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시청률의 승부사 (4)
다음날, 연예계 기사란에는 엄청난 기사들이 쏟아졌다.
다들 어제 첫 방송을 한 드라마들을 비교하는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을 쭉 훑어보던 홍은지 기자의 얼굴엔 밤새 기사를 쓴 탓에 다크서클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낭만 고양이’의 희소식에 그녀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역시! 낭만 고양이 파이티잉!”
옆에서 우성림이 기립박수를 쳤다.
이 드라마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선배님 조카분이 보조작가로 참여했고, 우리의 한태주 배우님이 주연으로 연기한 ‘낭만 고양이’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성했네요!”
“흐흠.”
홍은지는 잔뜩 벌게진 눈을 문질렀다.
“베일릭스는 들어가 봤어? 두 드라마 랭킹 확인해 봐야지. 요즘엔 그것도 시청률 못지않은 인기 척도인데.”
“네, 이따가 오후에 베일릭스 지표 반영한 기사 쓰려고 확인했었죠.”
우성림이 재빨리 마우스를 달칵거렸다.
곧이어 커다란 화면에 베일릭스의 1위부터 10위까지 화면이 떴다.
“일단 베일릭스에서는 ‘오디세이 2’가 승자네요. 오디세이는 한국 내 랭킹 2위, ‘낭만 고양이’는 한국 내 랭킹 3위.”
“그럼 곧 추격할 수도 있겠네.”
“그러게요. 의외로 둘이 그렇게 차이가 안 나더라고요.”
“둘의 차이는 이거야. ‘낭만 고양이’는 기대감을 훨씬 상회하는 퀄리티를 보여줬고, ‘오디세이 2’는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말도 안 되는 스토리를 선보였지.”
홍은지가 펜을 달칵거리며 열을 냈다.
“아니, 오디세이 1의 설정들을 그렇게 파괴하면 어쩌라는 거야. 왜 제멋대로 내 최애를 죽이는 건데!”
“아마 ‘오디세이 1’하고 차별점을 주려고 한 거 아닐까요? 그래도 잘 있던 캐릭터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인 건 좀… 거부감이 들긴 했죠.”
“그것도 그렇고. 드라마 안에 스토리가 없잖아. 아무리 첩보 액션 드라마라고 해도 60분 중에서 55분을 액션만 보여주면 어떡하냐. 이게 액션 교본도 아니고.”
“그리고 안종현 씨가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이게 드라만가, 안종현 원맨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 말이! 이 정도면 안종현 화보지!”
“선배, 물 좀 드시고 진정하세요. 그래도 저희한테는 ‘낭만 고양이’가 있잖아요.”
우성림이 건네는 물을 홍은지가 냉큼 마셨다.
“그건 그래. 의외로 ‘낭만 고양이’가 짜임새도 좋고 스토리가 좋더라. 물론 배우들의 열연이 받쳐져서 빛이 난 거겠지만.”
“제작발표회에서 선화철 감독이 말한 게 맞았어요. 속도감 있는 전개, 만화적인 상상력, 그리고 한태주 씨의 재발견일 거라고.”
우성림이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
“원래도 연기를 잘했지만. 고양이 연기도 그렇게 잘할 줄은, 그리고 노래로 사람 마음을 울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니까요.”
* * *
그날 낮.
태주는 드라마 촬영하러 가기 전, 잠시 회사에 들렀다.
베일릭스 측에서 ‘낭만 고양이’ 출연진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마련한 회의실에서 베일릭스 측 관계자와 한 시간가량 인터뷰하고 나왔다.
가볍지만 전혀 경박하지 않은, 유쾌한 분위기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태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스태프들에게 인사하자 기다리고 있던 베일릭스 관계자가 그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태주 씨. 말솜씨가 없으시다더니, 너무 겸손하신 거 아니에요? 아주 재밌었어요. 간간이 아재 개그도 하면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태주 씨, 정말 재밌는 사람이었네요!”
그녀가 윙크를 날리자 태주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건 이중협의 도움이었다.
너무 진지한 것보다는 적당히 웃긴 게 낫다면서, 그가 조언해준 것들.
태주는 과연 그게 웃길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정작 농담을 군데군데 섞으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
소가 계단에 올라가면? 소-오름.
햄버거의 색깔은? 버-건디!
[거봐, 내 농담이 아주 세련되고 트렌디 하다니까.]기고만장해진 이중협이 옆에서 턱을 치켜들었다.
