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달의 여신이 태주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분명 태양왕 님은 노래를 잘하는 만큼, 얼굴도 잘생기신 게 분명하거든요.”
“짐작 가시는 분이 있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달의 여신이 태주를 응시했다.
“윤지호 씨가 아닐지…….”
그 말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거봐요, 내가 지호 형이라고 했잖아요.”
“근데 지호 씨가 다리가 저렇게 예뻤었나? 하지정맥 같은 거 없었어?”
“노래하는 목소리가 지호 씨는 아닌 것 같았는데.”
맞다, 아니다로 수군거리던 순간.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던 엠씨가 큐카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여러분, 지금 제 손에! 제100대 가왕이 들어와 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숨죽이는 관객.
결과가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사람.
“어서 발표해요, 어서!”
그리고 조급한 발을 동동거리는 연예인 판정단을 본 엠씨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태주에게 향했다.
태양왕 가면 속, 태주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엠씨는 그런 그를 보고 씩 웃더니 마이크를 고쳐잡았다.
“100대 가왕은 바로……!”
* * *
태주가 집에 돌아오자 고모가 그를 맞이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
태주를 기다리다 잠깐 졸은 모양인지 눈에 졸음이 가득했다.
“하암. 왔어?”
“네.”
평소라면 고모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줄 태주이지만, 오늘만큼은 침묵을 지킨 채 방으로 들어갔다.
고모가 눈을 빛내고 그를 따라갔다.
“어떻게 됐어? 1라운드에서 누구랑 붙었어?”
“본방으로 확인해.”
“몇 표 얻었는데?”
“비밀이야.”
그 말을 끝으로 태주가 씻으러 들어간다.
대답을 해줄 듯 안 해주는 태주의 태도에 고모가 머리를 긁적였다.
“왜 저래. 큰 표 차로 진 건가?”
이래저래 커다란 오해를 하는 그녀였다.
그러나 정작 씻고 방 안에 들어간 태주는, 그대로 침대에 뛰어 들어갔다.
“아싸, 아싸, 아싸!”
‘마스크 스타’ 촬영장에서는 너무 긴장하고 당황해서 이런 감정이 안 나왔었는데.
편한 집에 오니 제대로 실감이 났다.
‘너무 기쁘잖아. 짜릿해, 즐거워, 새로워!’
침대에서 이불을 몸에 감고 마구 굴렀다.
구석에 있던 고양이가 털을 핥다가 그를 빤히 바라본다.
이중협도 웃긴다는 듯 그를 보는 건 덤이다.
[촬영장에서 그렇게 좀 기뻐하지 그랬냐. 정작 현장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건방지다고 누가 그러더구만.]“김혁동 씨가 그렇게 오해하셨죠.”
이불 속에서 태주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대꾸했다.
“가왕 된 사람 중에 제가 제일 반응 없다고 막 열 내시더라고요. 얼떨떨하고 너무 기뻐서 그런 건데.”
태주는 그때를 회상했다.
–
엠씨가 힘찬 목소리로 결과 발표를 했을 때.
“가왕은, 태양왕입니다! 무려 20표 차로 승리하셨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얼떨떨한 태주는 연신 마른침만 삼켰다.
마이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엠씨가 그의 당황과 당혹스러움을 알아챘는지 싱긋 웃었다.
“태양왕 님, 방금 가왕이 되셨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마이크를 잡은 태주의 손이 발발 떨렸다.
김혁동이 그걸 재빨리 캐치했다.
“여봐요, 태양왕 씨. 방금 가왕이 됐어요. 그런데 전혀 기쁜 구석이 없네요?”
태주는 쿵쿵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하고는 입을 열었다.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가는 음성 변조된 목소리에서 그대로 떨림이 전해졌다.
“너무 떨려서요. 정말 떨려서…….”
“아니, 왜 떨려요? 가왕 될 줄 몰랐어요?”
“네.”
1라운드에서 그대로 져서 가면을 벗을 줄 알았지.
당황함이 지나쳐 이제는 굳어버린 태주의 태도에 연예인 판정단은 더욱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진짜 재밌는 분이시네. 가왕이 됐는데, 왜 이렇게 담담하셔?”
“다음에도 좋은 무대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태주는 로봇처럼 뻣뻣하게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무대를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용석은 흥분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태주는 과부하가 온 것처럼 멈춰있었다.
–
[그때는 절에 있는 동상 같더니. 인제 와서 이렇게 흥분한 이유가 뭐야?]“그래도 1등 한 건데, 좋잖아요!”
태주가 침대에서 다시 한번 세차게 굴렀다.
야옹대는 고양이한테 냅다 가서는 마구 입술을 비비기도 했다.
“엘사야, 오빠 일등했다!”
“야옹!”
그런 모습에 이중협이 피식거렸다.
[하여튼, 애는 애구만.]* * *
다음날, 오전. ABS 드라마국.
휴게실에서 조연출과 커피를 홀짝이던 선화철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태주 씨, 가왕 된 거죠? 제일 높은 거!”
“그렇다잖아.”
조연출이 전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자기 얼굴을 찰싹거렸다.
“나 참, 내로라하는 가수들도 그 자리에 못 올라가는 이들이 부지기수인데. 어떻게 일반 배우가……”
“쉿!”
선화철이 입가에 손을 올렸다.
“우리부터 입단속을 잘해야 한다고.”
“그럼 앞으로 태주 씨, 드라마랑 그거 동시 출연하는 거예요?”
“일단은 그렇겠지.”
“개인적으로는 태주 씨가 2연속 가왕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조연출이 꿈을 꾸듯 몽롱하게 먼 곳을 응시했다.
“솔직히 태주 씨, 노래 진짜 잘하거든요.”
“애가 편집한다고 밤을 새우더니 뭔 소리 하는 거야.”
선화철이 커피를 한 움큼 들이마셨다.
“그럼 태주 씨가 너무 힘들지. 지금 영화 촬영도 병행하는데, 드라마에 예능? 어휴, 그러다 탈 난다.”
“그래도 태주 씨가 열심히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애초에 자기가 원한다고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아.”
“하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요. 태주 씨가 그 자리를 장기적으로 지킬 것 같다는. 감독님도 아시잖아요, 태주 씨가 노래를 웬만큼 잘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는 거.”
“……그렇긴 하지.”
선화철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태주 씨, 피곤해지겠네’
너무나도 재능이 많은 그의 배우의 숙명이리라.
* * *
그 주 금요일 저녁.
태주는 영화 ‘광대’ 촬영을 위해 지방에 내려와 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제작진과 배우들이 식당에 한데 모여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염수정이 태주에게 상냥하게 물었다.
“오늘 낭만 고양이 스페셜 방송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태주는 멋쩍게 웃었다.
“네, 맞습니다.”
그녀가 DBC 화면이 틀어져 있는 티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식당 어머님께 ABS 틀어달라고 할까요? 같이 보면 좋잖아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