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확신 있는 모험 (5)
그 말에 장희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태주 말씀입니까? 하지만 지금 한국 연예계에서는 윤수안, 김결이 좀 더 톱급입니다만….”
“한태주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는 세계에서도 통할 겁니다.”
피셔가 확신을 하고 말을 이었다.
“영화 ‘그림자 무사’, ‘광대’ 등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열정적임과 동시에 매우 섬세했어요. 감정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는 건데, 그런 장점을 지닌 배우는 흔치 않죠. 그리고 한태주 씨, 영어도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아, 맞습니다….”
“그럼 맡을 수 있는 배역도 좀 더 많아지겠네요. 백시영 씨와는 다르게 말이죠.”
잊고 있었던 상처를 끄집어낸 피셔에게 장희재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전에 백시영과 함께 할리우드를 돌아다닐 때, 피셔 감독과도 접촉한 적 있었지만. 영어가 안돼 영화 출연이 불발된 적 있었다.
“그렇죠, 하하…….”
“아무튼, 저희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블록버스터 ‘이글맨-블랙 피닉스’에서 한태주 씨가 꼭 연기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피셔는 기대감 어린 미소로 덧붙였다.
“시놉은 팩스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태주 배우에게 꼭 보여주세요.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 * *
화상 회의가 진행되던 스크린이 꺼지자, 장희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
장희재가 씩씩거리며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시영이 사고 친 걸 언제까지 우려먹을 건지. 회의 때마다 매번 백시영 소리잖아.”
옆에 있던 탁시준이 소심하게 대꾸했다.
“시영이가 영어 못해서 프로젝트 망친 건 사실이잖아요. 저는 이번에 피셔 스튜디오에서 영화 제의 온 것만 해도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지…….”
장희재가 담배를 한 대 베어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한태주냐고!”
“대표님, 베일릭스에서 ‘낭만 고양이’ 엄청나게 뜬 거 모르십니까? 몇 달 전에는 ‘그림자 무사’도 완전 핫했잖아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한태주도 핫해졌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의 연기에 세계 팬들도 빠지기 시작한 거죠. 특히나 한태주는 표정 연기를 섬세하게 하는데, 그게 미국 시장에도 먹힐 거라고 판단한 거고요.”
탁시준의 분석에 장희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태주가 최근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사실이지. 일본에서 한 팬사인회도 반응 좋았고. 하지만…….”
그의 눈치를 살피던 탁시준이 조심스레 말했다.
“이번이 한태주한테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영어도 잘하니까, 이번 기회에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거죠.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잖아요.”
“흠……. 이글맨 시리즈야 워낙 흥행불패로 유명하니까, 출연만 하면 평타는 치겠지.”
“그럼 한태주 측에게도 전달할까요?”
“아니야, 너무 급하게 서두를 거 없어.”
“예?”
“내가 차 팀장한테 직접 연락하지.”
장희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역시 한태주보다는 결이가 이 작품에 더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이번에 군대 다녀와서 드라마 잘 안착했는데, 영화도 히트 한번 쳐야지.”
“그래도 차 팀장한테는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피셔 감독 측에서는 한태주를……”
“떠먹여 줘 버릇하면, 애 버릇 나빠져.”
단호한 표정의 장희재가 재차 말했다.
“그러니까 결이한테도 시놉 보내. 나중에 피셔 감독 앞에서 연기하려면 대사는 외워야지. 빨리 외우라고 해.”
“피셔 감독이 로카르노에 시상자로 가니, 시간은 충분할 겁니다.”
“아무튼, 결이 녀석 준비시켜. 우리한테 한태주 대체재가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그래야 한태주도 바짝 긴장하고 잘하지.”
보스의 뜻을 어림짐작한 탁시준은 결국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장 대표가 배우 길들이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 * *
다음 날.
턱시도를 빼입은 태주는 영화 출연진들과 함께 로카르노 영화제에 참석했다.
