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위기는 가장 큰 기회 (2)
* * *
“선배님, 선배님!”
“커피를 사 온다더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원두 따다가 만든 거야?”
잔소리하는 우성림 옆에 황유나가 덜컥 앉았다.
“아웃패치에서 한태주 선배 특종 잡은 것 같아요!”
“아웃패치에서? 뭔 소리야, 그게?”
“아웃패치에 장희재 대표가 제보한 게 있는데, 한태주 선배 아버지가 사생아 출신이래요.”
“뭐?”
그 말을 들은 우성림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홍은지와 그 또한 한태주 전문가라 할 만큼 그의 뒤를 파왔었다.
그런 그에게 황유나가 또 다른 충격을 끼얹었다.
“강대원 대법관 댁에서 과외 선생님으로 일하던 대학생 사이에서 낳았다고 하던데요. 혹시 여기에 대해서 들으신 바 없으세요?”
“잠깐…. 잠깐만.”
우성림은 방금 황유나가 말했던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누가 들을세라 그의 목소리는 한껏 작아져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거잖아. 아웃패치의 조삼식 기자가 드림액터스 장희재한테 제보를 받았다, 한태주의 아버지가 사생아 출신이며 그의 아버지는 전직 대법관 강대원 씨고 그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과외 선생님으로 일하던 분이다?”
“네, 딱 제가 들은 그대로예요.”
한숨을 내쉬던 우성림은 일단 황유나의 입부터 단속했다.
“너,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확실하지 않은 정보니까 입 닫고 있으라고, 알았지?”
“당연… 당연하죠.”
잔뜩 긴장한 황유나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한태주 선배,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예요. 선배한테 헛소리하는 기레기들은 제 손으로 모가지를 부러뜨리고 싶은 마음이라고요!”
“그래. 한태주 배우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우리가 용서할 수 없지. 더욱이 상대가 아웃패치라면 정확한 팩트를 가지고 반격해야 한다고.”
우성림은 이를 악물고 머리를 굴렸다.
홍은지 선배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장희재 대표에 관해 조사하고 있는 거 알지? 뒤통수를 제대로 칠만한 정보를 내가 쥐고 있어.
분명 그때 홍 선배는 의기양양해 보였었다.
그러나 정작 장 대표가 쥐고 있는 비밀은 간과한 게 아닐까?
한태주 출생의 비밀을 장대표가 숨기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의도적으로 터트리려는 거라면?
설마 한태주랑 드림액터스랑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라서?
우성림은 옆에 있던 황유나에게 말했다.
“홍은지 선배 좀 찾아와 봐. 한태주 건으로 급하게 의논드릴 게 있다고, 얼른.”
“네!”
황유나가 번개처럼 없어지자, 우성림은 재빨리 핸드폰으로 누군가의 번호를 찾았다.
그가 전화 버튼을 누른 건 차용석이었다.
* * *
“네, 저희 쪽에서도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성림과의 통화를 끝낸 차용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전에 한유경이 술기운에 흘린 소리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그였다.
-우리 엄마, 진짜 불쌍하게 돌아가셨어요. 나이 어린 둘째 마누라라고 당당하게 결혼식도 못 하고, 나 낳고 산욕열로 죽고.
한유경은 차용석과 진지한 사이가 된 이후,이따금 한탄하듯 과거사를 흘릴 때가 있었다.
그래서 차용석은 태주의 집안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장 대표까지 알았을 줄이야…. 약점 잡아서 캐는 건 여전하군.”
그리고 그는 방금 우성림이 알려준 내용으로 확신했다.
장 대표가 조삼식과 손을 잡고 태주의 목줄을 쥐고 흔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분노로 일렁이는 마음을 애써 다잡은 그가 장희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조삼식이 보낸 기사 초안을 읽고 있던 장희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좀만 양념 쳐서 보강해도 괜찮겠는데.”
그때, 핸드폰에서 달갑지 않은 전화벨이 울렸다.
상대를 확인한 장희재가 썩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차 팀장, 직접 대표실로 오지 웬 전화야?”
수화기 너머에서는 차용석이 냉랭하기 짝이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잘나가는 배우를 자기 입맛대로 길들인다고 사생활을 들쑤시는 건 아마 대표님밖에 없을 겁니다.
“좀 알아듣게 말해, 나 지금 바쁘니까.”
-태주 아버지와 고모, 더 이상 파지 마십시오. 그분들이 사생아라는 말도 안 되는 시놉 써서 아웃패치에 조삼식 기자한테 넘긴 거, 다 압니다.
차용석의 말에 장희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러나 곧 매끄러움 속에 당황스러움을 숨긴 장희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원래 등잔 밑이 제일 어두운 법이니까요.
“그게 무슨…….”
