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9회 말 2아웃 (1)
“한태주?”
장희재의 말에 부형윤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딸아이도 좋아하는 배우인데, 그 배우.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배우잖아요. 그런데 왜 그이가 우리 장 대표 마음에 안 들었을까?”
“검사장님이 그놈의 시커먼 속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장희재가 고개를 내저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놈이 얼마나 교활하고 회사를 제 뜻대로 주무르려 하는지 모릅니다. 주변 직원들 매수해서 조직적으로 저한테 대항하려 하고. 제 말은 무시한 채 뭐든 제 뜻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어허, 아무리 스타라고 해도 소속사 대표 말을 그렇게 무시하면 쓰나.”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예전에 이중협도 그랬는데, 이놈도 똑같습니다. 배우 중에서 이중협을 제일 좋아한다더니, 못된 버릇까지 배웠나 봅니다.”
“그럼 조만간 손을 한번 봐줘야겠네요. 말을 안 듣는 새끼들은 한번 호되게 혼이나 봐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니까. 하하!”
부형윤은 껄껄 웃으며 장희재와 술잔을 부딪쳤다.
장희재도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술에 잔뜩 취한 나머지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해 버렸다.
“그거 아십니까? 한태주, 검사장님께서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강승민 검사의 사촌이랍니다.”
“강승민 검사?”
낯익은 이름에 부형윤은 술에 확 깨버렸다.
강승민.
그의 머릿속에 패기로운 젊은 검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대원의 손자로 법조계 명문가 출신, 한국대 로스쿨에서도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천재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 이외에도 더욱 주목받는 건 바로 그의 의외성이었다.
그를 탐내는 부서는 많았고, 그건 부형윤도 마찬가지였다.
부형윤의 라인을 타면 출세가도를 달리는 건 당연지사였기에, 당연히 강승민이 그의 라인에 합세할 거라 다들 예상했다.
그러나 강승민은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며, 누군가의 밑에서 똘마니 노릇을 하기 싫다는 뜻을 에둘러 밝혔다.
그 후로 부형윤은 그를 껄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혀를 찬 부형윤이 재빨리 물었다.
“그럼 한태주 부모 중 한 사람이 강대원의 자식이란 말입니까?”
“한태주 아버지가 강대원의 둘째 처 소생입니다. 여동생도 한 명 있고요. 한태주 고모요.”
“어떻게 이걸 아무도 몰랐을까….”
음험한 미소를 짓던 장희재가 말을 이었다.
“그쪽 집안에서 철저하게 단속한 탓이겠죠.둘째 처가 산욕열로 죽고 강대원도 황망하게 죽은 후, 그 집 실권은 이혼한 첫째 처가 잡았잖아요.”
“강씨 집안 왕할머니 말하는 거죠? 강승민 검사 할머니 되시는?”
“예.”
장희재가 부형윤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배다른 자식이라며 어린 애들을 보육원에 갖다 버린 것도 그분이라더군요. 그 노인네, 추진력이 무시무시해요. 주변에 돈 뿌려서 그 두 아이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린 걸 보면.”
“거참……. 장 대표는 이런 걸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저도 정말 어렵게 알아냈습니다. 그런 만큼 적재적소의 기회에 이걸 써먹으려고 합니다.”
음험한 미소를 지은 장희재가 부형윤과 눈을 맞추었다.
“이건 한태주와 강승민의 목을 동시에 날릴 기회,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부형윤의 눈이 흥분으로 요동쳤다.
그러나 며칠 전, 강승민과 만났던 일을 떠올리자 그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아니에요, 장 대표. 일단은 그 건은 보류합시다.”
“네? 하지만 검사장님….”
“강승민이 이중협 사건을 캐고 있어요.”
얼마 전,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강승민이 그에게 지나가듯 속삭인 적 있었다.
-이중협 사건 때 담당 검사님의 직속상관이 검사장님이셨다고 하더군요.
하필이면 강승민이 그 사건은 어떻게 알아서.
“분명 그 일은 검사장님 직권으로 묻어버린 사건이잖습니까. 일개 검사가 어떻게그 일을….”
“강 검사가 애송이라고 너무 얕보지 말아요.”
