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울게 하소서 (9)
의심과 걱정을 거듭하던 이중협이 태주를 바라보았다.
[이걸 태주한테 말해줘야 하나?]긴장이 풀려 곤히 잠든 태주가 새근새근 숨소리를 냈다.
이중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아니겠지…….]* * *
몇 시간 후.
“정말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태주가 방문한 응급실에서는 다들 감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속 40km로 달려오는 차를 피한 것도 놀라운데 이 정도 타박상밖에 없다는 건.”
그 말에 차용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성호경을 그었다.
태주가 온갖 검사를 하는 내내 간절하게 기도했던 그였다.
“세상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홀리 쉿.”
지난 10여 년간 냉담했던 신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예수님, 성모님. 다음 주부터 성당에 나가든지 해야지.”
“저 그럼 내일부터 촬영할 수 있는 건가요?”
태주의 반짝반짝한 눈에 의사는 차트에 무언가를 끄적이며 대꾸했다.
“아니요. 하루는 푹 쉬셔야 합니다.”
“그래, 태주야.”
옆에서 전전긍긍하던 차용석이 덧붙였다.
“선화철 피디도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푹 쉬라고 했잖아. 방송 스케줄 괜찮다고.”
“그래도 저 때문에 스케줄이 꼬이는 건…….”
“푹 쉬고 빨리 낫는 게 모두한테 좋은 거야.”
“그럼, 알겠습니다.”
태주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얼른 몸을 낫게 하는 데만 집중할게요!”
“예, 충분히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담담하게 대꾸하던 의사.
잠시 망설이더니 그에게 냉큼 차트를 내밀고는, 펜을 쥐여 주었다.
차트에는 빈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이게 무슨…….”
얼떨떨한 얼굴의 태주를 보고는, 그가 멋쩍다는 듯한 헛기침을 했다.
“흠흠. 저희 딸이 팬이라서, 사인 좀…….”
* * *
진찰이 끝나고, 태주는 1인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밖에서 전화하고 온다던 차용석이 한 시간째 깜깜무소식이었다.
[얘 또 급똥인가? 이제는 병원 화장실에서까지 죽치고 있는 거?]이중협의 의심에 태주가 대꾸했다.
‘선화철 피디님하고 연락한 다음에 회사 대표님하고도 통화한다고 했어요. 오늘 일을 알려야 하잖아요.’
[아, 장 대표가 있었지…….]이중협이 말끝을 흐리며 곁을 힐끔거렸다.
태주도 그의 시선이 어디에 닿는지를 알고 있다.
그가 짧은 한숨을 삼켰다.
이제 더는 물러날 수 없다.
태주는 망설임이 가득한 귀기가 일렁이는 곳으로 향했다.
‘천경실 씨. 이제 나오셔도 돼요.’
[…….]‘그쪽이 제 생명의 은인이니 인사나 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복잡한 감정이 섞인 태주의 말에 천경실이 슬금슬금 나왔다.
그림자에 숨겼던 몸은 태주를 보더니 더욱 쪼그라들었다.
[내…, 내가 생명의 은인이라고요?]‘예. 그쪽이 아니었다면. 저와 윤수안 씨, 정말 크게 다쳤을 겁니다. 지금처럼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는 안 끝났을 거예요.’
담당 의사의 말로는 시속 40km로 달리는 차에 받혔으면 뼈가 부러지고 뇌진탕이 올 수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 드라마 촬영은 물론, 두세 달을 치료에만 힘써야 한다는 뜻.
천경실 덕분에 그는 살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요.’
태주의 인사에 천경실은 그저 두 손을 꼭 모았다.
할 말이 많은 입술이 연신 달싹였다.
태주는 그런 그녀를 흘낏 쳐다보며 생각했다.
11년 전 사고를 냈던 장본인, 그래서 마냥 증오했던 원흉.
그러나 지금은 그 미움이 조금은 옅어진 것 같다.
애초에 그녀는 악한 이가 아니었다.
그가 진찰받는 내내, 천경실은 전전긍긍하며 그의 옆에 있었다.
