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5
25화
마지막 콘서트 (1)
“아악!”
“진정 좀 해, 네가 그러니까 나도 긴장되잖아.”
동락의 뒤를 따라가던 태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열과 성을 다해 촬영한 작품인 만큼, 관객들도 재밌게 봐줬으면 했다.
오늘 같은 날 부모님이 관객석에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고모라도.’
요즘 회사 일이 바쁘다며 도저히 연차를 못 쓴다던 고모였다.
이해는 했지만, 아쉬웠다.
-우리 태주, 언제나 고모가 응원한다.
그의 뒤에서 묵묵히 지지하던 고모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고모의 응원에 힘입어 출연한 첫 번째 영화를.
* * *
피르마 단편영화제 측에서는 30개의 작품 모두 상영관을 배정했다.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했다.
여러 상영관이 나란히 있는 복도를 지나갔다.
터질 것 같은 비명이 튀어나오는 곳은 아마 임강현이 있는 모양이다.
동락도 궁금한지 함께 걸어가던 직원에게 물었다.
“임강현도 오늘 왔나요?”
“네, B 상영관에서 관객과의 대화 진행하십니다.”
“무슨 대진표가 이래? 임강현 같은 스타가 오면 다들 그쪽으로 몰려갈 거 아냐!”
“진정해, 우리도 반은 찼다면서. 지금은 관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들어가시죠.”
태주는 직원이 열어주는 문을 지나쳐 긴장된 마음을 애써 가다듬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눈을 찡그리며 관객석을 응시했지만, 환히 밝혀진 불빛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사회자가 자신과 동락을 소개하자.
“영화 ‘마지막 승부’의 서동락 감독님, 그리고 한태주 배우님이십니다. 힘찬 박수로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귓가가 멍멍한 박수가 터졌나왔다.
그제야 적응된 시야에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맨 앞쪽에 동락의 부모님과 세 명의 누나들이 보인다.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동락의 부모님은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렸을 적부터 봐서 친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동락의 누나들이 힘차게 펼친 플랫카드.
-나 마취됐어, 알러뷰 쏘 마취! 한태주 배우님, 연기데뷔 축하드립니다!-
안 그래도 화끈거리는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태주는 동락에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저런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누나들 고집을 내가 어떻게 꺾냐. 그나저나, 이 정도면 80%는 찬 것 같은데? 분명 아까 반절밖에 안 찼었거든?”
동락은 태주의 얼굴과 포스터를 번갈아 보았다.
환히 웃는 태주의 얼굴이 포스터에 담겨 있었다.
그제야 동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배우가 잘생겨야 사람들이 오는군.”
“……뭐?”
“저기 봐봐.”
동락이 중간에 앉은 여학생들을 가리켰다.
분명 아까 레드카펫 앞에서 임강현 팬이라고 방방 뛰던 애들이었다.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힐끗 숨는다.
“너 보러 온 게 분명하다고.”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날 보던 사람들이 있다.
특히 맨 앞줄에서 노트북을 꺼내 무언가를 바삐 치는 젊은 남자.
기자라며 그의 얼굴을 찍어간 사람이다.
‘스타뉴스였던가?’
* * *
15분 정도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곧바로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태주와 동락은 사회자의 주도하에 관객들의 질문에 답을 했다.
약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홍보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상영관을 나가는 관객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았다.
“솔직히 임강현네 상영관이 미어터져서 하는 수 없이 이쪽으로 온 건데, 잘 온 것 같아.”
“영화 재밌던데? 스토리는 단순한데 연출이랑 연기가 좋으니까 흡입력이 있더라. 나까지 주인공한테 이입되어 벅찬 느낌이었어.”
“스포츠 영화는 취향이 아닌데, 이 영화는 너무 재밌었어.”
“배우가 연기를 진짜 잘해서 그래. 이름이 한태주라고 했나?”
“키도 큰데 잘생겼어. 목소리도 좋더라, 동굴 목소리야.”
호평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열심히 노력한 걸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태주는 미소를 참으며 입꼬리를 차분히 진정시켰다.
관객석으로 뛰어가는 동락을 천천히 뒤따라가던 도중.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기자에게 잡혔다.
“스타뉴스의 우성림입니다. 혹시 잠시 인터뷰할 수 있으십니까? 영화도 영화지만, 한태주 씨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요.”