-사실 사생아 타령하려면 대표님이 빠질 수 없잖아요. 심요연 선배한테는 아직 애 가질 생각이 없다고 하더니, 다른 여자하고는….
“야!”
잔뜩 흥분한 장희재의 귓가에 차용석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알아서 좀 조심하십시오. 제가 흥분해서 기자들한테 이런 얘기 흘리기 전에요.
통화를 끝낸 장희재가 잔뜩 붉어진 얼굴을 들었다.
“이 새끼가 밑에서 내 뒤나 캐고 있었던 건가….”
차용석을 얕본 게 실수였다.
한태주를 쥐고 흔들려다 자칫하다가는 자신이 당하게 생겼다.
잠시 입술을 깨물던 그는 전화를 들었다.
“납니다, 조 기자. 한태주 기사 좀 보류해 보자고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좀 더 타이밍을 봐야 할 것 같아요….”
* * *
그날 저녁.
평창동 대저택에 들어서는 차에서 훤칠한 젊은이가 한 명 내렸다.
일에 찌든 얼굴로 그가 저택의 초인종을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했는데 하필 가족 모임이라니. 젠장…. 그냥 집에서 푹 자고 싶다.”
달칵, 문이 열리자 강승민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온화한 인상의 중년 여자를 본 순간, 그는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활짝 웃었다.
“엄마!”
“아이고 우리 막내, 좀 안아보자! 하도 못 봐서 네 얼굴 까먹게 생겼어!”
“엄마도 참, 한 달 전에 가족 모임 해 놓고 무슨 소리예요.”
강승민은 어머니에게 살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큰아버지는 오셨어요? 큰어머니는? 승원이 형은?”
“바빠서 못 오신단다. 승원이도 못 온대.”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아버지는요?”
그 말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재에서 꼼짝을 안 하신다. 저녁 먹어야 하니까 네가 좀 불러와. 가는 길에 할머니한테도 인사 좀 드리고.”
“할머니는 장손이 와야 좋아하지,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승민아!”
“네이, 네이.”
투덜거리던 그는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다.
맨 처음 나오는 방문 앞에 서, 노크하고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할머니, 저 왔어요.”
방 안에 꼿꼿이 앉아 책을 보고 있던 백발의 노파가 고개를 돌렸다.
허리가 조금도 굽지 않은 그녀는 전체적으로 신경질적인 인상이었다.
“승원이는? 오늘도 안 온다니?”
“큰집 식구들은 바빠서 못 온대요. 이제 곧 저녁 먹는다는데, 제가 에스코트해 드릴까요?”
“문이나 닫아라, 책 읽고 있는데 산통 깨뜨리지 말고.”
손자의 애교에도 할머니가 차갑게 응수하자, 강승민은 얼른 문을 닫았다.
어렸을 적부터 같이 살았던 친할머니였지만 매몰차고 차가운 성정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볼 건 얼굴밖에 없다며 그의 어머니를 무시하던 것도, 첫째보다 잘난 것 하나 없다며 그의 아버지를 비난하는 것도, 모두 다.
바삐 걸음을 옮기던 강승민이 서재 문을 노크했다.
“아버지, 저예요.”
“승민이냐?”
안에 들어가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서재에서 한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다.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간 강승민은 사진 속 인물들을 보고 눈이 커졌다.
서재에 틀어박힌 아버지가 닳도록 보고 있는 저 사진은, 그도 아는 것이었다.
중년의 남자가 양옆으로 어린 소년과 소녀를 안고 있는 사진.
“진작에 찾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속삭임에 가까운 아버지의 말에 강승민이 대답했다.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니죠. 지금이라도 찾아드려요?”
“……얘네들이 날 미워할까 두렵다.”
강원경은 아들에게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아왔을 내 두 이복동생이, 나를 미워하는 건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 미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아버지의 잘못만은 아니었죠.”
강승민이 신랄하게 말했다.
“솔직히 할머니가 죽기 살기로 반대해서 그분들 못 찾은 거잖아요. 이복동생들하고 연 안 끊으면 아버지 학비랑 생활비 다 끊고 무일푼으로 쫓아낸다고 하셨다면서요.”
법무장관의 막내딸이자 대법관 강대원의 아내였던 그의 할머니, 박숙자 여사.
남편에 대한 일관된 무시, 거듭되는 외간 남자들과의 불륜으로 부부의 결혼생활은 파탄에 이르렀고, 결국 이혼으로 끝났다.
그 후 중학생 남자아이 둘을 키우던 강대원은 과외를 해줄 여자를 구했고, 그게 한윤희였다.
