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드러나는 진실 (6)
“그동안 장 대표 뜻을 존중하면서 많이 참았어. 연기 생활에 지쳤던 내게 미국 생활을 권했던 것도 그였으니까.”
“사실 처음에는 언니가 데뷔한 이후에 쉬는 날도 없이 너무 바쁘게 연기를 해서. 지쳐버린 나머지 은퇴했다고 생각했어요.”
“지친 건 사실이었어. 하지만 다시 연기를 하고 싶더라. 그런데 장 대표가 괜히 얼굴 팔지 말라면서 연예계 복귀를 말리더라고.”
“어머, 그래요?”
“완전 트로피 와이프 취급이지.”
씁쓸하게 술을 들이켠 심요연이 중얼거렸다.
“내가 10년 전부터 계속해서 연예계에 복귀하고 싶다고 해도 막았어. 내 연기는 트렌드에 벗어났다면서 날 깎아내렸는데. 멍청하게 그 말을 믿었던 거야, 남편의 말이라고.”
“그런데 지금은 복귀하셨잖아요.”
“모황국 감독님이 감사하게도 연락을 주셨지. 내 연기를 좋게 봐주셨고. 그래도 혼자 연습했던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었나 봐.”
“이번에 드라마 잘 찍어서 장 대표 콧대를 확 눌러줘요.”
“안 그래도 내가 너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심요연이 굳은 결심을 한 듯 홍은지의 손을 잡았다.
“나 드라마만 끝나면 이혼하려고 해. 아직 기사는 내지 말고, 너만 알고 있어.”
“이…, 이혼이요?”
“조용히 해, 누가 듣겠어.”
심요연의 이혼 선포를 들은 홍은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어, 장 대표님 충격 세게 먹으시겠네요. 가뜩이나 상황도 안 좋으신데, 이혼이라니.”
“그러니까 드라마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는 거잖아.”
심요연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날 때마다 얼마나 ‘청룡검신’하고 ‘조선패션왕’을 자랑하는지. 그 두 작품이 내년 대한민국의 휩쓸 거라나 뭐라나.”
“장 대표님의 희망 사항이겠죠.”
툴툴거리는 홍은지의 말에 심요연이 냉큼 달려들었다.
“너도 그 작품, 좀 찜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솔직히 중국인 여배우가 여주인공보다 더 비중이 커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조선패션왕도 무슨 중국 로케이션이 그렇게 많은지.”
“그래요? 헤븐 리조트에서 200억 투자했다고 하더니. 역시나, 그쪽 리조트에서 씬을 많이 따나 보네요.”
“제목을 ‘중국패션왕’으로 바꿔야 할 판이라니까. 주인공 집 배경이 리조트라더라, 그것도 정통 중국풍.”
“어머, 조선패션왕인데 그래도 되는 거래요?”
“퓨전 영화라 괜찮대. 영화적 허용으로 관객들이 이해해 줄 거라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젓던 심요연이 말했다.
“아무튼 장 대표한테 뒤통수 맞기 전에, 최대한 철저하고 계획적으로 해야 해. 너도 봤잖아, 장 대표가 한태주 매장하려고 했던 거.”
“정말 악질도 그런 악질이 없었죠. 소속 배우 길들인다고 갑질한다는 헛소리 기사나 내고 말이에요.”
“그 인간이 원래 그래. 자기 말 안 듣는 사람들한테는 한 번씩 그런 식으로 경고를 하거든. 아주 지독한 버릇이지.”
심요연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중에 한태주 씨한테도 말해줘. 장 대표 허수아비 되려는 생각 없거든. 당장 그 회사 탈출하라고.”
* * *
동 시각.
퇴근 시간이 임박한 사무실, 강승민은 책상에서 미적대고 있다.
수많은 서류 속에서 그가 유심히 들여다보는 건은 바로 ‘이중협 사망사건’.
얼마 후.
똑똑.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미동도 없는 그에게 수사관이 찾아왔다.
“검사님, 퇴근하실 시간이 넘었습니다만.”
“정 수사관님. 잠깐만 이리 와 보시겠습니까?”
강승민의 호출에 수사관은 한숨을 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왜요?”
“이중협 사망사건 말이에요. 다시 들여다보니까 이상한 점들이 많아서요.”
강승민이 살짝 흥분한 듯 말을 이었다.
“당시 현장도 보존이 안 되어있었고. 회사도 그에 대한 협조를 안 했고. 이상하지 않아요?”
