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진심으로 통하는 길 (1)
“촬영장이요?”
“지금 태주 씨가 강화도에서 드라마 촬영 중이거든요.”
그 말에 에이전트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한태주 씨한테 디에고가 한국에 왔다는 건 알린 거죠?”
“…네.”
말을 흐리던 김진수는 급기야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한태주 씨가 워낙에 책임감이 강한 배우라서요. 자기 때문에 촬영이 미뤄지는 건 원하지 않는답니다.”
그 말에 디에고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이더니, 이내 크게 웃어젖혔다.
“하하, 하하하!”
그의 눈치를 보던 에이전트가 말했다.
“어떻게 할래, 디에고?”
“어떻게 하긴, 내가 가야지!”
디에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번에는 한태주 씨가 LA로 왔으니, 이번에는 내가 가야 할 차례죠.”
* * *
다음 날 아침, 아웃패치.
이른 시간부터 기자들이 휴게실에 모여 커피 한 잔을 때리며 이야기를 나누기 바쁘다.
“그 소식 들으셨어요? 공항에서 디에고 크루즈 봤다는 얘기.”
“에이, 비슷한 사람 아니야?”
“아니에요, 진짜래요. LA에서 한국 들어오던 제 친구가 긴가민가하면서 몰래 사진 찍어서 보내줬어요.”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 모두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몰래 찍은 것이 분명한 듯 초점이 흔들린 사진이었다.
사진 속 거구의 남자는 비록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본인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 선연한 짙은 눈빛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주변에서 모여들어 사진을 유심히 살피던 기자들이 하나둘 고개를 갸웃거렸다.
“디에고 크루즈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논리적으로 이상하단 말이야. 디에고 크루즈가 이 시기에 혼자 한국에 들어왔다는 게.”
눈썹을 찌푸리던 남자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 디에고 크루즈는 휴식기라고. LA에서 가족들이랑 휴가 보낸다고 알고 있는데, 왜 혼자서 한국을 들어오겠어?”
“그냥 여행 온 거 아니에요?”
“여행은 무슨. 그 양반 휴식기에 가족 없이는 아무 데도 이동 안 한다는 건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하긴, 디에고 크루즈가 워낙에 애처가에 애들을 아끼는 사람이긴 하죠.”
“그럼 왜 혼자서 한국으로 왔을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토론.
그 토론의 끝을 내준 사람은 방금까지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듣던 조삼식이었다.
“이 멍청이들아. 그럼 남은 이유는 하나밖에 없잖아. 캐스팅 문제.”
“디에고 크루즈가 한국 작품에 캐스팅됐대요?”
“그런 기류는 전혀 없었는데?”
그가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요즘 한국 작품들 위상이 높아졌다고. 해외 스타들이 특별출연하는 건 일도 아니지.”
“선배님, 뭐 아시는 거라도 있어요?”
“내가 알기로는 디에고 크루즈….”
그가 큰 비밀을 말하듯 후배들에게 속삭였다.
“이번에 드림액터스에서 제작하는 ‘조선패션왕’ 있잖아. 거기 서양인 선교사 역할로 특별 캐스팅 고려 중이래.”
“네? 진짜요?”
“야, 나 조삼식이야!”
그가 거만한 표정으로 입을 씰룩였다.
어제 디에고 크루즈가 입국했다는 첩보를 받은 뒤, 곧바로 드림액터스에 연락한 게 신의 한 수였다.
그의 믿음직한 연락책인 황재남 팀장의 말로는, 디에고 크루즈의 입국은 영화 ‘조선패션왕’의 특별출연을 위해서라며, 오프 더 레코드지만 특별히 말해주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특종을 터뜨릴 기자는 바로 자신이었고.
“다들 입 조심해, 이제 곧 큰 건 터질 테니까.”
* * *
동 시각, 드림액터스 2팀.
황재남 팀장을 중심으로 직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어제 공항에서 디에고 크루즈 봤다는 사람들 있던데. 그거 진짜예요?”
“진짜야. 사실 우리 쪽에서 특별출연으로 타진해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이렇게 입국할 줄은 몰랐어.”
“우리 쪽하고 합의된 입국이 아니군요?”
“어, 아니야. 워낙에 자기 성격대로 행동하는 이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멋대로 행동하는 줄은 몰랐지.”
황재남이 한숨을 내쉬며 쯧쯧거렸다.
“하여튼 우리 대표님 통도 크시다니까. 디에고 크루즈 영화 개런티 주려면 수십억은 훌쩍 넘을 텐데 말이야.”
“그렇죠. 그 ‘디에고 크루즈’니까요. 그런데 과연 캐스팅이 성사될까요? 아무리 그래도 할리우드 스타인데, 이런 한국 영화에 출연하려고 하겠어요. 그것도 주연도 아니고 특별출연이라니.”
“우리는 믿고 기다리면 돼. 대표님이 밀어붙이고 있으니까.”
황재남이 고개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만약에 캐스팅이 성사되기만 하면 뭐, 대박 나는 거지. 주연에 김결, 특별출연에 디에고 크루즈라니 완전 캐스팅 대박 아니냐?”
“상상은 누가 못해요.”
옆에서 시니컬하게 대꾸하던 직원이 덧붙였다.
“그리고 디에고 크루즈가 과연 이런 영화에 특별출연을 할까요?”
“갑자기 왜 초를 치고 그래. 지금 사업부에서 그쪽 에이전트랑 잘 협상하고 있다는데.”
“아무리 에이전트가 오케이 한다고 한들 디에고 선에서 오케이 안 하면 끝이죠. 더욱이 디에고 크루즈는 돈이 아니라 자기 신념에 따라서 작품 선택하는 배우로 유명….”
“그만해, 좋은 생각 해도 모자랄 판에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고 난리야.”