명문 여대를 중퇴한 그녀는 아이들의 공부를 곧잘 봐주었고, 아이들은 물론 강대원과 가까워져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조용히 혼인신고를 한, 둘은 아들을 낳는 등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딸을 낳고 산욕열로 한윤희가 죽자, 크게 상심한 강대원은 곧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 후 집안의 실권을 잡게 된 건 강대원의 전처인 박숙자.
아들 강원경의 부탁에도 박숙자는 냉혹하게 이복동생들을 보육원으로 내쫓았다.
냉정한 어머니보다 따뜻한 새엄마가 좋았던 강원경은 그 후로도 그녀를, 이복동생들을 잊은 적 없었다.
동생들의 행방을 찾은 건 그가 법대생이던 어느 날이었다.
보육원 봉사하다 간신히 찾은 이복동생들은 서로만을 의지한 채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는 그 당시에 아이들을 제집으로 데려올 용기가 없었던 것을 지금까지 후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신히 찾은 동생들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동생들을 찾아서 그동안 못 해줬던 것을 해줘야겠어.”
아버지의 말에 강승민은 한동안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여기 이 남자, 제가 아는 사람하고 좀 닮은 것 같아요.”
“누구?”
“……한태주라고.”
강승민의 눈앞에 한태주의 잘생긴 얼굴과 사진 속 잘생긴 소년의 모습이 겹쳤다.
그 말에 강원경의 눈이 번쩍 빛났다.
* * *
다음날, 현필름.
어두컴컴한 대표실에는 빔프로젝터가 띄워져 있었다.
양군보 감독이 이제까지 찍은 영화 파편들을 편집해서 신예지 대표에게 보여주러 온 거였다.
신예지도, 양군보도 한껏 집중해서 영상을 보는 이때.
그들의 눈앞에 긴박한 장면들과 배우들의 열연이 펼쳐졌다.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한껏 몰입한 시간이 지나고 영상이 끝나자 비서가 불을 켰다.
“아, 벌써 끝났어?”
신예지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양군보 감독을 마주했다.
“왜 이렇게 짧아요? 영화의 2/3를 가져왔다면서요.”
“분명히 60분 정도의 분량이 맞습니다.”
시계를 확인한 양군보가 씩 웃었다.
“맞네요, 한 시간 정도.”
“우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봤네요. 성 비서는 어땠어?”
신예지의 말에 비서가 무표정한 얼굴을 끄덕였다.
“저도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감상한 것 같습니다. 얼른 영화의 후반부도 보고 싶네요.”
“성 비서님은 극찬해 주셨고.”
양군보가 조심스럽게 신예지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어떻긴요. 제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으면 끝난 거 아니에요?”
신예지가 말간 미소를 지었다.
“얼른 후반부 촬영 진행해 주세요. 얼른 나머지 부분 보고 싶어서 죽겠으니까.”
* * *
양군보 감독이 돌아간 후.
신예지가 컴퓨터를 보며 성 비서와 논의했다.
“오늘부로 확신했어. 우리 영화는 그 어떤 영화와 부딪혀도 경쟁력 있다는 걸. 솔직히 말해서 한태주 연기가 미쳤어. 아역배우와의 케미도 그렇고. 파괴적인 액션이 한태주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너무 매력적이야.”
“이선우의 악역 변신도 빼놓을 수 없죠. 다른 조연들도 구멍 하나 없이 연기를 잘하고요.”
“기대된다, 진짜. 얼른 내년이 왔으면 좋겠어. 사람들 반응 장난 아닐 거 같은데.”
잔뜩 신나 있던 신예지에게 비서가 여러 서류를 건네주며 말했다.
“대표님, 이번 주말에 XJ 엔터테인먼트 한서경 부회장님 생일 파티 참석하시는 거, 잊지 않으셨죠?”
“아, 맞다! 요즘에 영화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만.”
“대표님.”
“성 비서가 나 양복 한 벌만 새로 구해오면 안 될까? 거기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비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대표님 치수에 맞는 양복, 주문해 놨습니다. 내일 찾아올 예정입니다.”
“고마워, 성 비서.”
신예지는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가서 한서경 부회장님한테 우리 영화 배급 상의해 볼 예정이야.”
“XJ는 이미 ‘조선패션왕’ 배급을 논의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아직 확정은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알기로, 도전정신 강한 한서경 입맛에는 우리 영화가 더 취향일걸.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이선우의 성공적인 악역의 변신, 주연과 조연 가리지 않은 구멍 없는 연기. 그리고 한태주라는 존재.”
“아, 그러고 보니 거기 이번에 피셔 감독의 ‘나의 미래’도 한국 배급 논의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한태주 때문인가요?”
“맞아. 전적으로 한태주의 연기력 하나만 보고 그쪽도 기대를 건 거지.”
이글거리는 눈의 신예지가 씩 웃었다.
“한태주의 성공적인 연기 변신은 분명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거라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