이탁원 감독과 나란히 걸어가는 태주에게 수많은 플래쉬가 쏟아진다.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보던 태주가 이탁원 감독을 보며 씩 웃었다.
“감독님, 수트핏 정말 잘 받으시네요. 꼭 배우 같으세요.”
“안 그래도 아까 세진 씨가 그러더라고요. 어떤 기자가 자기를 감독으로 착각했다는 거예요. 내가 배우고. 하하!”
능글맞은 이탁원의 반응을 보니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듯했다.
그러나 태주는 아직도 긴장 상태였다.
[기, 긴장 풀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면 조, 좋아서 난리 쳐도 모자란 데. 왜 이리 긴장을 해, 했어?]‘지금 형 때문에 더 긴장되거든요? 형 왜 이렇게 떠는 건데요?’
태주가 억울한 듯 옆에 있던 이중협을 바라보았다.
당당한 체격의 그가 두 손을 모은 채 이를 달달 떨고 있는 게 보인다.
‘지금 형이 저보다 더 긴장한 것 같아요. 염수정 선배님이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돼서 그런 거죠? 저 때문이 아니라!’
[아니거든?]그때, 가까이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으니.
“한태주 씨, 저 우성림입니다! 여기 좀 봐주세요!”
태주는 기자들 속에서 환한 미소로 서 있는 우성림을 발견했다.
“어, 안녕하세요!”
반가움에 태주가 환히 웃자, 여기저기서 플래쉬가 터진다.
찰칵!
그러자 우성림이 그에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남우주연상 수상 응원하겠습니다! 한태주 씨 파이팅!”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응원에 태주는 얼굴이 붉어졌다.
* * *
몇 시간 후.
수많은 사람 속에 앉아 있는 태주의 표정이 점점 편안해졌다.
여러 식순을 거쳤고 많은 상이 시상됐다.
그 상들은 모두 연륜이 있는 배우들에게 돌아갔다.
그 모습에 나이가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하는 태주는 자신이 상을 받기는 어려울 거로 생각했다.
하여 그동안 은근한 기대를 하고 있던 마음을 한결 놓았다.
‘기대를 안 하니까 편하네.’
그러자 양옆에 있던 이탁원 감독과 신예지 대표가 그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얼굴색이 점점 좋아지네요? 이제 긴장이 좀 풀린 거예요?”
“네. 그냥 이 영화제를 즐기려고요.”
신예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상을 받을 수도 있는데, 한 마디라도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에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받게 된다면 감사한 분들에게 간략하게 인사하죠, 뭐”
그리고 얼마 후.
영화 ‘광대’의 감독상 수상에 태주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연단에 걸어 나온 건장한 남자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앤드류 피셔다!”
“로카르노 영화제에 시상자로 온다더니, 드디어 얼굴을 보는군!”
“피셔 만세!”
할리우드의 거장 앞에서 객석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가 마이크 앞에 서자 태주도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본 건 마찬가지였다.
이선우를 우상으로 좋아했다면 앤드류 피셔는 거장으로서 존경했다.
배우는 연기의 세계를 구축하는 연주자라면 영화감독은 연기 세계를 설계하는 지휘자라고 생각했기에.
그중에서도 피셔 감독은 배우들을 연출하는데 도가 텄고, 심리적 긴장감을 영화에 녹여내는 것의 대가였다.
‘저런 거장의 지도 하에 연기하면 정말 재밌겠다.’
그런데 자세히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도대체 누굴 닮은 거지?’
태주가 남몰래 생각하던 그때.
그의 귓가에 그의 이름이 똑똑히 들려왔다.
“남우주연상 부문. ‘광대’의 한태주, 축하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게 믿기지 않아, 태주는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태주 씨, 축하해요!”
“세상에. 나는 태주 씨가 남우주연상 될 줄 알았어!”
그런 그를 옆에 있던 이탁원 감독, 신예지 대표, 그리고 우아한 염수정마저 난리가 나서는 연단으로 올려보냈다.
