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새로 짜는 판 (5)
예상치 못한 기사에 대표실이 숨죽인 침묵에 빠졌다.
배우 한태주가 차기작으로 양군보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탈출’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
최근 드라마 ‘낭만 고양이’, 영화 ‘광대’ 등 여러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물오른 연기력을 증명한 한태주는 예능 ‘하루세끼’를 통해 색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그 후 모두의 관심을 끈 차기작을 양군보 감독의 영화로 확정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양군보 감독이 준비한 이야기는 다름 아닌 좀비 블록버스터.
만약 개봉한다면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라는 말에 양군보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그런 수식어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다만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시놉 단계부터 주인공 역으로 오직 한태주를 생각하고 썼지만, 양군보 감독은 캐스팅에 특히 걱정이 컸다고 전했다.
“한태주 씨는 최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니까, 쉽게 캐스팅되지 않을 거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한태주는 시놉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며, 양군보 감독과의 차기작을 짧은 순간에 결정지었다고 한다.
“이야기가 정말 재밌어서,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새로운 연기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드릴 좋은 기회가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한편,한태주의 캐스팅 합류와 더불어 영화 ‘탈출’에는 제작사 현필름과 투자사 YH 캐피털 측에서 공동 제작에 들어갔다. YH 캐피털은 일본의 마루야마 그룹의 자회사로 이번 영화가 한국 영화의 첫 투자가 될 전망이다.
내년 여름에 개봉 예정이라는 영화 ‘탈출’이 배우 한태주의 또 다른 전성기가 될까 벌써 궁금해진다.
-스타뉴스, 홍은지 기자-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언제 이런 건 걸 준비한 거냐?”
기사를 다 읽은 장희재가 고개를 벌떡 들었다.
태주는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대표님.”
“남이 성공을 떠먹여 준다는데도 너는 도대체가….”
짜증이 북받친 장희재.
마루야마 회장을 설득해 모브픽쳐스와 그가 공동 제작하는 영화에 투자하겠다는 것도.
한태주를 모브픽쳐스 영화에 출연시키겠다는 것도.
이제까지 그가 추진한 계획들이 한꺼번에 어그러지는 순간이었다.
“지금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넌 이제 20대 남배우 중에서 제일 주목받는 배우라고. 그럼 더 신중하게 작품을 골랐어야지!”
“대표님은 제가 실패할까, 걱정되시나 봅니다.”
“당연하지! 너는 우리 회사 대표상품인데! 네가 실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결국 장희재가 본색을 드러내자, 이중협은 눈썹을 씰룩였다.
[저 인간 저거…… 잘나가는 배우를 상품 취급하네. 태주야, 상처받지 마. 넌 상품이 아니라 배우야.]‘알아요, 형. 상처도 받지 않았어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태주는 장희재의 성난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저는 제 방식대로 해 보겠습니다. 그 길의 끝이 무엇이 될지는, 직접 부딪혀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요.”
* * *
대표실을 나온 태주는 곧바로 차용석에게 향했다.
“어떻게 됐어?”
“대표님이 제 뜻을 어떻게 꺾겠어요. 계약까지 다 한 마당에.”
“하, 내가 이 회사 다니면서 너처럼 대표님하고 대립하는 애는 또 처음이다. 대표님, 당황하셨겠네. 이런 경우는 오랜만이라.”
한숨을 내쉬던 차용석은 태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하하…. 하하하!”
실성한 건지, 포기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신이 나서 웃는 건지 태주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네가 원하는 작품을 해야지. 태주야, 잘했다!”
“나 때문에 형, 대표님한테 찍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걸 이제야 걱정하고 있냐?”
차용석이 유쾌한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야, 내가 이 회사에 돌아온다는 결심을 했을 때, 그런 건 다 각오한 일이야. 이미 중협이 형 때 많이 겪어서 상관없어.”
그 말에 이중협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무슨 소리지, 뭘 겪었다는 거야?]태주가 차용석에게 물었다.
“이중협 선배님 로드 매니저 했을 때 말이에요?”
“그래, 그때 현식이 형하고 나하고 아주 대표님 면담하는 게 일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던 차용석이 복잡한 눈빛을 띠었다.
“그 형도 너처럼 자기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이었거든. 대표님이 형더러 뭐 들어가라고 하면 아니라고 거절하고, 그런 일이 부지기수였지.”
“그래도 생전에 인터뷰한 거 보면 원하는 작품을 많이 하신 것 같던데요.”
“그건 형의 의사도 강했지만, 대표님이 많이 져주셨거든. 아무튼 중협이 형보다는 네가 더 모험적인 것 같은데.”
태주를 보며 묘해지는 차용석의 표정에서 오만가지 감정이 드러났다.
걱정, 기대감, 우려, 그리고 자신감.
“아무튼, 난 네 편이니까. 뒤에서 더 열심히 받쳐줄게.”
그의 눈에서 반짝이는 열정을 본 순간.
태주는 그가 고모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기둥이라는 걸 알았다.
자기 등을 두드리는 차용석에게 태주가 약속했다.
“절대 후회하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형.”
* * *
그 후로 영화 ‘탈출’ 제작은 빠르게 진행됐다.
한태주의 이름이 연예란을 뒤덮은 건 물론이다.
YH 캐피털에 한데 모인 사람들은 다들 기사 얘기뿐이다.
“확실히 한태주 씨가 톱클래스긴 한가 봐요. 이번에 양군보 감독이랑 같이 영화 한다는 게 아직도 기사 검색순위 위에 있는 거 보니.”