마치 엄마처럼 그의 곁에서 의사의 말을 유심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애정과 걱정이 뒤섞인 시선을 그에게 보내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혼란스러움에 빠진 태주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를 왜 살렸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었잖아.
흔들리는 태주의 눈빛에 천경실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무슨 이유는 없었어요, 그냥 당연히 구한 거지. 그래야 당신한테…… 조금이나마 속죄할 수 있으니까.]속죄라.
태주가 잠시 망설이자 여자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을게요. 그냥…, 내가 태주 씨를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울게요. 나의 용서가 태주 씨의 마음에 들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는…… 그저 이런 나의 행동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관용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릴 뿐.
[적어도 천경실 씨는, 사람은 됐네요.]옆에서 이중협이 슬쩍 끼어들었다.
[자기가 잘못한 걸 인정하고 용서를 빌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그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정말 그런 양심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 * *
동 시각, 드림액터스 대표실.
본부장 탁시준이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와 장희재를 불렀다.
“대표님, 오늘 새벽에 ‘낭만 고양이’ 촬영장에서 한태주 씨가 다쳤다고 합니다.”
“뭐! 왜!”
장희재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회사의 스타이자 캐시 머신인 한태주가 다쳤다는 소식 때문이다.
“어떻게 된 건데!”
“스턴트 관련 사고였답니다.”
“……뭐?”
갑자기 얼어버린 장희재를 힐끔거리며 탁시준이 말을 이었다.
“새벽에 찍던 씬이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일 뻔한 윤수안을 한태주가 구하는 거였답니다. 그런데 스턴트 차량이 실수해서 자칫하면 둘을 그대로 덮칠 뻔했는데, 한태주가 기지로 윤수안을 안고 그대로 굴러서 피했다고…….”
털썩.
장희재는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눈치 빠른 기자들이 저희 쪽에 문의하고 있는데요. 어디 쪽에서 기사를 낼까요?”
힘 빠진 손을 애써 주무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기사라…….”
“원래 한태주는 스타뉴스가 전담하고 있었으니 그쪽에 맡길까요?”
“아니.”
순식간에 생각을 정리한 장희재가 본연의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스타뉴스 말고 아웃패치로 해.”
“아웃패치요? 대표님, 거기는 예전에 한태주 열애설 냈던 조삼식 기자가 있는 곳인데요. 게다가 기사 논조도 너무 가볍고 열애설 위주잖아요.”
“차라리 그게 나아.”
‘스타뉴스는 쓸데없는 것에 집착해서 질질 끄는 경향이 있으니.’
일전에 여병래가 그랬던 것처럼.
장희재가 곰곰이 생각을 이어갔다.
‘자칫하면 이번 기사를 쓰다가 예전에 중협이 사건까지 끄집어낼 수도 있겠어. 스턴트 신호 미스로 사고가 난 것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한태주 전담이 스타뉴스라는 게 좀 걸렸다.
이참에 바꿀까?
* * *
그날 저녁, 스타뉴스 본국.
컴퓨터를 응시하던 홍은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애써 삼켰다.
두 손으로는 타자를, 한쪽 어깨로는 핸드폰을 고정한 채 전화하는 그녀였다.
“아, 네. 그래도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태주 씨. 세상에 촬영 중엔 별일이 다 있다지만 그런 사고가 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네네, 그럼 쉬세요.”
홍은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통화를 마쳤다.
보조 작가인 심은설이 태주의 소식을 홍은지에게 전해 준 걸 계기로 태주에게 직접 연락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새벽에 난 사고와 관련된 내용을 자세하게, 당사자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으니 이보다 정확한 기사는 없지. 그럼 어디,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 볼까.”
홍은지가 호기롭게 기사를 검토하기 시작할 무렵.
우성림이 창백한 얼굴로 그녀에게 뛰어왔다.
“선배…, 홍은지 선배!”
“커피 사 왔냐?”
자연스럽게 내미는 그녀의 손을 우성림이 뿌리쳤다.
“지금 커피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오늘 한태주 그 사건이요…….”