“저에 대해서요?”
“네, 나름의 히스토리가 있지 않으십니까. 10년 전 똘똘이로 전 국민에게 사랑받은 이후, 오랜만에 복귀한 작품 아니십니까?”
‘이건 또 어떻게 알았지?’
태주의 긴장된 얼굴이 더욱 경직되는 가운데, 우성림은 그를 더욱 물고 늘어졌다.
“혹시 10년 전에 갑작스레 연기를 중단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힘듦을 극복하고 복귀한 스토리를 고백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무작정 달려드는 기자에 태주가 당황하는데, 그때 고모가 헉헉거리며 나타났다.
“아직 인터뷰는 안 해요. 특히 이런 식으로는 더더욱요.”
“고모!”
고모는 태주 앞을 가로막으며 우성림에게 단호히 말했다.
“인터뷰 요청은 합당한 절차를 밟아서 하세요. 이렇게 정신없을 때 갑자기 하지 말고요.”
“그게…….”
“부탁드립니다, 기자님.”
얼굴이 벌게진 우성림이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난다.
고모는 들고 있던 커다란 꽃다발을 태주에게 건넸다.
“축하한다, 태주야.”
“어떻게 왔어? 오늘 연차 못 쓴다고 하지 않았어?”
“서프라이즈. 좀 놀라게 해주려고.”
얼떨떨한 태주에게 그녀가 싱긋 웃어 보였다.
“우리 조카 첫 복귀작이 상영한다는데, 당연히 와봐야지. 이게 너한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내가 알고 있는데.”
그녀의 눈가가 곱게 반달로 접혔다.
태주도 그녀의 심정을 알기에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이중협이 그를 부추겼다.
[어서 고맙다고 해! 보니까 바쁜 일정에도 너를 위해서 여기까지 와주신 것 같구만.]“바쁠 텐데 시간 내서 와줘서 고마워, 고모.”
“뭘 이런 걸 가지고. 가족끼리 당연한 거지.”
“그래도…….”
태주는 고모에게서 잠시나마 부모님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늘 자신이 하는 일을 응원해주고 웃어주던 부모님.
그래서 고모에게 더욱 감사했다.
“정말 고마워.”
* * *
며칠 후.
태주는 독립영화 ‘자유 선언’ 대본리딩을 위해 충무로의 제작사를 찾았다.
그곳에서 양군보 감독, 손우현, 김선정과 함께 몇 번이고 리딩을 했다.
본격적인 촬영을 들어가기 전 주연배우들의 합을 맞춰보자는 감독의 제안이었다.
실제로 리딩을 해보니 좋았다.
연기하면 할수록 이 세 사람과는 합이 잘 맞는 게 느껴졌다.
목이 쉬어가는 태주를 본 양군보 감독.
“잠시만 쉴까요?”
“그러죠. 2시간을 내리 했네요.”
잠시 쉬어가는 시간.
또다시 구석에서 대본을 읽는 태주를 본 손우현.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쉴 때는 좀 쉬어라, 물도 마시고.”
“흐름 끊길까 봐요.”
“짜식, 하여간. 그나저나, 너 출연했다던 단편영화, 관객투표가 인터넷에 공개된다면서? 그거 몇 등하고 있냐?”
“떨려서 확인 못 했어요. 그래도 임강현이 출연한 게 1등인 건 알아요.”
옆에 있던 김선정이 끼어들었다.
“임강현은 팬들 화력이 세잖아. 자기 배우가 단편영화 출연한다니까 이번 주 상영회 티켓, 진작에 다 매진시켰다지? 태주야, 너도 말만 해, 우리가 너희 영화 보러 가줄게.”
“하하.”
“요즘 대중들, 톱스타의 그림자를 무작정 쫓을 정도로 무지하지 않아. 내가 인터넷 투표 결과 확인해 줄게.”
손우현이 옆에 앉아 독수리 타법으로 핸드폰을 두드렸다.
얼마 후.
끙끙대던 그가 괴성을 질렀다.
“야, 이거 봐라. 1등하고 2등하고 별로 차이 안나!”
“누가 2등인데요?”
“너희 거!”
손우현은 당황한 태주를 보고 다시 한번 말했다.
“마지막 승부, 너희 영화가 지금 관객투표 2등하고 있다고!”
