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폭풍전야 (7)
기자가 보여준 핸드폰 화면에서 기사 상단만 간신히 읽은 태주의 눈이 와락 커졌다.
이중협도 놀란 듯 말했다.
[이야, 윤지호가 큰 용기를 냈네. 정말 대단하다.]‘이 일을 해결한다고는 했는데.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개인사를 밝힐 줄은 몰랐어요.’
감탄하는 태주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몰아치듯 날아 들어왔다.
“윤지호 씨는 태주 씨가 자신에게 다운증후군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제껏 비밀을 지켜 주었다고 하던데요.”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 해도 그런 비밀을 지키는 건 쉽지 않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특히나 인터넷상에 그런 사진이 돌아다니는 상황이었다면 더더욱요.”
“윤지호 씨는 태주 씨가 있었기에 이런 용감을 고백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몰아치는 기자들의 질문에 태주는 차분히 대답했다.
“윤지호 씨는 정말 용감하고, 자기 여동생을 지극히 여기는 오빠일 뿐입니다. 요즘 신곡 ‘유토피아’로 한창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일이 호재가 되어 활동에 날개를 달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 *
얼마 후.
백화점에서 열린 사인회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이 모였다.
화장품 브랜드 ‘주노’의 메인모델인 한태주가 주인공이었다.
하여 그에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태주를 찾아온 수많은 팬은 안도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태주를 향해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던 기자들도 다들 한 마음으로 그에게 집중했다.
“커뮤니티에 그 사진 뜨고 저 엄청나게 놀랬잖아요. 오빠 진짜로 연애하는 줄 알고.”
“하지도 않은 열애설이 나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하긴. 배우님께서 요즘 드라마다 영화다, 바빠서 연애할 시간 없는 건 저희가 더 잘 알죠.”
그리고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리는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아무튼 배우님 믿어요. 배우님이 얼마나 연기에 진심인지. 그리고 얼마나 팬들에게 진심인지 알고 있으니까. 저희는 끝까지 배우님과 함께할 거예요.”
팬들의 든든한 지지에 태주는 덩달아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팬들이 그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쑥스러웠다면. 이제는 팬들이 가족같이 포근한 마음이 들었다.
몇 시간 후.
바글바글했던 팬 사인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수많은 기자와 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박인우 옆에서 기사를 확인하던 태주가 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호 형이 정말 솔직하게 인터뷰해 줬네. 그동안 다운증후군 여동생을 세상에 드러내기가 두려웠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자기 여동생임을 밝히려 한대.”
“왜 그건 안 읽어? 장애가 있는 여동생을 세상에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건 한태주 덕분이다.”
박인우는 하도 많이 읽어 기억하고 있는 기사의 한 부분을 빠르게 읊었다.
“동생은 한태주를 통해 세상과 이어질 수 있게 되었고. 그런 동생을 한태주는 평범한 팬들처럼 똑같이 대해주었다.”
“형, 그만해!”
“뭘 그만해.”
박인우는 쑥스러워하는 태주가 재밌는 듯 더욱 말을 빠르게 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장애가 있는 여동생을 차별하고 있던 건 나 자신이었다는 걸. 내게 여동생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준 한태주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제 태주는 귀까지 빨개져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박인우가 킬킬거렸다.
이중협은 태주가 그저 대견했다.
[애가 착하다니까. 우리 태주가……]약아빠진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세상이라 평가받는 지금.
이렇게 착한 사람의 가치를 대중들이 알아본다는 게 참 고마웠다.
그때, 태주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형, 나 잠깐 전화 좀. 여보세요.”
태주의 사무적인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에서 서운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 너무하네. 명함 준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제 번호를 저장 안 해둔 겁니까?
[강승민이잖아. 근데 애가 좀 들떠 보이는데?]강승민은 태주가 뭐라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빠르게 말했다.
-이따가 저녁에 시간 있어요? 같이 술이나 마시게요.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아주 중요한 이야기죠. 그러니까 꼭 나와요. 우리… 사촌 동생 씨.
