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새로 짜는 판 (1)
태주를 중간에 두고 양옆으로 선 임강현과 하강웅.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태주가 김해송 피디랑 대립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그들은 태주가 열을 내는 모습을 조마조마하며 보고 있다.
김해송 피디는 신이 나는 미소를 애써 감추었다.
“다 갖춰진 상태로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태주 씨.”
“아, 그래도…….”
“태주 씨. 무인도에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이렇게 많이 챙겨왔어요. 후라이팬에 휴대용 버너, 간장, 고추장…….”
리스트를 쭉 듣던 임강현이 태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너 진짜 저거 다 갖고 왔냐?”
“어.”
“요리 경연대회 나왔어? 왜 저렇게 많이 들고 왔냐?”
“네가 뭐 요리를 해봤어야 알지. 원래 참된 요리사는 자신의 장맛이라는 게 있는 법이라고.”
“원래 요리 못하는 애들이 장비발로 밀어붙이는 거거든.”
“그럼 네가 오늘 요리할래? 쫄쫄 굶어서 물배 채우고 싶냐?”
“형들, 그만 싸워요…….”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하강웅이 김 피디의 눈치를 살폈다.
임강현과 투덕거리던 태주는 결국 김해송 피디에게 두 손을 들었다.
“그럼 감독님, 저 하나만 가져가게 해주세요. 그래도 무겁게 여기까지 들고 왔는데 제 성의를 봐서라도요.”
“흠,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다 뺏어가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그리고 태주는 손을 모아 두 눈을 깜빡였다.
그의 간절한 태도에 여성 조연출이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선배, 전부 뺏어가면 좀 그렇잖아요. 하나만 허락해주죠.”
“그럼 태주 씨가 하나 골라 봐요.”
“아싸!”
허락을 받은 태주는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까 부엌에 아궁이와 가마솥이 있는 건 봤다.
‘그럼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건….’
“이거 고를게요.”
그는 갈색 소스가 찰랑거리는 자그마한 통을 골랐다.
하강웅이 갸웃거리며 끼어들었다.
“형, 그거 뭔데요?”
“내 만능 소스. 이것만 있으면 어떤 요리든 맛있어져.”
그 말에 김 피디가 눈을 빛냈다.
“그럼 그건 내려놓으세요, 태주 씨. 우리 예능에서 치트키는 허용 안 됩니다.”
“아, 감독님! 악마도 아니고 왜 이러세요!”
태주의 말에 김해송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제 별명이 악마인 건 또 어떻게 아셨죠?”
* * *
몇 시간 후.
태주는 마당 바닥에 뻗어 버렸다.
“아휴…. 죽겄다, 죽겄어!”
마당 한복판에 아궁이를 직접 짓느라 반나절이 다 갔다.
호기롭게 선크림도 안 바른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탄 지 오래였다.
부엌에 아궁이가 있지만 촬영하기에 용이하지 않다며 김 피디가 마당에 새로 지으면 좋겠다고 권유한 탓이었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허리를 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강현 씨하고 강웅 씨가 생각보다 일머리가 너무 없네요. 태주 씨가 고생 많았어요.”
태주는 임강현과 하강웅을 강렬하게 바라보았다.
이 녀석들, 일머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하강웅은 동생이라고 옆에서 빠릿빠릿하게 도와주기라도 했는데. 임강현, 이 녀석은 완전 똥손이다.
도와준답시고 벽돌을 나르다가 손에서 놓치고.
모양을 다듬는다더니 오히려 망쳐 버리고.
눈치 빠른 하강웅이 태주의 어깨를 두 손으로 주물렀다.
“형 힘드시니까 오늘 저녁은 제가 할게요.”
“너 요리 뭐 할 줄 아는데?”
“어…. 라면?”
그 소리에 태주가 고개를 저었다.
“라면도 맛있지만,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내가 더 맛있는 거 해줄게.”
그 말에 임강현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네가 요리할 거야?”
“그래, 내가 요리해줄게. 감독님, 저희 슈퍼 좀 다녀올게요.”
“이왕 가는 김에 사 올 거 다 사 오세요.”
태주는 김해송 피디가 준 봉투 속 돈을 확인했다.
이중협과 신득연도 태주 곁을 기웃거렸다.
[에게, 이게 다냐? 요즘 물가도 올랐는데 5만 원 가지고 뭘 사.] [역시 해송 선배. 출연자들한테 끝까지 도전 의식을 가지게 하는 점은 여전하네요.]생각보다 적은 돈에 태주도 헛웃음을 지었다.
“많이도 주셨네요.”
“하하, 그 정도면 충분하죠. 그런데 태주 씨, 여기 처음 오셨을 때보다 좀 까칠해지신 것 같은데요?”
“배고파서 그래요.”
굶주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던 태주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얼른 장 봐서 요리해 먹을게요.”
