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오만과 편견 (2)
그때, 태주의 머릿속에 차용석이 한 말이 스쳐 지나갔다.
-대표님이 흘리듯 말한 적 있어. 태주 너한테 출생의 비밀이 있는 거 같다고.
장 대표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재계약을 앞두고 틀림없이 협박할 것이다.
그러나 강승민 쪽에서 도와준다면, 이 일을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터.
“그럼, 승민이 형.”
태주가 싱긋 웃었다.
“저 좀 도와주실래요?”
* * *
동 시각, 서울의 한 고급 한식당.
차용석은 장희재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저희 배우들과 팀원들 전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그렇게 아십시오.”
그의 말에 장희재가 크게 웃어 재꼈다.
“야, 게네들이 진짜로 널 따라가겠냐? 아니다, 너는 채이진이나 우백호 그런 찌꺼기들이나 데려가라. 한태주나 임강현은 남겨두고.”
“임강현도 제가 데려갈 겁니다.태주 따라서 넥스트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기로 했습니다.”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장희재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이야, 용석이 너 거짓말도 잘하네. 사람이 많이 진화했어.”
“거짓말 아닙니다. 애초에 임강현은 태주를 보고 저희 팀에 합류한 거였고. 이제 태주는 저와 함께 갈 거니 그도 드림액터스는 떠나는 게 순리죠.”
“한태주가 떠나긴 뭘 떠나.”
이제 장희재의 표정도 싸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걔 목줄은 내가 쥐고 있어, 용석아. 네가 3팀을 데려가든 말든 상관없어,그런데 한태주는 안 돼.”
“목줄을 쥐고 있다니요?”
“내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었나? 한태주 출생의 비밀.”
장희재가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한태주 이미지 좋은데, 괜히 그런 구설수로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하게 하기 싫잖아? 그럼 가만히 있어.”
“언론에 공표돼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차용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태주가 강승민 검사를 만났다고 하더라고요.그쪽에서 태주네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답니다.”
장희재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본 차용석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태주의 가정사는 그를 드림액터스에 묶어둘, 장희재가 쥔 비장의 카드였다.
그런데 한태주가 강승민과 만나 일을 해결한 이상,이는 더 이상 그의 약점이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장희재는 최후의 발악을 하는 듯 차용석에게 핏대를 높였다.
“터뜨려 봐. 손해를 보는 건 어차피 한태주야. ‘부모가 버린 한태주의 아버지.’ 이런 걸 얼마나 언론이 물어뜯기 좋아하는지 네가 더 잘 알 텐데.”
“아, 언론 하니까 생각났는데요. 아웃패치와 대표님을 묶어서 기사를 하나 낼 생각입니다.”
“뭔 소리야, 왜 나를 끌어들여.”
“이번에 뜬금없이 난 한태주 열애설이요.그 판을 꾸민 게 대표님이라는 증거를 입수했거든요.”
“컥…. 커컥!”
잔뜩 예민해진 장희재는 쿨럭, 사례가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내가 무슨….”
“윤지민 씨 SNS 해킹한 해커한테서 증언도 얻어냈습니다.”
“그건….”
“이양섭이 조삼식한테 의뢰받아서 윤지호 씨의 여동생 SNS를 해킹했더군요. 조삼식은 그 사진을 받아서 은근슬쩍 태주의 열애설로 둔갑시킨 거고요. 그리고 이 판을 마련해준 건 바로 대표님이시죠.”
“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간신히 속을 가라앉힌 장희재가 눈을 흘겼다.
“세상에 어떤 기획사 대표가 자기 배우를 수렁에 빠뜨리려고 하겠어?”
“대표님이요.”
차용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되물었다.
“저도 믿기 힘들었지만, 대표님께서는 이미 전적이 있으시잖아요. 예전에 수정이 누나 재계약 앞두고 일부러 백시영하고 열애설 퍼뜨리셨죠. 재계약할 때 몸값 다운시키려고요.”
그 말에 장희재가 입을 벙긋거렸다.
할 말이 없던 그였기에 그저 짜증으로 자신을 무장했다.
“너 정말……”
“이제 슬슬 일어나시죠. 홍은지 기자 만나기로 했거든요.”
차용석이 짐을 주섬주섬 챙기자 장희재가 그를 황급히 붙잡았다.
“왜 이래, 용석아. 남의 약점 잡고 휘둘러서 뭐하려고!”
“이거, 다 대표님한테 배운 겁니다.”
평온한 표정의 차용석이 대꾸했다.
“남의 약점 잡아서 사람 휘두르려고 하는 게 얼마나 기분 더러운지, 직접 느껴보세요.”
