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톱배우의 작품 선구안 (6)
잠시 생각한 탁시준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아마도 영화 ‘탈출’을 선택하면서부터 대표님의 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기다렸다는 듯 장희재가 급발진했다.
“이게 다 그 늙은이 때문이야, 마루야마 회장 그 노인네 때문에.”
“에이, 무슨 소리…….”
“맞잖아! 그 양반이 투자만 안 해 줬더라도 그 영화, 그렇게 기사회생할 수 없었어. 그리고 한태주는 분명 내 품으로 다시 돌아왔을 거라고.”
거친 숨소리를 씩씩거리던 장희재가 책상을 쾅, 내리쳤다.
“내 말만 잘 들어도 이 바닥 생활 잘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노선을 벗어나려는 거냐고. 내가 깔아놓은 판에서만 놀아도 충분한데, 씨발!”
거친 언사가 난무했지만 탁시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했다.
남들 앞에서는 더없이 신사인 장희재가 사실은 깡패 못지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껏 장희재가 보여준 능력에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그가 키운 배우들이 모두 톱급으로 성장하며 그의 실력이 증명되었으니까.
“아무튼, 이번에 헤븐 엔터테인먼트에서 들어온 작품 있잖아.”
장희재가 제법 차분해진 눈을 들었다.
“얼른 한태주한테 그 작품 밀어줘. 저번에 ‘낭만 고양이’로 인지도를 높였으니 이제는 중국 시장에서 돈 쓸어 담을 차례야. 한편 당 2억 플러스 알파를 준다는데 무조건 잡아야지. 드라마 성공하기만 하면 몸값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건 시간 문제라고.”
“그런데 대표님, 그 작품은 제법 위험성이 있습니다.”
“시준아, 너는 제발 초부터 치지 마라. 왜 처음부터 안 된다고 하냐?”
“대표님.”
탁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헤븐 엔터테인먼트는 중국 회사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협찬하는 물품들도 모두 중국풍인데, 그 점이 국민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더욱이 그 작품, 역사 왜곡 논란까지……”
그때,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경쾌한 발걸음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활기찬 기색의 황재남이 대표실 안으로 들어오자, 장희재는 탁시준을 향해 턱짓했다.
“이만 자네는 나가 봐.”
장희재의 축객령에 탁시준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나왔다.
문을 닫고 내딛는 그의 발걸음은 한층 무거워졌다.
고개를 내저으며 그가 조그맣게 내뱉은 말.
“장 대표도 이제 슬슬 맛이 가는 것 같은데. 돈에 눈이 멀었어.”
* * *
“안녕하세요.”
회사를 들른 태주가 3팀 식구들에게 인사하자 조용한 목소리들이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한 분위기.
[분위기 왜 이러냐? 용석이한테 혼났나?]‘에이, 용석이 형이 부하직원들 혼낼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얼마나 성격이 좋은데요.’
[야, 성격 좋은 것하고 사람 잡는 것하고는 아무런 상관없어. 오히려 순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고.]이중협이 재잘거리는 말을 흘리며 태주가 차용석에게 향했다.
“형,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나도 있는데. 우리, 휴게실로 갈까?”
아무도 없는 휴게실로 향한 둘.
먼저 말을 꺼낸 건 태주였다.
“얼마 전에 모황국 감독님 만났어요. 이번에 새로 드라마 준비하신다고 시놉을 주시더라고요.”
“직접 만났다고?”
“네. 회사에 계속 연락했는데 바쁘다고 해서, 그냥 저한테 직접 하셨대요.”
태주의 말을 듣던 차용석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했다.
“하…. 그거 대표님 짓이 분명해.”
“알아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알고 있었어?”
태주의 말에 차용석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럼 대표님이 네가 모황국 감독 작품 하는 거 반대하는 것도 알고 있겠네?”
“네. 혹시 대표님이 미는 드라마가 따로 있는 건가요?”
“…응. 헤븐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는 퓨전 사극 드라마인데, 이거야.”
차용석이 그에게 대본 한 부를 건넸다.
제목은 ‘청룡검신’.
조선의 왕세자와 대군들이 중국에 있는 무녀들의 힘을 빌려 세종대왕의 병을 고친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보면 왕의 병을 고치는 아들들의 효심 어린 이야기였지만, 시놉과 미리 나온 1부 대본을 보던 태주의 얼굴은 점점 심각해졌다.
