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과거의 나, 아역배우 (2)
촬영이 진행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공간을 뒤흔드는 큰 목소리가 촬영장을 가득 울렸다.
“컷, 컷, 컷!”
거듭되는 NG에 결국 광고 감독은 컷을 외쳤다.
“야, 도준아!”
그리고 아역배우 송도준을 호출했다.
“거기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잖아. 오른쪽 팔을 흔들어야 하는데 왜 왼쪽 팔을 흔들고 있어.그러니까 태주 형이랑 부딪히지.”
“죄…, 죄송해요.”
잔뜩 기가 죽은 아역배우는 연신 고개를 숙였고.
카메라 뒤에 서 있던 그의 엄마는 전전긍긍했다.
“감독님, 정말 죄송합니다.애가 긴장해서 그래요. 좀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는 아이를 흘겨보며 닦달하는 그녀다.
“좀 잘해봐. 지금 다들 너 때문에 고생하고 계시잖아!‘
“흠. 긴장도 여러 번 하면 실력입니다.”
무게감 있는 말을 던진 광고 감독이 카메라 뒤에 앉았다.
그가 조연출에게 무어라 지시하느라 잠시 시간이 남자.
태주는 무릎을 꿇어 아역배우와 눈을 맞추었다.
통통한 아이의 볼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도준아, 많이 긴장돼?”
“네? 아, 아니요. 절대로 기…, 긴장하지 않아요!”
긴장되는지 말까지 더듬는 아역배우.
그런 아이를 보니 태주는 꼭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그렇고.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는 엄마를 신경 쓰는 것도 그렇고.
보통 아역배우들은 엄마가 따라와 촬영을 지켜보고는 하는데, 도준이의 엄마는 유독 그 정성이 지극한 것 같다.
[저러면 아이가 더 긴장할 텐데.]’그러니까요. 그래서 애한테서 엄마의 시선을 좀 돌려놓으면 긴장이 풀리지 않을까 해요.‘
이 와중에도 아이는 카메라 뒤의 엄마 쪽을 힐끔거리고 있다.
“도준아!”
태주는 아이의 볼을 쓱 잡아당기며 씩 웃었다.
“형하고 재밌게 해보자고 했잖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태주의 터치에 아이가 수줍은 듯 웅얼거렸다.
“네….”
“일단은 카메라 신경 쓰지 마. 형 눈만 보고 따라와, 알았지?”
태주의 물음에 아역배우가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그런데 엄마가 카메라 봐야 한다고….”
“일단은 형 보면서 재밌게 놀자. 배우는 말이야, 카메라 앞에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재밌게 놀 줄 알아야 하거든.”
“그럼 실…, 실수해도 돼요?”
“그럼! 재밌게 촬영하다 보면 실수도 나오는 거지.”
그래도 제 말을 못 믿는 듯한 아이에게 태주가 속삭였다.
“형도 아역배우 출신이야.”
“정말요?”
“그래. 형도 그때는 너처럼 실수 안 해야 한다고 마구 긴장했는데,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그러더라. 완벽하게 하는 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재밌게 하다 보면 완성도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이 말은 예전에 태주의 엄마가 해준 말이었다.
지금의 도준이처럼 실수 안 해야 한다고 전전긍긍한 태주를 엄마는 따뜻하게 격려해주었다.
-태주야, 실수해도 괜찮아. 재밌게 촬영하면 완성도는 절로 따라오는 거거든.
잔소리와지적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역배우한테는 더욱 큰 응원이 된다는 걸, 엄마는 알았던 것 같다.
“촬영을 일이 아니라, 형이랑 둘이서 재밌는 놀이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사실 형은 도준이랑 이렇게 찍는 거 너무 설레고 재밌거든. 도준이는 어때?”
“음…. 저도 좋은 것 같아요.”
그의 눈치를 보는 아역배우의 새끼손가락에 태주는 제 손가락을 걸었다.
“형하고 약속해! 재밌게 하기로!”
“네!”
그제야 씩 웃는 아역배우.
아이의 시선 끝에 더는 카메라 뒤 엄마가 없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광고 촬영을 재개했는데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광고 감독의 텐션도 점점 높아졌다.
“오, 좋아요! 그대로 둘이 같이 카메라 보면서!”
태주는 아이의 손을 잡고는 씩 웃었다.