* * *
임강현과 하강웅과 15분 정도 걸으니 읍내가 나왔다.
저녁 시간이라 거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하강웅이 말했다.
“저번에 형이랑 둘이 상주 갔을 때가 생각나요. 그때도 이렇게 읍내에 사람 없었었는데.”
“그랬지. 그때, 참 좋았는데.”
“그럼 지금은 더 좋겠네? 나도 있으니까.”
생각지 못한 임강현의 말에 태주는 헛웃음을 내뿜었다.
“하하, 하하하!”
“뭐야, 왜 웃어?”
“그래. 너도 있어서 좋다, 친구야.”
수다를 떨며 들어간 슈퍼마켓.
곧 태주는 요알못 동료들을 일일이 챙겨야 했다.
“날씬하다고 애호박이 맛있는 게 아냐. 아니, 그렇게 길다고 맛있는 거 아니라고!”
그들의 등장에 여러 직원이 기웃거렸다.
“어머, 한태주 아냐?”
“한태주가 왜 여기에 있겠어, 잘못 본 거겠…”
그때, 귓가에 또렷하게 박히는 태주의 외침.
“은근슬쩍 지구 젤리 끼워 넣으려고 하지 마! 여기서 장난감을 왜 사는데, 임강현!”
직원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진짜 한태주네!”
장을 조용히 보고 가려고 했건만, 태주의 큰소리 때문에 만천하에 그들이 왔음을 들키고 말았다.
장바구니를 들고 제대로 장을 보기도 전에 꽉 막혀버린 슈퍼마켓 안.
결국, 태주는 30분이 지나서야 슈퍼 밖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임강현과 하강웅은 경이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국민 아역 출신 배우는 인지도가 다르구만. 할머니들한테도 저리 인기가 많다니.”
“낭만고양이로 학생들한테도 인기가 많아졌나 봐요. 형, 기분 째지겠어요.”
태주가 두둑한 장바구니를 품에 안으며 선언했다.
“기분이다! 오늘 내가 진짜 맛있는 저녁 해줄게!”
집에 돌아오자마자 태주는 빠르게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 저녁은 달걀말이, 애호박 된장찌개, 옛날 소시지 부침과 쌀밥.
가장 쉬운 밥 짓기는 하강웅에게 맡기고, 그는 나머지 반찬들을 준비했다.
우선 아궁이를 달궈 기름을 두르고 쪽파를 한 아름 썰어 넣은 달걀 물을 부었다.
그리고 태주가 기술적으로 돌돌 말자 곧 두툼한 달걀말이가 완성됐다.
“와, 완전 맛있겠다!”
옆에서 수저를 나르던 하강웅이 군침을 삼키자, 태주가 구석을 떼어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어때?”
“존맛탱! 우리 엄마 거보다 더 맛있어요!”
피식 웃으면서 태주가 요리에 박차를 가했다.
옛날 소시지를 빠르게 썰어 계란물을 입히고, 노릇노릇 부친다.
치지직 거리는 기름 소리에 태주가 군침을 삼켰다.
“아, 맛있겠다.”
그다음은 애호박 된장찌개.
큰 멸치로 육수를 낸 다음 된장과 고추장 몇 스푼을 푼다.
옆에서 보던 김해송이 물었다.
“왜 고추장을 풀어요?”
“된장찌개에 고추장을 살짝 풀어 넣으면 더 맛있거든요.”
그리고 국물이 끓어올랐을 때 미리 썰어놓은 애호박과 다른 야채들을 넣는다.
몇 분 후, 한 상 가득 완성된 저녁상이 집 툇마루에 차려졌다.
“잘 먹겠습니다!”
태주는 임강현과 하강웅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둘 다 볼이 빵빵해져서는 먹기 바빴다.
“맛있어?”
두 남자는 누가 뭐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서 말을 잃은 건지, 김해송 피디가 그들에게 평을 부탁할 정도였다.
“얼마나 맛있는지 멘트 좀 쳐 주세요.”
“원래 너무 맛있으면 말을 잃는 법이에요.”
“피디님도 한번 드셔 보실래요?”
태주가 한 스푼 떠서 김해송에게 먹여 주자, 그가 손뼉을 쳤다.
“뭐야, 이거 너무 맛있잖아요.”
[태주야, 쟤네들이 네 것까지 다 먹겠다! 너도 좀 먹어라!]엄마의 마음으로 이중협이 다급하게 말하자. 그제야 태주도 숟가락을 들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세 남자가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가득 담긴 이때.
김해송 피디는 제작진에게 몸을 돌려 소곤거렸다.
“이 세 사람, 생각보다 진짜 재밌다.”
“그러게요. 예능적인 재미가 상당하네요.”
“태주 씨가 임강현과는 동갑 케미를, 하강웅과는 형제 케미를 잘 형성하고 있어요.”
