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새로 짜는 판 (2)
다음 날.
삐비빅-삐비빅 거리는 알람 소리에 태주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마당에 있는 펌프를 이용해 대야에 물을 받고, 그대로 쪼그려서 씻었다.
“하,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고드름처럼 시원한 물로 머리까지 흠뻑 적셨다.
만연한 여름이라 그런가, 새벽 6시인데도 매우 더웠다.
입고 있던 반 팔을 푸덕거리며 태주가 더워하자 이중협이 건의했다.
[그냥 시원하게 등목하지 그래?]신득연도 거들었다.
[더울 때 등목만큼 시원한 건 없죠.]‘그러고 싶은데 다들 곤하게 자서요. 깨우기가 뭐하네요.’
[저기 해송이 형 오는데요.]신득연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휙 돌렸다.
하품하며 걸어오던 김해송이 그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태주 씨,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더워서 잠이 일찍 깨지더라고요.”
태주는 그를 보며 은근슬쩍 부탁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감독님. 저 등목 좀 할까 하는데 물 좀 끼얹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등목이요? 그럼 옷 벗고 할 거예요?”
“네? 네, 당연히 윗옷은 벗어야죠.”
“잠깐만요, 나 카메라 좀 돌리고 올게요!”
“카메라요?”
등목하는데 왜 카메라 타령을 하는 건지.
김해송이 카메라를 세팅하고는 후다닥 뛰어왔다.
“자, 이제 합시다.”
태주가 반팔을 벗자 근육으로 탄탄한 몸이 드러났다.
“태주 씨, 몸 진짜 좋네요. 여기 엎드려 봐요.”
곧이어 차가운 물이 그를 덮쳤다.
“으으, 차가워!”
“오오, 멋있다 진짜!”
추워서 진저리치는 태주의 목소리는 곧 스태프들의 함성으로 묻혀 버렸다.
“시원하죠, 태주 씨? 한 번 더 갑니다, 자!”
그렇게 몇 분간을 물세례를 맞은 태주는 만족스러워하며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김해송은 카메라 뒤로 가서 화면을 확인하던 차였다.
그의 옆에는 언제 깼는지 스태프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오오, 말로만 들었던 그 좋은 몸이다.”
“영화에서는 옷으로 가려서 몰랐는데. 태주 씨, 왜 이렇게 몸이 좋아.”
“태주 씨 머리 터는 거 슬로우 걸면 딱이다. 완전 화보감이겠어!”
급기야 김해송 피디까지 그들의 칭찬에 동참한 이때.
수십 쌍의 눈이 태주를 향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데 감독님, 이것도 방송에 나가는 거예요?”
“당연하죠! 이거 티저로 쓸 겁니다.”
“아, 그건 좀 부끄러운데.”
태주는 서둘러 물기를 닦았다.
그때, 방문을 열고 임강현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밖에 무슨 일 났어? 무슨 콘서트장 온 것 같은 환호성이 들리던데…….”
그때, 임강현의 눈에 상의를 탈의한 태주와 하트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는 수많은 스태프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뭐야. 아침부터 팬 서비스 하는 거였어? 그럼 태주야….”
임강현이 장난스러운 눈을 반짝였다.
“그 상태로 덤블링 해봐. 그럼 우리 시청률 대박 날 거야. 바로 정규로 편성되고 5% 갈지도 모른다?”
“뭔 소리 하는 거야. 아침부터 그런 걸, 왜 해?”
“야, 내가 물도 뿌려줄 테니까 해봐. 완전 영화 같을걸?”
임강현이 호스를 들고 수돗가 물을 틀자, 태주가 곧바로 그에게서 호스를 뺏었다.
“나한테 물 뿌리고 싶은가 본데, 그렇게는 안 될걸! 너부터 맞아!”
“야, 그만해!”
세찬 물줄기가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간.
임강현은 피하기 바빴고 태주는 그를 맞추기 바빴다.
갑작스러운 난리에 스태프들은 그들을 화면에 담았다.
더운 여름날, 싱그러운 청춘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임강현을 잡으려 애를 쓰는 태주가 씩 웃는 모습이 짓궂어 보인다.
그를 보던 이중협이 중얼거렸다.
[저렇게 보니까 제 나이대 같네. 역시 애들은 또래랑 놀아야 해.] [태주 씨가 즐거워하는 모습 보니까 보기 좋네요. 처음에 제가 이 예능 기획할 때도, 태주 씨를 1순위로 생각했었거든요. 잘 어울릴 줄 알았어요.]그의 말을 듣던 이중협이 문뜩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신득연, 너 진짜 윤수안이랑 데이트하는 게 한이야?] [글쎄요, 저도 그게 제 한인 줄 알았는데…….] [나 같은 경우 말고는 귀신이 제 한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돼. 죽고 귀신이 된 순간, 그 한이 자신을 괴롭히듯 따라다니니까. 도대체 네 진짜 한은 뭐냐?]이중협의 질문에 신득연은 망설이듯 느리게 대답했다.
