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내가 연기를 하는 이유 (6)
생각지도 못한 고모의 대답에 태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다시 연기를 시작한 이후 푹 빠진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가족을 아낀다고 감히 자부하는 그였다.
‘그런데 내가 극 중 세계에 늘 빠져 있었다고?’
곰곰이 생각하던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어떤 작품의 캐릭터를 맡으면, 정신없이 몰입했던 것 같다.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거나, 태희와 함께 놀아주는 와중에도 늘 극 중 캐릭터의 서사나 표현 방법을 생각했다.
작품 내에서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이 가족을 외롭게 했을 줄은, 몰랐다.
“그랬구나, 고모. 내가 연기에 빠져서 가족을 외롭게 했구나……”
그런 태주를 보던 고모는 피식 웃으며 그의 볼을 잡아당겼다.
“아얏!”
“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그렇다고 해서 너한테 서운함을 느낀 건 아니니까.”
벌떡 일어난 고모는 씩 웃었다.
“자기 일에 열심인 너를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자극받았어. 그러니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나는 네가 연기하는 것만 봐도 배부르니까.”
고모의 격려에 태주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고모.”
“고맙긴, 뭘.”
역시 고모와 태희는 그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니가 중얼거렸다.
[오빠는 레오니의 아빠랑 달라. 레오니 아빠는 레오니보다 연기를 더 좋아했는데. 오빠는 가족들을 연기만큼이나 좋아하는 느낌이야.] [아니야, 네가 뭘 잘 모르는 것 같은데.]가만히 듣고 있던 이중협이 레오니의 말간 눈을 보며 말했다.
[세상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어.] [하지만 레오니 아빠는….] [너희 아빠도 분명히 널 사랑했을 거야. 그러니까 지난 몇 년간 연기도 쉬면서 널 키웠겠지. 그리고….]이중협이 레오니를 보며 덧붙였다.
[네가 나비를 좋아하는 것처럼. 태주도, 너희 아빠도 연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 봐. 나비랑 아빠를 좋아하는 마음 중에 뭐가 더 중요한지 고를 수 있어?]그 말에 레오니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가 나비를 좋아하는 만큼, 아빠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기에.
아빠를 향한 원망과 미움, 사랑이 공존했던 그녀의 마음에서 점점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태주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을 보여준 것도 이제야 이해가 갔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연기가 재밌다는 것을 자신에게 알려주려 한 것이다.
[연기라는 거…. 얼마나 재밌는지 더 알고 싶어.] [오늘은 더 재밌을 거야.]이중협이 태주를 힐끗거리며 설명했다.
[이번에는 드라마 촬영이거든.]* * *
동이 튼 이른 오전.
드림액터스의 본부장, 탁시준은 베일릭스 한국 지부의 본부장, 박숭원과 미팅을 하고 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본격적으로 대화에 들어가자 그들 사이에 싸늘한 공기가 흘렀다.
“청룡검신을 베일릭스에 방영 타진하신다고요?”
박숭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하지만 ‘청룡검신’은 내년 초에 DBC에서 방영한다고 했잖습니까.”
“그래도 베일릭스와 동시 방영하면 글로벌적으로도 홍보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베일릭스 측에서도 좀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기회일 겁니다. 주연배우인 강재하의 스타성이 굉장하고, 은혜선 씨도 이번에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1화부터 재밌는 이야기가 몰아치니….”
“글쎄요. 저희가 듣기로는 1화부터 이야기가 좀 아슬아슬하게 흘러간다고 하던데요.”
“무슨 말씀이신지….”
박숭원은 그가 얼마 전에 들은 정보를 조심스레 흘렸다.
“역사 왜곡이라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판타지 사극이라는 점을 감안 해도 위험한 설정들이 있다던데 아닌가요?”
“그건 오해십니다. 판타지 사극이다 보니 저희가 좀 픽션을 가미한 부분은 있지만, 역사 왜곡이라뇨.”
“한태주 씨도 그 부분을 걱정해서 거절하신 거 아닌가요?”
그 말에 탁시준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박숭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희는 내년 초에 방영하는 ‘데스 게임’에 집중하기로 이미 결정했습니다.”
“그렇지만 본부장님……”
“이미 픽스된 사안입니다. ‘데스 게임’은 저희가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작품이라. 올인할 계획이거든요.”
망설이는 탁시준에게 박숭원이 넌지시 말했다.
“데스 게임’에 한태주 씨가 주연으로 출연하니까, 그 정도면 만족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같은 소속사 식구잖아요.”
“그게….”
“그리고 ‘청룡검신’은 아직 방영 두 달 전인데도 지하철이며 버스며, 안 보이는 곳이 없던데요. 굳이 베일릭스가 아니더라도 지상파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겁니다.”
그 말에 탁시준은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삼켰다.
장희재가 밀어붙여 성사된 베일릭스와의 미팅.
하지만 지상파와 베일릭스 동시 방영이 타진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베일릭스가 내년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데스 게임’을 밀고 있다는 건, 업계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기에.
탁시준이 돌아간 후.
박숭원 혼자 남아 있던 사무실에 들어온 직원이 말했다.
“드림액터스 측도 참 욕심이 많네요. 지금 DBC에서 프로모션 최대로 밀어주는 걸로도 만족 못 하고 베일릭스 진출까지 노리다니.”
“조급한 모양이야. 그런데 우리가 바보야? 그런 폭탄을 떠안게?”
박숭원이 펜대를 돌리며 직원에게 말했다.
“오늘 강화도에서 ‘데스 게임’ 촬영 있다고 했지? 시간 되면 나도 구경 가고 싶었는데.”
