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진심으로 통하는 길 (5)
* * *
그 주 금요일.
화창한 오후 2시, 태주는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밴에서 내려 한 건물에 도착했다.
주변을 빽빽이 에워싸고 있던 팬들이 그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한태주 오빠! 반가워요!”
“오늘 우리 폴라리스 잘 부탁해요!”
예상치 못했던 열렬한 환호와 플래시에 태주는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며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태주는 ‘폴라리스’ 신곡 쇼케이스 무대에 사회자로 초청되었다.
처음 해보는 사회라 긴장해서 큐카드를 보고 또 보고 있는데, 대기실 문을 누군가 똑똑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태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섯 명의 멤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한태주 씨!”
환히 웃음 짓는 청년들이 태주를 보고 와락 달려든 순간.
태주는 그들의 의상을 보고 놀라서 눈이 커졌다.
팔을 드러낸 나시를 입은 멤버가 있는가 하면 온몸을 검은색 긴 팔로 감춘 멤버가 있다.
전작에서는 제복을 입고 우아함을 보여줬던 이들이 지금은 완연한 남성미를 뽐내는 것 같았다.
“형, 제 근육 봐보실래요?”
해맑은 웃음을 짓던 하강웅이 대뜸 태주에게 자기 팔을 구부려 근육을 자랑했다.
“저 진짜 운동 많이 했어요!”
“이야, 멋있다.”
하강웅의 해맑음에 씩 웃던 태주가 말했다.
“그런데 강웅이 너뿐만이 아니라, 다들 운동 많이 하신 것 같아.”
태주의 말에 손정욱이 씨익 웃었다.
“티가 나니까 다행이네요. 진짜 근육량 늘리느라 이번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뮤직비디오랑 음원, 오후 6시에 나오죠? 둘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요. 태주 씨가 뮤비 주인공으로 고생해 주셨는데 잘 나와야죠.”
“잘 나올 거예요. 유튜브에 올라온 뮤비 티저에 달린 댓글 보니까, 다들 칭찬 일색이던데요?”
태주가 짓궂은 미소를 흘렸다.
“오빠들이 이런 야성미도 있었냐면서, 짐승이라던데.”
“이제 우리 팬들도 다 컸으니, 이런 매력을 보여드릴 때도 됐죠.”
하강웅의 능청스러움에 다들 웃음이 터진 그때.
태주는 폴라리스 멤버 중 한 명이 빠진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지호 형은요? 지호 형이 없네요.”
“아, 제가 불러올게요!”
문을 열고 나간 하강웅은 곧 돌아왔다.
“아, 저 형 또 저러고 있네.”
그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어깨를 으쓱했다.
“또 전화해?”
“어. 여자 목소리야.”
“진짜 여자친구 있나 봐. 우리가 물어보면 막 아니라고는 하는데.”
그들의 말에 태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저번에 ’하루세끼‘ 촬영할 때도 밤중에 통화하고 있었는데….
멤버들과 인사를 나눈 태주가 화장실을 가려고 밖으로 나오자.
복도 한쪽 구석에서 윤지호가 아직도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게 보였다.
태주는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눈인사만 하고 화장실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윤지호가 그의 팔을 잡아끌어 복도 한구석으로 데려갔다.
태주가 당황해서 그를 바라보았지만, 윤지호는 그에게 말할 새도 주지 않았다.
“태주야, 내가 급하게 부탁 좀 하려고 하는데.”
“무슨 부탁?”
“……내가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 말에 태주가 잠시 멈칫했다.
윤지호의 표정이 평소보다 비장해 보이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쟤 무슨 비밀이라도 감추고 있는 분위기인데?]‘…사실 예전부터 좀 수상하기는 했어요.’
[그러니까. 혹시 여자친구 아냐?]‘진짜 그렇다고 해도 여자친구를 왜 저한테까지 소개해요?’
[여자친구가 네 팬이라서 통화 한 번만 해달라도 부탁했을 수도 있잖아.]‘아니 그렇다고 해도… 쇼케이스 전에 갑자기 이렇게 통화를 한다고요? 너무 타이밍이 이상하지 않아요?’
태주가 이중협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그때.
