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울게 하소서 (1)
얼마 후.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화기애애한 대화가 흘러나왔다.
“맞다, 태주 씨도 중협이 오빠 팬이라고 했었죠. 선우 오빠가 말해줬었어요.”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선우 오빠가 엄청 섭섭해하더라고요. 자기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딴 애를 좋아할 수 있냐면서요.”
대중교통을 타고 왔던 태주는 염수정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태주는 조수석에서 바짝 긴장한 채 뒷좌석을 힐끔거렸다.
그곳에는 염수정을 바라보고 있는 이중협이 앉아있었다.
어차피 귀신인데, 그냥 자기 무릎에 앉으라고 해도 굳이 뒤에 앉은 그였다.
염수정은 그것도 모른 채 태주에게 다정하게 말을 시켰다.
2일 후 개봉인데 기분이 어떤지, 잘 될 거니 긴장 말라는 등등.
선배로서 든든한 조언을 해줘, 태주도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기예요?”
“네, 맞습니다.”
주차장 구석에 차를 세우자 태주가 염수정에게 인사했다.
“태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뭘요. 태주 씨랑 와서 내가 더 재밌었는데.”
염수정이 반달로 눈을 휘며 말했다.
태주는 뭐라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멋쩍기도 하고, 뒤에서 이중협이 불타는 눈길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때, 그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수정이한테 하나만 물어봐 주라. 노란 장미꽃 말야, 왜 여태까지 가져다 놓은 건지…….]답이 뻔한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염수정에게 그 질문을 그대로 옮기자, 그녀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보조개가 팬 볼이 유독 붉었다.
“중협이 오빠 말이에요. 참 배려 깊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더 좋아했죠. 분명히 좋아하는 꽃이 노란 장미가 아닌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좋아하니까 노란 장미꽃을 좋아한다고 하는 거 있죠.”
“아….”
뒤에서 이중협은 코먹는 소리를 내길래, 태주가 눈을 깜빡였다.
염수정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중협이 오빠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죠. 그래서….”
이중협이 차에서 냉큼 나가 버렸다.
태주는 차마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그가 혼자서 울고 있을 걸, 알았기에.
“이따금 태주 씨를 보면, 중협이 오빠가 생각나요. 성격도, 생긴 것도 다르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세상 누구보다 강한 것이 너무나도 비슷하거든요.”
염수정은 태주의 손을 다독이며 당부했다.
“그러니까 결과에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스스로의 길을 쭉 가봐요.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까.”
차에서 내려 염수정을 배웅한 후.
태주는 이중협을 찾았지만, 아무 데도 없기에 일단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그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이제 오냐?]태주는 입을 여러 번 벙긋거렸다.
그렇지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여 바닥에 앉아 그를 등지고 솔직한 생각을 그대로 전했다.
‘전 그냥 이렇게 있어 드릴게요.’
[뭐?]‘저하던 대로 할게요. 열심히 연기하고, 열심히 살고, 그리고….’
어느새 옆으로 가까이 다가온 이중협.
그는 태주의 옆에 털썩 앉으며 씩 웃었다.
[짜식, 넌 그 자체로 내게 행복이야. 살아서는 수정이가 그랬듯, 지금은 네가 내 행복이라고.]그렇게 두 남자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멋쩍음과 행복함이 가득한 침묵을.
* * *
다음날.
유독 북적거리는 스타뉴스 본국.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사를 작성하던 홍은지는 여러 번 제목을 고쳤다.
“영화의 기본을 못 지킨 영화? 아니지, 이것보다 더 강렬해야 해. 잘 차려진 밥상에 실속은 사치다? 그래, 이렇게 해야겠다.”
그녀가 빠르게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여기 커피 배달이요.”
“어, 거기 놔두고 가봐.”
곁을 기웃거리던 우성림은 모니터 안 기사를 힐끔거렸다.
그리고 제목을 보더니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선배, 기사 그렇게 써도 돼요?”
“뭐가?”
“오늘 ‘언더커버’ 언론 시사 다녀오신 거 맞죠? 아니, 선배가 현필름 영화를 너무나도 감명 깊게 본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편파적으로 기사를 쓰는 건 좀 아니잖아요.”
그 말에 홍은지가 두 손을 들었다.
