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확신 있는 모험 (1)
다음날, 오전.
영화의 성공 기원을 위해 제작사에서 마련한 제사상 앞에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송도준과 함께 태주가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태주 씨 왔어? 도준이도 왔구나?”
“안녕하세요.”
태주는 자기 손을 생명줄처럼 꽉 잡는 도준을 바라보았다.
연기할 때만큼은 그렇게 당당하던 아이가, 지금은 새삼 부끄럼을 타고 있다.
만 원짜리 지폐를 꽂은 돼지머리를 보고는 흐익, 겁을 먹어 태주에게 착 달라붙기도 했다.
그 모습에 양군보 감독이 혀를 찼다.
“아이고, 도준아. 촬영하면서 좀비들 수천 명은 봐야 할 텐데, 그리 겁이 많아서 어떡하냐.”
“돼지머리랑 고사 지내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 그러는 걸 거예요.”
광고와 드라마는 찍었지만,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던 도준이었다.
어린 아역배우를 귀엽게 보던 스태프가 태주를 가리켰다.
“무서워할 거 없어. 태주 형 봐, 저렇게 용감하잖아.”
그 말에 태주가 절을 하다 말고 이선우의 손을 잡고 서 있는 도준을 힐끔거렸다.
그러다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에 놓인 돼지 코에 얼굴을 처박아 버렸다.
“아이고!”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태주가 마치 슬랩스틱을 한 것처럼 보여서였을까.
주변에서 예상치 못한 큰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태주 씨! 돼지머리에 절하라고 했지, 뽀뽀하라고는 안 했는데요!”
양군보 감독의 장난스러운 말을 태주가 자연스레 받았다.
“저희 영화가 잘되려고 그런가, 돼지가 저한테 뽀뽀를 날리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 말에 주변에서 또다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졌다.
“진짜 그러네! 돼지도 우리 영화 대박을 기원한 거지!”
“태주 씨, 돼지한테 뽀뽀 더 해!”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도준이 이선우의 손을 놓고 태주에게 달려오더니, 냉큼 태주의 볼에 뽀뽀했다.
영문을 모르는 태주가 의아해하자, 도준이 수줍게 설명했다.
“태주 형한테 뽀뽀하면 더 잘될 것 같아서요!”
너무나 귀여운 아이의 순수함에 모두가 감탄했고.
그 분위기를 이어 대본리딩이 진행됐다.
대세 배우 한태주, 톱스타 이선우, 오디션을 통해 뽑힌 아역배우 송도준.
이 셋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는 리딩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순조롭게 이어졌다.
함께 몰입한 양군보 감독에게 신예지가 속삭였다.
“진짜 다들 너무 잘하는데요. 이선우 씨가 생애 첫 악역을 이렇게 잘할 줄 몰랐어요. 태주 씨랑 도준이 합도 너무 잘 맞고요. 특히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을 텐데 아들을 사랑하는 부성애 연기를 어쩜 저렇게 잘할까요?”
“그게 태주 씨의 매력이죠.”
한참을 리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양군보가 빠르게 노트에 휘갈겼다.
-한태주, 예전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성애, 사랑의 감정 풍부하게 연기로 표현. 클로즈업 요망.
* * *
며칠 후.
태주는 ‘하루세끼’ 촬영을 하러 정선에 왔다.
그런데 멍한 얼굴로 기계적으로 요리를 한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덥다….”
더운 열기 속에서 힘들게 요리를 하고 있자 하강웅이 그의 땀을 닦아주었다.
“와, 형 되게 피곤하겠다. 얼마 전에 영화 리딩했다면서요. 어제는 광고 추가 촬영하고.그런데 오늘은 새벽부터 여기 온 거예요?”
“그래도 오늘이 나아. 아무 생각 없이 요리하고 농사짓는 게 나한테는 힐링이거든.”
“너한테는 힐링인데 나한테는 킬링이다! 킬링세끼!”
장작을 패고 온 임강현이 옆에 한 무더기의 나뭇가지들을 내려놓았다.
“아, 왜 이렇게 덥냐. 이제 장마철인가?”
“그렇게 더우면 옷을 좀 벗어라, 강현아. 여름인데 긴팔이 뭐냐? 보는 내가 다 덥다.”
“이거 기능성이거든? 그리고 너야말로 나시가 뭐야, 남사스럽게!”
임강현은 태주가 입고 있던 검은색 민소매를 가리켰다.