머뭇거리다 튀어나온 마지막 말.
태주는 놀라서 눈이 둥그레졌다.
* * *
동 시각, 드림액터스 3팀.
모니터 속 기사를 읽은 차용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속속들이 떠오르는 어뷰징 기사들은 태주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윤지호의 비밀을 지켜 준 의리남, 다운증후군 여동생을 보고도 똑같이 대해준 매너. 그리고 그가 백산병원 희귀병 환자들을 위해 3천만 원을 쾌척한 사실까지 다시 회자가 되고 있었다.
“스타뉴스의 홍은지 기자한테 커피 쿠폰이라도 싸 줘. 이번에 정말 수고 많이 했어.”
그의 말에 직원들이 즉각 대꾸했다.
“안 그래도 벌써 보내드렸죠. 이번에 윤지호한테 먼저 연락해서 단독으로 기사 써주겠다고 한 것도 홍은지 기자님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 진짜 고맙네.”
차용석의 표정이 점점 평온하게 풀어졌다.
“윤지호가 용기를 내줘서 다행이야. 안 그럼 내가 윤지호 직접 찾아가서 협박이라도 할까 했거든.”
“팀장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죠.”
“그런데 이 기사, 원스타하고는 합의되지 않은 것 같던데요.”
“당연하지. 그 탐욕스러운 회사에서 윤지호가 이런 치부를 드러내도록 허락해줬을 리가 없지.”
차용석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원스타 같은 경우는 개개인의 개인사까지 통제할 만큼 제어가 심해. 그런 의미에서 윤지호는 지금까지 잘 버텨 온 거야.”
“그런 지호 씨의 비밀을 지금까지 지켜 준 태주 씨도 마찬가지고요.”
“태주야 워낙에 애가 묵직하고 의리가 있잖아. 그런데 이건 그렇고….”
마음속 걸리는 점을 생각하던 차용석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아무래도 조삼식 기자 쪽을 파 봐야겠어. 조 기자가 내놓는 기사들 뒤에 대표님이 배후에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
차용석의 말에 팀원들이 놀란 눈을 들었다.
“태주 씨랑 대립하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하신다고요?”
“다들 대표님 성격 몰라서 그래? 태주 재계약 기간 다가왔잖아. 흠 될 만한 사건들 몇 개 터뜨려서 업계에서 신뢰도 떨어뜨리고, 갈 곳 없는 연예인을 반값으로 재계약하는 건 우리 대표님 장기라고.”
그 말에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번 일, 우리 대표님이 꾸민 걸 수도 있겠네요.”
“며칠 전에 온 메일 있었잖아.”
차용석이 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자기한테 한태주와 관련된 사진 있다면서 돈으로 협상하자고 했던.”
“아, 기억나요. 좀 황당한 메일이었죠.”
여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얼굴 모자이크하고 상의 탈의해서 복근 노출한 사진을 보내놓고는. 민망한 사건 터트리기 전에 돈으로 협의하자고 하다니.”
“누가 봐도 한태주 씨가 아닌데 말이죠.”
“내가 보기엔, 그 해커가 윤지민 씨 비밀 계정을 해킹한 게 아닌가 싶어.”
차용석의 말을 유심히 듣던 직원들이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인터넷 커뮤니티에 처음 글 올린 것도 해커의 소행일까요?”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그것들은 보통 관심이 아니라 돈을 요구하거든. 그런데 커뮤니티에 올라온 건 완전 관종기가 다분했잖아?”
“그렇긴 하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의견을 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건 그 사진을 산 사람의 소행이 아닌가 싶은데요.”
“아무튼 우리는 해커의 뒤를 밟아서, 그 근원지를 추적해 나가자고.”
차용석이 직원들에게 믿음직한 시선을 보냈다.
“태주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제거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팀장님. 그런데 만약에 정말로… 장 대표님이 한태주 씨를 위협하는 세력이라면 어떡하실 거예요?”
“결론은 뻔하지.”
