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Dreams come true (1)
기분 좋은 얼굴로 식당에서 나오는 네 명의 남자.
베일릭스 드라마 ‘데스 게임’의 관계자들이었다.
특히 베일릭스의 한국 담당자, 박숭원은 더없이 기분이 좋은 듯 히죽 웃었다.
“함께 좋은 성과 내 봅시다.”
차용석은 베일릭스 담당자와 기분 좋은 악수를 나눴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옆에서 모황국은 차용석에게 믿음직한 눈빛을 보냈다.
“우리 믿고 같이 해줘서 고마워요. 믿어준 만큼, 재밌는 이야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태주가 수많은 대본을 봤지만, 이 드라마를 딱 짚어서 하고 싶어 했거든요.”
말을 잇던 차용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럼 캐스팅 기사는 언제쯤 내는 게 좋겠습니까?”
“일단은 심요연 씨 캐스팅 소식부터 냈으면 합니다.”
제작자 이덕량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심요연 씨가 거의 10여 년 만에 복귀하는 만큼, 여론이 크게 요동칠 거 같아서요.”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덕량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맨 처음에 심요연 씨를 공개하면 반응이 뜨거울 거예요. 그다음에는 다들 궁금해할 겁니다. 도대체 어떤 배우가 심요연과 합을 맞출까? 심요연의 기를 받아칠 남자 배우는 도대체 누구일까? 하면서 다들 추측할 거라, 이 말이죠.”
“그런데 그때 태주 캐스팅 기사가 나면 난리가 나겠네요.”
“맞습니다. 역시 차 팀장님. 한 번에 이해하시네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차용석이 씩 웃었다.
“그럼 태주 밑 작업은, 저희 쪽에서 차곡차곡 잘해 보겠습니다.”
* * *
“오케이, 컷!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영화 촬영이 끝난 건 저녁 찬 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쯤이었다.
“아흐, 쌀쌀하구만.”
“종일 울부짖고 부딪히는 연기만 하니까 삭신이 쑤시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좀비들에게 뻗친 따뜻한 손길 하나.
태주였다.
“힘내세요. 오늘 회식 있잖아요.”
“아, 맞다, 회식!”
“한태주 씨 진짜 땡큐요!”
한 명 한 명 엑스트라 좀비들을 일으켜주는 태주에게 여기저기서 호감의 눈길을 보냈다.
그가 오늘만 이러는 게 아닌, 평소에도 촬영장에서 단역들에게 친절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태주의 이런 따뜻함은 가식이 아닌, 단전에서부터 나오는 진심이라는 걸 다들 알았다.
단역들을 일으켜 준 태주는 우두커니 서 있던 도준이에게 뛰어갔다.
자그마한 아이는 그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인우 형, 겉옷 가져왔지?”
“응, 여기.”
박인우에게 자켓을 건네받은 태주는 도준이에게 여며 주었다.
“추우니까 형 겉옷이라도 입어.”
“형은요?”
도준이가 박인우의 눈치를 보자,그가 한숨을 쉬며 또 다른 옷을 꺼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한 벌 더 챙겨왔지. 네가 맨날 도준이한테 퍼주니까.”
“역시 형, 센스쟁이.”
태주가 박인우를 보며 씩 웃다가 도준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우리 다 같이 밥 먹는 거 알지?”
“네, 알아요.”
“집에 가는 건 걱정하지 마. 형이 집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태주의 말에 도준이가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아, 맞다’하며 가방에서 무언가 자그마한 병을 꺼냈다.
“이거 엄마가 선물이라고 가져다주라고 했어요.”
병에 든 게 뭔가 봤더니 말린 딸기 같았다.
“이게 뭐야?”
“복분자 절임이라고 했어요. 엄마가 형 요즘 체력 힘들 것 같다고 이거 먹으래요.”
그 말에 옆에 있던 박인우와 이중협이 동시에 감탄을 내뱉었다.
[활력의 대명사 복분자!]“오올, 복분자? 나도 한 숟갈 주면 안 되냐?”
박인우의 말에 도준이는 냉큼 태주를 감쌌다.
“안 돼요, 이건 우리 태주 형 거예요!”
“알았어, 알았어. 안 뺏어 먹을게. 그런데 태주는 내 거야, 내 배우!”
“아니에요, 우리 형이에요. 아빠고!”
뜬금없는 벌어진 둘의 배틀에 태주는 크게 웃어버렸다.
* * *
얼마 후.
커다란 식당이 수많은 사람으로 바글거렸다.