“너 지금 몸 자랑하려고 일부러 그거 입은 거지?”
태주가 너른 어깨를 으쓱했다.
“뭔 소리래?”
그때.
김해송 피디가 그들 모두를 불러 모았다.
“자, 여러분. 정규 편성되었으니 여러분들에게 전할 소식이 있습니다.”
“게스트 분이 오시나요?”
하강웅의 추측에 김해송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하강웅 씨는 친한 아이돌분들이 많죠?”
“많은 건 아닌데, 설채빈하고는 친해요.”
“그럼 설채빈 씨가 오면 좋겠네요.”
“네? 그 반대예요. 분명 채빈이가 오면 태주 형이 요리 잘하는 거 알고 이것저것 만들어달라고 할 텐데. 그럼 우리 일거리가 늘어나잖아요!”
하강웅이 온몸으로 거부감을 외치자 임강현이 그를 가로막았다.
“야, 여자 게스트면 좋은 거지 뭘 그래. 김 피디님, 전 설채빈 씨 찬성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 번째 게스트는 설채빈 씨가 아닙니다.”
“네? 그럼 누군데요?”
“한태주 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저하고요?”
부채를 부치고 있던 태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머릿속을 풀가동해 자신과 관련 있는 여자 연예인을 나열해 보았다.
처음 생각나는 윤수안은 며칠 전 문자 했을 때 해외 화보 촬영 때문에 한국에 없다고 했으니까, 멀리 두고.
그럼 염수정 선배님?
이중협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정이는 예능 잘 안 찍는데.]혼란에 빠진 태주를 보던 김해송이 씩 웃었다.
“자, 그럼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하루세끼의 첫 번째 게스트는 바로……!”
그의 손이 여유롭게 가리킨 곳을 쳐다보자.
하얀 티에 청반바지를 입고, 작은 얼굴을 다 가리는 밀짚모자를 쓴 이선우가 총총거리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톱스타의 등장에 제작진도, 출연진도 모두 난리가 났다.
“이선우 씨입니다!”
“오마이갓, 대선배님이시잖아!”
호들갑을 떠는 임강현, 바짝 긴장한 하강웅을 비롯해 태주도 벌떡 일어났다.
세 명의 건장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런 인사하지 말아요, 다들. 친구 같은 형 컨셉으로 다가가고 싶으니까.”
이선우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각자 악수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태주 앞에 선 그는 유독 환한 미소를 내보였다.
“안녕, 태주야. 방송에서 만나는 건 ‘당누봄’ 토크쇼 때 보고 처음이지?”
“아, 예.”
“이번에도 재밌게 놀아보자! 나는 동생들이랑 같이 캠핑하는 거 같아서 엄청나게 기대된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이선우의 눈빛에 태주는 속으로 크흡, 신음을 삼켰다.
여기는 같은 그런 낭만적인 장소가 아닌데.
게다가 선배님을 모시고 밥을 먹는다?
도대체 어떤 요리를 해드려야 좋아할지, 찐 팬의 마음이 된 태주는 두근거렸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이선우의 등장으로 촬영장은 한껏 활기가 돌았다.
평소 예능에 잘 출연하지 않는 이선우인지라 제작진은 이번 벌써부터 신이 나 있었다.
반면 임강현과 하강웅은 이선우를 어려워하는 듯, 태주의 뒤에 붙어 힐끔거리기만 했다.
그래서 그나마 그와 친분이 있는 태주가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 대화를 이끌었다.
물론 이선우의 포스에 대화가 뚝뚝 끊기기 일쑤였지만.
“내가 너무 재미없나? 태주야, 이게 정말 재미없냐? 소가 계단을 오르면? 소~오름!”
머리를 긁적이는 이선우에게 태주는 그저 미소를 지어 주었다.
‘저 아재 개그만 안 했더라도 아마 괜찮았을 텐데. 누가 중협이 형 친구 아니랄까 봐, 아재 개그 홀릭이실 줄은 몰랐네.’
이중협더러 들으라고 한 태주의 혼잣말.
[야, 다 들려. 그리고 재밌기만 하구만, 뭘 그러냐.]이중협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선우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행히 분위기가 더욱 어색해지기 전에, 김해송 피디가 새로운 미션을 주었다.
“오늘 미션이 있습니다. 저녁때 마을회관 어른들에게 한 끼를 대접하는 겁니다. 이선우 씨도 저희와 함께하실 거고요.”
태주가 혼란스러움에 손을 들었다.
