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울게 하소서 (6)
태주는 옆에서 잔뜩 긴장한 채 듣고 있는 이중협을 힐끔거렸다.
이중협은 의심과 의문이 가득 찬 눈초리로 여병래를 보고 있었다.
5년 전, 가장 정의로운 연예부 기자라며 호탕하게 웃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딘가 쫓기는 듯 잔뜩 신경질적인 그만 있을 뿐.
한편, 태주는 굴하지 않고 여병래에게 물었다.
“개인적으로 의문이 가더라고요. 이중협 선배님은 워낙에 신중하시고 리허설도 많이 하시는 분이라, 신호 미스로 그런 사고가 날 리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일을 왜 인제 와서 캐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됩니다만.”
잔뜩 날이 선 여병래의 말이 이어졌다.
“이미 종결된 사건 아닙니까?”
“그래도 저는 궁금해서…….”
“원래 별일이 다 일어날 수 있는 곳이 촬영장입니다. 날고 기는 배우들도 살짝만 어긋나도 다칠 수 있는 곳이 촬영장이고요. 이중협 씨의 그 일 또한 그저…….”
불안한 눈초리를 한 여병래가 긴장된 숨을 삼켰다.
“불행한 사고였습니다. 그것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내가 한이 이렇게 맺힌 거지?]옆에서 이중협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달려들었다.
[그저 불행한 사고였다면, 내가 이렇게 한이 맺혀서 귀신으로 구천을 떠돌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그의 말에 100% 공감한 태주.
서둘러 이중협의 처지를 대변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기자님이 그 사고를 가장 잘 기억하시는 분이세요. 그러니 제발, 이중협 선배님의 사고에서 작은 거라도 의아함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기요, 한태주 씨.”
여병래는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팔자에도 없던 해외살이를 괜히 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 연예계라면 신물이 납니다. 아주 피곤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쪽 회사하고 엮이면서 되는 일이 없었어요.”
‘뭐라고?’
여병래에게서 튀어나온 예상치 못한 말에 태주가 눈을 찡그렸다.
여병래도 아차 싶었는지 자기 입을 틀어막으며 서둘러 말했다.
“아무튼, 그 사건.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 마세요. 괜히 귀찮은 일만 생깁니다.”
“그래도 기자님, 이왕 이렇게 오신 거…….”
“다친다고요, 태주 씨가!”
결국, 여병래는 답답했는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것들을 털어놓았다.
“나도 그쪽만큼 중협이 사건, 끝까지 파 보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중협이, 내가 정말 아끼는 배우이자 동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도 딱 여기까지만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사고를 낸 스턴트가 돈에 쪼들렸다는 것, 그리고 평소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는 것.”
성실한 스턴트가 사고를 냈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의아함이 가득한 태주의 표정에 여병래가 성질을 냈다.
“저도 좀 더 파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쪽 회사에서 비밀리에 나한테 푸쉬가 들어오더라고요. 괜히 중협이 사건 들추지 말고 빠지라고.”
“저희…… 회사에서요?”
“그래요, 한태주 씨 회사 드림액터스! 거기서 내가 후속 보도하는 걸 막았습니다!”
잔뜩 성이 난 여병래가 태주의 코앞에서 이를 갈았다.
“그쪽 회사가 중협이 사고, 그대로 묻은 거라고요!”
* * *
저녁을 먹기에는 다소 늦은, 그렇다고 술판을 벌이기에는 이른 시각.
불이 켜진 강남의 술집으로 두 사람이 들어섰다.
어색한 기색의 차용석과 당당하기 그지없는 황재남이었다.
회사 대표의 부름으로 고급 술집에 온 그들.
차용석은 굳어지는 표정을 애써 숨겼다.
그의 마음속에는 얼마 전 만났던 한유경의 말이 가시가 되어 박혔기 때문이다.
-용석 씨는 보면 볼수록 믿음이 가는 사람이에요. 듬직하고 정직한 매니저라서 신뢰하고 있어요. 연예계가 별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저희 태주를 용석 씨한테 믿고 맡기는 거예요.
“아이씨!”