[네가 농담할 때마다 빵빵 터지잖냐. 저 관계자분, 네가 무슨 말 할 때마다 웃겨서 배 잡더라.]아직도 의심스러운 태주는 옆에 있던 차용석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형, 저 아까 아재 개그…. 그거 괜찮았어요?”
“평소에 안 하던 거라 조금 당황했는데, 괜찮던데? 앞으로 더 해봐. 잘생긴 애가 하니까 재밌더라.”
차용석의 동의에 이중협은 이제 코가 하늘을 찔렀다.
[거봐, 재밌다지!]“태주 씨,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관계자가 부르는 소리에 태주는 화들짝 그녀의 손을 잡아 악수했다.
“제가 더 감사했습니다.”
베일릭스의 관계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더했다.
“앞으로도 ‘낭만 고양이’ 촬영에 힘써주세요. 저희 측에서도 드라마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떠난 관계자.
태주는 휴게실에서 물을 마시며 배웅 나간 차용석을 기다렸다.
‘저희 드라마가 잘 뽑히긴 했죠?’
[첫 방에 9% 넘는 거, 쉽지 않지. 오디세이 2는 7%에 그쳤다면서. 확실히 너희 드라마 재밌긴 하더라.]태주는 의자에 털썩 앉아 핸드폰을 확인했다.
드라마를 잘 봤다는 지인들의 문자가 산처럼 쌓여 있다.
대부분 덕담과 칭찬이었지만, 이따금 솔직한 내용도 있었다.
유치할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까 재밌었다는 게 그들의 중론이었다.
“하긴, 나도 처음엔 유치할 줄 알았지. 그런데 스토리도, 연출도 다 좋았어.”
수많은 인터넷 기사들과 커뮤니티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 드라마, JSB 엔터랑 드림액터스가 공동 제작하고 캐스팅에 아이돌 들어간다고 해서 솔직히 기대 없었는데. 생각보다 재밌네?
-한태주면 믿보배 배우 아닙니까. 게다가 윤수안하고 콤비인데, 당연히 봐야죠.
-고양이가 사람 됐다는 설정이 오버 같았는데 의외로 한태주가 리얼하게 잘 살려서 좋았음. 근데 진짜 고양이 키우나? 어떻게 그렇게 고양이 같이 잘 연기하지?
-컨셉이 하이틴 뮤직 드라마라 노래 못하면 폭망인데. 한태주랑 윤수안 노래 잘하더라. 특히 한태주, 나날이 노래 실력이 발전하는 듯. 그리고 춤은 또 왜 그렇게 잘 춰?
-그래서 한태주가 동 나이대 남자 배우 중에 독보적이라는 것임. 연기력은 기본이고, 노래도 뛰어나게 잘하니까.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히죽거렸다.
언제나 칭찬은 좋은 법이다.
[으이그, 혼자서 키득거리네. 그렇게 칭찬이 좋아?]‘좋아요. 그러니까 형도 저 좀 칭찬해 줘봐요.’
[뻔뻔하기는. 그래, 너 잘났다!]태주가 이중협과 키득거리던 사이, 휴게실에 검은 그림자가 음습했다.
물을 마시러 온 고성열이 휴게실 한쪽에 있던 태주를 발견하곤.
순식간에 얼굴을 찡그렸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한 태주를 그는 쌩하니 무시했다.
[뭐야,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그런데 그때.
고성열이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드라마 잘 봤습니다. 유치해서 10대들이 좋아할 스타일이더라고요.”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태주가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헛기침했다.
“그런데 그 기세가 영화까지 이어지리라는 법은 없죠. 안 그래요?”
* * *
“난리…, 난리 났습니다.”
잔뜩 흥분한 홍보부장이 현필름의 신예지 대표에게 뛰어갔다.
그의 손에는 조금 전까지 보던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한 마리의 무법 멧돼지가 따로 없었다.
차분하게 문서를 작성하던 그녀가 펜을 떨굴 정도였으니까.
“뭐야, 나 지금 사인하려는 찰나였는데!”
“이것 보십쇼, 대표님. 저희 2차 티저, 공개한 지 6시간 만에 조회수 100만 넘었습니다!”
“뭐라고!”
신예지가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뺏었다.
유튜브에 공개한 영화 ‘광대’의 2차 티저가 보였다.
“조회수 120만!”
인기 동영상에 오른 건 물론, 조회수가 지금도 계속 오르는 중이다.
그녀가 흥분한 얼굴을 들었다.