“사건 발생 장소가 드라마 촬영장이라, 보존이 어려웠겠죠. 촬영하느라 한시도 빠듯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료를 넘기던 강승민이 수사관을 힐끗거렸다.
“교통사고가 난 그날, 목격자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다니요. 촬영장에 널린 게 스태프들인데.”
“다들 놀라서 정신 없지 않았을까요? 여기 사건 개요를 보세요, 검사님.”
수사관은 보고서 속 해당 문단을 짚었다.
“당시 드라마 ‘데자뷰’에서 주연이었던 이중협은 교통사고 장면을 찍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촬영 미스로 진짜로 교통사고가 났죠. 당시 스태프들이 얼마나 정신이 없었겠습니까?”
“스태프들 조사한 기록도… 거의 없네요.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게 현장 참고인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빠르게 자료를 훑던 강승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사건, 정말 이상해요. 어떻게든 사건을 빨리 덮으려는 흔적이 역력한데요?”
“그건 그러네요.”
“보니까 드라마 제작사가 드림액터스군요.그럼 장희재 대표가 책임을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얼른 사건을 덮으려는 생각이었을까요? 장 대표를 조사를 해봐야 하나….”
그 말에 수사관이 입을 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장 대표가 워낙 검찰 쪽에 연줄이 많아서 뭐가 딱히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하……. 알고 있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던 강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그겁니다. 고위급 검사 라인이 이 사건을 덮어준 것 같습니다.”
“고위급이요?”
“해당 사건 담당 검사의 직속 상사가 부형윤 검사장님이었는데. 그분 지시로 사건을 일찍 종결시켰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강승민도, 수사관도 동시에 얼굴이 굳어졌다.
부형윤 검사장은 현재 법무부 장관을 노리는 검찰의 고위급 인사였다.
그가 뒤가 구리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그러나 그가 맡았던 이중협 사망사건이 한 달도 안 돼서 흐지부지 종결되었다는 건, 분명 찜찜했다.
“그런데 검사님.”
수사관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이 사건 정말 손대실 겁니까?”
“왜 그러시죠?”
“이거, 생각보다 복잡하게 엮어있는 사건 같아서 그럽니다.”
걱정 어린 수사관의 시선에 강승민은 되물었다.
“정 수사관 생각에는 이 사건, 진범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고개를 흔드는 수사관의 얼굴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단 한번 시작하면 검사님한테 필요 이상의 부담이 갈 것은 확실합니다. 애초에 연예인 사망사건인데다, 드림액터스 쪽에서 덮었던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걸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더욱이 검사님이 재심 전문 변호사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왠지 끌린단 말이죠, 이 사건. 나는 억울한 사람이 있는 건 도저히 못 참아서.”
강승민이 혀를 끌끌 차며 종이를 계속해서 넘겨보았다.
수사관은 그에게서 얼른 종이를 뺏었다.
“검사님, 이러지 마시고 회식이나 가시죠.”
“오늘은 안 됩니다. 약속이 있어서요.”
강승민이 급히 일어나서는 시계를 확인했다.
“흐익, 늦겠다! 정 수사관, 내일 봐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사무실을 나섰다.
* * *
오후 9시.
서울의 한 식당에서는 술기운에 무르익은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연희대 경영학과, 파이팅!”
연희대 경영학과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함께 어울리는 친목 모임이 한창이다.
태주도 몇 달 전부터 요청한 동기들의 부탁으로 이곳에 참석했다.
그의 참석에 못 보던 선배들과 후배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와, 우리 후배님이 한태주일 줄이야. 영광이다, 진짜.”
“선배님, 너무 멋있어요!”
“좀비 영화 찍으시는 거 얼른 개봉했으면 좋겠어요. 저 ‘광대’도 10번 이상 봤었거든요.”
몰려드는 후배 중에서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는데, 동아리 후배 황유나였다.
‘스타뉴스’ 인턴으로 6개월간 일한다는 그녀의 소식에 태주는 기뻐하며 격려해 주었다.
“너 언젠가는 기자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이쪽 일에 발 들일 줄은 몰랐네.”
“선배만 노력하는 거 아니라구요. 저도 한다면 해요!”
“그래, 너 열심히 하는 건 잘 알지.”
태주는 왠지 황유나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적극성과 끈기가 대단하니까, 연예부 기자하면 잘할 것 같다. 물론 많이 힘들겠지만.”