“한태주 오빠?”
윤지호가 건네는 핸드폰에는 영상통화인 듯 화면이 켜져 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본 태주의 눈이 와락 커졌다.
눈앞에 있는 얼굴은 낯설고도 익숙했다.
둥글고도 통통한 얼굴, 낮은 코, 그리고 풀린 듯한 눈.
눈을 찡그리는 그녀와 태주는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윤지호랑 닮은 거 같은데?]여자를 유심히 살펴보던 이중협이 내뱉은 말.
태주도 조심스럽게 동의했다.
‘눈매가 닮았어요. 그리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도 그렇고….’
그리고는 윤지호를 슬쩍 바라봤다.
그는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숨기는 듯 조금 촉촉한 눈으로 헛기침을 여러 번 했다.
윤지호의 저런 표정을 본 건 처음이라 태주는 사뭇 놀랐다.
그때, 화면의 여자는 태주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태주 오빠다! 오빠, 진짜 한태주 오빠랑 친구 맞았네?”
“맞다니까.”
윤지호가 태주의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이제 보여줬으니까 됐지?”
“아니, 한태주 오빠한테 인사만 하고. 오빠, 저 팬이에요! 정말 반가워요!”
눈치 빠른 한태주는 핸드폰을 건네받아 화면 너머 여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가워요!”
“제가 더 반가워요!”
“자, 이만하면 됐어.”
태주와 여자가 주고받는 인사를 보던 윤지호는 냉큼 태주에게서 핸드폰을 가져갔다.
“이제 나 가봐야 해, 지민아. 쇼케이스 시간 거의 다 됐어.”
“알겠어. 오빠 파이팅! 태주 오빠도 파이팅!”
여자의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통화가 종료되었다.
둘만 남은 복도 구석에서 태주와 윤지호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건 윤지호였다.
“갑자기 부탁했는데도 기꺼이 인사해줘서 고마워, 태주야.”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뭐. 형이 괜한 부탁 할 사람도 아니고.”
그 말에 윤지호가 울컥했다.
“쟤…. 내 동생이야, 윤지민. 평소에도 저렇게 불쑥 전화하는 게 취미야.”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태주는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 얼굴빛을 관리했다.
“동생이었구나. 어쩐지 닮았더라, 형하고.”
“……태주 네 팬이라 영상통화 시켜 달라고 얼마나 부탁을 하던지. 지금도 쇼케이스 전인데 전화해서 무작정 조르길래 어쩔 수 없이 너를 끌어들였어. 미안하다.”
“괜찮아. 나중에 동생 분하고 밥 한번 먹자, 내 팬이라는데.”
그 말에 윤지호가 멈칫했다.
“그건… 안 될 것 같아. 보다시피 내 동생이 다운증후군이라 밖에 나가는 걸 어려워해서.”
그 말에 태주의 머릿속은 퍼즐이 맞춰지는 듯 일사불란했다.
이제껏 가진 의문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그가 여자친구와 몰래 연애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여동생을 지극정성으로 뒤에서 챙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때, 태주의 눈에 표정 관리를 하는 윤지호가 들어왔다.
분명 여동생을 자신과 통화를 시켜주어 마음이 후련한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윤지오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장애가 있는 여동생을 남에게 처음으로 소개했다는 부끄러움.
그런 여동생을 아무렇지 않게 대해 준 한태주의 관대함.
아니, 그는 괜찮은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부끄러웠다.
한태주 앞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들킨 것 같아서.
‘하…. 지민이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그것도 쇼케이스 전에 감정 다 흐트러져서….’
“지호 형.”
그의 어깨에 따뜻한 손길이 얹어졌다.
태주가 그에게 흔들림 없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곧 쇼케이스잖아. 지민 씨의 파이팅, 내 파이팅을 업고 힘을 낼 시간이라고.”
그의 말에 윤지호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태주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미소를 씩 지었다.
“나도 폴라리스 쇼케이스 사회 맡아서 최선을 다할 테니, 형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응원할게.”
* * *
얼마 후.
톱아이돌 ‘폴라리스’의 신곡 발표에 수많은 기자가 모여든 가운데.