부형윤은 알 수 없는 껄끄러움에 헛기침했다.
“그놈 별명이 악어예요. 한번 문 사건은 절대로 놓지 않아서요.”
“이번에도 검사장님 선에서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 밑에 시키셔도 충분히….”
“지금 시기가 시기인지라 제가 직접 나설 수는 없습니다. 애들 시켜서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죠.”
부형윤이 이를 악물었다.
강승민이 더욱 깊게 파헤치기 전에, 서둘러 입을 막아야 했다.
장관 후보에 오른 지금, 그에게 어떤 어긋남도 있어서는 안 되니까.
* * *
몇 시간 후.
태주는 차용석과 함께 병원 수납을 하고 오는 길이다.
“그런데 수안 씨는 괜찮은 거냐? 의사 말로는 뭐래?”
“스트레스성 실신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대요. 열도 내렸으니 곧 퇴원해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 그럼 대표님한테 알리지 말고 바로 윤수안 집으로 가자. 그 인간이 수안 씨 일어났다는 거 알면 바로 데려오라고 할 테니까.”
차용석의 걱정스러운 눈길에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장희재와 통화했던 내용을 차용석에게 말해주었더니, 그는 짐작 가는 게 있다고 했었다.
-예전부터 장 대표가 우리 회사 여배우들 데려가서 검찰 측에 접대를 많이 했었어. 장 대표 말대로 한 애들은 특별히 잘 밀어주었고. 윤수안은 자기가 여태껏 거절한 걸로 알고 있는데…. 결국, 이렇게 됐나 보네.
그 말을 들은 태주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도저히 장희재 대표를 좋게 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까면 깔수록 추악한 면만 나오는 인간이니까.
윤수안이 있는 병실 문을 여는 그의 손길이 제법 거칠었다.
그런데 분명 침대에 누워있었던 윤수안은 침상까지 깔끔하게 정리한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누워 계시죠.”
“괜찮아요, 팀장님.”
그녀는 차용석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더는 폐를 끼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집에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 아뇨!”
차용석의 호의 어린 말에 윤수안은 몸을 덜덜 떨었다.
“우리 집에 재남이 오빠 와 있을지도 몰라요. 안 갈래요, 거기는.”
“그럼 호텔을 하나 잡는 게….”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요. 기자들 의심만 살 뿐이에요.”
태주가 불쑥 끼어들자 윤수안의 눈이 와락 커졌다.
그는 윤수안을 안심시키듯 고개를 끄덕였다.
“염수정 선배님한테 연락해 드릴게요. 같은 회사 식구였을 때, 수안 씨 예뻐해 주셨다고 하셨잖아요. 하룻밤 재워주는 건 허락해 주실 거예요.”
윤수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주가 염수정에게 연락했다.
밤중에 급히 연락한 거였지만, 그녀는 사정을 듣고는 얼른 윤수안을 데려오라며 집 주소를 찍어 주었다.
“그럼 갑시다.”
일사천리로 일은 진행되었다.
차용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태주는 윤수안을 염수정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차 팀장님.”
“아니 뭘 이 정도로…. 수안 씨 몸조리나 잘해요. 나중에 회사에서 씩씩하게 봅시다.”
“그럴게요!”
결연한 표정의 윤수안은 태주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태주 씨, 오늘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해요, 수안 씨. 알았죠?”
악수하며 말하는 태주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태주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얼굴이 발개진 그녀가 홱, 안으로 들어갔다.
윤수안을 보낸 태주는 차용석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좀 쉬고 새벽 6시까지 나와 있어. 피곤하지만 힘내자.”
“예능 촬영인데 신나게 가야죠. 아, 이게 얼마만의 ‘하루세끼’ 촬영인지.”
차에서 내린 태주가 차용석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형. 정말 형밖에 없어요.”
“너야말로 애가 참….”
차용석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삼켰다.
정말 너한테는 매번 놀라게 된다고.
예전에 염수정을 구하려 이중협이 그랬던 것처럼, 어쩜 너도 똑같을 수 있냐고.
“…좀 이따 보자, 태주야.”