“힘들어도 선배를 생각하면 버틸 수 있어요!”
황유나가 활짝 웃었다.
“저 이번에 우성림 기자님 밑에서 인턴 생활하거든요. 그분이 태주 선배 전담이라면서요.”
“어, 그럼 너도 우성림 기자님이랑 같이 다니는 거야?”
“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기분 좋은 후배와의 대화가 막 끝나자.
그의 곁에 강승민이 묘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한태주 후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태주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그 모습에 강승민이 피식거렸다.
“저번에 백산병원 자선콘서트에서 봐놓고 왜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해요. 사람 섭섭하게.”
“하늘 같은 선배님이신걸요.”
태주가 신중히 말을 아끼자 강승민이 앞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그때 그 얘기, 생각해봤어요?”
“예?”
“모르는 척하지 말고.”
강승민이 비릿한 미소를 태주에게 흘렸다.
“이중협 씨 사망사건. 내가 다시 조사해보려고 하거든요.”
그의 말에 태주도, 이중협도 번쩍 눈이 뜨였다.
지난 2년간 이중협과 함께 하면서 그의 성불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던 태주였다.
가장 큰 수확은 이중협 사망사건을 유일하게 보도했던 기자 여병래.
그러나 그 또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잠적해 버렸었다.
-이 사건, 그쪽 회사가 묻은 거라고요!
그리고 지금, 패기에 넘치는 젊은 검사가 이 사건을 다시 파헤치겠다고 나섰다.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는 있는 겁니까? 얼마만큼의 가능성이 있죠?”
태주의 말에 강승민이 코웃음을 쳤다.
“진실? 지금 태주 씨는 진실을 원하는 겁니까. 아니면 정의를 원하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강승민은 태주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들은 흔히 사건을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진실이 정의로운 경우와 진실이 정의롭지 못한 경우. 그런데 이 사건 같은 경우, 후자 같아서요.”
그 말에 태주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제껏 그가 알아낸 바로도 이중협의 죽음이 그다지 정당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분명 흔한 교통사고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저는 진실을 원합니다. 이중협 선배님이 단순한 촬영 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강승민이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네요.”
강승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덧붙였다.
“이 사건, 제 인생 최대의 고비일 수도 있지만. 최대의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 들거든요.”
* * *
친목 모임이 끝난 후, 친구들이 집까지 같이 타고 가자는 걸 태주는 혼자서 택시를 잡았다.
생각할 것들이 넘쳐나서였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던 태주에게 이중협이 조심스레 물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모르겠어요. 조금 더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태주도 그에 대해 아리송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형이 성불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 같으니까….’
[나는…. 아니다, 태주야. 하지 마.]‘네…, 네?’
마치 진심을 삼키는 듯한 이중협의 말.
복잡한 표정의 이중협은 태주를 보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내 사건, 파헤치지 말자. 이대로 멈춰, 태주야.]‘하지만 형. 이건 형의 성불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이제껏 빙빙 돌다가 겨우 중심에 다가선 것 같은데, 왜 그만두라는 거예요?’
[난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고뇌 어린 이중협이 태주를 보고 말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가 성불하는 걸 네가 도와주기를 바랐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너랑 같이 다니면서, 네가 연기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형!’
[네가 무엇까지 할 수 있을지, 희망에 차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어. 그러니까 나는….]태주를 보던 이중협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네가 배우로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곁에서 지켜 보고 싶다.]그러나 태주는 그의 눈동자 뒤에 숨은 진심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자신의 성장을 보고자 하는 것도 맞지만, 자신의 성불에 내가 화를 입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세상에 성불을 원하지 않는 귀신은 없으니까.
* * *
늦은 시각.
드림액터스 제일 최상층에는 아직도 불이 켜져 있다.
“네, 무슨 그런 당연한 말씀이십니까. 제가 좋은 애들로 골라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통화를 끊은 장희재는 기지개를 켜며 담배를 집어 들었다.
짙은 담배 연기가 그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4팀이 이런 접대 보내기에는 딱 좋았는데, 괜히 해체했나.”
장희재가 혀를 끌끌 차며 창밖을 보는데.
띠링.
문자 소리에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윤수안 씨도 같이 좀 부탁합니다. VIP가 수안 씨 팬이라서요.
“수안이? 부형윤 검사장이 우리 수안이 팬이시구나.”
잠시 망설이던 장희재가 피식거렸다.
“미래의 장관님께 잘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