차용석은 결연한 표정으로 터질 듯한 주먹을 꽉 쥐었다.
“대표님은 태주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잃게 될 거야.”
* * *
몇 시간 후.
장희재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 대표실의 공기는 유독 무거웠다.
“이번 작전도 실패야.”
윤지호의 사진으로 한태주의 열애설을 조작하려던 그의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염수정도, 이중협도 다들 그가 쳐 놓은 거미줄에 보기 좋게 걸렸었는데.
분명 윤지호도 다운증후군 여동생을 공개하기 싫어서라도 한태주를 위해서 진실을 밝히지 않아야 했는데.
“윤지호가 이렇게 나올 줄 정말 몰랐어.”
옆에 있던 탁시준이 덤덤하게 덧붙였다.
“보통 아이돌들은 이미지 생각해서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걸 감추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윤지호가 동생을 솔직히 공개함으로써 이미지가 더 좋아져 버렸네요.
그 사실을 감춰준 한태주의 이미지가 좋아진 건 두말할 것 없고.
탁시준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삼켰다.
지금 윤지호의 행동을 칭찬했다가는, 장희재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한태주 이 새끼는 그걸 왜 감춰주고 난리야. 괜히 착하다는 프레임만 더 씌워진 격이잖아.”
“원래부터 착하긴 했죠. 이쪽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타입이었고.”
장희재가 더러운 말을 들었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넌 내 앞에서 그딴 헛소리를 하고 싶냐? 한태주가 착하기는 뭐가 착해. 연기를 잘하는 거지.”
잔뜩 독이 오른 장 대표 앞에서 탁시준이 입을 다물었다.
장희재는 아직도 한태주의 진가를 모르는 듯했다.
아니,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가.
탁시준은 그에게 진심으로 충고했다.
“한태주에게 거짓 프레임을 씌워서 우리 회사에 묶어두는 것보다. 어떤 일을 저희가 해줄 수 있는지를 제의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다 차려진 밥상을 먼저 거절한 건 그쪽이야.”
장희재가 주름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
“아무래도 그 패를 꺼내 들어야겠어.”
정말 수습 불가한 사태가 아니라면 그가 절대로 꺼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패.
“가족사는 리스크가 커서 함부로 건드리기 그렇지만….”
하지만 지금은 배수의 진을 칠 때였다.
어떻게든 한태주를 압박해서 재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지금.
“가정사만큼 입막음하기 좋은 패는 없지.”
심지어 그 내용이 떳떳하지 않고 숨겨야 하는 거라면 더더욱.
그런 장희재를 보던 탁시준도 덩달아 결심했다.
자신도 이제는 그의 곁을 떠나야 할 때라고.
* * *
그날 저녁.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차용석.
그는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재빨리 스캔했다.
이윽고 비어있던 그의 맞은편에 누군가 앉았다.
“…차용석 씨?”
“맞습니다. 그쪽은 이양섭 씨?”
“네.”
메일로 태주의 비밀 계정을 해킹했다며 협박하던 해커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해킹했다던 사진들은 일단 태주가 아닐뿐더러, 태주가 운영하는 비밀 계정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뻔뻔하게 해커가 이곳에 나온 이유는 뻔하다.
자신을 만나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차용석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동하고 있을 녹음기를 툭툭 쳤다.
“서로 알 거 다 아는 사이인데, 솔직하게 깝시다.”
“네?”
“나한테는 얼마나 원해서 이 자리에 나왔어요?”
살짝 당황한 해커의 눈앞에 차용석이 매서운 눈을 들이댔다.
“이번에 윤지호 씨 관련 일로 얼마나 재미를 보셨어요? 기자한테 팔았으니 제법 돈 좀 벌었으려나?”
“무… 무슨 소리세요?”
“아웃패치의 조삼식 기자.”
차용석이 꺼낸 말에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가운데.
차용석은 카운터펀치를 정통으로 날렸다.
“윤지민 씨 비밀 계정 해킹해서 조 기자한테 판 사람, 당신이잖아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