실존 인물을 다루는 대본인데도 곳곳에 심각한 결점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
“월병? 여기에 중국 소품들이 많이 나오네요. 그리고 조선은 소국이라 역시 속이 좁다는 대사라니…. 작가가 중국인은 아니죠?”
“아니야, 제작사가 헤븐 엔터테인먼트일 뿐이지.”
“헤븐 엔터테인먼트라면, 헤븐 리조트 산하 회사잖아요?”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이 그쪽이랑 판 벌여 놓은 게 제법 많아. 저번에 ‘조선패션왕’도 그렇고, 우리 회사랑 공동 제작하는 게 제법 있더라.”
“그럼 우리 회사 배우들이 거기에 캐스팅되는 경우도 종종 있겠네요. 조선 패션왕에 김결 형이 캐스팅된 것처럼.”
“결이가 ‘조선패션왕’ 주연으로 확정됐으니, 대표님은 널 ‘청룡검신’ 주연으로 밀어 넣고 싶으신 거지. 그런데 네 생각은 어때? 이 작품, 괜찮아?”
“저는….”
“솔직하게 말해, 태주야. 대표님 뜻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작품은 네가 스스로 선택하는 거야.”
대답하기 전, 태주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밀어주는 용석이 형에게 고맙다는 생각.
그리고 ‘드림액터스’가 자신을 짜인 판에 끼워 넣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
“솔직히 별로예요. 캐릭터 개개인의 매력도 잘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네요.”
“그럼 이번에 모황국 감독님이 제안하신 그 작품. 그러니까 ‘데스 게임’ 말이야. 그건 재밌는 것 같아?”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감독 이름값에 끌린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 최준모 감독의 ‘언더커버’처럼 완전히 망한 사례도 있잖아.”
“그건 아니에요. 모황국 감독님이 준비한 ‘데스 게임’ 시놉이 너무 재밌었고, 감독님이 제게 말씀해 주신 것도 무척 와닿았어요.”
-모름지기 연기는 멋스러운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거든.
“그래서 모황국 감독님하고 같이해보고 싶어요.”
“오케이. 우리 배우가 원한다면, 매니저는 당연히 그걸 따내는 게 인지상정.”
차용석이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나만 믿으라고!”
* * *
가을로 흘러가는 시기.
여러 작품의 론칭과 제작으로 연예계가 한층 달궈진 때.
홍은지는 취재로 한층 달궈졌다.
휴게실에서 연거푸 커피를 마시던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우성림의 목소리에 번쩍 깨어났다.
“선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어?”
“커피 좀 그만 마셔요. 몸 상하겠어요. 차라리 이거 드세요, 우엉차.”
우성림이 집에서 싸 왔다는 우엉차를 한잔 건넸다.
“오, 센스 좋아.”
홍은지는 자연스럽게 받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요즘 파는 사건이 있는데 말야.”
“알아요, 요즘에……”
우성림이 목소리를 확 죽였다.
마치 비밀이라도 말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드림액터스 장희재 대표 파고 있잖아요.”
홍은지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계 신사로 소문난 그이가 사생활이 그렇게 더러울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런데 선배, 사생활 기사는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잘못 걸리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그리고 아직 확실한 증거도 없잖아요.”
“성림아.”
잠시 고민한 홍은지가 착잡한 얼굴을 들었다.
“너, 빙산의 일각이라고 들어 봤냐?”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나는 분명 장 대표 사생활을 파고 있었거든. 그런데 파면 팔수록 뭔가 이상한 공통점이 있더라고.”
주변을 살피던 홍은지가 우성림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중협이 죽었던 사건으로 귀결이 돼.”
“네? 그게 어떻게 그거하고 연결돼요?”
“생전에 이중협이 장희재 대표랑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더라. 장 대표가 이중협하고 고성 주고받은 거 봤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정말요? 둘 사이가 왜 안 좋았을까요?”
“확실한 건 아닌데, 이중협이 장 대표한테 부인도 있는데 사생활 관리하라고 충고했다가 싸웠다는 말도 있고…….”