태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상을 받았다.
믿기지 않았다.
손에 묵직한 상이 쥐어진 것도.
피셔 감독이 시상하는 것도.
마이크 앞에 선 태주는 눈앞이 깜깜했지만, 애써 입을 열었다.
머릿속으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느라 천천히 말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상을 받을지 전혀 예상을 못 해서 소감을 준비 못 했습니다. 해서 영화를 위해 노력해주신 분들께 인사드리고 내려가겠습니다. 영화 ‘광대’를 위해 물심양면 노력해주신 이탁원 감독님, 신예지 대표님, 염수정 선배님, 주세진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한 이들을 열거하다 보니 태주의 눈에 객석에 앉아 있는 이들이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고 눈물을 훔치는 우성림, 턱을 괴고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앤디 피셔가 보였다.
“……발전하는 모습, 그리고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게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주는 손에 든 상을 높이 들어 올렸다.
* * *
영화제가 끝나자 화려한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태주의 곁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의 취재.
젊고 잘생긴 그와 말을 붙여보려는 여배우들.
한국에서 온 젊은 배우에게 사람들이 수많은 관심을 보이던 그때.
태주는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남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피셔 씨!”
“앤디라고 부르라니까요.”
검은 머리를 가지런히 묶은 앤디가 씩 웃었다.
“오늘 상 받은 거 축하합니다. 인제 보니 당신, 몸값이 꽤 나가는 배우였더라고요.”
“하하. 그럼 출연료를 그만큼 주실 건가요?”
“나중에 성공하면 몰아서 드릴게요.”
앤디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내 영화에 출연하겠다는 약속,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니겠죠? 당신 매니저 허락까지 받았으니 이제 번복할 수 없어요.”
앤디의 말에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스케줄 다 빼놨어요. 오히려 당신이 발 빼면 제가 곤란합니다.”
그때, 그들 사이를 갈라놓은 중후한 목소리가 있었으니.
“한태주 씨가 네 영화에 출연하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 그이는 이미 우리 회사랑 계약이 되어 있거든.”
태주가 홱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피셔 감독이 서 있었다.
* * *
앤드류 피셔.
1980년대를 풍미한 할리우드의 거장이자 뛰어난 연출력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감독.
미중년으로도 유명한 그는 군살 없는 건장한 체구를 자랑했는데, 꼭 그것이 앤디 피셔와 똑 닮았다.
태주는 피셔 감독과 앤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피셔 감독의 짙은 눈썹이 앤디의 눈썹과 똑같다.
‘혹시 앤디가 앤드류 피셔의 아들인 걸까요?’
머릿속 지식을 총동원한 이중협이 말했다.
[글쎄. 앤드류 피셔가 자식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렇지만 둘이 닮은 건 확실해.]‘둘이 사이가 안 좋은 것도 확실한 거 같네요.’
그때, 피셔 감독이 앤디를 향해 냉랭한 눈빛을 쏘아댔다.
“알아들었으면, 이만 비키지?”
그 말에 앤디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건조한 눈빛은 살짝 상처받은 것 같기도 했다.
“한태주 씨에게 볼일이 있어 먼저 찾아온 건 저였습니다.”
“너 같은 애송이가 무슨 볼일이 있다고. 저리 비켜. 한태주 씨한테 할 말 있으니까.”
피셔 감독이 냉기가 풀풀 풍기는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 모습에 태주는 서둘러 앤디에게 귀엣말을 속삭였다.
“나중에 봅시다, 앤디 씨. 내가 저녁에 연락할게요.”
그 말에 앤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피셔 감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둘만 남았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피셔 감독님. 한태주라고 합니다.”
“이미 당신 이름은 들어 알고 있어요. 미스터 장 회사에 소속된 배우니까.”
그 말에 태주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아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 감독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제가 감독님 회사와 계약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그 말에 피셔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한데.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