* * *
차용석이 자리를 뜬 후.
장희재는 서둘러 홍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든 차용석보다 먼저 홍은지에게 연락해야 하는 장희재로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도 고역이었다.
“제발, 제발 받아라, 제발….”
한없이 수화기 음이 이어지다가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홍은지입니다.
“홍 기자, 나 장희재인데, 잠깐 시간 있어요?”
다급한 듯한 장희재의 목소리와 달리 홍은지는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글쎄요.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은데요. 조금 있다가 차용석 팀장님과 약속이 있어서요.
“잠깐이면 돼요, 홍 기자. 내가 홍 기자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생각해 보니 저도 대표님께 드릴 말씀이 있었네요.
홍은지는 장희재가 말할 틈도 없이 먼저 말을 이었다.
-한태주 씨 열애설 낸 거 말이에요. 아웃패치랑 대표님의 합작이라면서요? 태주 씨 재계약이 잘 안 풀리니까 그렇게라도 쥐고 흔들려고요.
그 말에 장희재가 이를 악물었다.
약아빠진 차용석 같으니라고.
그래도 자신과 함께한 세월이 있는데, 벌써 배신하고 홍은지에게 술술 불은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 홍 기자. 용석이 말을 진짜 믿는 건 아니죠?”
-믿든 안 믿든,연예부 기자로서는 무척 끌리는 주제잖아요? 그런데 정말 묘하더라고요. 대표님이 아웃패치 같은 언론을 아직도 못 끊고 그렇게 이용하시다니.
홍은지한테 증거가 없다고 확신한 장희재의 목소리가 한껏 커졌다.
“홍 기자, 그거 몹시 나쁜 버릇인 거 몰라요?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무슨 기사를 쓰겠다는 거야!”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순순히 물러나는 듯했던 홍은지는 대뜸 다른 주제를 꺼냈다.
-그럼 제가 다른 기사를 써 보도록 하죠, 뭐. 심요연 씨와 대표님의 별거설, 그리고 이혼 소식.
“잠깐, 이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
-이건 심요연 씨한테 허락받고 취재까지 끝낸 사건이라서요. 지금 타이밍 보면서 언제 터뜨리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 말에 장희재의 얼굴은 핏기가 없이 창백해졌다.
* * *
그날 밤.
술을 곁들인 허심탄회한 저녁 식사가 끝난 후.
태주가 강승민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박인우는 백미러로 뒷좌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귀소본능이 있어서 다행이네, 강 검사님.그런데 지금 말한 이 주소가 자기 집은 맞겠지?”
“그렇겠지.”
“그나저나 도대체 둘이서 몇 병을 마신 거냐, 태주야? 너 술 세다고 상대편도 그만큼 먹인 건 아니지?”
“형,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소주 2병을 마셨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강승민 검사님이 좀 술이 약하시더라고. 소주, 네 잔에 그냥 취해버리셨어.”
“뭐야, 이 양반. 술이 이렇게 약해서 검사 생활을 어떻게 해? 우리 아버지는 검사 시절 소주 5병은 기본이셨다고.”
박인우가 혀를 내둘렀다.
곧이어 강승민의 집에 도착하자 이중협과 박인우는 동시에 와, 하는 소리를 냈다.
[이야, 이 양반 좋은 데서 사네. 여기 평창동 저택가 아니야?]“강 검사님, 자취하신다고 하지 않았어? 이런 데서 자취하시는 거야?”
태주는 일단 강승민을 흔들어서 깨웠다.
“집에 다 왔어요. 일어나세요.”
“아, 알겠어요……”
차에서 내린 강승민은 미간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우리 본가잖아. 왜 여기로 왔죠?”
“집 주소를 여기로 말씀해주셨으니까요.”
“내가 그랬던가? 뭐, 아무튼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야겠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태주 씨.”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지만, 다리가 휘청거렸다.
태주가 그를 부축하자 그가 팔을 휘저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그렇지만 강승민은 패기로운 말과는 달리 팔다리에 힘이 빠지며 나뒹굴 뻔했다.
“우웁!”
그 순간 태주의 앞섬에 뜨끈한 무언가가 왈칵 쏟아졌다.
화들짝 놀란 박인우가 태주에게 향했다.
“뭐야, 이제 토까지 한 거야? 이 양반 진짜 왜 이래!”
“미안… 미안합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강승민이 정신을 차렸는지 벌떡 일어났다.
“잠시 안에 들어가시죠. 갈아입을 셔츠 내드릴게요.”
“그럼 좀 부탁드릴게요.”