“다들 놀란 거죠. 사실 차기작으로 한태주 씨 원한 감독들 많았잖아요. 소위 말하는 흥행 감독들.”
주변에 한태주와 양군보가 없는 걸 확인한 직원들이 소곤거렸다.
“솔직히 양군보 감독은 흥행 보장 못 하죠. 이제 겨우 독립영화 하나 만들었는데.”
“그래도 영화는 좋던데요. 담백한 연출도 그렇고, 무엇보다 신파가 아니라는 점이요.”
“선희 씨, 우리나라 영화 천만 공식 몰라요? 잘생긴 주인공과 신파, 이것만 있으면 된다고요!”
“안녕하세요.”
그때 태주와 신예지, 양군보, 차용석이 들어오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다들 관심이 그쪽에 쏠린 이때.
현필름의 신예지는 YH 캐피털의 한득경 대표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는 이번 영화에 자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 쪽에 제작을 일임해주시고, 최대한 양군보 감독 쪽에 전권을 주는 방향으로 고려해주시죠.”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대신, 저희 쪽에서는…”
한득경 대표가 예리한 눈을 번뜩였다.
“일단 100억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신예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홍보비 포함해서는 살짝 아쉬운데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이 영화에는 한태주가 주연입니다. 외부 투자가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신예지의 말에도 한 대표는 꿋꿋했다.
“물론 외부 투자가 들어올 수 있겠죠. 그러나 투자자와 양 감독 간에 원하는 좀비 영화 스타일이 좀 다른 것 같더군요.”
“맞습니다.”
양군보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동의했다.
“사실 좀비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여전히 한국 관객들에게 낯설 수 있습니다. 몇몇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봤는데, 다들 할리우드 식의 좀비 스타일을 카피하라고 조언하더군요. 그런데 우리 제작진하고 제가 생각한 좀비는 뭔가 좀 다르거든요.”
신예지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정확히 어떤 좀비를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감독님은?”
양군보가 차분히 설명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좀비들이 반쯤 잘린 살점을 달고 다니는 등, 좀 더 잔인하고 자극적인 설정을 보이죠. 그러나 저희는 애초에 좀비도 인간이었으니, 그 점을 최대한 살릴 계획입니다.”
“잠깐만요. 설마 한태주 씨도 나중에 좀비로 변하는 건 아니죠?”
태주는 그 말에 싱긋 웃었다.
“그건 나중에 찍으면서 알게 될 겁니다.”
회의를 거듭하며 여러 가지 결론들이 도출됐다.
시놉시스, 배우 출연진 등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신예지가 고민에 빠진 얼굴을 들었다.
“역시 투자금을 좀 더 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왕 만드는 거 완벽해야죠.”
“한태주 씨가 일본 쪽에 인기가 많으니, 그쪽에서 투자금을 어떻게 조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양 감독도 거들자 태주가 손을 들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어떠세요.”
“펀딩이요?”
한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펀딩은 모 아니면 도라 자칫하면 쪽박 찰 수도 있어요. 그리고 펀딩에서 목표 수익률 못 올리면 영화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펀딩만큼 대중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요.”
태주의 눈빛에 차용석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크라우드 펀딩도 잘하면 좋은 홍보 수단이 될 겁니다. 저희같이 작은 영화에서는 더더욱 홍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죠.”
“제가 괜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닙니다. 지난 3편의 영화들이 크라우드 펀딩에서 죽을 쒀서 말이죠….”
잠시 고민하던 한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달을 목표로 잡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모집해 보는 걸로 하죠. 한태주가 주연으로 나서는 영화인 점을 강조하고……”
그는 양군보를 보았다.
“아직 한태주 씨 말고 캐스팅 확정된 분들은 없는 거죠? 혹시 펀딩 홍보할 때 도움이 될까 해서요.”
그 말에 양군보는 태주에게 눈짓을 했다.
태주가 고개를 흔들자,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시놉만 보낸 상태라,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
한 대표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홍보 캐치프레이즈에는 한태주 씨만 걸도록 하죠. 그것만으로도 이름값과 홍보 효과는 충분할 테니까요. 모금액은 5억 정도로 잡겠습니다.”
한창 논의가 마무리되던 그때, 이야기는 배우들의 출연료로 흘러갔다.
“태주 출연료 계약은 러닝 개런티로 하고 싶습니다.”
차용석의 말에 이제는 모든 이가 놀랐다.
“정말 이 영화, 대박 날 거로 생각하는 거군요.”
“그럼요.”
태주가 양군보를 흘깃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이 영화에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 *
동 시각, C&K 컴퍼니.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하며 시놉을 유유하게 읽는 이선우가 보인다.
종이의 맨 앞장에는 ‘탈출’이 쓰여 있다.
“하하, 이거 물건이네.”
시놉을 거듭해서 읽던 이선우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제작사 현필름에서 보내온 양군보 감독의 신작 시놉.
한태주가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말에 구미가 당겨 읽어보는 중이다.
하지만 신인 감독들의 작품은 잘 출연을 안 하는 그였다.
그들은 패기가 높고 첫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연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자기 뜻과 상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군보가 각본, 연출을 맡는다는 이 영화는 제법 퀄리티가 좋다.
지나친 신파로 눈물을 뽑아내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집중되는 흡입력이 참으로 대단했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매력도 좋았고.
“헬스장 간 줄 알았더니 여기 있었네.”
익숙한 목소리에 이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매니저인 이현식이었다.
“현식이 형, 이게 얼마 만이야!”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