조연출이 김해송에게 슬쩍 말했다.
“선배, 우리 이거…… 정규로 편성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당연하지.”
김해송이 태주를 보더니, 어깨에 힘이 한결 들어갔다.
“정규 못 갈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어.”
* * *
동시각.
XJ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실에서는 팽팽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대표이사인 박송훈을 만나겠다며 민소예가 다짜고짜 쳐들어온 것이다.
“아저씨. 이번에 파일럿으로 편성된다던 그 프로그램, 당장 막아 주세요.”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박송훈이 검은 뿔테 안경을 치켜들며 민소예를 바라보았다.
GX 그룹은 방송사 XBS를 자회사로 소유한 재벌그룹.
박송훈은 일전에 GX 그룹 고문변호사로 근무했던 경력 덕에 민씨 일가와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밤중에 대학생이 여기에 올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너 여기 온 거, 아버지는 아시니?”
“저희 아빠가 아시기 전에 아저씨가 알아서 잘 처리하시라고 제가 먼저 온 거예요.”
민소예가 거만한 눈을 번뜩였다.
“이번에 한태주 나온다던 그 예능, 파일럿에서 거꾸러뜨려 주세요.”
“한태주?”
예상치 못한 이름에 박송훈은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QVN 예능국장과 밥 먹었을 때,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새로 론칭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에 한태주가 들어간다고.
임강현, 하강웅도 그와의 인연으로 섭외됐다고 했다.
‘작년과 올해, 강력한 예능 프로그램이 없었던 탓에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라 했었지.’
물론 컨셉은 재미보다는 잔잔함을 쫓은 것 같지만.
“밥 세 끼 먹는다는 그 프로그램 말이냐?”
“아저씨도 아시네요!”
“근데, 왜 그 프로그램을 막아달라는 건데?”
“저는 걔 예능 나오는 건 정말로 못 봐요.”
“그건 예능국장이 판단할 일이지, 내 권한은 아냐.”
“아저씨!”
짜증 난 듯한 민소예에게 박송훈이 덤덤히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한태주란 배우를 이래라저래라할 위치도 아니지 않니? 이 밤중에 네가 여기에 와서 이러는 거 좋게는 안 보인다.”
주먹을 왈칵 쥔 그녀를 보던 박송훈의 머릿속에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인우 녀석이 그랬던 것 같다. 민소예가 과 수석인 한태주랑 사귀었었다고.
그러나 헤어지는 과정이 안 좋았다고 들었다.
한태주에게 민소예가 돈 없고 집안도 안 좋은 너랑은 안 사귄다고 했다나 뭐라나.
‘그런데 한태주가 지금 잘 되는 것 같으니 어떻게든 태클을 걸고 싶은 건가?’
“너, 한태주하고 잠깐 만났었다며. 왜, 아직도 미련 있냐? 이런 식으로라도 엮이고 싶어?”
벌떡.
정곡을 찌르는 박송훈의 말에 민소예는 씩씩거렸다.
“못 해주면 그냥 그렇게 말할 것이지, 꼭 그러셔야겠어요!”
그러더니 쿵쿵거리며 나가버렸다.
“허허, 요즘 애들은 참 제멋대로라니까.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는 건 인우랑 똑같네.”
헛웃음을 짓던 박송훈은 일어나 창밖을 쳐다보았다.
요즘 여기저기서 한태주란 이름을 많이 듣는 거 같다.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 나도 한태주처럼 내 꿈을 찾아서 어떻게든 발버둥 쳐 볼래요. 후회가 남지 않게.
분명 인우 녀석도 한태주가 다시 연기를 시작한 것에 감화되어 매니저 바닥으로 들어간 거라고 했었지.
그리고 소예 녀석도 한태주한테 절절매서 찾아온 거고.
“도대체 한태주가 뭐기에?”
그에게 한태주란 연기를 괜찮게 하는 배우, 가능성 있는 라이징 스타 정도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한태주는 더 이상 잠재력을 품은 배우가 아니다.
그가 가진 능력은 관중을 끌어들이기 충분하다.
이제는 톱스타로 올라가려는 발판을 막 밟은 배우가 된 것이다.
XJ가 배급한 영화 ‘언더커버’가 한태주가 출연한 ‘광대’에 처참히 패배하며 그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조차도 영화 ‘광대’를 3번 이상 봤을 정도니까.
“……한태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겠군.”
책상에 앉아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앞에 펼쳐진 수첩에 적힌 글씨가 그의 시선에 들어온 순간.
–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이번에 우리 쪽에서 기획사 설립하기로 한 거 관련해서 해둘 말이 있는데.”
박송훈이 명쾌하게 덧붙였다.
“배우 파트에서는 한태주를 최우선으로 영입해 보도록 해. 계약금으로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까.”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