“오늘 촬영, 정말 기대해도 좋다고 하더라요.”
직원이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덧붙였다.
“심요연, 채이진, 그리고 한태주 씨의 최고의 연기를 볼 수 있을 거랍니다.”
* * *
몇 시간 후.
태주는 충혈된 눈을 비비며 밴에서 내렸다.
그가 도착한 곳은 강화도의 한 해변.
손에는 차에서 내리 보고 있던 대본이 들려 있었다.
촬영 준비를 하고 있던 제작진과 인사를 나눈 다음, 그는 곧바로 환복했다.
간이 탈의실에서 태주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주변에 있던 스타일리스트들과 제작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태주 씨 진짜 멋있다!”
“역시 수트를 입으니까 때깔이 다르네.”
“우리 드라마에서 항상 츄리링만 입고 나와서 좀 아쉬웠는데, 역시 한태주 하면 수트지!”
제작진들의 칭찬에 괜히 쑥스러워진 태주는 깃을 탁탁 털었다.
“얼마 만에 입는 양복인지 모르겠네요.”
“아이고, 우리 태주 씨 어떡하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모황국 감독이 그의 멋진 자태를 보고 킬킬거렸다.
“이렇게 멋진데 바닷물에 빠져야 한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감독님, 저 멋있게 찍어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내가 기가 막히게 찍어줄게.”
그때, 저 뒤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목소리들.
“한태주, 뒤태도 멋있다!”
“누님, 드레스 입고 뛰지 마세요. 자칫하다 넘어집니다! 이진 씨도 뛰지 말아요. 하이힐에 걸려서 넘어지겠네!”
태주가 뒤를 돌자 긴 드레스 자락을 손에 쥐고 뛰어오는 심요연과 총총거리며 뛰어오는 채이진이 보였다.
주연 배우들의 집합에 모황국 감독은 씩 미소를 지었다.
“다들 모였으니 그럼 이제, 리허설 들어갑시다.”
오늘 찍을 장면은 세 파트로 나뉘었다.
여유롭게 바닷가를 산책하는 장면, 해변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장면, 그리고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난투극이었다.
처음에는 평화롭다가 나중에는 서바이벌로 점점 고조되는 촬영이었다.
배우들이 합을 여러 번 맞추고 나자, 모황국 감독이 손을 들었다.
그는 완벽한 연습보다는 촬영을 거듭하다 보면 더 좋은 테이크가 나온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럼 촬영 들어갑시다. 레디, 셋…. 액션!”
* * *
탁 트인 바닷가.
평소 츄리닝을 입고 데스 게임에 참가하던 참가자들은 오늘 한껏 멋을 상태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식에 다들 고조되었다.
그들 중 붉은 미니 드레스를 입고 제일 앞에서 총총거리며 자신 있게 걷던 홍장미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래, 이거지! 사람이 어떻게 맨날 게임만 하냐. 이렇게 머리도 식혀야지!”
그녀처럼 마냥 신이 난 사람도 있지만, 이설향처럼 주변을 살피는 사람도 있었다.
차정후 옆에서 걸어가던 그녀는 이상한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요?”
옆에서 들려오던 차정후의 질문에 이설향은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이상하지 않아요? 갑자기 우리한테 이런 복장을 입힌 것도, 식당이 아니라 이런 해변에서 식사를 주는 것도.”
“그건 그래요.”
차정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입은 드레스나 턱시도는, 평소에 입던 츄리닝보다 훨씬 불편한 옷이죠. 기동력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요.”
“그래서 나는 원래 입던 츄리닝을 안에 입었어요. 혹시나 해서.”
몇몇 여자들은 그녀더러 왜 튀려고 하냐며 뭐라고 했지만, 이설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차정후가 인정한다는 듯 말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죠. 여기는 그런 곳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되는 것 있어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속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죠.”
이설향이 묘한 시선을 그에게 보냄과 동시에.
웨이터들이 그들을 해변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로 안내했다.
우아하게 깔린 하얀 테이블보 위에는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들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잘 구워진 고기들과 신선한 과일, 그리고 풍미 가득한 술.
“이게 웬일이야!”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오는구만!”
음식의 유혹에 사람들이 다들 달려들기 바쁜 가운데.
신중을 기한 차정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쪽 흙이 뭔가 파묻힌 것처럼 이상한데……”
조심스러운 표정의 그를 본 이설향이 문뜩 속삭였다.
“왜 안 앉아요?”
“이상해서요. 우리를 이런 호화로운 음식으로 유혹하는 것도 그렇고. 꼭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뒤통수를 치려는 것 같잖아요.”
속닥거리는 그들에게 홍장미가 불쑥 끼어들었다.
“왜 그래, 둘이서 뭔 얘기를 하는 거야?”
나이프와 포크를 챙긴 정후가 입을 떼려는 순간.
저 멀리 세 개의 성이 모래를 뚫고 솟아올랐다.
각각의 성에는 붉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사람들에게 안내 멘트가 들리기 시작했다.
“맛있는 식사하셨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에 분노한 홍장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썅놈들아, 먹는 도중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그러나 안내는 계속됐다.
“성별에 상관없이 한 명의 성주와 세 명의 가신을 구성하여 맞은편에 보이는 성에 각각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공격과 수비를 통해 자신의 거처를 지키며 상대 팀의 성을 쟁취하시면 됩니다. 성주가 전투 불능 상태가 되거나 붉은 깃발을 빼앗긴 경우 정복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항복은 불가하며 제한 시간은 1시간입니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