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과거의 나, 아역배우 (6)
아이가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
도준이의 엄마, 이혜영이 진지하게 태주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 도준이, 잘해서 오디션 붙은 거 맞나요?”
“네, 그날 오디션 본 아역 중에서 제일 잘해서 붙은 거예요. 도준이,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 말에 이혜영의 얼굴에 안도감과 놀라움이 가득 찼다.
“어려서는 곧잘 했는데. 8살 때부터인가 애가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오디션 보는 족족 다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연기는 더 이상 못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광고 모델은 왜 시키신 거예요?”
이혜영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도준이가 계속 연기를 하고 싶어 했거든요. 그런데 오디션만 보면 떨어지니, 광고 모델이라도 하라고 한 거죠. 솔직히 가계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고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빨개진 이혜영이 고개를 숙였다.
“저희 애 아빠가 없어서 제가 가장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애가 연기를 한다고 하니, 저는 정말 확신이 안 서요. 성공하지 못한 배우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거, 태주 씨가 제일 잘 아시잖아요.”
그 말에 태주가 이중협과 눈을 맞추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역배우 선배로서 네 솔직한 경험을 말해줘. 선택은 자기 몫이지.]“도준이의 미래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게 어머님이라는 거, 잘 압니다. 그렇지만 어머님, 지금은 도준이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 주시는 게 어떨까 해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태주가 말을 이었다.
“도준이, 제가 보기에도 연기 잘하거든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은 성인 배우 그 이상이고요. 그래서 저도 도준이랑 연기할 날이 무척 기대됩니다.”
고민하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 씨 말이 그렇다면…….”
그때, 도준이가 손에 물을 묻히고 뛰어왔다.
그러더니 확, 엄마 얼굴에 물을 뿌린다.
“기습이다, 헤헤!”
해맑은 표정의 도준은 진지한 얼굴의 엄마를 보더니, 사색이 되었다.
“엄마, 미안해…. 아파? 나는 그냥 장난치려고…….”
“아니야. 도준아, 형하고 같이 서봐. 엄마가 사진 찍어 줄게.”
태주는 얼른 도준의 손을 잡고 옆에 섰다.
이혜영이 그 모습을 보고 살포시 웃었다.
“앞으로는 내가 우리 도준이 형이자 아빠야. 그러니까 잘 따라야 해. 알았지?”
“응!”
도준이의 힘찬 대답에 태주는 씩 웃었다.
그가 아역배우였을 때 선배들이 다정하게 대해준 것처럼, 그 또한 도준이에게 잘해줄 것이다.
* * *
어두운 사무실 안.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고 있다.
-자기야, 어떻게 된 거야. 우리 애가 떨어졌다고!
“그러니까 애 연기 시키는 건 그만하라고 했잖아. 아역들도 요즘에는 다 실력 보고 뽑는다고.”
-왜 안돼? 그 영화에 자기가 돈 투자해서 제작자 자격으로 우리 애 끼워 넣으면 되잖아! 자기 애 앞길 열어주는 건데, 그거 하나 못 해줘?
“이미 결과까지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뒤집어. 게다가 요즘에 그런 짓 했다 가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 한순간이야! 투자도 이미 거절당했고!”
다다다 몰아치고는 남자가 전화를 제멋대로 끊었다.
그러자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여튼 실력 없는 것들이 어디 끼워달라고 이렇게 성화야.”
냉랭한 표정을 지은 장희재가 중얼거렸다.
“지수야, 너 놀 만큼 놀았잖아. 적당히 하고 그 여자 이제 버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리자.
낯익은 번호에 장희재가 기다렸다는 듯 받았다.
“그래, 시준아. 한태주에 대해서 알아낸 건 있고?”
-네, 정말 흥미롭더라고요. 한유경 씨가 왜 한태주 씨에게 할아버지와 사촌들이 있다는 걸 숨겼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부모가 죽은 이후, 한태주에게 남은 친족은 고모랑 사촌 동생이 전부인 거 아냐?”
-그게 아니었습니다.
수화기 너머 탁시준이 흥분한 듯 말했다.
“한유경 씨와 한태주의 부친 한재경 씨는 전직 대법관 강대원 씨의 두 번째 부인의 소생입니다.”
탁시준의 말에 장희재가 눈을 번뜩였다.
“한태주한테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다고? 본인도 아는 사실인가?”
-본인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태주의 고모인 한유경 씨가 의도적으로 숨긴 듯합니다.
“그럼 한유경과 강대원 측은 아직 연락하는 건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아볼까요?
“됐어. 내가 직접 알아보지.”
장희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 그리고 시준아. 이번에 모브픽쳐스랑 공동 제작하는 그 영화. 혹시 아역 남는 자리 있는지 좀 알아봐. 그래, 우리 측에서 추가 투자한다는 말도 좀 흘리고.”
전화를 끊은 그는 수첩을 뒤적였다.
“한태주가 유독 여름 스케줄이 바쁘군. ‘하루세끼’에 영화 ‘탈출’, 그리고 8월에는 로카르노 영화제까지.”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작한 영화 ‘탈출’.
팬들과 이선우의 도움으로 목표액의 400% 넘게 모은 건 물론. 신생 투자사의 100억 추가 투자로 인해 최근 충무로의 가장 큰 화젯거리다.
그리고 이런 관심의 중심에는 한태주가 있다.