말을 흐린 홍은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확실한 건 이거야. 장 대표랑 이중협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이중협이 촬영장에서 사고 났을 때도 장 대표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잠깐만요.”
우성림이 손을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지금 장 대표가 이중협 사고에 책임이 있다, 이거예요?”
“그래.”
“에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에요, 그건.”
그 말에 홍은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직은 가설일 뿐이야. 그런데 장 대표 사생활 복잡한 거, 이중협 죽기 직전까지 불화 있었던 건 사실이야. 이 모든 정황이 다 너무 이상하지 않니?”
“이상하긴 해요. 그런데 이렇게 전후 상황이 수상한데 어떻게 당시 이중협 씨가 죽었을 때, 수사를 그렇게 빨리 끝냈을 수 있었던 거죠?”
“알아보니까 장 대표가 검찰에 연이 닿았더라고. 그것도 아주 구석구석. 그리고 이걸 여병래 선배도 알았던 것 같아.”
“여병래 선배요?”
“일전에 스타뉴스에 근무했다가 갑자기 없어졌다던 선배 있었잖아. 그분이 이중협 사건 취재하다가 갑자기 사직서 내고 사라졌다고 하더라.”
우성림이 눈을 크게 떴다.
“선배는 그런 거 어떻게 알아요?”
“국장님하고 술 마시다가 우연히 들은 얘기야, 나도.”
주먹을 불끈 쥔 홍은지가 벌떡 일어났다.
“나 홍은지, 한번 물은 사건은 절대로 놓지 않는다 이거야. 열심히 파봐야지.”
그런 홍은지를 우성림이 잡았다.
“그런데 선배, 장희재 대표 부인은 누구예요?”
그 말에 홍은지가 눈을 크게 떴다.
“너, 정말 몰라?”
“제가 어떻게 알아요? 장 대표가 결혼했다는 것도 몰랐구만.”
“아, 이래서 어린 애들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니까.”
홍은지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90년대에 아주 유명했던 여배우야. 지금으로 치자면, 염수정만큼이나 톱스타였달까? 지금은 은퇴했지만.”
“이름이 뭔데요?”
“아, 심요연이라고…….”
* * *
“요즘 심요연은 뭐하나?”
한창 배우들 프로필을 뒤적거리던 모황국의 입에서 나온 말.
고요하던 제작사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서로를 힐끔거리던 직원들이 넌지시 말했다.
“배우 심요연 말씀하시는 건가요?”
“당연하지. 내가 아는 심요연이 배우 심요연 말고 더 있겠어?”
모황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장희재 대표하고 결혼한 이후에 통 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미국에서 사는 거로 알고 있어요.”
“미국에? 왜?”
“거기에 친정이 있다는 것 같더라고요. 본인도 한국 연예계에 지쳐서 좀 떠나 있고 싶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럼 별거 중이야?”
“글쎄요. 사이가 안 좋다는 말은 없던데, 그걸 별거라고 해야 하나?”
옆에 있던 여직원이 끼어들었다.
“에이, 아니에요. 제가 듣기론 장 대표가 와이프 연기하고 티비 나오는 거 싫어해서 미국 보낸 거래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진실이 뭔지……. 어찌 됐든 심요연이 요즘에는 이쪽 일 안 한다는 거지?”
“네, 안 하시는 걸로 알아요. 광고나 토크쇼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고요.”
모황국의 얼굴이 묘한 아쉬움으로 가득 차자 눈치 빠른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감독님. 심요연 씨 연락처 알아내서 어떻게, 연락해 볼까요?”
그 말에 모황국이 펄쩍 뛰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해?”
“감독님께서 심요연 씨 근황을 궁금해하시길래요. 괜히 궁금해하시는 건 아닐 테고요.”
직원이 그의 앞에 놓인 시놉을 눈짓했다.
“드라마에서 홍장미 역할에 심요연 씨 대보신 거 아닌가요?”
“하여튼 백 부장은 눈치가 빨라서, 내가 뒷구멍으로 뭘 생각할 수가 없다니까.”
너털웃음을 짓던 모황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홍장미 역할에 40대~50대 여배우를 대 보던 도중에, 딱 심요연이 생각났어. 아름답지만 겉에는 가시가 돋쳐 있는 캐릭터에 딱 어울리잖아.”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