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내가 연기를 하는 이유 (4)
* * *
드림액터스 3팀.
직원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침부터 초조하게 차용석을 기다리는 직원들의 표정에 기대감과 걱정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차 팀장님은 아직이신가?”
“오전 5시 10분에 한국에 도착했다고 하셨으니까 공항에서 아침 드시고 집에서 옷 갈아입고 오시면…. 이제 곧 출근하시겠네요.”
“그런데 한태주 씨가 이번에 합 맞춘 배우가 디에고 크루즈라면서?”
목소리를 낮춘 직원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디에고 크루즈라고? 정말로?”
“그런데 좀 거만하게 굴었다면서요. 약속 시간도 제멋대로 바꾸고.”
“이번에 LA에 가족들과 여행하러 간 거래. 한태주 씨랑 대본 맞추는 것도 애써 시간을 내준 거라던 걸?”
“그래도 시간을 제멋대로 바꾸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거죠.”
잔뜩 흥분한 남자 직원에게 여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디에고 크루즈 같은 톱배우 잡으려면 뭔 비위인들 못 맞추겠어요. ”
“하긴, 디에고랑 같이 대사를 맞춰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지. 안 그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궁금증이 가득한 여직원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만약에 이선우 씨가 LA로 날아가서 대사 맞춰보자고 했어도 디에고가 그렇게 거만하게 나왔을까요?”
그 말에 남자 직원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랬을 거야. 디에고 크루즈가 2년 전에 첫째 딸을 사고로 잃은 후로 연기보다 가족을 더 끈끈하게 챙긴다더라고.”
“아, 맞다! 원래 연기에 미쳤던 사람인데, 그 사고 이후 가족 챙기는 걸 최우선으로 한다고 했죠?”
“맞아. 그래서 가족하고의 시간을 빼면서까지 작품을 하지는 않을 거 같아.”
“그럼 태주 씨랑 영화 안 할 가능성이 크겠네요.”
그때, 경쾌한 발걸음의 차용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 자! 다들 여기서 뭐 해? 일해야지?”
“팀장님!”
“LA 다녀오셨다더니 산적이 다 되셨네요.”
넉살 좋은 직원들의 말에 차용석이 까끌까끌한 턱을 쓸어올렸다.
“일이 바빠서 수염을 못 깎았더니, 이거 원…. 그래도 뭔가 마초남 같고, 좋지 않아?”
“디에고 크루즈처럼요?”
“그래, 디에고 크루즈처럼!”
“그런데, 다녀온 일은 잘되셨어요?”
직원들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차용석은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태주는 연기를 매우 잘했어.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넋을 잃고 봤으니까.”
“디에고는요?”
“그 사람은…. 글쎄….”
“팀장님!”
그 순간 헐레벌떡 전화를 받고 온 직원이 차용석에게 상기된 얼굴을 들이밀었다.
“선플라워 프로덕션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디에고 크루즈가 한국에 가서 한태주 씨랑 만나고 싶다고 했대요.”
“디에고가… 한국에 온다고? 왜?”
“태주 씨 만나서 ‘나의 미래’ 연기에 대해 한 번 더 이야기해보고 싶대요.”
그 말에 차용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렉 말이 맞았네. 자기가 더 안달 나서 우리 태주 보러 올 거라더니!”
* * *
동 시각, 넥스트 엔터테인먼트.
박송훈 대표의 추진력과 한서경 부회장의 뒷받침으로 설립된 XJ 계열의 기획사.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중심에는 드림액터스 3팀에서 이곳으로 이적한 김진수 대리와 송유리 대리가 있었다.
“일단은 드림액터스에서 계약이 끝나가는 배우들 위주로 손대 보자고요.”
“윤수안한테는 연락해 봤어?”
김진수가 펜대를 돌리며 송유리에게 말했다.
“아직이요. 개인으로 연락하는 것보다 황재남 팀장 거쳐서 하려고요.”
“그렇게 되면 장희재 대표님한테 알려지게 되잖아. 우리가 윤수안 씨한테 접촉했다는 사실이.”
“어차피 알게 될 텐데, 빨리 아는 게 좋지 않을까요?”
김진수가 일전에 차용석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다.