“즐거운 쇼핑은 언제나 헬로쇼핑에서!”
* * *
“수고하셨습니다!”
아침에 시작한 촬영은 늦은 저녁이 다 돼서야 끝났다.
태주가 여러 스태프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엄마의 손을 잡은 아역배우 송도준이 그에게 다가왔다.
카메라를 보며 패기 있게 연기하는 배우는 어디로 가고, 엄마 곁에 꼭 붙은 아이만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한태주 씨. 도준이 엄마예요. 아까는 저희 도준이가 너무 실례가 많았어요.”
“아닙니다, 도준이랑 같이 촬영하면서 즐거웠어요.”
다소 피곤해 보이는 여자는 아이를 앞으로 밀었다.
“도준아, 형한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얼른!”
“고…, 고맙습니다.”
아이가 말을 더듬으며 태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엄마의 손에 붙들려 서둘러 촬영장을 떠나는 아이를, 태주는 보고 또 보았다.
분명 촬영에 몰입했을 때는 누구보다 연기를 잘했던 아이였는데.
왜 엄마하고 같이 있으면 저렇게 말을 더듬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있으면 더 편안해서 연기를 잘했는데.’
한창 생각에 잠겨 있던 그에게 제작진이 어깨를 툭툭 쳤다.
“태주 씨, 아까 안 힘들었어? 세상에, 걔 때문에 NG가 몇 번이나 난 거야.”
광고 감독의 질문에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재밌었어요. 아역배우와 함께하는 촬영은 처음이었거든요.”
“어휴, 태주 씨가 사람이 좋으니까 이만한 거지. 만약에 상대 배우가 성질이 지랄 같았으면 저 아역은 당장 교체되는 건데.”
감독의 말에 옆의 스태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애들하고 하는 촬영이 제일 힘들다잖아요.”
“나도 웬만하면 아역배우는 안 쓰려고 했지. 그런데 광고주께서 광고에 화목함을 넣고 싶다고 꼭 필요하다잖아.”
“그런데 감독님.”
태주는 광고 감독에게 슬쩍 물었다.
“오늘 저랑 같이 찍은 도준이란 친구, 아역 경력이 좀 되나 봐요?”
“꽤 되지, 4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해서 연기했으니까.”
옆에 있던 스태프가 끼어들었다.
“애가 예쁘장하잖아요.웬만한 아역은 다 쟤가 도맡아 했던 적도 있었어요. 요즘은 광고만 찍고 연기는 안 하지만요.”
“왜요?”
“듣기론 오디션에서 자꾸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신감 떨어진다고 애 엄마가 아예 연기를 안 시켜버리나 봐요.”
“애 엄마가 정말 독하긴 하더라.”
감독이 혀를 내둘렀다.
“애를 어찌나 잡던지, 내가 다 살벌하더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도 이해는 돼요. 요즘에는 아역들 경쟁도 치열해서 대체할 애들이 많잖아요.”
스태프와 감독은 동시에 태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해 보면 태주 씨만 한 아역이 없었던 것 같아. 태주 씨는 아역 때도 실수 없이 촬영 한 컷에 해내기로 유명했잖아. 부모님이 카메라 뒤에서 지시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잘했고.”
“어머, 정말요? 태주 씨 어머니도 좀 엄한 스타일이셨나 봐요?”
태주에게 의문의 시선이 가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뇨, 오히려 제가 욕심을 내려놓기를 바라셨어요. 뭐든지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요.”
태주는 그때를 회상하며 생각했다.
연기는 욕심을 낸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그런데 태주 씨 이번에 찍는 영화에서 아이 아빠로 나오지 않아? 그럼 아역하고 호흡 맞추겠네?”
“네.”
“아역은 캐스팅으로 뽑아? 아니면 오디션?”
“오디션이요.”
안 그래도 아역 오디션이 일주일 뒤인데, 태주도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아역으로 시작했던 그였기에, 이번에 오디션장에서 볼 아역배우들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아까 도준이도 좋았는데.”
그 아이가 오디션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고, 태주는 생각했다.
* * *
“와, 이번에 캠핑 패밀리 시청률 박살 났네.”
인터넷을 검색하던 홍은지가 옆자리의 우성림에게 고개를 돌렸다.
“3% 나오던 게 0.5%로 내려앉았어!”
