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트로이메라이 (5)
박송훈의 말에 직원들도 하나둘 말을 보탰다.
“어쩐지, ‘주노 촬영장’이 매우 살벌했다고 들었어요.샤오웨이가 광고 감독 말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촬영 진행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다 아버지 빽 믿고 그랬구만.”
“그런데 한태주도 깡이 세네요. 샤오웨이 아버지가 누군지 알았을 텐데, 자기 페이스대로 진행한 것 보면.”
“그런데 샤오 회장이 드림액터스 투자자라면서요. 장 대표도 고이 모시는 분이라던데. 그런 분 눈 밖에 나서 한태주 어떡해요?”
박송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아직 한태주는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드림액터스의 가장 큰 캐쉬 카우인데다 한국의 톱스타잖아요.”
* * *
태주가 차용석과 함께 회사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오늘은 제작사의 소개로 피아니스트를 만나는 날이다.
“동네 학원에서 그 곡을 먼저 연습해 봤다고?”
차용석의 깜짝 놀라는 얼굴에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 태희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 있는데 거기서 먼저 연습했어요. 그래도 아예 모르는 상태로 레슨 받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알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촬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아니 촬영하느라 잠도 부족한데, 언제 또 그렇게 연습했냐. 그래도 대견하네, 그렇게 미리미리 준비하면 촬영도 더욱 수월하게 할 수 있겠지.”
피아니스트 연기를 좀 더 리얼하게 하고 싶다는 태주의 부탁에 제작사 측에서 피아니스트를 연결해 준 것이다.
물론 옆에 이수한이라는 전직 피아니스트 귀신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직으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에게서 드라마 연기에 대한 조언을 좀 더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주와 차용석이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그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두 명이 있었으니.
“한태주!”
카랑카랑한 샤오웨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태주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일전에 화장품 광고 촬영 이후,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태주가 서둘러 인사하고 가려고 했지만, 그녀가 태주의 옷깃을 잡았다.
“너 때문에 나 화장품 광고 날아갔어, 알지?”
샤오웨이의 입에서 쏟아지는 영어를 태주는 단번에 이해했다.
그녀가 말하는 광고가 ‘주노’ 광고라는 것도 알았고.
그렇기에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광고 컨셉을 제대로 이해 못 하고,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인 건 그녀였으니까.
그리고 광고 모델은 채이진으로 결정 난 지 오래인데, 왜 인제 와서 지나간 일을 가지고 들먹이는지.
그때, 황재남 팀장이 태주에게 물었다.
“저번에 화장품 광고에 채이진 씨 추천한 거, 한태주 씨죠? 그거 인간적으로 아주 안 좋은 행동인 거 알고 있어요?”
황재남의 뻔뻔스러움에 차용석이 즉각 대꾸했다.
“팀장님. 애초에 아버지 빽 이용해서 화장품 광고 모델 후보에 오른 것도 인간적으로 안 좋은 행동 아닙니까?”
차용석의 말에 황재남이 눈을 부라렸다.
“샤오 회장님은 우리 회사에 거액을 투자하신 분이라고. 채이진 같은 송사리하고 어떻게 비교를 하나? 한태주 씨. 태주 씨도 그렇게 살면 안 되죠.배우가 돼서 투자자 눈 밖에 나는 행동만 하다니.”
“글쎄요, 저는 추천만 했을 뿐. 광고의 최종 결정권자는 광고주가 아니었을까요.”
태주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주노 같은 경우도, 광고주가 최종 모델을 결정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와 호흡을 맞출 여자 모델로 채이진 씨가 뽑힌 걸 보면, 누가 더 잘했다고 판단했는지, 알 수 있고요.”
몰아치는 한국말에 샤오웨이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뉘앙스로는 알 수 있었다.
후원자의 딸이라는 그녀의 위치가, 한태주라는 톱스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드림액터스의 대표도 자신한테 벌벌 기는데, 이 한태주란 배우만큼은 뻣뻣하게 고개를 드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그녀는 손가락질하며 태주를 노려보았다.
“우리 아빠가 한국으로 오는 순간, 넌 죽었어.”
살벌한 중국어를 퍼부은 그녀는 쿵쿵거리며 회사 안으로 사라졌다.