“흠……. 그래. 재계약으로 마음 돌아서기 전에 우리 쪽으로 빨리 끌어들이는 게 좋겠어.”
“네, 그렇게 진행할게요.”
서류를 검토하던 송유리는 김진수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한태주 씨는 언제쯤 이쪽으로 오세요?”
“내년 초에 드림액터스와 계약이 끝나니까, 이제 두 달 정도 남았네.”
“오!”
김진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한태주 씨 영입 건은,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하는 걸로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송 대리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장희재 대표님 지금 신경 곤두섰잖아요. 언론에 한태주 이적설도 돌고요. 그런데 한태주 씨를 회유하기는커녕, 배 째라 작전을 쓰는 건 도대체 왜일까요?”
“아마 한태주의 선구안이 터무니없고 자신이 더 낫다고 확신하기 때문이겠지. 청룡검신과 데스 게임. 조선패션왕과 탈출. 공교롭게도 영화와 드라마 부문 모두에서 라이벌 구도를 이루고 있잖아.”
김진수가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둘 다 흥행에 필사적인 건 마찬가지지만.장 대표가 좀 더 급해 보이더라. 요즘에 ‘청룡검신’, ‘조선패션왕’ 광고를 무진장 때리는 걸 보면.”
“그래도 ‘탈출’이나 ‘데스 게임’은 유튜브에서 반응이 좋잖아요”
송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조회수 장난 아니에요. 각각 200만 뷰 넘었다고요.”
고래를 흔들던 김진수가 결론을 내렸다.
“내년이면 결과로 증명되겠지. 한태주의 선구안이 좋은지, 장희재의 선구안이 좋은지.”
* * *
몇 시간 후.
집에서 간단히 씻은 태주는 곧바로 스케줄을 소화하러 나왔다.
오늘은 폴라리스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날이다.
운전석에 앉은 박인우가 그의 입에 졸음 깨는 껌을 하나 넣어주었다.
“민트가 잠 깨는 데는 직빵이야. 네가 민초 안 좋아하는 거 알아서 일부러 향 약한 걸로 골라왔어.”
태주는 반민초 파였지만, 박인우의 성의를 생각해서 씩 웃어 보였다.
“향 좋네요, 잠이 확 깨요.”
“그렇지? 네게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박인우가 껄껄거리며 운전에 집중한 사이.
태주는 뒤에 앉아 있던 레오니와 백미러로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레오니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왜 아까 연기한 거야?]‘어?’
[분명히 민트를 싫어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저 아저씨 앞에서 좋아하는 척 연기했어?]갑자기 들이닥친 질문에 태주가 잠시 고민하자, 옆에 있던 이중협이 대신 답했다.
[당연히 태주가 착해서지.] [착하면 싫어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거짓말해야 해? 그럼, 거짓말 못 하는 레오니는 나쁜 아이야?] [거짓말이 아니라….]이중협과 레오니의 실랑이에 태주가 끼어들었다.
‘인우 형을 좋아하니까. 그런 거야.’
[저 아저씨를 좋아해서?]‘내가 민초를 안 좋아하는 건 맞지만. 인우 형이 내가 시차 적응으로 힘들어하는 걸 알고 민트맛 껌 준 게 고마워서, 그래서 먹은 거야.’
[흠….]레오니는 알 것도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뮤직비디오 세트장.’
[뮤직비디오 세트장?]‘네가 질문했었지? 왜 연기가 재밌는 거냐고.’
[응.]‘내가 오늘 이런 종류의 연기도 있다는걸, 보여줄게.’
태주가 씩 웃으며 레오니를 바라봤다.
* * *
얼마 후, 태주는 한 세트장에 도착했다.
촬영장에는 청량한 느낌의 노래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만히 듣던 박인우가 눈을 크게 떴다.
“오, 노래 좋다. 이번에 폴라리스 1년 만에 컴백한다더니, 이 갈았나 보네.”
“제목이 유토피아래요.”
곧이어 태주는 하얀 야구복 차림의 멤버들과 마주했다.
윤지호가 그를 매우 반기며 손을 올렸다.
“태주야, 오랜만! 그런데 얼굴이 좀 탔네?”
“어디 동남아 여행 갔다 왔어?”