영화 ‘탈출’의 제작진과 주연 배우들, 단역들까지 한데 모인 식사 자리였다.
이들 중 가장 바쁜 건 주연인 태주였다.
도준이 챙기랴, 여러 테이블을 돌며 배우들과 작품 내외적인 이야기 나누랴, 양군보 감독의 술주정 들어주랴.
촬영 때는 더없이 느긋하던 양 감독은 술만 마시면 이렇게 날것의 감정들을 마구 드러냈다.
“내가 말이야, 태주 씨. 전생에 무슨 착한 짓을 했길래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만났을까, 하는 의문이 요즘 자꾸 들어. 첫 상업영화에 태주 씨와 선우 씨를 주연으로 쓴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니까!”
“말도 안 되긴요. 감독님 영화니까 제가 믿고 따라왔죠.”
“사랑해, 태주 씨!”
양 감독의 술주정에 태주가 조감독을 찾았지만, 태주와 눈이 마주친 조감독도 그에게 엉겨 붙은 뒤였다.
“사랑합니다, 한태주 씨! 우리 영화의 구세주이자 주인공!”
열렬한 고백과 사랑으로 점철된 그곳에서 태주가 벗어난 건 한참 후였다.
“형, 왜 이제야 왔어요?”
가운데 테이블에서 이선우와 식사 중이던 도준이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자, 태주가 그를 꼭 껴안았다.
“다들 미친 사람들 같았어, 어후, 무서워.”
킬킬거리던 이선우가 태주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러니까 양 감독 술 취했을 때는 가지 말라고 했잖아. 술 마시면 너에 대한 고삐가 풀려 버리는 사람들이라니까.”
“그래도 사랑받는 건 좋은 거죠.”
“그런데 기사 봤냐? 심요연 선배님, 이번에 베일릭스 드라마로 복귀한다고 하던데.”
“심요연 선배님이요?”
“핸드폰에 기사 떴으니까 한번 봐봐.”
이선우의 말에 태주가 핸드폰 기사를 확인했다.
“아, 용석이 형이 심요연 선배님 케어한다고 했었어요.”
얼마 전 한국에 들어온 심요연을 맡게 됐다더니. 드라마 캐스팅까지 성사시킨 모양이다.
‘역시 용석이 형은 일을 잘한단 말야.’
태주는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열심히 읽었다.
의견들은 반으로 갈렸다.
-언제 적 심요연이냐, 연기도 너무 오래 쉬었고.
-심요연 만큼 연기가 강렬했던 여배우도 없었죠.
-에너지 넘치는 연기가 그리웠습니다! 다시 볼 수 있어 기뻐요!
-염수정, 윤수안이 아무리 연기 잘한다 해도 심요연 카리스마에는 견줄 수 없지. 미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뜀.
-장희재랑 결혼하고 나서 연예계 은퇴한 줄 알았는데, 웬일? 남편하고 합의된 것임?
-혹시 남편하고 불화? 장 대표가 와이프 얘기하는 건 거의 못 들어 봤는데.
하나 확실한 건,이번 캐스팅 기사로 베일릭스 드라마 ‘데스 게임’에 대한 관심이 한층 불타올랐다는 것.
한때 연예란이 드라마 ‘청룡검신’으로 뒤덮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미친 여자인 홍장미 역에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를 점 찍어뒀다더니. 그게 심요연 선배님이셨나 봐요. ”
“요연이 누나가 연기를 미친 듯이 열정적으로 하긴 하지. 한국에 있다니까 언제 한번 봐야겠네, 수정이랑 같이.”
술을 마시던 이선우의 눈동자가 그리움으로 가득 찬 순간, 그가 갑자기 태주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도준이에게 쌈을 싸주던 태주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그런데 너희 회사에서 판타지 사극 준비하고 있잖아.”
“네, 맞아요. 혹시 거기 캐스팅 제의받으셨어요?”
“맞아. 무림의 절대 고수 역할을 제의받아서 검토하는 중이야. 그런데 넌, 그거 어떻게 생각하냐?”
자신을 떠보는 이선우의 시선에 태주가 피식 웃었다.
“저는 그거 안 해요.”
“뭐야, 그럼 모황국 감독님이 말하신 게 사실이야? 네가 자기 작품 주연한다고, 이제 기사 확정만 남았다고 하던데.”
태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선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분명히 제작사 측하고 미팅했을 때 주인공 역할에 태주 네가 거의 내정되다시피 했다고 설명했거든.”