[제가 기획에 참여한 이 프로그램이 정식으로 방송되는 거랄까요.]이중협이 당황스러운 대꾸를 했다.
[…뭐?] [이 프로그램의 최초 기획안을 제가 써서 냈거든요. 해송이 형이 그걸 발전시켜 파일럿까지 내준 건 정말 감사드려요. 그러나 제 한은 이걸 정규 방송으로 편성하는 거예요.]신득연이 간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피디가 된 이후, 처음으로 제 아이디어가 채택돼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에요. 파일럿에서 사라지지 않고 많은 사람이 보는 거, 그게 제 소원이자 한입니다.] [그것참 어려운 한이네.]이중협이 혀를 찼다.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는 하늘이 내려준다는 말도 있잖아. 그런데 그걸 태주한테 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이제껏 태주 씨가 택한 작품들 보세요. 다들 하늘이 점찍어준 것처럼 잘 됐습니다.]신득연이 자신감과 망설임이 뒤섞인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번 예능도 잘될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 *
3박 4일간의 예능 촬영이 끝나고, 태주는 서울로 돌아왔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촬영이었다.
예능 촬영이라기보다는 친구들과 여행을 간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어릴 때는 촬영에 치여서, 커서는 학업과 가족 때문에 친구들과는 이렇게 놀러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임강현, 하강웅과 촬영한 게 무척 재밌었다.
차용석과 함께 사무실에 들어선 태주를 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
“태주 씨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거기 물이 좋았나 봐요?”
“시골집이라 할 일 많았을 텐데, 고생 하나도 안 한 얼굴이에요.”
여직원의 말에 태주는 싱긋 웃었다.
“전 요리 담당이었어요. 강현이하고 강웅이, 제가 다 밥해 먹였죠.”
차용석도 옆에서 거들었다.
“요리만 한 줄 알아? 다른 자잘한 일들도 태주가 다 했어, 아궁이 만들기, 땔감 구하기, 방 청소….”
“어머, 태주 씨 그런 거 전혀 못 하게 생겼는데. 완전 귀공자 타입이잖아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요리는 좋아해요. 그래서 촬영, 정말 재밌게 했습니다.”
“어머, 태주 씨 요리도 잘해요? 진작에 좀 말해주지!”
콘텐츠 담당자가 태주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다음에 우리 유튜브 영상 찍어요! 태주 씨가 한 상 차리는 그런 컨셉으로!”
“상상만 해도 좋다. 요리하는 남자, 멋있잖아!”
“자자, 우리는 이만 회의실로 들어갈게.”
차용석이 태주를 데리고 시놉이 가득 쌓여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천천히 차기작을 검토해보는 시간.
그중에 자꾸 마음이 가는 시놉이 있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양군보 감독님 작품이 좋은 거 같아요.”
“흐음. 시놉이 좋은 건 맞는데, 원톱도 아니고…….”
“그런데 아역배우랑 같이 호흡을 맞출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미혼부로 새로운 연기의 영역을 개척한다는 것도 좋고요.”
“나는 그게 워낙에 상업영화치고 규모가 작아서 좀 걱정이긴 한데. 제작사가 거의 신생이나 마찬가지라 투자금도 크게 못 땡겨올 테고.”
잠시 생각하던 차용석은 태주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래도 우리 배우님이 원하면 어떻게든 해봐야지. 오늘 그쪽 제작사 대표랑 양 감독, 만나보자.”
“아싸!”
태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타진하는 것만큼 재밌는 일은 없다.
* * *
그날 저녁.
태주와 차용석은 모브픽쳐스 대표와 양군보 감독을 마주하고 있다.
마냥 순조로울 거로 생각했던 논의는 제작사 대표와의 대화로 점차 격렬해졌다.
그는 태주를 보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후보지에 태주 씨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양 감독한테도 말했습니다. 너무 머리 숙이면서 비굴하게 굴지 말자고. 예쁜 꽃에는 벌들이 많이 꼬이니까, 우리는 그중에서 제일 나은 배우만 고르면 된다고.”
“대표님, 그런 말은 좀…….”
“양 감독, 왜 그래? 솔직히 나는 다른 배우를 밀었는데 자네가 하도 한태주를 밀어서 이렇게 보는 거잖아.”
다소 무례한 모브픽쳐스 대표, 이제국의 태도에 태주는 눈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제작사 대표와 양 감독이 서로 미는 사람이 다른가 보다.
아니면 자신을 떠보려는 속셈일 수도 있고.