“야, 이것도 순화시킨 거다? 네가 거기 영화를 직접 봤으면 그런 말 못 해. 왜 언론시사회를 개봉 전날까지 미루고 미뤘는지 알겠더라.”
“도대체 영화가 어땠는데요?”
* * *
3월 1일.
극장가에는 두 개의 기대작이 동시에 개봉했다.
‘언더커버’와 ‘광대’.
삼일절 연휴를 맞은 수많은 사람이 극장가로 쏟아져 나온 가운데.
두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영화관이 가득 찼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승부의 추는 한쪽으로 기운 듯했다.
개봉 일주일 차에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윤곽이 드러났다.
정면으로 붙은 두 영화의 경쟁.
물량으로 승부수를 던진 ‘언더커버’는 생각보다 빨리 바닥을 보였다.
‘광대’가 스크린 수를 늘려가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첫날에는 무려 2,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배정해 XJ 측에서 팍팍 밀어줬었다.
그러나 그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관객 수가 줄어들더니, 심지어 이탈한 사람들이 경쟁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XJ 측에서는 자극적인 기사로 관객들을 유도했다.
아웃패치에서 지속적으로 내놓는 이런 기사들에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바보야? 이런 걸 그대로 믿게?”
“막상 영화에서 고윤하, 노출 얼마 하지도 않더구만.”
“무엇보다 영화가 똥망이야. 완전 재미없다고. 최준모가 제작자로 참여했다기에 조금은 기대했는데, 어떻게 영화를 이렇게 재미없게 만들 수가 있냐.”
“백시영도 이제 한물갔구만. 왜 이런 영화에 발을 디뎠나 몰라.”
대중의 실망스러운 시선은 다른 영화로 향하자 활짝 피었다.
“확실히 현필름이 영화는 잘 만들어. 이번에 염수정이랑 한태주 나온 그 영화, 3번이나 봤는데 안 질리더라.”
“영화가 재밌잖아. 그러니까 자꾸 보게 되지.”
“한태주 때문에 몇 번이고 보게 되더라. 얼마나 연기를 맛깔스럽게 잘하는지. 나 반해버렸잖아, 그이한테.”
거듭되는 관객들의 발걸음에 영화 ‘광대’는 개봉 일주일 만에 200만을 넘겼다.
그리고 이제는 300만을 향해 가는 중인 이때, 영화 ‘광대’에 대해 여기저기서 기사가 흘러나왔다.
삼일절 연휴를 맞아 개봉한 2개의 영화가 모두의 예상을 갈아엎고 대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염수정, 한태주 주연의 영화 ‘광대’(이탁원 감독, 현필름 제작)은 개봉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단독 질주는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언론과 평단의 극찬이 이어졌지만, 흥행의 청신호는 감히 예측하기 어려웠던 거다.
강력한 경쟁작, ‘언더커버’가 버티고 있었는데. 해당 영화에 톱스타 백시영과 고윤하가 출연했고, 최준모 감독이 첫 제작을 맡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또한 ‘언더커버’의 배급사인 XJ 엔터가 개봉 첫날부터 2천 개가 넘는 상영관을 밀어주며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작품은 ‘스토리’가 좋으면 성공한다는 공식은 명불허전인 듯싶다. 개봉 일주일인 현재, ‘광대’ 측이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개봉 일주일 만에 200만 관객 돌파, 스크린 수도 800개에서 1,200개로 늘려가는 파죽지세를 달리고 있다.
-스타뉴스 홍은지 기자.-
XJ 엔터 계열사 영화관, XGV에서 나오는 관객들의 얼굴이 참담했다.
일전에 예매했던 영화 ‘언더커버’를 본 이들이었다.
“뭐야, 괜히 눈만 버렸잖아! 백시영 이름값에 속았네.”
“시간이 하도 안 가서 죽는 줄 알았다. 2시간이 무슨 6시간 같더라. 그리고 고성열은 왜 그렇게 연기를 못하냐?”
“뜬금없이 배 위에서 무슨 베드신? 스토리가 맥락도 없고 재미도 없고.”
“장르가 뭔지도 모르겠어. 재난물인지, 괴물 나오는 크리처물인지, 아니면 멜로물인지.”
“백시영 연기는 잘하더라. 근데 고윤하하고의 베드신을 굳이 왜 찍었는지 모르겠어.”