* * *
아티스타 컴퍼니의 한 사무실.
두 남자가 컴퓨터 화면을 유심히 응시하는 가운데, 마우스를 달칵거리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피르마 영화제 인터넷 투표 현재 1등은 포에버 러브. 뭐, 강현이가 나오는데 당연한 결과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데 강현이 이 녀석, 왜 그리 순위에 전전긍긍하는지 모르겠어, 아휴.”
“물론 피르마 영화제가 신인들의 등용문이라고 하지만, 그건 감독들 놀음이고요. 흑룡영화상 같은 권위 있는 자리도 아닌데, 강현이가 이런 거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나요?”
한숨을 쉬던 남자는 아티스타 컴퍼니의 3팀장, 조정환.
임강현의 매니지먼트 담당이자, 권기도 2팀장보다는 선배였다.
임강현을 키워 강재하의 아성을 뛰어넘게 하는 게 그의 목표.
그러나 최근 임강현이 딴 데 정신이 팔린 것 같아 걱정이다.
그는 옆에 있던 로드 매니저에게 물었다.
“요즘 강현이 태도 어때?”
“태도요? 워낙에 묵묵하게 잘해서 별다른 걱정을 끼치지는 않습니다만.”
“걔가 워낙에 말이 없으니까 내가 이러는 거 아냐. 속에 담아두고 있는 걱정 같은 거 없냐?”
“글쎄요……. 드라마 미팅도 잘 다니고 스케줄도 잘하고 소화하고 있… 아!”
매니저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얼마 전에 피르마 영화제 개막했잖습니까. 그날 강현이가 GV 하러 갔었거든요. 그런데 자기 영화 말고 다른 영화에 유독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제목이 ‘마지막 승부’였나?”
화면을 내린 조정환의 눈에 ‘마지막 승부’가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투표에서 1위를 바짝 추격 중인 2위 영화.
빠르게 관객 평들을 읽어봤다.
-전형적인 스포츠 영웅물이었고. 솔직히 뻔한 스토리였지만, 그래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배우의 연기력 때문임.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을 장악하는 배우가 대단함.
-감독도 배우도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뛰었던 영화. 열심히 노력하는 자, 승리를 거머쥐리라.
-열심히 뛰는 명현석을 보며 나도 열심히 뛰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보는 웰메이드 스포츠 영화, 아니, 인간승리 그 자체.
-단편영화였지만 장편으로 보고 싶을 정도의 완성도, 신선함. 그리고 무엇보다 15분이 아닌 100분을 보고 싶은 주연배우 한태주의 연기. 관객들을 울고 웃기는 그의 연기에 홀딱 빠져버렸다.
-괴물 신인 탄생. 관객과 공감할 줄 아는 한태주의 다음 연기가 기대된다.
차분하게 읽던 조정환의 시선이 점점 짜증으로 점철되던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평에, 순식간에 표정이 험악해졌다.
-임강현과 한태주 간의 연기 대결에서 한태주 압.승. 밀크남이면 뭐하나, 한태주가 훨씬 연기 잘하는데.
조정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많은 것이 함축된 시선이 로드 매니저를 향했다.
그동안 임강현이 왜 기분이 안 좋았는지.
왜 딴 데 정신이 팔린 것 같은지.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현장 반응도 좋고, 관객들 반응도 최고고. 이런 복병이 있었네. 한태주 얘 말야. 연기를 좀 하는 모양이네?”
“네 맞습니다. 나이도 강현이랑 동갑이랍니다.”
“그럼 그동안의 활동은? 정말 신인이야?”
“네, 이게 첫 데뷔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매니저가 빠르게 덧붙였다.
“일전에 권기도 팀장님이 이 친구, 회사에 영입하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뱀파이어의 첫사랑’ 오디션까지 주선해 주셨대요, 그래서 1차 통과하고 2차까지 갔는데, 이 친구가 안 왔답니다. 다른 영화 오디션 본다고.”
놀람의 연속이다.
한태주가 까다로운 권기도의 입맛에 쏙 들었다는 것도.
‘뱀파이어의 첫사랑’ 1차 오디션에 합격했는데, 2차에 안 왔다는 것도.
‘분명 실력도, 스타성도 있는 것 같은데, 왜?’
조정환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한태주, 이 녀석에 대해 좀 알아봐야겠다고.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