이제국은 그런 태주를 힐끔 보더니 말을 이었다.
“태주 씨, 이걸 알아야 해요. 우리 영화에 지금 태주 씨만 관심 보이는 거 아닙니다.”
참다못한 차용석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마음속에 이미 내정자가 있으신 것 같은데, 도대체 그 배우가 누굽니까?”
“아주 대단한 배우죠. 태주 씨만큼 연기도 잘하고, 대중적 인지도와 호감도가 국민급인 배우.”
제작자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요즘 캠핑 패밀리에서 맹활약 중이잖아요, 우리 남도경 씨가.”
남도경이라.
출중한 연기력과 훌륭한 외모에도 조연을 전전하다 2년 전, 톱스타로 등극한 배우.
그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준 작품은 다름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ABS의 ‘캠핑 패밀리’.
국민 예능에 투입된 남도경은 유쾌한 성품과 잘생긴 외모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작품 활동이 없던 지난 2년간 신중히 차기작을 고른다는 말이 있었는데.
작품에 대한 갈망으로 목마를 그가 고를 정도면, 양군보 감독이 시놉을 잘 뽑은 것 같다.
역시 좋은 것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비슷하달까.
그때, 태주는 차용석과 힐끔 눈이 마주쳤다.
차용석은 간신히 평정심을 찾았지만, 테이블 밑 주먹은 와들와들 떨리는 중이었다.
“남도경 배우를 1순위로 고려 중이셨군요.”
그런 그들을 안절부절못하며 보던 양군보.
미안하고 불안한 눈빛을 태주에게 보내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앞에 태주 씨 모셔놓고 다른 배우 얘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모브픽쳐스 대표는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역할을 태주 씨만 탐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남도경 씨도 태주 씨 못지않게 이 역할에 욕심을 내고 있어요. 저희 쪽이랑도 끊임없이 컨택을 하고 있고요.”
“남도경 배우님, 좋은 배우시죠.”
태주는 물을 마시며 여유로운 모습을 내보였다.
남도경과 한 번도 연기를 같이 한 적은 없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은 많이 봤다.
오랜 조연 생활로 그의 연기력은 기본이 잘 잡혀 매우 탄탄했다.
그리고 이제는 2년간의 국민예능으로 국민적 호감도까지 높여, 팬층도 한결 두터워졌다.
이제 그에게 부족한 건 연기력을 증명할 좋은 작품과의 만남.
하여 양군보 감독의 ‘탈출’을 점찍은 거 같은데, 태주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저도 이 배역을 놓치기 싫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도 재밌고, 역할도 매력적이니까요.”
그 말에 양군보 감독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대화를 거들었다.
“그래요, 저도 시놉 쓸 때 태주 씨를 생각했었어요.”
“가만있어 봐, 양 감독. 나도 태주 씨를 아주 배제한 건 아니었다고.”
양군보를 무시하듯 끼어 든 제작사 대표는 태주와 차용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실 태주 씨를 주인공으로 가는 방법도 고려 안 해본 건 아니에요. 이번 작품에 투자하겠다고 하는 투자사가 태주 씨를 좋게 보더라고.”
“어디입니까?”
“헤븐 리조트라고, 중국계 회사입니다. 그쪽이 이번에 아시아권으로 지점을 넓히면서 새롭게 모델을 내세우려 하는데, 한태주 씨한테 아주 관심이 많더라고요.”
그 말에 차용석이 미간을 찡그렸다.
“중국 회사들하고는 웬만하면 안 엮이는 게 좋을 텐데요. 자칫하면 영화에 중국풍이 물씬 들어가거나 투자사들 입김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뭣도 아닌 영화가 될 수도 있잖습니까.”
“차 팀장도 참, 융통성 없네.”
제작사 대표가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거기서 지금 제안한 금액이 얼만지나 알아요? 200억이야.”
생각지도 못한 거액에 태주도, 차용석도 입을 쩍 벌린 순간.
제작사 대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만약에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면 더 해줄 의향까지 있답니다. 대신, 조건이 있지만요.”
“무슨 조건인데요?”
“한태주의 베드신.”
제작사 대표가 음흉한 눈빛을 내보였다.
“영화 히로인으로 나예주씨가 지금 유력하거든요. 그이는 섹시 스타고 태주 씨는 몸이 좋으니, 그림이 끝내주잖아. 분명 화제성이 높을 겁니다.”
양군보가 발끈했다.
“감독님! 제 영화에 베드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기차에서 탈출하는 영화에 무슨 ….”
“만들면 되는 걸 뭐 그리 말이 많아!”
제작자가 한태주를 향해 눈을 번뜩였다.
“겨우, 베드신 한 번이면 200억을 투자받을 수 있습니다.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실 건가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