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진심으로 통하는 길 (2)
* * *
동 시각.
아침을 먹고 촬영장에 곧바로 나온 태주는 대본을 들고 자신의 파트를 연습했다.
그의 등장에 촬영을 준비하던 스태프들이 그를 반겼다.
“왜 벌써 나왔어요, 태주 씨?”
“아직 감독님도 안 나오셨는데.”
“오늘, 우리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촬영이잖아요. 일찍 분위기 적응도 하고 대본도 연습할 겸 나왔어요.”
“역시 준비성이 대단하세요.”
제작진과 기분 좋은 인사 후, 태주가 대본을 들고 서성거리며 대사를 외우고 있는데.
촬영장 주변을 기웃거리던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그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한태주 씨. 혹시 함께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태주가 핸드폰을 들고 네 명의 가족과 사진을 찍어주자.
옆에서 기다리던 팬들이 하나둘씩 존재감을 드러냈다.
핸드폰, 수첩을 내밀며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는 이들이 그를 가득 에워쌌다.
“어제 촬영하실 때도 구경했는데, 워낙 집중하셔서 방해할 수가 없었어요.”
“오빠 평상시 모습하고 연기할 때하고 갭이 진짜 큰데, 그래서 더 매력 있어요.”
“오빠 진짜 멋있어요!”
팬들의 칭찬이 아직도 멋쩍으면서도, 듣기 좋은 태주는 미소를 연신 지었다.
그때, 사인을 기다리던 팬들이 수군거렸다.
“어라, 디에고 크루즈가 한국에 왔대!”
“진짜로?”
“한국 영화 특별출연한다는데?”
“그런데,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오빠, 이 기사 좀 보세요.”
팬들이 보여준 기사를 태주가 집중해서 읽던 도중.
그의 눈이, 예상치 못한 기사로 휘둥그레졌다.
아웃패치와 스타뉴스가 다른 논조로 디에고 크루즈에 관한 기사를 낸 것이다.
* * *
연예란의 조회 수대로 나열된 기사를 살펴보던 홍은지.
자신이 쓴 기사가 2위로 랭크된 지금, 그녀는 1위로 랭크된 기사를 유심히 보는 중이다.
아웃패치의 조삼식이 쓴 기사였지만, 그녀는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묘한 기대감을 품고 있는 표정이었다.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그래, 고마워”
커피를 가지고 옆에 털썩 앉은 우성림이 그녀의 모니터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그는 못내 아쉬운 기색이었다.
“우리가 그 고생하며 공항에 가서 사진까지 건졌는데, 왜 정작 조회수 1위는 아웃패치람.”
대놓고 들으라는 듯 툴툴거렸지만, 홍은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삼식이 쓴 기사를 정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스페인 출신의 연기파 배우, 할리우드 스타 디에고 크루즈가 얼마 전 한국에 비밀리에 입국했다. 그리고 본지는 그가 한국에 입국한 이유가 김결 주연의 ‘조선패션왕’에 특별출연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단독 입수했다.
‘조선패션왕’의 공동 제작사인 드림액터스의 관계자 A 씨는 디에고 크루즈가 맡을 배역은 영화 내에서도 무게감이 짙은, 씬 스틸러가 될 것이라며 깊은 기대감을 표했다.
한편, 디에고 크루즈의 출연은 할리우드 사정에 정통한 장희재 대표의 힘이 컸다는 후문이다.
-아웃패치, 조삼식 기자-
“정말 그럴듯한 기사인걸. 내부사정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실이라 믿겠어.”
감탄하던 홍은지의 옆에서 안달이 난 건 오히려 우성림이었다.
그는 디에고 크루즈의 입국으로 특종을 낼 줄 알았던 홍은지가 아웃패치에게 조회 수 1위까지 뺏긴 마당에, 왜 이리 차분한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선배님? 아웃패치한테 조회 수 1위 뺏긴 게 분하지도 않아요?”
“흐음, 아웃패치에서 주장한 대로 디에고 크루즈가 ‘조선패션왕’ 출연하려 한국 왔을 수도 있잖아.”
“우리는 그게 아니라는 거 알고 있잖아요. 차용석 팀장님이 그러셨다면서요. 디에고 크루즈가 한태주 씨를 다시 한 번 만나러 한국 오는 거라고요.그럼 아웃패치의 저런 기사는 완전 거짓말이죠.”
홍은지는 자신의 앞에서 유독 흥분한 후배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래, 미안해. 너하고 유나하고 공항까지 가서 구한 그 사진으로도 아웃패치에 밀린 것 같아서. 그런데 나도 간발의 차로 밀린 게 아쉬운 건 마찬가지야.”
“그런데 왜 이렇게 선배는 태연하세요?”
“성림아, 사람들은 원래 후자를 더 강렬하게 기억하는 법이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성림의 말에 홍은지가 비밀을 숨기는 듯한 눈을 깜빡였다.
“지금 사람들은 혼란스러운 상태일 거야. 우리는 디에고 크루즈가 한태주하고 같이 영화 한다고 하고, 아웃패치는 ‘조선패션왕’을 한다고 하니까. 그런데 나중에 우리가 디에고 크루즈하고 한태주 씨를 직접 인터뷰해서, 그들의 캐스팅 비화 등을 담은 기사를 단독으로 낸다면?”
“……바로 특종감이죠.”
우성림이 벌떡 일어났다.
“저 오늘 외근입니다, 팀장님. 강화도로 가야겠어요.”
“나도 같이 가.”
홍은지가 덩달아 일어나 눈을 반짝였다.