신경이 날카로워진 황재남이 직원들을 쓱 훑어보자, 순식간에 침묵이 흘렀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황재남의 얼굴은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우리 잘해야 한다. 우리 2팀한테 회사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직원들의 침묵에 그는 덧붙였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한 거 알고 있어. 하지만 흔들리면 안 돼.”
그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삼켰다.
지금 드림액터스는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차용석이 있는 3팀 중 직원들 몇이 XJ 계열의 넥스트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는 것은 회사 내에서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더욱이 홍보팀장 박연수까지 넥스트 엔터로 이적한 상황.
다들 회사 초창기 때부터 함께한 멤버들이었기에 그 배신감은 상당했다.
게다가 그들이 이적한 회사가 배우 기획사의 3파전을 깰 가능성이 농후한 ‘넥스트 엔터’라는 것이 더욱 장 대표를 자극하기도 했다.
그래서 장희재는 내년에 선보일 영화와 드라마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황재남이 자기 팀원들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지금 대형 프로젝트 2건이 걸려 있는 이때, 너희들도 기강 흐트러뜨리지 말고 조심해. 그것만 성공하면 우리 2팀, 회사의 주축으로 자리 잡는 건 시간 문제니까.”
* * *
한편, 대표실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있는 장희재와 탁시준.
한참을 서류를 들여다보던 탁시준이 장희재에게 말을 걸었다.
“대표님, ‘조선패션왕’에 선교사 역할로 특별출연 타진하는 배우들 말입니다. 좀 더 폭을 넓혀서 다른 배우들한테도 연락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타령이야?”
장희재가 짜증을 감추지 못한 채 탁시준에게 말했다.
“그 역할에는 디에고 크루즈랑 타진해 보고 있다고 몇 번을 말했냐.”
“하지만 크루즈가 이 역할을 거절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미 한국에 와 있대. 에이전트랑 연락했는데, 조만간 연락해준다고 하더라.”
자신의 예상이 틀린 탁시준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그에게 장희재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그리 놀래? 그럼 우리가 디에고 크루즈 캐스팅에 실패할 줄 알았어?”
“아니, 그게……. 솔직히 선교사 역할이 디에고 크루즈가 특별출연할 정도로 매력적인 역할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개런티가 매력적이잖아,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게 세상의 이치잖아.”
장희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 덧붙였다.
“시준아, 아직도 이 간단한 걸 모르면 어떡하냐.”
“……알겠습니다.”
일단 대표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나온 탁시준.
복도를 걷던 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내가 듣기로는 디에고가 이 시놉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했었는데….”
에이전트가 순화해서 말해준 말로는, 디에고가 이 시놉이 재미없다고 평했다고 했다.
그런데 거액의 돈으로 영화에 캐스팅이 된다고?
“말도 안 돼.”
고개를 흔들던 탁시준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그를 따라 들어온 직원이 급하게 말했다.
“본부장님, 혹시 아웃패치에서 난 기사 보셨어요?”
“뭐가?”
“이것 좀 보세요. 분명 오프 더 레코드로 해달라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기사를 냈어요!”
불길한 예감에 탁시준이 급하게 직원이 건넨 기사를 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온갖 어이가 없다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아웃패치 이거, 안 되겠네! 아직 확정도 안 됐는데 멋대로 캐스팅 기사를 쓰면 어떡해!”
* * *
한편, 강화도로 가는 차에 오른 디에고 크루즈.
그의 옆에서는 에이전트가 강화도행이 달갑지 않다는 듯 조잘조잘 입을 놀리고 있다.
“디에고,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천하의 디에고 크루즈가 이렇게까지 절절매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디에고의 눈앞에는 한태주가 선연했다.
눈빛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진’의 모습으로 그의 앞에서 열연한 그가.
그 당시에는 그의 연기에 크게 감명받지 못했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한태주는 연기한다는 티를 전혀 내지 않은 채, ‘진’의 모습만을 자신에게 보여주었다.
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그가 대단하지 않다고 착각했다.
원래 연기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어려운 것임에도.
특히 ‘진’처럼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고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그런 캐릭터일수록 더더욱.
디에고의 고집 센 표정에서 그의 속내를 읽은 에이전트.
그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럼 그 영화는 거절해야겠네.”
“무슨 영화?”
“아니, 드림액터스에서 들어왔던 영화 있었잖아. 특별출연인데, 네가 선교사 역할이었던 거.”
에이전트의 말에 기억을 더듬던 디에고는 눈매를 사납게 치떴다.
“아직도 그깟 영화를 붙잡고 있었단 말야? 내가 말했잖아, 난 그런 완성도 낮은 영화에는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아니, 그래도 개런티를 많이 주니까 그렇지. 씬 5개 정도 출연하는데 그만큼 주는 곳은 흔치 않잖아.”
“브론!”
“알았어, 알았어.”
에이전트가 두 손을 들어 고개를 흔들었다.
“돈이 아니라 마음을 따른다는 네 방식은 잘 알지.”
“돈을 보고 연기를 하면 배우의 인생은 끝이야. 더욱이 주제도 희미한 그런 영화에는….”
디에고가 치가 떨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튼 그쪽은 다 마음에 안 들어. 중국인 제작자도, 드림액터스의 장 대표도.”
“그러니까, 참 이상하지.”
그의 말에 동의하던 에이전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장 대표가 처음에 한태주를 ‘조선패션왕’에 밀었다더라고. 그런데 한태주가 거절하고 ‘나의 미래’ 영화 출연을 결정했다고 해.”
“…그래?”
그 말을 듣던 디에고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역시 작품 보는 눈이 있는 녀석이었네.”
역시 내가 인정한 녀석이었어.
그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흐뭇하게 삼켰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