“어르신들이 몇이나 되시는데요?”
“한 10명 정도는 오실 거라고 예상합니다.”
“감독님, 갑자기 그런 미션을 주시면 너무 당황스러운데요.”
하강웅이 걱정스러운 듯 태주를 힐끔거렸다.
“태주 형도 그렇게 대용량 요리는 해본 적 없을 테고….”
그 말에 태주가 헛웃음을 지었다.
“뭐야. 이제 내가 요리하는 건 당연하다, 이거냐?”
“오늘 보니까 형, 저번 촬영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것 같아서요. 헤헤.”
하강웅의 말을 받아 임강현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 태주야. 너 요리가 일취월장하고 있어. 심각할 정도로 맛있게 잘한다니까, 너?”
그 말에 태주가 어깨가 살짝 으쓱했다.
사실은 저번에 성불한 신득연의 ‘자취 만렙 요리’ 능력을 받아 요리가 발전하기는 했다.
김해송이 고민에 빠진 태주를 보더니 씩 웃었다.
“어때요, 10인분 저녁 식사 요리, 하실 수 있겠어요?”
“여기서는 못하고, 마을회관 부엌을 빌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태주가 이선우를 힐끔거리며 덧붙였다.
“지금 당장 장부터 봐야 할 거 같은데. 선배님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하늘 같은 선배님에게 장을 보는 걸 시킬 수 있나?
게다가 아까 부엌살림 구경하는 걸 보니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거 같았다.
집에서 유일하게 먹는 게 와인과 비스켓이라니, 말 다 했다.
부담 반, 걱정 반의 태주에게 이선우가 호기로운 대답을 내놓았다.
“걱정하지 마. 내가 남들 장 보는 거 많이 봐서, 재료 고르는 건 잘해!”
[자신감은 만땅이군.]‘이선우 선배님. 뭔가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메뉴판만 보셨지, 한 번도 장 보신 적 없으실 거 같은데…….’
이중협과 태주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 장 보는 건, 제법 스펙타클할 것 같다.
* * *
갑작스러운 미션에 태주는 바쁘게 움직였다.
이선우가 그런 그에게 좋은 재로 고르는 걸 도와주겠다며 붙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시내로 나와 장을 봐 보니 이선우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태주야. 양파는 이 정도면 되겠냐?”
짜장밥에 쓸 양파를 고르겠다던 이선우는 아기 손만 한 자그마한 양파를 두 개 들고 왔다.
“선배님, 이 정도면 1인분밖에 안 나올걸요.”
“아, 짜장밥에 양파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
정말 몰랐다는 이선우의 말간 눈동자에 태주가 피식 웃었다.
“선배님, 제가 고를게요.”
저녁 메뉴인 짜장밥을 준비하기 위해 태주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예쁘게 생긴 양파들이 담긴 한 망을 카트에 담으니 이선우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태주야. 내가 아까 장 잘 본다고 큰소리쳤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되고….”
태주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습니다. 선배님께서 장 보시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셨잖아요.”
이선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이 먹고 요리도 못하니까 좀 그러네. 그래서 옆에 여자가 안 붙나?”
“에이, 요리하고 여자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니야. 태주 너 요리 잘한다고 소문나서 여자 연예인들이 얼마나 관심 많은지 알아?”
담담하게 당근을 고르는 태주를 이선우가 짓궂게 쿡, 찔렀다.
“요섹남이 요즘에 대세라면서. 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 그래서 네가 인기가 그렇게 많나 봐.”
그때, 태주와 이선우 곁으로 쭈뼛쭈뼛 걸어오던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손에 수첩과 펜을 들고 있는 모습을 이선우가 발견하고 싱긋 웃었다.
“삼촌 사인받으려고? 이리 와, 해줄게.”
“아니요.”
양갈래의 여자아이가 수줍게 태주의 옷소매를 끌어당겼다.
“태주 오빠 사인받으려고요. 저 낭만고양이 팬이에요!”
“저는 ‘광대’ 팬이요. 거기서 공중제비 돌고 막 그러는 거 엄청 멋있었어요!”
“얘들아, 이선우 삼촌도 좋아한다고 해야지.”
뒤에서 아이들의 엄마인 듯한 여자가 코치했지만, 아이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선우는 누군지 몰라요. 한태주 오빠는 원래 좋아했고요.”
멋쩍은 이선우가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누가 뭐랄 것 없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거참, 한태주한테 내가 밀리는 때가 다 있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