그가 목소리를 죽여 홍은지에게 속삭였다.
“드림액터스에서 아웃패치한테 맡긴대요.”
“그게 무슨 소리야?”
홍은지가 냉큼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한태주 전담이잖아? 근데 아웃패치한테 맡긴다고?”
홍은지가 분노의 포효를 내질렀다.
“아니, 도대체 그게 뭔 개소리야!”
홍은지는 벌떡 일어나 국장실로 향했다.
뒤에서 우성림이 졸졸 따라오며 그녀를 만류했다.
“선배님, 이번 기사는 그냥 양보하세요. 저희 그동안 태주 씨 기사 전담하면서 꿀 많이 빨았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이상하잖아. 지금까지 드림액터스 측에서 우리한테 잘만 맡기다가, 갑자기 왜 아웃패치한테 돌리냐고. 아무튼, 나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를 알아야겠어.”
씩씩거리던 홍은지가 코너를 돌자 국장실이 보였다.
그녀가 문을 쾅, 하고 열자 국장이 있었다.
방 한 칸에 마련된 골프 퍼팅연습 기구에서 공을 톡, 하고 건드리던.
툭.
댕그르르.
잘 굴러가던 공은 구멍을 들어갈 듯 말 듯, 한 바퀴 돌더니 옆으로 빠졌다.
“아이고, 우리 싸움닭 납셨네.”
“국장님, 이건 너무하잖아요!”
홍은지는 번언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태주는 저희 담당이에요. 독립영화 찍을 때부터 저희가 담당해서 취재했다고요. 그러니 태주 씨가 다쳤다는 기사도 당연히 저희가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취재해야죠.”
“야, 넌 사람이 다쳤는데 독점 기사 쓸 생각밖에 없냐?”
“아까 태주 씨랑 통화했거든요? 타박상 수준이라 모레부터 촬영 재개한대요.”
“아, 그래?”
홍은지는 국장에게 더욱 몰아붙였다.
“드림액터스에서 직접 연락 온 거예요? 이번 기사는 저희랑 안 하고 아웃패치와 하겠다고?”
“그래, 탁시준 본분장에게 연락이 왔어. 이미 아웃패치가 현장 취재를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맡겼다고.”
“이런 상도덕 없는 인간을 봤나. 아니, 좀 시간이 걸려도 우리가 단독으로 기사 작성하는 게 맞지 않아요?”
잠시 고민하던 국장이 홍은지에게 귀띔했다.
“사실, 예전부터 드림액터스가 우리 쪽을 그닥 기꺼워하지는 않았지.”
“아니, 왜요? 기획사가 특정 연예지를 꺼린다는 게 말이나 돼요?”
“여병래라고 있었잖아 한번 물으면 절대 놓지 않아서 별명이 독사였던.”
그 말에 홍은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병래 선배가 왜요? 그 선배, 5년 전에 퇴사했잖아요. 이제 연예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인데.”
“아니, 네가 걔를… 어떻게 아냐?”
홍은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아웃패치에 있었을 때 잠깐 뵀었어요. 뭐, 잘 알지는 못하고요. 그런데 그 선배, 지금은 어디서 뭐 해요?”
“나도 잘 몰라. 뭐 친척이 유산을 남겨줬는데 그게 워낙에 액수가 많아서, 당장 신문사 때려치고 동남아 가서 유유자적한다는 소문도 있고.”
“근데 드림액터스가 왜 그 선배 때문에 우리 신문사를 꺼린다는 거예요?”
국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5년 전에 이중협이 드라마 촬영장에서 사고로 죽었잖아. 괜히 여병래가 그걸 캐려고 하다가 장 대표한테 찍힌 거지.”
“기자가 사건을 캐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게…. 분명 사고사로 종결됐는데 괜히 의문을 제기한 게 문제였어. 그러니까 혹여나 너도 걔처럼 이상한 데서 물고 늘어지지 마라.”
국장이 홍은지에게 충고했다.
“장희재 대표, 괜히 바닥에서 톱으로 올라온 거 아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