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톱배우의 작품 선구안 (1)
장희재의 말에 탁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대표님, 지금 차 팀장은 자기 팀 챙기는 것만으로도 바쁩니다. 늘어난 식구들도 만만치 않고요.”
“그래봤자 한 사람 더 늘어나는 건데, 뭐 어때?”
“차 팀장이 쌩짜 신인을 맡은 적은 없으니, 일단은 한번 의사를 물어보고….”
“시준아.”
장희재가 짜증난 기색을 드러냈다.
“차 팀장 길 좀 들이려는데 방해는 하지 말자, 응?”
그 말에 탁시준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용석이가 장 대표한테 단단히 찍혔네. 한태주가 잘 나가서 질투하시는 걸지도.’
* * *
그날 오후.
차용석이 엄청난 환호 세례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태주는 영화 ‘탈출’ 촬영을 위해 박인우를 시켜 파주 촬영장으로 보낸 뒤였다.
“팀장님, 진짜 너무하세요! 저희한테 언질도 안 주고, 몰래 태주 씨 영화 찍고 오시다니!”
“기자회견 보는데 무슨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이라도 받고 오는 줄 알았잖아요. 기자들이 얼마나 한태주 씨한테 열광적이던지.”
“저희가 얼마나 기자들한테 시달렸는지 아세요?”
“이글맨 시리즈 거절했다고 해서 다들 한태주 씨 머리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새로 찍은 단편영화, 작품성 있는 거 맞아요?”
“당연히 있겠지, 한태주 씨가 괜히 선택했겠어?”
남자 직원이 차용석을 보고 말했다.
“지금 할리우드도 난리 났더라고요. 앤드류 피셔 감독의 아들이 단편영화로 데뷔한다면서,아들과 아버지의 대결 구도로 가고 있던데요?”
“다행히 할리우드 가십지가 아니라 BBC 뉴스에 앵커하고 인터뷰했더라. 자기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을 생각은 전혀 없고, 자기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꿈이라면서 말이야.”
“후광을 입지 않았다기에는, 앤드류 피셔 아들이라는 걸로 이미 관심을 많이 끌지 않았어요?”
“그게 우리 전략이었지.”
차용석이 씩 웃었다.
“어쨌든 관심을 끌어야 모든 것이 되는 거니까, 결과적으로는 잘 됐어. 게다가 이번에 찍은 단편영화, 성공적으로 선댄스 영화제에 올라갈 것 같아. 선플라워 프로덕션에서도 장편 영화로 제작하는 거 검토 중이라니까 조만간 답 오겠지.”
“오,이런 식으로 한태주 씨 할리우드 진출하는 건가요? 그럼 우리도 영어 공부 좀 해놔야겠는데?”
“진작에 했어야지, 임마.”
기쁘게 떠들썩한 분위기의 사무실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재빨리 전화를 받은 직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팀장님! 대표님이 부르신답니다.”
그 말에 차용석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장희재 대표와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중이었기에.
* * *
“이번에 팀을 새로 개편했는데, 차 팀장이 해체된 모델 팀을 맡아줘야겠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장 대표와 마주하자마자 차용석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있다.
장희재가 눈썹을 까닥이며 그에게 말했다.
“우리 회사에 모델 파트 있었던 건 차 팀장도 알 거야. 그런데 그쪽이 이번에 해체해서, 남은 모델 1명을 3팀에 합류시켰어.”
“하지만 대표님. 모델은 제 소관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지혜 팀장이 그쪽 애들 담당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장희재가 골머리를 앓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델 쪽이 워낙에 매출이 안 나왔거든. 나갈 애들은 진작에 나갔고. 이제 한 명 남았는데, 연기자 쪽으로 키워보려고 그래.”
“걔가 오케이 해요?”
“자기도 본인 커리어가 다운되고 있는 거 아는데, 어쩔 거야. 연기자 쪽으로라도 잘 풀릴 수 있으니, 도전해봐야지. 이미 그런 선례도 여럿 있고.”
“글쎄요. 백시영은 별로 좋은 선례가 아니죠.”
“뭐 하여튼.”
장희재가 벌떡 일어났다.
어서 대화를 끝마치고 짐을 차용석에게 떠맡기고 싶은 모양새였다.
“차 팀장이 알아서 잘해 봐. 애들 잘 키우는 데는 선수잖아?”
“이렇게 갑자기 저한테 떠맡기는 건 당황스럽습니다, 대표님.”
“그래서, 못 하겠다고?”
그 말에 차용석이 자그마한 코웃음을 삼켰다.
무표정한 얼굴 뒤 불꽃이 타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지금 저한테 화풀이하시는 거 다 압니다, 대표님. 태주가 대표님 뜻대로 안 돼서 불안하신 거잖아요.”
갑작스럽게 정곡을 찌른 차용석.
장희재는 당황스러움을 애써 숨겼지만, 이미 얼굴은 붉어진 뒤였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차 팀장?”
“피차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팀에 새로운 팀원 받는 거,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차용석은 장희재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표님 멋대로 하시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네가 내 앞에서 마지막을 논한다고?”
장희재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용석이 네가 어떻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중협이 죽고 나서, 다 죽어가던 널 다시 거둬준 게 누군데.”
“대표님. 제가 제 발로 다시 여기 돌아왔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차용석은 장희재 앞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사람 좋은 그의 얼굴에는 비틀린 미소가 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자였다.
“제가 중협이 형의 아픈 기억이 있는 이곳에 굳이 다시 돌아온 이유가 뭔지, 대표님은 잘 모르시나 봅니다.”
