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하루 세끼 (8)
태주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민소예가 제법 잘 사는 집 딸이었지.’
자기가 GX 그룹 막내딸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이제는 자신과 더는 상관없는 사람일 뿐이다.
“바쁘니까 이만 가볼게.”
냉랭한 기류를 두른 태주가 몸을 돌렸다.
그때, 저 멀리서 박인우와 차용석이 나란히 걸어왔다.
민소예를 알아본 박인우가 눈썹을 씰룩거렸다.
“어? 너 소예지? 유학 간 거 아니었냐?”
그를 알아본 민소예도 황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오빠는? 여기서 뭐 해?”
“나? 수안 씨 매니저하고 있는데.”
상상치도 못한 상황인 듯 민소예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에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한태주, 넌 나중에 보자.”
태주를 흘겨보더니 저 멀리 뛰어가 버린다.
그녀를 힐끔거리던 차용석이 물었다.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요, 별로…….”
* * *
그날 오후.
ABS 예능국의 한 회의실에 여러 명의 피디가 한데 모여 있다.
그들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태주를 열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일요 예능 ‘캠핑 패밀리’의 피디들을 마주한 태주.
옆에 있던 차용석이 넉살 좋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 저희 태주를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기사까지 내주실 만큼…….”
“그만큼 저희가 태주 씨를 저희 멤버로 영입하고 싶다, 이 말입니다.”
류진우가 히죽 웃자 욕망에 가득 찬 잇몸이 드러났다.
“그 쪽한테도 남는 장사일 겁니다. 솔직히 저희 캠핑 패밀리, 국민 예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리고 저번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보셨잖습니까. 태주 씨가 우리 예능에 합류한다니까 반응이 긍정적이었어요.”
“그렇더군요. 그런데…….”
태주는 자신을 힐끔거리던 차용석과 눈이 마주쳤다.
“저희 태주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요.”
“태주 씨,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망설여요? 생각보다 우유부단하시네. 마음에 안 들어요, 우리가?”
류진우가 확 들어오자 태주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마음속에는 굿스토리에서 제작하는 ‘하루세끼’가 더욱 끌렸지만,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머리를 굴리던 그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감독님.”
“뭐든지 물어봐요, 다 말해줄게.”
의기양양한 류 피디에게 태주가 물었다.
“저번 시즌까지는 김해송 피디님이랑 같이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류 피디님만 하시고요.”
“아, 그 양반 얘기는 또 왜….”
“혹시 프로그램 기조가 달라질지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공동 연출이었는데 이번에는 피디님 혼자 하시는 거니까요.”
콧방귀를 뀐 류진우가 대꾸했다.
“한태주 씨, 별걸 다 걱정하시네요.”
옆에서 차용석도 태주를 거들었다.
“솔직히 저희 쪽에서는 다소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시즌 3 연출하신 김해송 피디님이 하차하시고 나서 시청률이 떨어진 건 사실이니까요.”
그 말에 류진우가 급발진했다.
“시즌 4의 새로운 포맷에 낯설어하는 시청자들이 잠시 떠난 것뿐입니다. 아직 과도기라고요. 저번 시즌은 너무 루즈해서 이번에는 더욱 익스트림하게 가고 있으니 시청률이 제 궤도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런가요?”
“저번 시즌에서 김해송 피디가 우리 프로의 색깔을 다 망쳐놔서 내가 그 똥을 치우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인간, 미친 짓을 하려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어떤 짓이요?”
잠시 망설이던 류진우가 빳빳하게 턱을 들었다.
“기존 멤버를 완전히 갈아치우려 했다니까요. 남도경하고 조기태 같은 인기 멤버들까지도요. 아무리 시즌 1 때부터 오래 해서 식상하다지만, 그게 제정신인 피디가 할 소리입니까.”
그 말에 신득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해송 선배는 남도경하고 조기태가 문제 많은 거 알고, 미리 처리하려 했던 거잖아요! 제작진 사이에서도 둘이 큰일 터뜨릴 것 같다고 말 많았고 류 선배도 알고 있었으면서 왜 딴소리예요!]태주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결론을 내린 후련함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점심시간, 직장인들로 가득한 한 식당.
김해송은 ABS 시절 절친했던 후배와 만나 밥 한 끼를 하는 중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던 둘.
곧이어 후배가 그리운 표정을 한다.
“선배,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으세요?”
“사직서 쓰고 나온 놈한테 뭘 바라냐. 그리고 나 때문에 요즘 예능국 분위기 별로 안 좋은 거 알고 있어.”
김해송이 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분위기 살벌하다면서? 나처럼 프리로 나가려던 애들도 그런 말, 쏙 들어갔고.”
“뭐, 다들 눈치 보며 입 다물고 있죠.”
후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솔직히 선배 나가고 우리 프로 걱정되는 건 사실이에요.”
“뭐가 걱정이야, 류 피디가 어련히 잘 해낼 텐데.”
“무슨 소리세요. 그 선배가 뭘 잘 해내요. 선배랑 공동 연출일 때도 허덕이기 바빴는데.”
속이 타는 듯 물을 마시는 후배.
“그 선배는 국장님 라인만 아니었으면 진짜…. 어휴, 지금 그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라인 잘 타는 것도 실력이니까.”
씁쓸한 표정의 김해송이 괜히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나는 라인도 없고, 날 따르던 후배들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지.”
“죄송해요. 저희는 선배처럼 독립해서 나갈 용기가 없어서….”
“그래서 말인데 요즘, 득연이가 계속 생각난다.”
그가 고개를 들자 과거에 젖은 눈이 반짝였다.
