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하루 세끼 (6)
며칠 후.
드라마 ‘낭만 고양이’ 촬영장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기실에서도 스태프들이 열에 달아오른 얼굴을 부채로 식힌다.
“아, 이제 슬슬 날씨 더워진다. 그지?”
“이제 곧 5월이잖아요. 더워질 때도 됐죠.”
“태주 씨는 땀을 덜 흘려서 다행이야.”
메이크업을 받던 태주의 얼굴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파우더를 톡톡 두드렸다.
“얼굴이 뽀송뽀송하네. 그런데 태주 씨, 지금 괜찮아?”
“네? 아, 네……”
대본에 시선을 고정하던 태주가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거울 속 자기 얼굴이 유독 굳어있는 게 보였다.
뒤에 따라온 신득연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흠칫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제보와 윤수안과 데이트하고 싶다는 한 때문에 태주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런 태주를 본 스태프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오늘은 키스신 없어, 태주 씨. 왜 이렇게 긴장했어.”
“긴장한 것 아닙니다.”
“에이, 얼굴에 다 보이는데.”
태주와 한 스태프가 말을 주고 받는 사이, 뒤에 서 있던 다른 스태프들도 작게 수다를 떨었다.
“아 참, 그래서 오늘 엔딩 어떻게 끝나?”
“수안 씨하고 포옹하면서 끝나던데.”
“근데 태주 씨하고 수안 씨하고 케미 너무 좋더라. 둘이 솔직히 월산도에서부터 온갖 고난을 이기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런 만큼 정도 돈독하게 들었을 것 같은데.”
“정이 뭐야, 열애설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태주 씨, 끝났어요.”
메이크업을 다 받은 태주가 밖으로 나와 엔딩 씬을 찍을 학교 세트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대본에 시선을 두고 가면서도, 종종 뒤를 힐끔거린다.
“아직도 따라와요?”
[어. 너도 알잖아, 너한테 한번 꽂힌 귀신은 웬만하면 떨치기 어려운 거.]“하…….”
태주가 뒤를 신경 쓰는 건, 며칠 전 만난 신득연 때문이었다.
윤수안과 데이트하는 게 평생소원이자 한이라는 그.
당황스러움에 태주는 대답을 보류하고 집으로 올라와 버렸다.
그동안 많은 귀신을 만났지만 이런 당혹스러운 부탁은 처음이다.
윤수안과 데이트해 달라니.
대리 연애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뭐냐고.
무슨 한이 그러냔 말이다.
그런데 그날부터 신득연이 그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절대로 집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게 예의라나 뭐라나.
그러다 태주가 밖에만 나갔다 하면, 일정한 거리를 떨어뜨린 채로 그의 곁에 맴도는 것이다.
신득연에게 다녀온 이중협이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여자한테 꽂힌 저런 귀신의 한은 매우 깊은 축에 속해. 네가 한을 풀어주기 전까지는 아마 떨어지지 않을 거야.]‘그럼. 제가 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평생을 따라다닐 수도 있다는 거네요.’
[뭐, 그런 셈이지.]태주는 난감한 얼굴을 쓸었다.
‘아직 뭐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젠장.
태주는 짧은 한숨을 들이키고는 대본에 다시 열중했다.
뭐가 됐든, 오늘은 드라마 마지막 촬영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게 집중해야지.
그때, 옆에 윤수안이 불쑥 다가왔다.
“태주 씨. 같이 대본 맞춰볼래요? 감정선 잡게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가 그를 오롯이 마주한 순간.
저 뒤에서 신득연의 조그마한 감탄이 들려온다.
[와…. 윤수안 진짜 여신이다. 정말 한 번만 데이트하면 원이 없을 것 같은데.]그 말에 괜히 태주의 귀도 팔랑거렸다.
눈앞에 있는 윤수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
살짝 올라가 있는 앵두 같은 입술.
크고 영롱한 쌍꺼풀 진 눈.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예쁜 토끼처럼 그를 응시하는 미모.
진짜 예쁘기는 예쁘다.
“응?”
윤수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눈앞에 얼굴을 쓱 들이댔다.
“나한테 뭐 묻었어요? 뭘 그렇게 봐요?”
말간 눈망울에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달싹였다.
“예쁨이 묻었네요.”
태주가 입을 틀어막았다.
‘미쳤구만, 한태주. 속으로 생각하던 말을 밖으로 꺼내냐?’
“저기, 그게…….”
그때, 그의 시선에 잡힌 윤수안이 할 말 많은 입을 벙긋거린다.
