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내가 연기를 하는 이유 (1)
놀란 강승민이 재빨리 인터넷을 뒤졌다.
하지만 인터넷에 남은 여병래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세상에서 증발한 사람처럼 너무나도 깨끗했다.
강승민은 다소 급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 선배에게 매달렸다.
“여병래 기자는 연예부 소속 아니었어?”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예부 맞아. 그런데 너도 알잖냐. 연예계랑 정치계랑 거기서 거기인 거. 기사 파다 보면 서로 연결되는 건 부지기수지.
“정확히 뭐를 팠던 건지 알 수 있어? 아니, 알려줘!”
-승민아. 갑자기 관심 가지는 이유가 뭐야? 여병래 기자 건은 이미 사건 종결됐어.
이를 까득 거리던 강승민이 자신의 속내를 슬쩍 내보였다.
“예전에 배우 이중협 죽었던 사건 알지?”
-알지. 그런데 왜?
“그 사건이 흐지부지 사고사로 종결됐더라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면에 뭔가가 있어. 빠르게 사건 종결해서 묻어야만 했던 이유가. 여병래 기자도 이중협 사건 조사하다가 갑자기 사라졌고. 당시 이중협 사건 조사하던 검사의 상관이 부형윤 검사장님이었어. 이 모든 게 하나로 연결되는 것 같지 않아?”
그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흐르더니, 무거운 대답이 들려왔다.
-야, 부형윤 검사장님까지 관련된 거면 여기서 멈춰. 더 파다간 너만 위험해진다고, 임마!
“내 말에 부인하지 않는 걸 보면, 맞다는 거네?”
강승민이 열의에 가득 찬 눈을 번뜩였다.
“줄줄이 엮인 이런 사건, 아주 좋아. 그 핵까지 파헤쳐 주겠어, 아주 확실하게!”
* * *
동 시각, LA.
디에고 크루즈와 미팅을 끝낸 태주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내일 디에고와 합을 맞춰볼 대본이 들린 채였다.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그럽시다.”
태주가 디에고와 인사를 하는데 문밖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쾅!’하며 회의실 문이 열린다.
“파파!”
디에고에게 달려드는 두 명의 아이들.
그동안 잔뜩 굳어 있던 디에고 크루즈의 얼굴이 처음으로 환하게 펴지는 순간이었다.
“마티아스! 파블로!”
그리고 그 뒤로 천천히 걸어오는 눈부실 정도의 미인.
그녀는 제작사 직원들, 그리고 태주에게 와서 인사했다.
“미안해요, 저희가 방해한 것 같네요.”
“아닙니다, 막 미팅을 마친 참이었습니다.”
제작사 대표 그렉이 태주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미세스 헬레네 크루즈입니다. 배우이신데 지금은 잠시 쉬는 중입니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배우 한태주입니다.”
“어머, 이렇게 잘생긴 남자라니 심장이 다 두근거리네요.”
헬레네는 태주의 양쪽 볼에 재빨리 입을 맞추었다.
서양식 인사인 비쥬를 받은 태주의 얼굴이 확 붉어지자.
“형 얼굴 빨개졌다!”
“엄마한테 반하지 마요!”
장난기 많은 두 아이가 자신을 에워싸자 태주는 괜히 큰소리를 냈다.
“그런 거 아니야, 이런 거 처음 받아봐서 그런 거야!”
“변명 같은데요.”
“한국에서는 이런 로맨틱한 인사 안 한다고!”
태주의 말에 주변에서는 재밌다는 웃음이 와하하 터져버렸다.
태주를 보는 디에고의 눈가에도 재밌다는 주름이 생겼다.
* * *
얼마 후.
태주는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대본 정독에 몰두했다.
어떻게 해서든 디에고의 테스트에 합격해야 한다.
말로만 듣던 대배우 디에고는, 실제로 보니 더욱 탐났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와 함께 한 스크린 안에서 합을 맞춰보고 싶을 만큼.
한참 연습에 몰두한 탓에 영어 대사로 가득 찬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 쉬려고 하는데.
때마침 박인우가 삐걱 문을 열고 들어와 그의 코에 치킨을 휘둘렀다.
“태주야, 야식 먹고 해라.”