차용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 황재남에게 말했다.
“팀장님, 배우 단속 좀 잘하세요. 누가 보면 우리 회사 대표가 장 대표님이 아니라 샤오 회장인 줄 알겠네. 아, 그래서 요즘에 팀장님이 대표님이 아니라 샤오웨이한테 딱 붙어서 설설 기는 거예요?”
“너, 너….”
“잘하고 있는 태주한테 괜히 시비 걸지 말고 각자 일에 전념합시다. 황 팀장님,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황재남이 할 말을 잃어 입만 뻐끔거렸다.
* * *
얼마 후.
차를 타고 서울의 한 연습실로 향하던 태주와 차용석.
태주는 차용석을 통해 조금 전 사오웨이가 한 말의 뜻을 알았다.
우리 아빠가 한국으로 오는 순간 넌 죽었다는 그 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다만, 후원자의 딸이 그만큼 힘이 있다는 게 납득이 안 갔을 뿐.
[어후, 살벌해라. 원래 연예계는 다 이래요?]벌벌 떨던 이수한은 태주의 눈치를 보았다.
[아니야, 걔가 이상한 거야.]태주를 보던 이중협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후원자들에게 고액을 받고 그들의 자식을 키워주는 게 장 대표의 방식이야. 고성열도 그런 일환이었고. 그런데 샤오웨이 쟤는 너무 나갔다.]생각에 잠긴 태주를 힐끔거리던 차용석도 그의 기분을 풀어 주려 활기차게 말했다.
“태주야, 샤오웨이는 너무 신경 쓰지 마. 쟤가 저런다고 너한테 영향 미칠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흐음.”
태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금 있었던 샤오웨이와의 트러블은 잠시 제쳐두기로 했다.
일단은 드라마를 위한 연기 연습, 피아노 연습이 더 중요했으니까.
* * *
[와, 피아노다! 내 영혼의 반쪽!]연습실에 도착함과 동시에 이수한은 냉큼 피아노로 달려갔다.
각 방에 피아노 한 대만 놓여있는 동네 학원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태주도 어리둥절한 건 마찬가지였다.
‘와…. 정말 넓다.’
그때.
자그마한 몸집에 머리를 위로 높게 틀어 올린 여자가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활기찬 어조로 인사한 그녀는 태주와 힘차게 악수하며 그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와, 핸드폰하고 티비에서만 보다가 이렇게 직접 보니까 진짜… 감동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태주도 그녀가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실제 피아니스트를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뭔가 클래식을 하는 사람이라 다가가기 어려운 줄 알았는데, 친근한 모습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한편, 태주의 옆에서 진유이를 유심히 보던 이수한이 왈칵 소리를 질렀다.
[어? 유이잖아, 진유이!]이수한이 진유이의 곁을 날아다니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에 제가 콩쿠르 나갈 때마다 결승에서 맞붙었던 친구였어요. 저랑 일종의 선의의 라이벌 관계였달까? 저 친구도 피아노 엄청나게 잘 쳐요.]진유이.
언론에서는 그녀를 ‘피아노계의 신성’이라고 소개했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그녀.
감정이 풍부하고도 깊이 있는 연주가 특징이었다.
“저 한태주 씨 팬이에요! ‘당신도 누군가의 봄이었다’에서 아역들 파트 제일 좋아했거든요. 한태주 씨가 징검다리 건너는 씬에서 반해버렸어요!”
얼굴이 발개져서는 씩씩하게 말하는 진유이.
마치 그 모습이 태희와 비슷해 보여 태주는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학생으로 대해주세요. 진유이 씨에게 피아노 배우러 온 거니까요.”
“안 그래도 들었어요. 태주 씨가 이번에 드라마에서 피아노 씬을 직접 치신다고요.그것도 트로이메라이.”
진유이가 태주를 가느다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곡이 보기에는 쉬워도 사실은 감정선이 섬세하게 이어져야 해서 그렇게 쉽지는 않아요.”
“네, 저도 연습하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이 곡이 괜히 콩쿠르 리스트에 없는 게 아니에요. 이런 곡으로 승부 걸려면 상대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버려야 하거든요.”
태주는 진유이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집에서도, 동네 학원에서도 이 곡을 몇 번이고 쳐 보았었다.