“나는 밖에서 기다릴게.”
토사물에 눈을 찡그리며 태주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 * *
커다란 저택 내부는 불이 다 꺼져 있었다.
다행히 다들 자는 듯 깜깜하고 고요한 가운데.
2층으로 간 강승민은 예전에 자기가 쓰던 방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간 태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우리 아빠랑 고모가 한때 살았던 집이라니.’
[아빠랑 고모한테 이 집에 대해서 한 번도 들은 적 없어?]‘……없어요, 단 한 번도.’
그러고 보니 아빠랑 고모한테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것 같다.
주섬주섬 옷장을 뒤지던 강승민이 와이셔츠 하나를 내주었다.
“그래도 엄마가 제가 학생 때 입던 옷을 안 버리고 놔두셨네요. 이거 입으면 될 거예요. 더러워진 옷은 저, 주세요.”
“아니에요. 제가 빨게요. 담을 것만 하나 주세요.”
태주는 서둘러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토사물이 묻은 옷은 강승민이 건네준 쇼핑백에 집어넣었다.
“빌려주신 옷은 나중에 세탁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나중에 또 만납시다. 그때는… 가족들이랑 우리 집에 놀러 오실래요?”
강승민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부디,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세요.”
강승민이 머뭇거리며 태주에게 말했다.
“같은 가족인데, 맛있는 밥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어요.”
그들이 함께 2층의 복도에서 1층으로 내려온 그때.
뒤에서 살벌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천한 것 얼굴이 보이는 게냐.”
온몸이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에 태주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허리를 꼿꼿하게 편 노파가 서 있었다.
그녀가 내뿜는 한기에 이중협이 혀를 내둘렀다.
[독기가 가득한데? 어떻게 산 자한테서 저런 기가 풍겨 나오지?]태주가 노파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혐오와 증오감이 뒤섞여 있었다.
옆에서 강승민이 황급히 태주를 감쌌다.
“할머니, 일전에 말했던 태주예요. 우리 사촌….”
“사촌은 무슨 사촌이야! 그 여자를 닮은 걸 보니 천한 피가 분명한데!”
그 말에 태주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당황한 강승민도 목소리를 덩달아 높였다.
“할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어디서 저런 놈이 기어들어 온 게야! 당장 썩 나가지 못해! 그 천한 년 피를 이어받은 족속들이 왜 내 눈앞에서 얼씬거리는 거냐고!”
“안 그래도 갈 생각입니다.”
태주가 이를 악물고 노파의 분노어린 시선을 마주했다.
“저도 그쪽 같은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한테 폭언 들을 생각, 전혀 없으니까요.”
태주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강승민은 그에게 미안하다는 듯 허둥지둥했지만, 뒤에서 노파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박인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박인우가 백미러로 태주의 굳어진 얼굴을 살폈다.
강승민의 집에 다녀온 후로 기분이 상당히 나빠진 듯한 태주의 모습에 쉽사리 말을 붙이지 못했다.
‘강승민이 거만하게 굴었나? 아니다, 제 앞섬에 토를 쏟았는데 기분 나쁜 게 당연하지.’
그렇지만 박인우는 태주의 기분을 어떻게든 환기하고 싶었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 입을 열었다.
“내일 앤디 피셔 팀하고 촬영 있는 거 알고 있지?”
일 얘기에 그제야 태주가 입을 열었다.
“응. BS 빌딩에서 정오 즈음에 촬영 있잖아. 그럼 집 앞으로 9시까지 나오면 되지?”
자신의 스케줄을 막힘없이 읊는 태주의 모습에 박인우가 탄복했다.
“이야, 태주 너 진짜 철두철미하다.”
“내 일인데 당연한 거지.”
“요즘 일이 많았잖아. 그래서 나는 네가 머리가 복잡해서 깜박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 말에 태주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머리야 복잡하지. 그렇지만 연기에 소홀할 수는 없으니까.”
이중협은 대견하다는 듯 태주를 바라보았다.
아까 들은 노파의 폭언에 태주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태주는 그의 걱정과 달리 훨씬 성숙한 듯했다.
이렇게 스스로 극복하는 걸 보니.
“그래.”
박인우가 태주를 믿음직하다는 듯 보았다.
“너는 연기만 신경 써. 네게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건 우리 매니지먼트 팀이 할 테니까.”
‘곧 최고의 대우와 최고의 예우를 갖춰서, 사사건건 통제하려는 드림액터스보다 훨씬 나은 환경으로 널 데려가 줄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곱씹은 박인우가 기분 좋게 액셀을 밟았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