“별것도 아닌 것에 의미 붙이지 마. 갈 데가 여기밖에 없으니 돌아온 거잖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차용석이 비틀린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그럼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대표님.”
* * *
달칵.
대표실을 나오는 차용석의 얼굴은 한층 굳었고.
3팀으로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능구렁이 같은 인간.”
차용석이 이를 갈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장 대표.”
6년 전, 이중협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 차용석은 고군분투하며 사고를 조사했다.
하지만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아 지쳤고, 결국 연예계를 떠났다.
그러나 그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천직은 매니저였으니까.
빛나는 스타들의 세계에 막연하게 발을 디디고 싶다는 열망으로 매니저 일을 시작한 그였다.
하나, 연기에 누구보다 진심인 배우 이중협을 만나며 스타들을 빛나게 도와주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한층 강해졌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연예계는 마냥 찬란하지 않다는 걸 바로 장희재 대표를 통해 배운 그였다.
장희재는 철저한 장사꾼이었다.
배우들은 그저 자신이 판에 놓은 장기말일 뿐이었고.
그에게 백시영이 인기 상품이었듯,태주 또한, 그렇게 다루려고 했다.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를 저울질하는 게 배우라지만, 장희재의 신념에 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
장 대표의 눈에는 배우가 상품이라지만, 차용석에게 배우란 그저 배우일 뿐이었으니까.
찰나의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몰입된 모습으로 보는 사람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희열을 만들 수 있는 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듯, 그의 담당 배우 한태주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게 했다.
태주는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새끼, 내가 지켜야지.”
차용석은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차 팀장님이 웬일이세요?
“홍은지 기자님, 저번에 말씀하셨던 것 있잖습니까. 그건 잘 파고 있습니까?”
약간의 침묵 후, 홍은지가 크하하 하는 유쾌한 목소리를 냈다.
-어머, 제가 그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해요.
“그럼, 제가 소스 하나 드릴까요?”
차용석은 머릿속 비밀 책장에서 은밀한 정보를 꺼내 투척했다.
“저희 대표님도 백시영 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만 알아 두십쇼.”
-……네?
“염수정 씨가 소속사를 괜히 옮긴 게 아닙니다.”
-잠깐만요, 팀장님, 이거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그럼,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사냥감의 냄새를 맡은 홍은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끊겼다.
차용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썩어빠진 곳에서 나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준비도 얼추 끝났고.”
손에 쥔 핸드폰을 바라보던 차용석은 고개를 다시 들었다.
지금 당장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의 믿음직한 배우이자 알게 모르게 그가 의지하는 동생.
그가 인생을 걸기로 마음먹은 하나뿐인 그의 별.
핸드폰 화면에는 한태주가 떠 있었다.
* * *
영화 ‘탈출’ 세트장이 있는 파주로 가는 길.
대본을 읽던 태주는 조수석에 앉아 박인우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런던 가서 좋았겠다. 거기 놀거리 많은데.”
“런던에서 놀기는 뭘 놀아요. 촬영하느라 일주일 내내 바빴는데.”
“그래도 런던까지 갔는데 관광은 좀 했을 거 아냐? 수안 씨 드릴 선물은 사왔냐? 엄청 기대하는 것 같던데.”
“여기서 수안 씨가 왜 나옵니까. 아, 잠깐만요, 용석이 형 전화 좀 받고요.”
태주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잘 가고 있냐고요? 그럼요, 인우 형이랑 열심히 가고 있어요.”
-그래?
“무슨 일 있어요? 형 목소리가 안 좋아 보이는데.”
태주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수화기 너머 차용석의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태주의 말에 차용석이 헛기침을 힘차게 했다.
-흠흠. 그냥 잘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 좀 했어.
“에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인우 형이 형보다 운전 잘하니까.”
-흐흥, 그래?
멋쩍은 차용석의 목소리가 태주는 왠지 걸렸다.
하루 이틀 다닌 것도 아니고,이제는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차용석은 무슨 일이 있다.
“형,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야. 너 얼른 대본 봐라, 나 끊는다.
차용석이 서둘러 끊어버린 전화.
태주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박인우에게 물었다.
“용석이 형 목소리가 안 좋은데. 형, 뭐 아는 거 있어요?”
“오늘 대표님 뵙는다고 하던데. 그거 때문에 그런가?”
장희재 대표?
“인우 형. 나 런던에 있는 동안 뭔 일 있었어요?”
“말도 마라.지금 회사 분위기 뒤숭숭하고 난리야.”
고개를 내젓는 박인우가 태주를 힐끔거렸다.
“뭐, 이건 내가 2팀 사람들한테서 들은 건데. 차 팀장님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마. 기분 나빠하실 수도 있으니까.”
“도대체 뭘 들은 건데요, 형?”
“우리 팀장님, 대표님한테 완전히 찍혔대. 3팀이 제일 잘 나가는데 회사에서 내부 포상 같은 거 안 해주는 것도 그런 일환이고.”
“찍혔다니요? 용석이 형이 수완이 좋아서 강현이도 우리 팀에 들어온 데다가 성열이 형도 영화 ‘탈출’에서 좋은 활약 보이고 있잖아요. 결과만 좋은데 왜 찍혔다는 거죠?”
“지금 대표님하고 차 팀장님하고 줄다리기하는 것 같아. 알력 싸움하는 것 같다고.”
“예?”
“너 정말 이유를 모르겠어? 너 사이에 두고 기 싸움하는 거잖아.”
박인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을 계속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