대강 쳤다가는 어설퍼 보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 왜 트로이메라이를 원하시는 거예요? 솔직히 태주 씨 같은 일반인이 피아노 있어 보이게 치려면 쇼팽의 흑건 같은 것도 괜찮거든요. 기교가 많은 것에 비해 난도가 높지 않아서요.”
그녀의 말에 태주는 옆에 있는 이수한을 의식하며 대답했다.
“기교보다는 마음으로 울리는 곡을 치고 싶어서요. 더욱이 트로이메라이는 가슴에 간직했던 꿈을 연상하게 하는 순수함이 있더라고요. 그걸 드라마에서 구현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꿈이라…….”
마냥 밝아 보였던 진유이의 얼굴이 진지해진 순간.
그녀는 태주를 피아노 앞으로 인도했다.
“태주 씨가 이렇게 진심인데, 저도 진지하게 임해야죠. 그럼, 일단 처음부터 쭉 쳐 볼까요?”
태주가 결연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의 한 씬을 위한 피아노 치기였지만, 이수한의 한을 들어줄 중요한 기회였다.
태주와 이수한, 자신들의 소중한 기회가 걸려있는 만큼 필사적인 노력을 다해야 했다.
* * *
밤이 깜깜해진 시각.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피아노에 쏟아부은 태주.
연습실에 활기차게 걸어갔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터덜터덜 나오는 중이다.
“와…. 장난 아니다, 진짜.”
“괜찮냐, 태주야? 너 하루 사이에 살이 왜 이리 빠졌어.”
태주를 데리러 온 차용석의 걱정에 그가 대답했다.
“음악으로 제 마음을 온전히 전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쉬운 일 아니지. 그렇다고 해서 진유이 피아니스트가 널 얼마나 갈군 거냐. 일반인한테 뭘 그리 기대한다고.”
차용석을 따라 차에 탄 태주.
동영상으로 찍은 자신의 영상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별 기대 없이 보던 차용석의 얼굴이 점점 발개졌다.
“야, 내가 듣기에는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거 같은데?”
“에이, 그런 소리 마세요. 괜히 저 격려해 주시려고 하는 거 다 알아요.”
“아니, 진짜로!”
차용석이 흥분한 듯 태주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좋아, 네 연주. 이대로 좀만 더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진유이 씨는 뭐래?”
“아직도 멀었대요.”
“정확히 뭐가 부족하대?”
[유이 말은 기교는 완벽한데 감성이 부족하다는 걸 거예요. 피아니스트는 단순히 곡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곡의 역사, 곡의 원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청자에게 들려주는 사람이니까요.]태주는 이수한의 말을 받아 차용석에게 전달했다.
“저는 지금 곡을 옮겨쓰는 것에 불과하데요. 곡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무슨 조언이 뭐가 그렇게 애매해.”
차용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너는 뭔 소리인지 알아듣겠냐?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저는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이수한을 보며 태주가 덧붙였다.
‘단순히 피아노를 완벽하게 치는 데 그치지 말고. 자신이 어렸을 때 꾸었던 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자신을 생각하며 음악으로 마음을 전달하라는 거잖아요. 그쵸?’
[맞아요, 완벽해요!]이수한이 씩 웃으며 태주에게 엄지를 올려 보였다.
[솔직히 나는 태주 씨 연주, 아주 좋았어요! 이런 식으로 가면 우리 형도 감동할 게 분명해요.]‘정말 그러면 좋겠네요.’
태주는 무표정한 이덕량을 떠올렸다.
무미건조한 회색 같은 그가 이 곡을 듣고 어떤 감정이라도 분출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바로 태주의 목표였다.
* * *
동 시각, 제작사 ‘화음픽쳐스’.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모황국과 제작자 이덕량은 진유이가 보내온 태주의 연주 영상을 핸드폰으로 보고 있다.
커다란 회의실 안에 태주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이 감미롭게 울려 퍼진 가운데.
‘오늘 연습한 게 이 정도라고?’
감탄을 삼키던 모황국이 긴 숨을 토해냈다.
“이야…. 이거 작품이다, 작품. 솔직히 말하면 이거, 한태주 씨가 친 거라고는 못 믿겠는데.”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