얼굴부터 귀까지 빨개진 그녀가 태주를 찌릿 바라보았다.
“부끄러워하지 마요. 나까지 부끄러우니까!”
“네?”
그녀는 냉큼 태주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어서 연습이나 해요.”
뒤에서 따라가는 세 명의 표정이 제각각 달랐다.
이중협은 흐흐거리는 음흉한 표정을.
신득연은 대리 만족을 하는 듯 두 손을 사뿐히 모았고.
태주는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 *
그날 저녁.
‘낭만 고양이’ 마지막 촬영을 기념한 회식이 열렸다.
시작도 전에 벌써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선화철 피디.
주변의 격려로 축하주를 든 다음, 태주의 곁에 앉아 어깨동무했다.
“우선 첫 잔은 우리 태주 씨를 위해서 올리고 싶어요. 고양이가 인간으로 변한다는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는 시놉만 나왔을 때, 솔직히 저도 확신을 갖지 못했는데. 태주 씨는 우리 드라마, 재밌을 거라고 합류해 주었죠.”
“정말 재밌었어요.”
“우리 태주 씨, 착하기도 하지!”
선화철은 태주를 하트가 뿅뿅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입봉작의 성공으로 한껏 고취된 그였다.
“태주 씨가 고영민을 잘 연기해 줬기에 우리 드라마가 잘될 수 있었어요! 다들 태주 씨를 위하여!”
“위하여!”
웃음과 눈물이 가득한 제작진과 배우들이 한 데 잔을 들었다.
선화철 피디는 그다음으로 윤수안과 다른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렇게 술을 연거푸 마신 그는 얼굴이 빨개져 곯아떨어졌다.
선화철을 방으로 옮긴 후 이불을 덮어주고 온 태주.
곧바로 제작진들에게 붙잡혀 술을 마셨다.
“우리 태주 씨, 정말 수고 많았어!”
수고 많았다고 한 잔.
“왜 이렇게 잘생겼어? 날로 갈수록 더욱 잘생겨지는 것 같아!”
잘생겼다고 한 잔.
“오늘 연기도 정말 좋았다고!”
연기가 좋았다고 한 잔.
연거푸 몇 잔을 마셨는지, 아마 두 병은 족히 넘을 것이다.
[술이 세서 다행이야, 태주야. 너 진짜 말술이구나?]‘그래도 밖에 좀 나갔다 와야겠어요.’
태주는 자신에게 엉겨 붙는 차용석을 겨우 떼어냈다.
술에 취한 그는 태주에게 수고했다며 뽀뽀하려 했다.
“어휴, 이 형은 주사가 왜 이러지. 고모는 이런 거 알고 있나?”
하지만 차용석에 대한 애정이 지독한 태주는 씩 미소를 지었다.
번잡하던 식당을 벗어나 그가 밖으로 나온 순간.
밤하늘의 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 평화롭네요.’
[찰나의 평화지만 즐겨라. 원래 스타의 길은 북적거리면서도 고독한 법이거든.]태주는 뒤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뒤에 아직도 신득연 씨, 있어요?’
[식당 안에서 여자 연예인들 구경하기 바쁘더라. 아주 입을 벌리고 본격적으로 구경하고 있어.]이중협이 덧붙였다.
[그중에서 윤수안을 아주 넋 놓고 쳐다보더라. 진짜 팬이었나 봐. 방송국에서 일할 때 한번 보고 싶었다는데, 그걸 못 봐서 한이 됐다나 봐.]‘아, 그래요?’
[윤수안 생년월일, 데뷔날짜, 그동안 연기한 작품들 다 꿰고 있더라고. 찐팬 아니면 그런 거 기억 못 해, 진짜로.]‘흠흠. 윤수안의 팬이라서 그녀에 대한 한이 맺힌 걸까요?’
이중협이 넌지시 일렀다.
[원래 피디들이라고 연예인들 많이 보는 게 아니잖아. 조연출이라서 맨날 편집실에만 갇혀서 편집하면서 살았다는데. 화면 속에 아무리 연예인을 보면 뭐 하냐, 실제로 본 적이 없는걸. 그래서 여자 연예인들에 대한 동경만이 가득한 것 같더라.]이중협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그가 이상한 의미로 윤수안과 데이트하고 싶어 한다는 게 아닌 건 알겠다.
그렇지만….
그때, 고민하는 태주의 귀에 도도도, 누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태주 씨!”
뒤를 돌아보니 얼굴이 발개진 윤수안이 서 있었다.
