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16
216화
9회 말 2아웃 (6)
쿠쿵, 쿠쿵.
기차가 속도를 내며 움직이는 이때.
기차에 탑승한 승객들은 두 파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김석만 사장을 중심으로.
다른 한쪽은, 치매 걸린 노인과 여자 그리고 7살짜리 남자아이로.
김 사장과 함께 있던 현석은 다른 칸에서 좀비들에게 막혀 이쪽으로 다시 미처 넘어오지 못한 아들, 유성이를 걱정하고 있었다.
애초에 아들과 떨어지게 된 것도 그의 불찰 때문이었다.
그가 대책 회의하는 사이, 유성이가 치매 걸린 노인을 화장실에 데려다준다고 따라갔다가 이 사태가 터진 것.
“어머, 어떻게 해.”
현석의 뒤에서 발을 동동거리던 여자가 긴장된 듯 말했다.
“깨진 창문을 타고 들어온 좀비들 때문에 여기로 넘어오지를 못하네.”
그때, 김석만 사장이 짜증 난다는 목소리를 냈다.
“에이 썅, 대책 세우기도 바쁜 마당에 저 인간들까지 걱정하게 생겼어요?”
그는 모두에게 선언했다.
“저 칸을 끊읍시다. 모두를 안고 갈 수는 없어요.”
그 말에 현석이 이를 드러냈다.
자기 아들이 저기에 있었다.
“안 됩니다. 저기에 아직 사람들이 남아있다고요.”
“그럼 네 아들 살리겠다고 우리 다 죽어야겠어?”
“저기 당신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분을 버리실 겁니까?”
“이참에 노망난 노인네, 치워버리고 좋지 뭐. 쓸모도 없는 노인네 따위 버리는 게 나아.”
김석만의 냉혹한 말에 다들 숨을 삼킨다.
그는 애초에 치매 걸린 아버지를 땅끝마을 양로원에 맡기려고 기차를 탔다고 했다.
김석만의 패륜적 발언에 현석의 눈동자가 그에게 고정되었다.
“당신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군요. 아버지를 구하려는 노력조차 안 한다니.”
핵심을 꿰뚫는 현석에게 김석만이 괜히 역정을 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아버지 챙기게 생겼어!”
그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모두를 훑어보았다.
“치매 걸린 노인네 챙기느라 저 뒤에 낙오된 저 사람들이 멍청한 거라고! 강한 자들만 살아남는 게 지금 상황에서는 당연한 거야. 약자들을 다 챙기고서 어떻게 살아, 엉!”
포악한 그의 성정에 아무도 뭐라 못 하자, 현석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 또한 아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 있었다.
가만히 제 옆에 붙어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할아버지를 도와준다고 나섰다가 자신과 이렇게 헤어졌다.
‘미련하게 남을 돕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런 상황까지는 안 왔을 텐데….’
생각해 보면 유성이는 늘 그랬다.
착해빠져서 투정 한 번 부린 적 없고, 망설임 없이 늘 누군가를 도왔다.
“당신 아들이 미련해 빠져서 저렇게 된 거니까, 그만 포기해.”
김석만이 현석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적어도 당신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
김석만의 똘마니를 자처하던 문동현도 현석을 비웃었다.
“아저씨, 괜히 객기 부리지 말고 김 사장님 말씀 들으시죠. 미련한 아들 구하다가 아저씨도 개죽음당하지 말고. 본인이 살고 보는 게 먼저 아니에요?”
그 말에 현석이 주먹을 꼭 쥐었다.
“남들 눈에는 미련하게 착해빠진 아이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제게는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맞은편 칸으로 갈 준비를 했다.
“저는 아들을 구하러 가겠습니다. 제 아들 챙길 사람은 아버지인 저밖에 없으니까요.”
그 말에 동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못난 아들이라고 평생을 아버지께 모멸당했던 그로서는 현석의 이런 부성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 대한 묘한 존경심을 느끼자,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때, 김석만이 침을 퉤, 뱉었다.
“그럼 너 혼자 건너가서 네 아들하고 뒈져, 우리는 살아야겠으니까!”
현석이 야구방망이를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맞은편 칸으로 떠난 가운데.
쾅!
문이 닫히고, 사람들은 칸막이에 난 조금만 창을 통해 현석이 짐칸으로 훌쩍 올라가 좀비들의 공격을 피해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것을 바라봤다.
좀비들이 어두운 곳에서는 기동력을 잃는다는 것을 안 그는 커튼을 치며 이동했다.
뒤에 남은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저 사람…… 안 죽겠는데?”
순식간에 현석이 자신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도착한 그때.
뒤에서 복잡한 표정으로 이 모든 것들을 보던 문동현이 패딩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온몸에 두꺼운 테이프를 감싸며 자신을 무장하던 그에게 김석만이 눈을 흘겼다.
“너 지금 뭐 하냐?”
“……저도 도우려고요.”