태주는 턱을 쓸어올렸다.
“여행은 아니지만 볼 일이 있어서 해외에 나갔다 오긴 했어.”
“무슨 일로?”
“아, 그건…….”
본능적으로 무슨 목적으로 LA를 다녀왔는지 숨겼다.
영화 ‘나의 미래’에서 디에고 크루즈와 함께 호흡을 맞출지도 모른다는 건, 대외비였으니까.
물론 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남자들의 우상, 마초 중의 마초인 ‘디에고 크루즈’와 스크린 안에서 연기할 수 있다니.
배우로서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확정된 게 아니니, 섣불리 말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알아챈 듯, 하강웅이 씩 미소 지었다.
“형, 그만 물어봐요. 나중에 크게 터뜨릴 게 있나 보죠. 태주 형 원래 조용히 있으면 뭔가 숨기는 거잖아요.”
그가 동의를 구하듯 웃자 태주는 덩달아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그가 디에고 크루즈와연기한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 *
마침내 뮤직비디오 촬영이 시작되었다.
뮤직비디오의 줄거리는 이러했다.
언더독인 고등학교 야구부가 결승에 진출해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하는 내용이다.
오늘 찍을 씬은 9회 말 2아웃인 상황에서 태주가 끝내기 홈런을 치는 장면이었다.
[꼭 황보훈 선수의 일화를 재현하는 것 같네.]‘원래 9회 말 2아웃 자체가 극적인 장면을 표현하기 좋잖아요.’
위아래 하얀 유니폼을 입은 태주가 호쾌하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로봇암 카메라 뒤에 있던 촬영감독이 연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오, 좋아요!”
태주의 촬영을 보던 멤버들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게 기대 이상인데?”
“그러니까. 저번에 야구장에서 시타자도 했다더니. 엄청 잘한다.”
“지호 형, 태주 씨가 이렇게 야구 잘하는 거 알았어요?”
“아니, 나는 그냥 청량 소년 이미지에 맞아서 섭외했을 뿐인데….”
연신 공을 저 멀리 때려내는 태주를 보며 윤지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도대체 태주는 못 하는 게 뭐냐.”
* * *
홈런을 몇 개 정도 때렸을까.
태주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폴라리스 멤버들은 군무 촬영에 돌입했다.
태주가 이중협과 레오니가 서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는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집중하는 아이에게 태주가 다가갔다.
‘어때? 재밌어 보여?’
레오니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해.]‘뭐가?’
[연기가 재밌어서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연기하는 태주 오빠의 얼굴은 재밌는 표정이 아니었어. 힘들어서 식은땀도 흘리던걸.]‘계속해서 방망이를 휘둘렀으니까 당연히 힘들지. 그래도 즐거웠어.’
태주의 대답을 들었음에도 레오니는 아직도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저 사람들도 그래. 힘든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지?]‘무슨 뜻이야?’
레오니가 군무를 추다 힘들어서 헉헉거리는 폴라리스 멤버들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아프고 힘든데도 카메라 앞에서는 안 힘든 척 연기해. 왜 거짓을 연기하는 거야?]태주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넌지시 웃었다.
‘이 일을 좋아하니까.’
[하지만 좋아한다고 힘든 걸 숨기며 연기하는 건 비효율적이잖아.]‘흠…. 당장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세상에는 비효율이 주는 재미에 이끌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언젠가는 레오니도 무슨 뜻인지 알게 되는 날이 올 거야’
[재미….]말을 되뇌던 레오니가 고민에 빠진 듯 눈을 깜빡거렸다.
[태주 오빠는 연기가 그렇게 재밌어?]태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오니가 재차 물었다.
[연기가 가족보다 재밌는 거야? 그래서 레오니의 아빠도 레오니를 버렸던 걸까?]‘…뭐?’
갑작스러운 레오니의 고백에 태주가 당황스러워했지만. 레오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2년 전, 커피숍에서 레오니와 머핀을 먹고 있던 아빠는 감독의 전화를 받고 자리를 떠나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어. 아빠는 연기를 선택했고, 레오니를 버렸어. 연기가 그만큼 재밌어서였을까, 아니면 레오니가 아빠한테 소중하지 않아서였을까?]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