차용석이 잘 정돈된 머리를 헝클었다.
유경 씨가 자신을 믿는다는 그 말에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데.
‘하필이면 왜 술집이야, 왜!’
양심 찔리게!
“백시영이라면 모를까, 대표님이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하시는지……”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되지 뭘 그리 말이 많아. 여기가 얼마짜리인지는 알아?”
그를 한심하게 보던 황재남이 직원을 불렀다.
“장희재 대표님, 어디에 계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을 따라가는 내내 차용석은 이곳저곳을 힐끔거렸다.
그런 그에게 황재남이 코웃음을 쳤다.
“놀라는 척 좀 하지 마. 이런 데 한두 번 와봐?”
“팀장님은 이런 곳 죽돌이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미팅도 웬만하면 1차에서 끝내는 편이라고요.”
“그러니까 너희 팀 배우들이 그저 그런 수준에서 머무는 거야. 맨날 힘들게 연기하고, 오디션이나 보고 말이야. 드림액터스까지 들어와서 오디션 보는 게 말이 되냐? 다이렉트로 팍팍! 올라가야지!”
그 말에 차용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
“물론 요즘 시대에 접대, 필요하죠. 그런데 피디들이 바보입니까? 연기도 안 되는 애들을 접대받았다고 작품에 냉큼 끼워 넣어 주게. 일단 애들 실력부터 키워야 피디들 눈에 들든가 말든가 하죠.”
“그게 네 오판이라고.”
황재남이 거만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감독들이 1차만 해서 성에 차는 줄 아냐? 1차에서 흥을 돋우고 2차에서 본격적으로 혼을 쏙 빼놓는 거라고. 그럼, 안 되는 캐스팅이 어딨냐?”
당당한 차용석이 어깨를 쫙 폈다.
“저희 팀은 실력으로 밀어붙이는 애들이라, 걱정 없습니다. 한태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애가 실력이 있으니 좋은 작품을 볼 줄 알고, 작품 내에서도 자기 연기로 시청자들을 설득시키잖아요.”
입을 벙긋거리는 황재남에게 그가 쐐기를 박았다.
“뭘 알고서 말하시지…….”
달칵.
두 팀장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데 커다란 방문이 열렸다.
여러 여자가 깔린 어둑한 방 안.
“여어.”
건장한 체구의 장희재가 중앙에 앉아 그들을 불렀다.
그런데 방 안에는 그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술에 한껏 취한 듯한 낯선 남자가 동석해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고민에 빠진 차용석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낯선 남자가 낄낄대며 장희재에게 몸을 기울였다.
“저들입니까? 드림액터스의 두 날개?”
“그렇죠. 황 팀장, 차 팀장. 이리 와서 앉아.”
옆에 앉은 차용석을 바라보며 장 대표가 슬며시 웃었다.
“차 팀장은 몸이 더 좋아졌네. 요즘 한태주가 잘 나가니까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가?”
“아하하……”
어색하게 웃던 차용석이 재빨리 그에게 속삭였다.
“대표님은 나중에 요연이 누님 어떻게 보시려고 자꾸 이런 곳에 오세요.”
“미국에 있는 와이프 눈치를 왜 보냐? 왜 네가 꼰지르려고?”
“아뇨, 그게 아니라…….”
차용석은 말을 얼버무리며 장희재의 옆에 있는 남자를 힐끔거렸다.
아까부터 양팔에 여자를 끼고 히히덕거리는 저 남자가 거슬려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얼른 이 어색함을 깨려 말문을 돌렸다.
“그런데 저분은 누구십니까?”
“ABS에서 일하는 류진우 피디. 자, 인사하라고.”
“안녕하십니까. 장 대표님 덕분에 두 분을 다 뵙네요.”
차용석은 류진우와 악수하며 그의 느끼한 웃음을 겨우 마주했다.
‘이제야 누군지 알겠네.’
류진우는 ABS의 예능 피디로서, 현재는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캠핑 패밀리’의 시즌 4 단독 연출자였다.
‘캠핑 패밀리’는 멤버들이 다 같이 여행을 떠나는 리얼 버라이어티.