혹평을 거듭하던 관객들.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 영화 ‘광대’ 포스터가 보인다.
그들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입맛을 다셨다.
“저게 그렇게 평이 좋다던데, 저걸 먼저 볼 걸 그랬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저것도 보고 가자.”
무리 지은 사람들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몇 시간 후.
극장에서 나온 관객들의 얼굴은 격앙감으로 뒤덮여 있었다.
“진작에 이거 볼걸!”
“괜히 평이 좋았던 게 아니네. 진짜 재밌잖아!”
“염수정, 임강현, 주세진. 연기 신들만 모아놓으니까 구멍도 없잖아.”
“한태주가 진짜 대박이네. 곡예신 봤어? 그거 대역 안 쓰고 직접 한 거래, 근데 그렇게 잘해.”
“액션도 액션이지만 감정연기가 참 좋았어. 지금도 이렇게 가슴 한쪽이 찡해.”
“한 번만… 한 번만 더 볼까?”
누가 뭐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
다음 시간대 ‘광대’ 영화를 보기 위해 예매소로 달려갔다.
* * *
영화 ‘광대-왕의 남자’의 무대인사를 도는 이곳.
태주는 염수정을 에스코트하며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한태주입니다. 다들 영화 재밌게 보셨나요?”
힘찬 목소리가 극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태주의 인사에 공간을 빽빽이 메운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네에! 정말 재밌었어요!”
“완전 대박이에요!”
“한태주 씨 진짜 멋져요! 아아악!”
급기야 익룡의 기습 같은 환호까지.
마이크를 잡은 이탁원 감독이 섭섭함과 장난기를 섞은 말을 던졌다.
“저희 영화가 좋은 거예요, 아니면 태주 씨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둘 다요!”
그제야 태주도, 이탁원 감독도 서로를 보며 씩 웃는다.
짧은 시간 동안 태주는 최선을 다해 여러 팬의 함성에 화답했다.
일주일째 하는 무대인사라 그런지 이제는 제법 익숙했다.
이곳저곳에서 그를 찾는 직캠도 용케 찾아 여러 표정을 지어 주었다.
스마일은 기본, 윙크는 덤으로.
옆에서 그를 보던 이중협이 대단하다는 듯 큭큭거렸다.
[팬서비스는 확실히 하네.]‘용석이 형이 조언해 준 거예요. 제가 너무 멋쩍어하니까 좀 더 대담하게 해보라고요. 다양한 표정도 짓고요.’
[하여튼 그 녀석은 너한테 부담 안 준다고 해놓고 은근슬쩍 이런저런 거 부탁한다니까.]무대인사를 마치고 나가던 중.
팬들이 태주에게 여러 개의 꽃다발을 안겼다.
“오늘도 너무 멋져요, 오빠!”
“영화, 천만까지 파이팅!”
“응원 감사드려요, 정말로.”
태주가 멋쩍은 듯 꽃다발을 받으며 말했다.
대담하게 다양한 표정을 짓겠다고 차용석과 약속했지만, 언제나 칭찬은 쑥스러운 법이다.
* * *
버스를 대절해 지방으로 무대인사를 가기 위해 모였는데.
생전 처음 보는 널찍한 버스에 태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300장의 포스터를 보곤 더욱 놀랐다.
영화관 측에서 그에게 사인하라고 준 포스터들이었다.
[이걸 다 사인해야 하냐? 내가 도와주고 싶지만, 참….]이중협의 딱하다는 눈빛에 태주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할 수 있어요!’
지방으로 내려가는 내내, 버스 안은 조용했다.
이탁원 감독의 코골이를 시작으로 다들 자기 시작했기 때문.
연이어 이어지는 무대인사로 다들 피곤했던 것이다.
태주는 앞에서 열심히 사인하느라 바빴고.
그때, 뒤에서는 두 명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세진이 염수정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시영이가 이번에 울었대. 무대인사 돌면서 영화 잘 부탁드린다는 대목에서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는 거 아냐. 한태주 영화도 좋지만 자기네 영화도 봐달라고 애원했다나 봐.”
그 말에 염수정이 코웃음을 쳤다.
“그걸 믿어요, 선배는? 자존심 빼면 시체인 백시영이 왜 울겠어요. 연기하는 거겠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