문동현이 현석을 도와 사람들을 이곳으로 대피시키려 한다는 걸 눈치챈 김석만.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소리 질렀다.
“돌았냐, 새끼야? 저기 가면 너도 죽어, 새끼야!”
“그래도 갈 겁니다. 혹시 함께하실 분 있나요?”
그가 주변을 훑어보자, 다들 동현의 눈을 피했다.
자신들은 안전하게 이곳에 있겠다는 확고한 의사.
동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현석과 마찬가지로 야구방망이를 챙겨 맞은편 칸으로 넘어갔다.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건지…….”
그의 등장에 좀비들이 달려들자, 맞은편에서 짐칸을 기어 오던 사람들이 이동하기 수월해졌다.
마구잡이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던 동현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시킨 야구를 했고, 그런 그를 부모님은 늘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달라던 아버지는 그가 프로 선수가 되기를 바랐지만.
연습 중 부상 당했고 결국 그는 그대로 낙오했다.
결국, 이룬 것 없이 취업 시장에 나왔지만, 35살이 된 지금까지 알바만 전전하며 백수로 살고 있다.
부모는 그가 사람도 아니라며 힐난했고, 그에게 부모는 더는 가족이 아니었다.
그런 동현에게 현석의 부성애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자식을 구하러 간다는 저 각오와 용기, 사랑은 자신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때, 좀비가 동현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캬악!”
쾅!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살며시 눈을 뜨자, 좀비가 나뒹구는 모습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홀로 남은 현석의 외침이 들렸다.
“정신 차려요, 죽기 싫으면!”
* * *
“와…. 죽인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다들 숨을 죽인 채 배우들이 열연하는 촬영장에 눈을 고정했다.
원테이크로 진행되는 한태주와고성열의 액션씬.
촬영 전 몇 번이고 맞춰볼 때도 놀랐지만, 실제 촬영하는 지금은 그저 전율할 뿐이다.
야구방망이로 좀비들을 후려치는 태주와 고성열의 액션은 호쾌하고도 시원했다.
특히 대상을 정해놓고 파워풀하게 타격하는 한태주의 폼이 예술이었다.
“한태주한테 저런 파괴적인 면도 있었다니!”
양군보 감독은 만족스러움을 주체하기 어려운지, 연신 감탄했다.
그런 그때, 스태프 사이에 섞여 있던 한 남자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현장 시찰을 나온 제작사 ‘현필름’의 본부장이었다.
아무도 없는 구석에서 그가 조용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물건 하나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
수화기 너머의 신예지가 냉철하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러더라. 우리 영화, 할리우드 좀비 영화 카피해서 CG로 떡칠한 삼류 작일 게 뻔하다고.
“우리 영화를 보면 절대로 그런 말 못 할 겁니다.”
코웃음을 친 본부장의 머리에 여태까지 작업한 양군보 감독의 결과물들이 싹 지나갔다.
배우들의 열연과 감독의 세련되고도 과감한 연출이 곁들여진 결과물은 환상,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는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좀비 영화의 탄생이라 감히 자신했다.
특히 우아하면서도 파워풀한 한태주의 액션이 환상적이었으니까.
몇몇 사람들은 한태주의 연기가 발전이 없다, 비판했었다.
몇몇 문화 평론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연기는 ‘청춘스타’에서 답보 상태라는 것.
그러나 그들이 오늘 한태주의 연기를 본다면, 절대로 그런 말을 못 할 것이다.
야구방망이를 미친 듯이 휘두르는 광기 어린 모습.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이 악문 기백.
감히 누가 저 장면을 보고 한태주더러 연기가 정체되었다고, 그가 청춘스타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하겠는가.
-오케이, 이따 회사에서 자세히 얘기하자.
본부장의 긍정적인 보고에 기분이 고무된 신예지가 들뜬 목소리로 덧붙였다.
-홍보팀이 예정대로 개봉 진행하자고 하던데, 그렇게 밀고 나가면 되겠네.
“지금 속도라면 내년 5월에 칸에서 첫선을 보이고, 5월 말 즈음에 한국에서 개봉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 좋은데,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
아쉬움을 삼킨 신예지가 말을 이었다.
-조선패션왕하고 붙지는 못하겠어. 그쪽은 내년 설날 연휴를 노리는 것 같더라고.
“글쎄요, 제가 듣기로는 대표님….”
본부장은 비밀을 말하는 듯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자칫하다가 창고형 영화 될까 봐, 지금 스태프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 중간 시사회 했는데, 투자자 측에서 전체적으로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수정한다고? 그럼 개봉이 밀릴 수도 있다는 거야?
“네. 저희랑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야 좋지.
수화기 너머 신예지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우리 영화가 그만큼 좋으니까.
* * *
동 시각, 모브픽쳐스.
한데 모인 홍보팀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수다를 떠는 중이다.
“이 기사 보셨어요? 한태주가 폴라리스 신곡에 주인공으로 나온대요.”
여직원이 내보인 핸드폰에는 연예계 기사가 떠 있었다.