5년 전부터 이어진 예능은 일요일 저녁 밤의 최강자로서 인기가 대단했다.
톱배우 남도경과 인기 개그맨 조기태가 주축이 되어 케미도 아주 좋았고.
그런데 최근에 함께하던 김해송 피디가 프리랜서로 전향하며 방송국을 떠나자, 그가 혼자서 프로그램을 맡아 이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하락세를 타는 모양새였다.
그로 인해 멤버 보강을 위해 유명 연예인들과 접촉하는 중인 듯했는데.
거기에 태주도 들어간 모양이다.
장희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 류 피디.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셨는데,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장희재가 대화의 주도권을 류진우 피디에게 넘겼다.
“알다시피 저희 고정 멤버들이 다들 좀 연식이 있으신 분이시잖아요. 제일 젊으신 분이 30대 후반이고요.”
류진우가 씩 웃었다.
“그래서 핫한 배우가 추가로 합류하면 좋을 것 같아 섭외 중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태주 씨가 또 핫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차용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황재남은 흥분한 듯 언성을 높이며 손을 들었다.
“무슨 소리세요, 피디님. 저희 성열이도 있잖습니까. 애가 키도 크고 멀끔해서 끼워 넣으면 제일 돋보일 겁니다.”
“일단은 한태주 씨를 1순위로 보고 있습니다만. 고성열 씨도 고려해 보도록 하죠. 차 팀장님, 어떻게, 잘 좀 부탁드립니다.”
류 피디의 말에 차용석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태주는 차기작이 아주 중요한 시기다.
영화 ‘광대’와 드라마 ‘낭만 고양이’로 연기의 폭을 확 넓혀놓았고, 아역배우 한태주에서 이제는 스타 한태주로 굳건히 다지는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그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하여 수도 없이 들어오는 시놉들을 추리고 추려서 태주에게 전달하려는 찰나.
갑자기 인기 예능에 집어넣자고?
그게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캠핑 패밀리’라 할지라도, 다소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때 장희재가 끼어들었다.
“잘 생각해 봐. 상한가를 쳤을 때 이런 국민 예능에 들어가야 좋은 거라고. 인지도도 확 높이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해서요…….”
“지금까지 너무 달려왔잖아, 그럼 쉬는 타이밍도 있어야지.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화면에는 나올 수 있고. 이 얼마나 좋은 기회야?”
망설이는 차용석을 보며 장희재가 씩 웃었다.
“잘 생각해서 얼른 결정해. 안 그럼 이번 기회, 성열이한테 넘어간다.”
마치 고성열이 대타인 것처럼 말하는 이 상황.
점점 얼굴이 붉어지는 황 팀장을 힐끔거린 차용석이 차분히 대꾸했다.
“일단은 태주와 상의부터 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 *
몇 시간 후.
여병래는 진작에 숙소로 돌아간 지 오래고.
태주는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왔다.
마루야마 회장은 화장실을 들렀다 온다고 했다.
쌀쌀한 저녁, 태주의 마음은 더욱 차가웠다.
그는 혼란스러움에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여병래와의 만남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스타뉴스에서 퇴사를 하고, 해외로 갔다는 것부터 뭔가 이상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압박을 받았길래 한국을 떠났는지, 감히 추측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원인이, 드림액터스라니.
[정말 충격이야.]이중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머리를 쥐어 싸맸다.
잘생긴 얼굴에 한껏 그늘이 져서 어두웠다.
[도대체 우리 회사에서 내 사고를 묻을 이유가 뭐가 있다고…….]‘형은 조금이라도 짐작되는 점이 없으세요?’
[모르겠어, 하나도. 하, 미치겠다.]생전 회사를 너무 믿었던 걸까.
회사는 언더독이었던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계약해준 은인이었다.
그 후로도 좋아하는 연기를 계속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아주 좋은 파트너였고.
살아생전 한 번도 회사의 음지를 의심해본 적 없다.
그래서 지금 그는 태주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다.
‘혹시 말이에요, 형…….’
머리를 굴리던 태주가 이중협을 의문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형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이었던 것 아닐까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