“그래도 내가 운이 좋아서 곽자형 대표님도 만나고, 하고 싶은 예능도 제대로 만들고 있잖냐. 그런데 득연 그놈이 있었더라면 날 따라왔을 텐데. 그래서 같이 재밌게 예능 만들었을 텐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
“그 형이 살아있었다면, 그랬겠죠.”
그의 눈치를 보던 후배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선배를 정말 많이 따랐잖아요. 통통 튀는 아이디어도 많고 창의적이고.”
“그러면 뭐 하냐,류 피디 폭언을 혼자서 꾹 참다가 결국 병이 되어 버린걸.”
“…….”
“좀만 더 버텼으면 내가 어떻게든 그 녀석 공동 연출로 끌어 올려서, 원하는 예능 만들게 해줬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선배가 새로 하는 그 예능이요. 하루세끼. 그것도 득연이 형하고 같이 구상한 거 아니에요?”
“……맞아.”
김해송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이 예능을 결코 놓을 수가 없는 거야. 꼭 성공시켜야 해.”
“선배의 열망은 알겠는데, 그런 힐링 예능은 요즘 대세가 아니잖아요.”
후배가 진지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 잔잔한 류는 톱스타 한 명 정도는 포함해야 할걸요, 시청률을 생각한다면.”
징징- 징-
“잠깐만, 전화 좀 받고.”
김해송이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를 건 상태는 곽자형이었는데,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보아, 흥분한 것이 분명했다.
-김 피디, 우리 ‘하루세끼’ 말이야, QVN에 정규 편성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네? 제대로 캐스팅도 안 됐는데…….”
-한태주가 우리랑 같이하기로 했어!
멍한 김해송의 귓가에 곽자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태주가 우리 ‘하루세끼’ 같이 하기로 했다고!
* * *
동시각, 드림액터스.
언제나처럼 장희재는 대표실에서 탁시준과 여러 현안을 논의하는 중이다.
“이번에 ABS에서 한태주한테 들어온 예능 말이야.”
“캠핑 패밀리요?”
“그래, 류 피디가 하는 그거. 어떻게 되고 있어? 차 팀장이 지나가는 소리로 그러던데, 한태주가 안 하는 거로 마음 굳힌 거 같다고.”
“한태주 본인이 죽어도 하기 싫다잖아요. 대신 그거, 황 팀장이 잡을 것 같더라고요.”
“이거, 데자뷰잖아.”
장희재가 턱을 쓸어올리며 말했다.
“저번에도 언더커버에 한태주 대신 고성열이 들어갔었지?”
“에이, 대표님. 그때하고 지금은 다르죠. 그 당시에는 검증되지 않은 감독에 단판 승부라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캠핑 패밀리’는 3년째 일요 예능 시청률 1위라고요.”
묘한 미소를 띤 장희재가 말문을 돌렸다.
“그럼, 캠핑 패밀리 말고 한태주가 원하는 건 뭔데?”
투덜대던 탁시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기어이 하루세끼를 하겠답니다. 굿스토리에 김해송 피디가 제작하는 거요.”
묘한 눈빛의 장희재를 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솔직히 아직도 삼시세끼 먹는 프로그램이 무슨 인기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평범하잖아요. 그리고 멤버 구성도 남자 셋으로 한다던데요.”
“흐음……”
잠시 생각을 하던 장희재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 해보라고 해, 한태주가 원하는 대로. 걔가 고른 작품에서 실패한 적, 없었잖아.”
“대표님!”
“시준아, 한번 생각해 봐. 네 타율이 더 높나, 한태주 타율이 더 높나.”
장희재의 말에 탁시준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한태주가 선택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박이 났다는 것을.
하지만 밥 세 끼 먹는 예능에서, 도대체 뭘 건질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캠핑 패밀리’를 하지 않아야 할 강력한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 * *
며칠 후.
“영화 900만 기념을, 위하여!”
짠,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술잔이 명쾌하게 부딪쳤다.
“우리 영화가 혜인 예술대상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겁니다!”
“이탁원 감독님 감독상 갑시다!”
“염수정 선배님 여우주연상 고고!”
영화 ‘광대’ 제작진과 배우들이 기쁨에 취해있는 이때.
많은 사람의 시선이 태주에게 향해 있었다.
“태주 씨, 기사 봤어. QVN에서 새로운 예능 한다면서?”
연예란 1위에 오른 기사는 홍은지가 오늘 새벽 쓴 것이었다.
“캠핑 패밀리에 새로운 멤버로 합류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시시한 프로그램으로 가는 거야?”
“에이, 태주 씨 앞에서 시시하다니. 난 태주 씨 밥해 먹는 거 기대되는데? 잘생긴 남자는 뭘 해도 재밌거든.”
“그래도. 남자 셋이서 밥해 먹는 컨셉은 좀 시시하지 않아?”
조감독이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게 삼시세끼 챙기는 건데.”
맞은편에 있던 태주가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밥 먹는 게 일상이니까 지루해 보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만큼 보시기에 편하실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서 재미도 뽑아낼 수 있고요.”
“근데 다른 멤버들은 누구로 할 거야?”
태주는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임강현을 힐끔 바라보았다.
캐스팅은 온전히 제작진의 뜻이지만, 그들은 태주에게 같이 했으면 하는 멤버가 있다면 추천하라 했었다.
마음속에 생각해둔 멤버가 있다.
그중 한 명이 임강현이다.
그때, 임강현이 은근슬쩍 태주의 곁으로 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뱉은 말 한마디.
“야, 너희 소속사 어떠냐?”
“무슨 소리야?”
임강현이 태주를 보고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사실 황재남 팀장한테 연락이 왔어.내가 곧 계약기간 끝나가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드림액터스로 이적하자더라. 자기가 잘 끌어주겠다면서.”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