여섯 명의 멤버들이 선보인 완벽한 무대가 끝나고, 사회를 맡은 태주가 진행을 이어 나갔다.
“멋있는 무대 잘 보았습니다. ‘유토피아’라는 제목만큼이나 정말 천국 같은 무대였는데요. 무대를 보는 내내 그곳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옆에서 태주를 보던 이중협이 재밌다는 듯 킬킬거렸다.
집에서 처음으로 쇼케이스 사회 본다고 걱정하던 것을 본 그로서는, 태주가 떨지도 않고 능청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야, 연예계 짬밥 어디로 안 가네. 멘트 정말 자연스럽게 잘 친다, 한태주!]그 말을 들은 태주가 피식 웃으며 신나게 말을 이었다.
“그럼 기자분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제일 먼저 선택을 받은 이는 스타뉴스의 우성림 기자.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태주를 향해 환한 미소를 내보였다.
“한태주 씨와 폴라리스 멤버들 모두에게 질문드리고 싶은데요.신곡 뮤직비디오에서 한태주 씨가 야구선수로 연기했다는 말에 다들 기대가 많습니다. 오늘 오후 6시에 공개되는 뮤직비디오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에 태주는 폴라리스 멤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하강웅은 냅다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저희 뮤직비디오의 포인트는 단연 스토리와 그 안에서 열연한 태주 형입니다. 뮤비에서 저희는 9회 말 투아웃 상황에 놓여있는데요. 거기서 끝내기 홈런을 치는 게 바로 태주 형이거든요.”
옆에서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씩 흥분해서 거들었다.
“사실 저희 뮤직비디오의 일등 공신이 한태주 씨의 뛰어난 연기였죠. 진짜 홈런을 쳤다니까요, 촬영장에서 몇 번씩이나?”
“우리가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청춘드라마를 찍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내내 들었어요. 태주 씨가 중심을 잘 잡아주니까 저희도 노래에 맞춰 군무를 신나게 추게 되더라고요.”
리더 윤지호가 마무리로 말을 끝맺었다.
“우리 뮤직비디오의 포인트는 한태주, 청춘드라마, 매력적인 노래. 이 세 개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한태주 씨가 보시는 뮤비의 포인트는요?”
“멤버들이 다 말해서 제가 말할 게 없네요.”
태주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일단 노래가 정말 좋습니다. 한번 들으면 계속해서 흥얼거리게 되니까요. 춤도 매력적이에요. 폴라리스 특유의 파워풀하면서도 청량한 매력이 가득 넘칩니다.”
그 말에 우성림이 반짝 눈을 빛냈다.
“그럼 한태주 씨가 이번 신곡 포인트 안무를 춰 주실 수 있나요?”
“네? 제가요?”
“드라마 ‘낭만 고양이’에서도 아이돌 못지않은 춤 실력을 뽐낸 것으로 유명하시잖아요. 이번에 ‘폴라리스’의 성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응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자들의 짓궂은 요청에 태주는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몇몇은 목을 빼고 감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하강웅은 입에 손을 모아 크게 소리쳤다.
“태주 형, 부탁해요!”
급기야 윤지호마저 그에게 부탁했다.
“태주야 넌 우리 폴라리스의 제7의 멤버나 마찬가지야.”
그 말에 태주는 즉각 마이크를 윤지호에게 건넸다.
입고 있던 겉옷까지 벗은 후.
태주는 기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꾸벅했다.
“저희 폴라리스 멤버들 이번 신곡, ‘유토피아’ 잘 부탁드립니다.”
곧이어 노래가 흘러나오자 태주는 유연한 몸을 움직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촬영 기사들이 누가 뭐랄 것 없이 플래시를 터트리기 바빴다.
“이야, 빼지도 않고 잘 춘다.”
“한태주가 폴라리스 멤버들 지원사격을 단단히 하네.”
그리고 저쪽에서 태주를 보고 있던 박인우도 킬킬거리며 핸드폰에 태주를 담는 건 덤이다.
“이야, 부끄럽다고 장기자랑에서 시낭송 하던 애가 지금은 춤을 춰? 확실히 애가 바뀌기는 했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속보를 내기 바쁜 기자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