영화 ‘광대’로 대중성과 흥행을 모두 잡은 배우라는 인식이 강해진 그는, 대중의 본격적인 저울에 올랐다.
흥행이 보장된 다른 영화들을 제치고 독립영화 출신 양군보 감독의 입봉작을 택한 패기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이 반, 실패할 것이라는 사람이 반인 지금.
장희재도 한태주를 잡느냐, 버리느냐의 기로에 섰다.
한태주는 백시영처럼 자기 손에서 노는 배우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백시영보다 더 크게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 더욱 욕심난단 말이야.”
회사 대표로서 스스로 잘 크는 배우만 한 상품이 없기에, 장희재는 군침을 삼켰다.
“한태주가 날 벗어나려고 한다면, 그 생각을 뒤집을 만한 유혹을 쥐여주면 되지.”
한태주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한 그였다.
그리고 오늘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태주 고모님 되시죠. 드림액터스 장희재 대표입니다. 태주 일로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의심 가득한 상대편에게 그가 거부할 수 없는 한마디를 던졌다.
“대법관으로 퇴직하신 강대원 씨. 한유경 씨가 그분의 딸이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들의 권리를 되찾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런 권리 따위, 필요 없어요.
“예?”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이런 일로 전화 주지 마세요. 저희는 저희끼리 잘살고 있으니까.
뚜- 뚜-
순식간에 끊긴 전화에 장희재가 어이없는 표정을 했다.
“도와주겠다는데, 뭔 반응이 이래?”
* * *
동 시각.
“뭐야, 이 남자?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태주가 보호자로 내 번호를 알려준 건가?”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린 한유경.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상황을 복기했다.
“그런데 정말 내가 그분 딸이라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태주가 알려줬을 리는 없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문투성이였다.
그녀가 화장대 서랍을 열어 깊숙한 곳에 숨겨둔 사진을 꺼내 들었다.
어릴 적 그녀와 오빠, 그리고 뒤에 서 있는 중년의 남자.
“진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태희를 비행기 태워주고 있던 태주에게 대뜸 물었다.
“너희 대표님, 너 뒷조사 같은 거 하시니?”
그 말에 태주가 벌떡 일어났다.
“뒷조사? 그게 무슨 소리야, 고모?”
“아니, 말이 잘못 나왔네. 너희 대표님, 소속 배우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족관계, 신상 정도는 파악했겠지. 그런데 왜?”
한유경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그럼 태희랑 엔간히 놀고 자라.”
고모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자 태희가 다시 태주 곁에 붙었다.
“오빠, 비행기 놀이 다시 해줘. 응?”
“어? 알았어.”
고모가 던진 말이 태주의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표님이 뒷조사한다니? 뭘 알아냈길래? 그보다, 고모가 그런 걸 왜 의심하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태주의 핸드폰이 울렸다.
동락의 전화였다.
-태주야, 내가 연출부 소속 스태프로 너한테 직접 연락할 줄이야!
“내가 조연출님이라고 불러 드려야 하나?”
-서 조연출님, 어감 좋네!
지난번 변태준 감독의 연출부에 소속되어 영화 참패의 쓴맛을 본 서동락.
이번에는 상업영화 스태프를 모집한 양군보 감독의 휘하에 들어갔다.
규모는 작지만 배울 게 많아 알차다고 했다.
-내일 고사 지내고 바로 리딩한대.
“알았어, 내일 보자.”
-태주야.
잠시 망설이던 서동락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네 옆에서 나 정말, 열심히 잘할 거야. 양 감독님한테 나 추천해준 거, 잊지 않을게.
“멋쩍게 왜 그러냐. 네가 연출 보는 눈이 좋으니까 얘기한 거 가지고. 그럼, 내일 보자.”
태주가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보자 태희는 이미 방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졸려서 먼저 잔다는 태희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고, 태주가 고모의 방을 기웃거렸다.
살짝 열린 방문에서는 어둠만이 흘러나왔다.
[자나 보네.]‘그러게요.’
태주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까 고모가 말했던 거 뭐였을까요? 대표님이 뒷조사한다는 그 말.’
[장 대표가 정보력이 뛰어나긴 해. 내가 고아라는 거,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그 인간이 먼저 알아냈거든.]‘그런데 고모가 그런 걸 왜 물어본 걸까요?’
이중협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흠……. 아마 장 대표가 너희 고모한테 무슨 소스를 던진 거 같은데.]‘도대체 뭐지?’
머리가 무거워진 태주가 침대에 누웠다.
고모한테 물어보고 싶지만, 당장 내일 영화 리딩이 있다.
“일단 닥친 일부터 넘기자.”
태주는 대본 속 대사들을 암기하다 잠이 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있던 송현수가 이중협에게 중얼거렸다.
[원래 연예인은 연기 말고도 신경 쓸 게 이렇게 많나요?] [연예계만 그렇겠어? 다른 직업군도 다 그렇지.] [하긴, 그렇긴 하죠.]가만히 생각에 잠긴 송현수가 덧붙였다.
[태주 씨는 워낙에 좋은 사람이라, 주변에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는데…….] [좋은 사람이라 좋은 일만 생겼으면, 착한 사람들이 빨리 죽는 일에 왜 있겠어?]시니컬한 표정의 이중협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장희재 대표를 주시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중협이 살아있을 적에도 그는 늘 필요 이상의 정보를 갖고 있었으니까.
예를 들면, 이중협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엄마 성을 따랐다는, 그런 정보 말이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