차용석이 떠나자 태주는 기지개를 켜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껏 가만히 있었던 이중협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쓰레기보다 못한 인간 같으니라고. 어떻게 열심히 연기해보려는 애한테 자기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접대를 하라고 시킬 수 있어.]‘……배우들을 아티스트가 아닌 제 장기말로 쓰는 인간이니까요.’
이제 태주도 완전한 결심이 섰다.
몇 개월 남짓 남은 드림액터스와의 재계약은 안 하겠다고.
* * *
새벽 일찍 ‘하루세끼’ 촬영장으로 향한 태주는 하품하며 도착했다.
그가 마이크를 차고 있을 때, 하강웅이 몰래 태주에게 다가왔다.
“와악!”
“아악 깜짝이야!”
“아아악! 형 눈 왜 이렇게 충혈됐어요!”
그런데 태주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하강웅이 더욱 크게 놀랐다.
“내가?”
“무슨 뱀파이어 같아요.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눈은 핏발 서 가지고 엄청 무섭네!”
“아, 미안. 어제 잠을 못 자서.”
윤수안을 데려다주고 집에 온 후, 여러 가지 생각을 잠에 못 든 그였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바람에 얼굴이 엉망이 된 건 당연하다.
하강웅은 그런 그를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럼 저 그냥 갈게요. 뭐 부탁하려고 했는데, 못하겠네.”
“뭔데?”
태주가 그를 불러세우자 하강웅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렸다.
“우리 이번에 신곡 나오거든요. 그런데 거기 뮤비에 형이 주인공으로 나와줬으면 해서요.”
“신곡?”
태주가 기억을 더듬었다.
저번에 설채빈이 말했던 것도 같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하강웅은 태주에게 이어폰을 건네주었다.
이어폰 속 흘러나오는 곡을 유심히 듣던 태주.
기대감에 그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와, 이거 대박이다. 뭔가 차가우면서도 포근한 겨울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야. 이것도 지호 형이 만든 거야?”
“작곡은 지호 형이 했고, 가사는 우리 멤버들이 골고루 나눠서 했어요. 그런데 곡, 정말 괜찮아요?”
“진짜 좋다니까. 이거 나한테만 보내주면 안 되겠지? 벌써 중독된 거 같은데.”
“흐흐, 그렇게 좋단 말이죠?”
태주의 거듭되는 칭찬에 하강웅의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했다.
“그럼, 형. 뮤직비디오 주인공 해주시는 거예요?”
“흠…….”
“이번 타이틀곡, 지호 형이 형을 뮤즈로 생각하면서 쓴 곡이래요. 그래서 뮤직비디오의 주인공도 형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그랬어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태주는 괜히 멋쩍어졌다.
“내가 뭐라고 뮤즈까지….”
잔뜩 칭찬에 취한 그에게 이중협이 말했다.
[태주야, 뮤직비디오에서 네가 맡을 역할이 야구선수가 맞냐고 물어봐.]현실적인 조언에 태주가 정신을 확 차렸다.
“강웅아,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내가 연기해야 할 역할이 야구선수 맞아? 전에 채빈이가 얘기해줬거든.”
“네, 맞아요.”
하강웅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동점인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로 출전, 끝내기 홈런을 치는 역할이에요.”
그러나 태주가 난감한 듯 말한다.
“어, 그런데 이걸 어떡하냐…….”
태주는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야구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 사이에서 갈등했다.
“나 태어나서 야구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네? 정말요? 그럼 야구장 가본 적은 있어요?”
“축구장은 가봤어도 야구장은 가본 적 없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야구가 얼마나 재밌는 운동인데요!”
하강웅이 열변을 토하는 말에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야구를 아주 모르지는 않아. 예전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했을 때, 진짜 열심히 응원했었거든.”
“형, 베이징 올림픽이 몇 년 전인데요. 10년도 더 전이잖아요.”
한숨을 쉬는 하강웅에게 태주가 물었다.
“그럼, 난 안되는 거야?”
“아니요. 형만 할 의사가 있다면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죠.”
하강웅이 확신에 차서 덧붙였다.
“9회 말 2아웃의 영웅이 될 사람은, 형밖에 없다고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