“지금 술 깨려고 나온 거죠? 그럼 나도 옆에서 같이 깰래요.”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술에 취한 것도, 술을 깨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같이 있고 싶었다.
그들은 주변을 천천히 함께 걸었다.
“이제 드라마도 끝났네요. 태주 씨는 예능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죠? 그럼 캠핑 패밀리에 합류하는 거예요? 재남이 오빠는 그렇게 말하던데….”
말끝을 흐리던 윤수안이 태주를 살폈다.
“아니구나?”
“아직 고민 중이에요. 제가 더 좋아하는 게 뭔지 아직도 고심하고 있어서요.”
“아, 그렇구나.”
말이 없어진 둘.
하얀 자갈길을 걷던 윤수안이 순간 비틀거렸다.
넘어질 뻔한 그녀를 받아든 태주.
품에 안긴 요상한 포즈에 태주는 서둘러 그녀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조심해야죠.”
그 말에 윤수안이 입술을 비죽였다.
“태주 씨 앞에서는 조심하지 않게 되네. 태주 씨가 나 잡아줄 거 아니까 그런가?”
윤수안이 그 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그녀의 입가에는 묘한 감정에 맴돌고 있었다.
“이번 주에 시간 있어요?”
“네……?”
“이번 주는 안 바쁘다면서요. 차 팀장님한테 이미 다 물어보고 왔어요.”
“드라마가 끝나서 여유가 있기는 한데. 무슨 일로 그러시나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던 윤수안이 그에게 통보했다.
“그럼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줄래요?”
“무슨 소원이요?”
윤수안이 홀릴 듯한 미소를 지으며 태주를 바라보았다.
“우리 데이트하자, 태주야.”
갑자기 데이트?
이렇게 훅 들어온다고?
당황스러운 태주가 뒤로 한걸음 물러났지만, 윤수안이 한발 빨랐다.
바짝.
그녀가 태주의 두 팔을 옭아매며 입꼬리를 올렸다.
가벼운 웃음을 흘리는 게 평소의 차분한 모습과는 상반됐다.
“에이, 긴장한 거 아니죠?”
“아니에요, 그런 거.”
태주가 헛기침하며 자기 팔을 잡고 있던 윤수안을 슬쩍 밀었다.
그런데 돌이라도 삼킨 건지 도통 떨어지지를 않는다.
“수안 씨, 많이 취하셨어요.”
“취한 거 아닌데? 나 정말 멀쩡한데?”
옆에서 낄낄거리던 이중협이 배를 잡고 끼어든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태주야, 윤수안 술주정 귀엽잖아, 좀 받아줘라.]‘받아주기는 뭘 받아줘요.’
애써 무뚝뚝한 표정을 짓던 태주는 윤수안을 오롯이 세웠다.
술기운에 완전히 풀어진 예쁜 얼굴이 그를 보고 환히 웃는다.
“태주 씨이! 한태주야! 나랑 데이트하자고, 나랑!”
“수안 씨, 제가 매니저님 계신 곳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박인우 형이 따라왔는데.
이 형은 대체 어딜 간 거야?
속마음을 알아챈 듯 이중협이 대신 말해 주었다.
[테이블 돌아다니면서 술 잘 먹고 있더라. 앞으로 한태주 잘 챙겨달라면서, 넉살 좋던데?]‘아, 저 형은 자기 연예인이나 챙기지 왜 저기서 혼자 비즈니스 하는 건지….’
태주가 두리번거리던 사이, 식당 안에서 신득연이 신나서 걸어 나왔다.
씩씩하게 태주에게 돌진하던 그는 순간 멈춰 버렸다.
태주가 비틀거리는 윤수안을 안고 있는 장면에 눈이 꽂힌 거다.
신득연이 신이 나서 이중협의 곁으로 쏙 붙었다.
[드디어 제 한을 풀어주시기로 결심하신 거군요, 태주 씨!]‘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난감의 연속인 그때.
윤수안이 손을 뻗어 그의 볼을 길게 늘였다.
술에 취한 발그레한 눈빛이 태주를 오롯이 향하는 순간.
“에헤헤, 긴장했구나! 으이그, 우리 태주. 나랑 데이트한다니까 이렇게 긴장했쪄요?”
“수안 씨, 지금 많이 취했어요.”
“안 취했어! 안 취했으니까 지금 너한테 이러는 거라고!”
윤수안이 태주의 두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야, 한태주!”
그녀의 손에 잡힌 두 볼이 뜨겁게 타오르는 순간.
“한 번이라도 나한테 순순히 잡혀줘! 맨날 나만 안달 나서 매달리는 거 같잖아!”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