“어제 태주 씨 드라마가 동시간 시청률 1위 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더니, 그 효과가 영화에까지 미치는구나!”
“지금 전화로도 난리예요. 저희 영화 언제 개봉하냐고.”
홍보부장이 고조된 어조로 덧붙였다.
“한태주 씨 효과가 확실하다니까요!”
* * *
촬영을 마치고 태주가 집에 들어가자, 태희가 그에게 냅다 달려왔다.
자정인 지금, 태주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태희야, 너 자야지!”
졸린 눈을 비비며 태희가 손에 들고 있던 텅 빈 스케치북을 그에게 내밀었다.
“오빠, 친구들이 사인받아 달래. 내일까지 사인받아간다고 약속했어.”
“어?”
“내 친구들 이름 불러줄게. 방신영, 조유리, 김지희, 심리원……”
“잠깐만, 태희야. 오빠가 친구들 이름 좀 받아적고.”
태주가 펜을 꺼내 거실 바닥에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이름을 적는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고모가 태주를 발견했다.
“태주 왔구나.”
“고모, 이게 무슨 일이야? 태희는 왜 이 시간에 깨어 있고?”
고모는 태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태희야, 오빠 오랜만에 집에 왔잖아. 촬영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좀 쉬게 놔두지.”
“그렇지만 내 친구들이 오빠 사인받고 싶어 하는걸?”
태희가 눈을 반짝반짝 비추며 말을 이었다.
“오빠한테 사인받아달라고 하는 거, 좋단 말야. 너무 신기하고, 또 우리 오빠 대단한 것 같고, 그리고……”
태희가 태주의 등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아무튼. 우리 오빠가 대단한 배우라는 거, 다들 알아주니까 좋아!”
“알겠어, 우리 태희를 위해서 이 오빠가 열심히 사인해 볼게!”
[귀여운 녀석.]이중협도, 태주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루의 피곤함에 싹 날아가는 느낌에, 태주는 최선을 다해 한장 한장 사인했다.
태희는 하품을 연신 하면서도 그의 옆에 딱 붙어 있다.
그런데 그의 눈치를 살금살금 보는 게 조금 수상했다.
“태희야, 자야지.”
“아직 방학이라 내일 학교 안 가는데?”
“그래도 일찍 자야 키가 쑥쑥 크지. 그리고 내일 오후에 친구들하고 만나서 놀려면 오늘 푹 자야지.”
“흐흥.”
평소에는 말을 잘 듣는 태희가, 오늘은 웬일인지 그의 말을 잘 안 듣는다.
“오빠, 노래해봐.”
“갑자기 뭔 노래야.”
게다가 이렇게 뜬금없는 부탁을 하지를 않나.
“아직도 안 들어갔어?”
시원한 참외를 깎아온 고모가 태희 옆에 털썩 앉았다.
“태희 이제 자야지.”
“오빠하고 더 있을 거야.”
“얘 고집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센지. 태주야, 참외 먹으면서 해라.”
결국, 두 손 다 든 고모가 태주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낭만 고양이’ 2화 본방으로 봤거든. 진짜 재밌더라.”
“봤어요?”
“너 진짜 멋있게 나오던데? 대사 소화력 예술이더라. 네가 윤수안한테 뭐라고 했더라? 넌 내 거니까 다른 남자 냄새 묻히고 다니지 말라고 했던가?”
태주가 얼굴을 붉혔다.
“부끄럽게 그런 얘기는 왜 해요!”
“무엇보다 너 노래하는 거, 정말 대박이더라. 윤수안하고 손잡고서 입학시험에서 듀엣으로 노래 부르는데, 와.”
고모가 가슴에 손을 얹고서 눈을 감았다.
“너희 고모부랑 연애하던 시절 생각나더라.”
“최고의 극찬이네요.”
멋쩍은 표정의 태주가 고모를 바라보았다.
평소 잘 꺼내지 않는 고모부 얘기.
아빠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던 고모 부부는 참으로 금실이 좋았다.
그때, 태주 옆에 찰싹 붙어 있던 태희가 몸을 배배 꼬았다.
“나도 그 드라마 봤는데.”
“태희도 봤구나! 역시 태희는 오빠의 넘버 원 팬이야.”
“근데 오빠. 거기 드라마에서 노래하는 거, 마스크 스타에 나왔던 사람이랑 비슷했어.”
순간 태주는 긴장해서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그를 빤히 보며 태희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혹시 오빠, ‘마스크 스타’의 태양왕이야?”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