“오케이!”
태주는 냉큼 치킨에 달려들었다.
박인우가 그에게 닭 다리를 건네주며 슬쩍 물었다.
“영어로 대본 연습하는 거, 힘들지 않아? 한국어로 연기하기도 힘든데 영어로 연기하는 건 훨씬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영화 캐릭터에 몰입해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아. 다만, 내일 디에고랑 같이 합을 맞출 때, 제발 대사를 까먹지 않길 바랄 뿐이야.”
“그 양반 기가 세긴 하더라. 내일 밀리지 않게 내가 너한테 기 팍팍 넣어줄게!”
한창 수다를 떨고 있자,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차용석도 야식 파티에 합류했다.
“형을 위해서 닭가슴살 남겨뒀어요.”
“오, 땡큐.”
열심히 치킨을 먹던 차용석은 그렉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그들과 나누었다.
“아까 제작사에서 봤던 쌍둥이 있잖아. 디에고 그 양반이 입양한 애들이래.”
박인우가 허벅지를 탁, 쳤다.
“어쩐지 부모님을 하나도 안 닮았더라!”
“와이프가 유산을 여러 번 했나 봐. 디에고 그 양반이 아내 사랑이 끔찍하더라. 와이프 고생하는 거 더는 보기 싫다고, 입양을 자기가 먼저 제안했대.”
“그런데 친자식 그 이상으로 아이들을 챙기던데요.”
태주의 말에 차용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식 사랑도 장난 아니래.”
“하긴, 철저하게 자식들 스케줄에 맞춰서 촬영 스케줄을 조절하는 거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그렇게는 못 할 것 같거든요.”
태주가 고개를 내저으며 생각했다.
다시 하게 된 연기가 너무 소중해서 솔직히 가족 보다 연기에 무게감을 맞추고 살아온 지난 날들이다.
가족도 중요했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 미치겠는 자신의 마음이 더욱 중요했다.
그때, 차용석이 막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원래는 자식이 세 명이었대. 첫째도 입양아였고. 그런데 2년 전에 첫째를 사고로 잃었다나 봐. 10살 된 여자아이였다는데.”
“사연 없는 사람이 없네요.”
“그러니까.”
차용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태주와 눈을 맞추었다.
“원래도 작품 선정에 까다로웠던 디에고 크루즈가 아이를 잃은 후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고 하더라고. 이전에는 자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아이들이 방학이어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 촬영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일절 없대.”
박인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번에 태주가 미친 듯이 연기를 잘해야 디에고가 이 영화에 참여할까 말까, 라는 거잖아요?”
“그렇지. 이번에 디에고 크루즈가 대본을 맞춰 준다고 하지만.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건 가능성이 희박할 듯싶다. 그냥 이 기회를 즐기자, 태주야.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디에고 같은 대배우랑 연기를 해 보겠냐?”
“글쎄요,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지 않나요?”
태주가 치킨 닭 다리를 뜯으며 씩 웃었다.
“디에고 크루즈가 제 연기를 보고, 같이 연기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잖아요?”
“네가 최선을 다하는 연기를 보여준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아뇨,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태주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덧붙였다.
“완전히 미쳐야 해요. 내 연기에 다른 사람들이.”
* * *
LA가 새벽의 어둠에 가라앉은 시각
태주는 호텔 책상에 앉아 대본을 펼쳐두고 연습 중이다.
차용석은 그렉과 술을 한잔하기로 했다며 이미 나간 뒤였다.
방 안에 있는 건 침대에서 졸고 있는 박인우와 대본을 연습하는 태주뿐이다.
이중협은 태주의 눈치를 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대사 좀 맞춰 줄까?]‘형, 저 집중하고 싶어요.’
[아… 알았어.]처음 보는 태주의 태도에 이중협은 벌떡 창문으로 몸을 피했다.
디에고의 테스트에서 자신의 연기로 그를 뒤흔들어 보려는 지금, 태주는 매우 절박했다.
이건 그의 배우 인생에 있어 최대의 위기이자 기회.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시험받을 기회였다.
그러니 절대로 미끄러져서는 안 된다.
그가 원하는 디에고 크루즈와 함께 연기하기 위해서는.
한참 집중하던 태주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인기척을 내자.