“이번에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특종을 따낼 기회니까.”
* * *
한 시간 후.
태주는 오늘도 여느 때처럼 촬영 준비를 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촬영에만 집중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촬영장이 조금 들뜬 걸 발견했다.
그를 만나는 배우들, 제작진마다 같은 걸 물었다.
“진짜 디에고 크루즈랑 같이 영화 찍어요?”
“어떻게 된 거야, 디에고 크루즈랑 공동 주연인 거야?”
“아웃패치 기사가 진짜야, 아니면 스타뉴스 기사가 진짜야?”
그들의 말에 태주는 그저 웃으며 일관되게 대답했다.
“나중에 캐스팅 확정 기사 나면 그걸로 확인해주세요.”
“아, 태주 씨. 진짜 감질나게 왜 혼자만 알고 그래.”
“죄송합니다, 아직 제가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라서요.”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찔러도 태주의 입은 무겁게 닫혀 있었다.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촬영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박인우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듯 흥분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는 걸 보니, 그가 곧 오는 모양이다.
그때, 통화를 마친 박인우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그에게 와서 속삭였다.
“디에고 크루즈가 이제 곧 촬영장에 도착한대.”
“그럼 나는 나의 무대를 준비해야겠네.”
태주는 긴장감을 삼켰다.
그와 함께 연기하기 위해서는 그를 설득해야 했다.
순수하게 자신의 연기로.
“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스태프의 말과 함께 배우들이 자기 위치로 이동하는데.
태주가 모황국 감독에게 잠시 붙잡혔다.
“오늘 잘할 수 있겠어요?”
“예?”
“아니다, 나는 태주 씨 믿어요.”
모황국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 그를 격려했다.
“태주 씨 장점은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연기를 보여준다는 거니까.”
“노력하겠습니다.”
태주가 씩 웃으며 제자리에 선 그때.
“레디, 셋…. 액션!”
호쾌한 목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얼마 후, 촬영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밴이 한 대 도착했다.
그곳에서 캡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건장한 남자가 금발의 남자와 함께 내렸다.
에이전트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촬영장은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붐마이크와 온갖 조명들 속, 둘러싸여 있는 한태주가 보였으니까.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길쭉한 팔다리, 붉게 충혈된 눈 등등 그의 존재감이 확실했다.
“오, 한태주.”
휘파람을 살짝 분 에이전트가 디에고에게 제안했다.
“저기 내려가서 볼래?”
“아니, 여기서도 잘 보여.”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가 우뚝 섰다.
선글라스 뒤로 가려진 눈빛은 한태주에게 향해 있었다.
분명 저 멀리서 연기하고 있는데, 그의 연기가 바로 눈앞에서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이는 건 왜일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표정, 눈꺼풀을 바르르 떠는 절박함, 상처투성이 주먹을 꽉 쥐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모든 장면이 그의 가슴에 콕콕 박혔다.
“데스 게임이라고 해서 상대의 목숨을 하찮게 여겨도 되는 건 아닙니다. 팀원은 짓밟아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힘을 합쳐야 하는 동료라고요.”
“꼴값 떨기는. 너도 남을 밟고 여기까지 올라온 건 마찬가지잖아, 이 위선자야.”
“그래요, 나는 위선자죠. 하지만….”
심요연과 대사를 하던 태주에게서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건 당신도 알 텐데요, 홍장미 씨.”
태주가 심요연에게 고개를 숙여 위험한 눈빛을 빛냈다.
“내가 당신을 지키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잖아?”
나른한 그의 눈빛에 심요연은 피식 웃었다.
여유로워 보였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나 유혹하는 거야?”
“내 사람이 나한테 협력하게 하려면, 뭐든 못 할까요.”
그 순간. 디에고는 그의 연기를 눈에 담는 내내 자신의 몸이 전율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연기야.’
한태주는 LA에서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연기와는 전혀 다른 결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때는 평범하지만, 심지가 굳은 역할을 연기했다면, 지금은 데스 게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를 쓰는 소시민을 연기 중이다.
과거에 연기했던 진도, 지금 연기하는 캐릭터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한태주의 해석이 판이해서 다채로웠다.
“사람이 저리 달라 보일 수 있다니….”
이제 디에고는 감탄하며 한태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뿐만이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모든 면에서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으니까.
어느새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한태주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였지만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의 맨얼굴이 드러나자 촬영을 구경하던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조용한 수군거림이 퍼져나갔다.
“디에고 크루즈야?”
“에이, 비슷한 사람 아냐?”
“아니야, 진짜 같은데?”
강화도에 도착해 촬영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홍은지와 우성림도 그를 발견한 건 마찬가지.
에이전트는 사람들의 관심에 피식 웃더니.
“어때? 여기까지 와서 한태주 연기를 직접 본 소감이.”
디에고에게 슬쩍 속을 떠보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한참이나 답이 없었다.
혹시 실망했나 하고 에이전트가 디에고를 본 순간.
그에게서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이렇게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불탔던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어?”
“연기를 열심히 하는 배우는 많지만, 연기를 맛있게 하는 배우는 흔치 않지.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날 직접 찾아와서 연기를 같이하자고 했다는 건 정말 영광이었어.”
선글라스를 입에 물고 잘근거리며 한참 태주를 보던 디에고가 중얼거렸다.
“…해야겠어.”
“응, 뭐를?”
“해야겠다고, 그 영화.”
그가 에이전트를 보며 확신에 찬 눈동자를 빛냈다.
“이렇게 도전 의식이 불타오른 건 오랜만이야. 한태주와 함께 연기를 해봐야겠어.”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