* * *
“장 대표가 요즘 중국 물이 올라서 태주를 자기 판에 끼워 넣고 싶어 하는데. 그건 태주도, 저도 용납 못 하죠.”
동시각, 식당에서 이현식을 만나고 있던 차용석은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의 맞은편에 있던 이현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븐 리조트인지 뭔지, 한국에 제작사 차려서 장 대표하고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 이렇게 제작한다, 이거잖아. 하긴, 내가 대표라도 한태주를 무조건 주연으로 끼워 넣고 싶긴 하겠다.”
“그건 아니죠.”
“왜 아니야? ‘낭만 고양이’ 같은 드라마도 장 대표가 제작한 드라마인데 한태주가 잘만 했잖아. 대박도 났고.”
“그건 아이디어가 참신했잖아요. 대본도 좋았고. 그런데 이번에 장 대표가 헤븐 엔터랑 같이 제작하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다 별로예요. 조선패션왕이니 청룡검신이니, 너무 이야기가 단순하고 뻔하다고요.”
차용석이 복잡한 얼굴을 들었다.
“솔직히 저도 대표님 말씀, 웬만해서는 거스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배우 길들이는데도 정도가 있죠. 말도 안 되는 작품에 태주를 집어넣으려 하니까….”
“도대체 얼마나 재미없길래 그러냐?”
“이번에 헤븐 엔터랑 공동 제작하는 드라마에 중국 무녀 역할로 중국 배우가 나옵니다. 샤오웨이라고. 대사의 90%가 중국어예요.”
“진짜로?”
“그리고 역사 왜곡이 심각해요. 세종대왕이 악마에게 잠식되었고, 그 아들들이 중국에서 온 무녀의 도움으로 구마를 한다는 시놉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장 대표가 그 시놉을 오케이 한게 신기하다. 아니, 그거 방영할 방송사는 있대?”
“DBC에서 내년 상반기에 방영한 대요. 추가 투자까지 했고요. 이번에 ‘오디세이 2’에서 망한 거 ‘청룡검신’으로 만회하려는 모양이에요.”
차용석이 고개를 젓자 이현식이 은근슬쩍 물었다.
“그래도 한태주 심지가 제법 굳은 모양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밀고 나간다면서. 저번에 피셔 감독 단편 찍은 거랑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 받은 거 들었다. 바로 선플라워 프로덕션에서 장편 제작 들어간다며, 한태주 주연으로.”
“네.”
“이야, 대단하네. 이번에 모황국 감독 베일릭스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낙점이라면서. 근데 장 대표가 허락하겠냐?”
“분명히 반대할 텐데, 그래도 밀고 나가야죠.”
혀를 끌끌 차던 이현식이 말했다.
“야, 드림액터스에서 너무 힘들게 일하는 거 아니냐?”
그가 차용석과 눈을 마주쳤다.
“그럴 바에 차라리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그래.”
“하하, 형이 수정이 누나는 설득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다르죠.”
“뭐야, 너는 딸린 식구가 생겼다, 이 말이냐?”
“태주가 있으니까요.”
차용석의 말에 이현식이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야, 너도 알겠지만. 우리 회사, 수정이 데려오려고 40억 쓴 회사야.”
“그때 거액 썼다고 아주 말이 많았죠.”
“하물며 한태주 데려오는데 우리가 그만한 돈도 준비를 안 했을까.”
까무잡잡한 이현식의 얼굴이 묘한 미소를 띠었다.
“용석아, 아무 걱정하지 마. 너는 그냥 예전처럼 배우 케어하는 것만 신경 써. 나머지는 이 형이 알아서 다 해줄 테니까.”
묘한 표정으로 이현식을 응시하던 차용석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디까지 해주실 수 있는데요. 우리 태주한테?”
그때, 문이 드르륵 열렸다.
가냘픈 몸집의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서자 이현식이 벌떡 일어섰다.
“대표님, 여기는 어쩐 일로…….”
얼굴의 주름도 우아한 중년의 여인이 미소를 지었다.
“미팅 때문에 나도 이쪽에 들렸다가 이 팀장이 있다는 소식 듣고 와봤지. 그런데 이게 누구신가.”
차용석이 일어나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드림 액터스의 차용석입니다.”
“이 팀장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아주 영민하고 일 잘한다고.”
“아, 감사합니다.”
C&K 컴퍼니의 대표, 옥현주가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이현식 옆에 앉은 그녀가 꺼낸 첫마디.
“요즘 장 대표, 맛이 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차 팀장도 그런 인간 밑에서 일하지 말고, 우리 쪽으로 와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