“기다려……. 같이 가자.”
박인우가 잠이 덜 깬 눈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태주는 그의 어깨를 쓱 밀었다.
“주무세요, 형. 저 로비에 잠깐 내려갔다 오기만 할게요.”
“그래, 멀리 가지는 마….”
태주는 잠이 든 박인우를 뒤로 하고, 호텔 로비로 나왔다.
새벽 늦게까지 하는 호텔 바에는 여러 사람으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에 자리를 잡은 후, 태주는 진한 커피를 시켜 정신을 깨웠다.
유리창 너머 보이는 LA의 새벽 시가지는 불빛으로 번쩍이는 게 여러 사람의 열기가 물씬 느껴졌다.
‘하, 이제야 좀 살겠네요.’
[졸리면 말해. 내가 너 가차 없이 깨워줄 테니까.]이중협의 서포트에 힘입어 태주는 열심히 대본을 정독했다.
펜으로 대사에 줄을 치고, 대사가 입에 붙을 때까지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런데 자꾸만 옆에서 몸을 양옆으로 흔들거리며 그를 방해하는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태주가 아이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주었지만, 아이는 되려 태주에게 가까이 다가와 얼쩡거렸다.
평범한 아이는 아닌 듯싶었다.
[그런데 얘, 동양인인가? 꼭 한국 아이처럼 생겼다.]이중협의 말에 태주는 유심히 아이를 쳐다보았다.
단발로 찰랑이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반짝거리는 밤색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게요.한국인? 일본인인가?’
[안녕.]갑자기 튀어나온 한국말에 태주도, 이중협도 모두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앗 깜짝이야! 뭐야, 이 녀석? 정말 한국인이었어?]‘한국어 할 수 있어?’
태주가 다정하게 아이와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아이는 홱, 고개를 돌리며 대꾸했다.
[레오니가 기억한 대로 구사할 뿐이야. 능숙하게 하지는 못해. 존댓말 어려워.] [엄청나게 능숙한데?]감탄하던 이중협이 아이의 눈앞에 쓱 얼굴을 들이밀었다.
[야, 그런데 네 이름이 레오니야?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온 거고?]홱.
아이가 불편한 듯 이중협에게서 벗어났다.
그런 모습에 이중협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그렇게 무서웠나? 하긴 워낙에 눈이 부리부리해서 거참.]‘아니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유심히 아이를 보던 태주가 넌지시 물었다.
‘저 아저씨 무서워하는 거 아니지? 눈 맞추는 게 불편할 뿐이지?’
태주의 말에 아이가 다시 몸을 돌려 다가왔다.
여전히 눈은 맞추지 않았지만, 손을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게 자기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레오니는 무서운 게 아냐, 불편해서 그래. 다른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건, 꼭 태양을 직접 마주치는 것과 같이 불편해….]말끝을 흐리던 아이는 태주의 다정함에 용기를 얻었는지, 두 손을 맞잡고 말을 이었다.
[레오니의 이름은 레오니 크루즈! 사자처럼 용맹하다는 뜻의 ‘레오니’와 대양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배의 ‘크루즈’를 합친 뜻이야! 그리고 레오니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태주와 이중협은 당황한 기색을 내보였다.
‘아….’
[어쩐지 애가 좀 특별하다 싶었어.]이중협이 텐션을 끌어올리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대장 귀신 생활도 어언 6년.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아이 귀신을 떠올리던 그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내 이름은 이중협! 무거울 중, 의기로울 협을 써서 의기로운 마음을 중히 여기는 남자라는 뜻이지!]레오니가 귀를 쫑긋거리며 관심을 가지는 것 같자, 태주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내 이름은 한태주! 클 태에 임금 주. 자신의 인생에 큰 임금이 되라는 뜻이야!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배우를 하고 있어!’
고개를 건들거리던 아이가 순간 딱 멈추었다.
[…배우?]아이가 태주를 붙잡고 다시 한 번 물었다.
[배우라고 했어? 한국에서 배우를 하고 있다고?]그 말에 태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흥분한 듯 눈동자를 뱅글뱅글 굴렸다.
[레오니의 아빠도 배우야! 세계 최고의 배우, 디에고 크루즈!]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