“당연한 수순 아닐까요?”
기사를 작성하던 우성림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류진우 피디 단독 체제로 가서 뭔가 신선해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주축 멤버인 조기태와 남도경이 마약 건으로 빠져버리니 멤버들 간에 케미도 안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하루세끼 시청률 폭등한 건 어부지리로 얻어걸린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캠핑 패밀리에 그런 악재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런 화제를 모을 수 있었겠냐고.”
“하루세끼를 후려치는 논조의 기사들이 아직도 나오다니.”
우성림이 자판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하루 세끼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도 정말 잘 만든 예능이에요. 포맷은 단순한데 그 속에서 한태주, 임강현, 하강웅의 캐릭터 플레이가 정말 좋으니까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예술이지.”
“정규 편성도 확정돼서 이제 곧 첫 방송 하잖아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선배…….”
우성림이 홍은지에게 엄포를 놓았다.
“진짜 한태주 씨 예능은 제 담당이에요. 이제껏 드라마나 영화는 다 선배가 썼으니까 뺏어가시면 안 돼요.”
“알았어. 아참, 나 8월에 태주 씨 따라서 스위스 간다.”
“네?”
홍은지가 자랑스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영화 ‘광대’가 초청받았거든. 수상 가능성도 있다고 귀띔받아서, 밀착 취재해보려고.”
“아악, 선배님 진짜 부럽다! 해외 출장도 가시고!”
우성림의 절규에 홍은지가 우쭐한 어깨를 으쓱했다.
“뭐, 너도 데리고 갈 수도 있는데.”
그 말에 우성림의 얼굴은 절망에 환희로 바뀌었다.
* * *
일주일 뒤.
더워지는 날씨에 태주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제작사 현필름을 찾았다.
주연배우의 자격으로 오디션에서 아역배우를 심사하러 온 것이다.
대회의실로 오는 길에 본 대기실에는 수많은 아역배우가 있었다.
다들 대본을 들고 대사를 외우는 것이 성인 배우들 못지않은 열정이었다.
“안녕하세요.”
“태주 씨 왔어요?”
대회의실에 와 있던 신예지 대표와 양 감독이 손을 들어 그를 반겨주었다.
그 옆에는 이선우도 와 있었다.
그도 오늘 아역들의 연기를 평가할 심사위원이었다.
“오는 길에 보니까 아역배우들 진짜 많더라고요. 오늘 안에 다 오디션 볼 수 있는 거예요?”
“저녁까지 볼 수도 있어요.”
신예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 영화, 태주 씨랑 선우 씨 덕분에 아역들 경쟁률 장난 아니에요. 아역배우 엄마들이 우리 영화에 자식 들이밀려고 얼마나 난리인지 몰라요.”
“하하, 저보다는 태주의 힘이 크겠죠.”
이선우가 능청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렇게 젊고 잘생긴 아빠 만나기 쉽지 않으니까.”
“하하.”
태주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저도 최선을 다해 오디션에 임할게요.”
“태주 씨가 오늘 수고 많을 거예요. 아역들하고 합 맞는지도 잘 보고, 오디션에서 대사도 섞어주고.”
“알겠습니다.”
오디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태주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복도를 천천히 걸어오다 대기실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그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수많은 남자 아역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가 내심 기다리던 그 아이는 없었다
“도준이는 없네…….”
그때, 그의 등을 톡톡 치는 누군가가 있어 돌아보니.
“안녕하세요, 한태주 씨.”
뽀얗게 화장한 젊은 여자가 펜슬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고 서 있었다.
그의 눈을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점이 의아했다.
제작사 직원인가?
태주는 고개를 까딱이며 여자를 바라보다, 서둘러 펜과 종이를 찾았다.
백이면 백, 이런 이들은 팬들이기 때문이었다.
“사인해 드릴까요? 아니면 사진이라도?”
“아, 네….”
사인해 주고 사진을 찍었는데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여자.
잠시 망설이다가 태주에게 절실한 눈빛을 내보이더니.
“태주 씨도 이번에 오디션 심사 보시죠?”
“네?”
질문과 함께 대뜸 그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었다.
제법 두툼한 봉투였다.
“이건 제 작은 성의인데요. 제발 우리 아이, 뽑히게 해주세요.”
봉투 안에는 노란색 지폐가 가득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