“진짜? 대박! 나 꼭 봐야지.”
“한태주가 폴라리스 멤버들하고 친하다더니. 와, 뮤직비디오도 찍어주네.”
한창 수다를 떨던 그녀들의 주제는 영화로 옮겨갔다.
“어제 ‘조선패션왕’ 촬영장에서 일어났던 일 들었어? 감독님하고 김결 씨하고 대판 싸웠다잖아.”
“설마, 얼마 전에 중간 시사회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거예요? 헤븐 엔터에서 우리 영화에 베드신 추가하라고 한 거 때문에?”
“뭐, 그것도 그건데…….”
홍보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김결 씨는 자기 캐릭터가 로맨스와 서사가 반반으로 배분되었으면 하나 봐. 그런데 감독님은 로맨스에 좀 더 비중을 주려고 하고.”
“이미 중국 리조트 배경으로 둘이 베드신까지 찍고 왔다면서요.”
“배경이 일제강점기인데 중국풍 리조트가 말이 돼?”
“여배우 쪽에서도 말 많아. 중국 로케 갔을 때 감독이 합의 없이 베드신 집어넣었다고. 감독님 말로는 거기 배경이 예뻐서 남녀 간의 정사를 꼭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대.”
“진짜 영화가 끝까지 잘 마무리나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거기 들인 돈이 얼마니.”
“내년 설 연휴 때 개봉한다는 거, 밀릴지도 모르겠다. 투자자 입김으로 수정이 이렇게 들어가서야, 나 원 참.”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홍보팀장이 커피를 후룩 마셨다.
“그런데 양군보 감독은 어떻게 되고 있대? 들은 거 있어?”
갑작스레 계약 해지를 당하고 현필름에서 새로 영화를 시작한 양군보 감독에게 직원들은 그리움을 갖고 있었다.
애초에 그의 작품은 매우 좋았던 게 사실이었기에.
홍보팀장은 옆에 있던 여직원을 보고 말했다.
“네 친구가 양 감독님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었잖아.”
“네, 연출부 스태프로요.”
시선이 모이자 여직원이 흥분한 듯 말했다.
“이번에 양군보 감독님, 제대로 이 갈고 영화 만드시나 봐요. 좀비들도 정말 리얼하고 무엇보다 연기가 좋대요.”
“거기 캐스팅된 배우들이 다 대단한 사람들이니까. 한태주에 이선우에.”
“특히 이선우가 와, 악역 변신을 제대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대단하네, 이선우 악역 하는 거 처음이잖아.”
홍보팀장이 눈을 반짝였다.
“그 반듯한 얼굴에 과연 악역이 어울릴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확인할 수 있겠어.”
“아무리 이선우가 연기 신이라지만, 악역은 어렵지 않을까요. 그것도 설득력 있게 연기를 해야 하는 건데”
“그보다 한태주가 더 궁금해요. 아직 22살밖에 안 되었는데 아기 아빠 역할 맡았잖아요.”
“한태주가 아빠 역을 어떻게 연기하려나. 뭔가 어색하지 않을까?”
“한태주야 워낙 연기를 잘하니까 충분히 소화할 거 같은데? 그나저나 젊고 잘생긴 아빠라니, 뭔가 낭만적이다~”
대화의 주제가 순식간에 이선우에서 한태주로 넘어간 지금, 다들 광분해서 대화에 참여했다.
그때, 친구가 양 감독 휘하 스태프로 일한다던 여직원이 말했다.
“아역배우랑 한태주 씨 케미가 그렇게 좋대요. 그런데 무엇보다 한태주 씨 이번 연기의 백미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파괴적인 액션이 정말 압권이래요.”
“파괴적인 액션? 한태주가?”
그 말에 직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태주, 파괴적…. 그 두 단어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요. 그동안 한태주가 했던 액션들은 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운 선에 기반했던 액션이었잖아요.”
“그렇지. 솔직히 카리스마 있는 거면 몰라도 파괴적인 건 어려울 거 같은데….”
여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이번에야말로 한태주가 이미지 변신 제대로 한 것 같다고. 그런데 그게 정말 미친 듯이 잘 어울린다고.”
“그래? 그럼…. 좀 걱정되는데.”
홍보팀장이 팔짱을 끼며 얼마 전 견학했던 영화, ‘조선패션왕’ 촬영 현장을 상기했다.
분명 기대를 잔뜩 안고 갔지만, 실망만 잔뜩 안고 돌아왔었다.
가장 큰 이유는 촬영 내내 어디서 본 듯한 씬들만 자꾸 나온다는 것.
로맨스 씬도, 액션 씬도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영화 전체적으로 제작자의 중국풍스러운 취향까지 더해져.
얼굴이 어두워진 홍보팀장이 중얼거렸다.
“제발 개봉 미뤄지지 말아라. 우리 영화랑 탈출하고 정통으로 붙으면 분명 깨지는 건… 우리니까.”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