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오만과 편견 (5)
‘그러고 보니 인서 씨, 생전에 여기서 수중 공연했다고 하셨죠?’
[네. 사실 제가 찾고 싶은 사람도 공연하며 만난 여자분이에요.]도인서는 꿈꾸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분은 제가 아쿠아리움에서 공연할 때마다 제일 앞줄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를 봐주셨어요. 마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분이셨죠.]‘그 여자분을 좋아하신 건가요?’
당연히 ‘예’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던 태주에게 도인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분에게 관심이 갔던 건 사실이에요. 왜 저를 그렇게 보시는 건지 궁금해서요.]‘인서 씨가 즐겁게 쇼를 진행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럴 리가요. 저는 한 번도 즐겁게 공연한 적이 없어요. 성우라는 꿈이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아쿠아리움에서 일한 거라서요.]과거를 회상하는 듯 그의 눈이 아득해졌다.
* * *
1년 전.
BS 빌딩 내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수많은 사람이 쇼를 보기 위해 모여있는 가운데.
마이크를 찬 안내원이 손을 흔들며 어린이들에게 인사했다.
“어린이 친구들, 안녕! 오늘은 우리 잠수부 아저씨와 함께 물고기 친구들을 만나볼 거예요. 자, 저기 잠수부 아저씨한테 다들 인사해줘요~!”
그녀의 손짓에 수조 안에 들어가 있던 잠수부가 유유히 헤엄쳐 다가왔다.
물속에서 그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밖에 있던 손님들도 다들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맨 앞에 있던 조그마한 체격의 여자도 재빨리 손을 들어 흔들었다.
물속에 있던 도인서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게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동그란 안경을 쓴 단발머리의 그녀를 본 지, 벌써 몇 개월이 넘어갔다.
이제는 밖에서 마주쳐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적 친밀감이 물씬 들었고, 그만큼 그녀에 대해서 궁금했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아쿠아 쇼를 왜 늘 맨 앞줄에 앉아 관람하는지.
가끔씩 노트필기 하듯 연필로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데, 그게 무엇인지.
그러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곧 쇼가 시작되기 때문에 다른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쇼를 진행하는 데 집중했다.
상어들한테 먹이를 주고, 물속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묘기를 펼쳤다.
그럴 때마다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그러나 단 한 명, 그 여자만은 그저 얼굴을 붉히며 그를 열렬히 쳐다볼 뿐이었다.
무릎에 놓인 노트가 미끄러져 땅바닥에 떨어졌다는 것도 모를 만큼, 아주 열렬하게.
쇼가 끝난 후.
옷을 갈아입은 인서는 서둘러 밖으로 향했지만, 손님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그는 주변에 있던 선배 직원에게 황급히 물었다.
“그 여자 혹시 봤어요? 맨 앞줄에서 체크 남방 입고 있던.”
“체크 남방? 잘 모르겠는데…. 왜, 아는 사람이야?”
“아뇨, 그건 아니고요….”
“워낙에 손님들이 많아서 한 명 한 명 기억할 수가 있어야지.”
가볍게 넘겨버린 선배와는 달리 도인서는 그러지 못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궁금증은 관심거리가 되고, 관심은 곧 감정으로 번진다는 사실도 모른 채.
* * *
도인서의 이야기를 들은 이중협은 즉각 단언했다.
[혹시 그 여자에 대한 집착이라면, 빨리 털어버리는 게 좋아. 그런 종류의 한은 오래 품을수록 악귀가 되기 쉬우니까.] [그런 것 아닙니다, 대장 귀신님. 정말 그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궁금할 뿐이에요.]도인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분은 3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주 제 공연을 보러 와주셨어요. 그런데 6개월 전부터 보이지 않더라고요. 제가 심장마비로 죽기 하루 전까지 수족관에 출근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도 보이지 않았어요.]‘그 여자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뭐가 있죠?’
[글쎄요. 수족관 밖에 있는 것만 봐서 잘 기억이…. 아!]머리를 쥐어짜던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여자분, 항상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계셨던 것 같아요.]‘손목 보호대요? 손목을 다치셨던 걸까요?’
[글쎄요, 항상 하고 계셨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태주의 말을 이중협이 거들었다.
[그거 말고 뭐 없어? 네가 정말 그 여자를 찾고 싶으면 좀 더 생각해 봐.]미간을 찡그리던 도인서가 아! 하고 괴로운 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쌌다.
태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도 아니고…….’
이번에도 무척이나 어려운 미션이 될 듯했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차용석이 요란하게 뒷좌석에 탔다.
“배 아파서 혼났네. 어라, 인우는 어디 갔어?”
“형처럼 급똥으로 지금 화장실 갔어요. 못 만나셨어요?”
태주의 말에 차용석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뭐야, 그럼 옆 칸에서 푸다닥거리던 그 끔찍한 소리가 바로 인우였다고?”
“그만 해요, 형. 곧 저녁 먹어야 하는데 밥맛 떨어지겠어요.”
“흠흠.”
마침 저쪽에서 박인우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가 운전석에 올라타자 차용석이 황급히 말했다.
“빨리 가자, 마범수 대표님은 벌써 와 계신단다.”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요?”
태주의 말에 차용석이 그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 양반이 어지간히 급한가 봐, 너 잡으려고.”
* * *
그날 저녁.
차용석과 나란히 앉은 태주는 맞은편에 있는 건장한 남자를 마주했다.
코에 있는 커다란 점이 눈에 띄는 남자는 호쾌한 웃음을 연신 터뜨렸다.
“하하, 한태주 씨 진짜 분위기가 독보적이네. 눈에 깊이가 있어, 깊이가!”
누가 보면 실없이 보인다고 할 수 있을 웃음이었다.
“형님,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좋으세요? 평소에는 그렇게 표정이 없으신 분이.”
“오늘 태주 씨를 봐서 그런가, 아주 기분이 째지네.”
로드 매니저 시절부터 그를 알고 지낸 차용석은 입술을 비죽이며 태주와 마범수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태주야, 이쪽은 제작사 스튜디오 S 대표인 마범수 대표님이셔. 형님, 이쪽은 뭐… 이름 안 대셔도 아시죠?”
“대한민국에서 한태주 모르면 간첩이죠.”
“안녕하십니까.”
마범수는 씩 웃으며 태주가 내민 손을 잡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태주 씨.”
기분 좋은 인사가 끝난 후.
태주는 마범수 대표가 건네준 프린트된 그림들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그가 준 건 ‘스튜디오 S’에서 제작 중인 웹툰 ‘인어 왕자’의 일부분이었다.
“저희 제작사에서 포털 사이트 N 사에 론칭할 웹툰인데요. 자체적으로도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작품입니다.”
“프롤로그를 통째로 무빙툰으로 만드신다고요.”
“네. 해서, 인어 왕자의 목소리를 태주 씨가 맡아서 연기해 주신다면 해당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질 것 같습니다.”
마범수는 태주에게 눈을 찡긋했다.
“예전에 ‘낭만 고양이’에서도 태주 씨가 더빙한 부분, 반응이 무척 좋았잖아요.”
“우리 태주가 연기를 잘하긴 하죠.”
차용석과 마범수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린 태주는 얼른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 공주’를 모티브로 했다던 웹툰은 태주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솔직히 태주에게 웹툰은 스낵 컬처라는 느낌이 강했다.
빠르게 몰입하고 빠르게 감상하기 때문.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작품은 몇 번이고 원고를 곱씹어 보고 싶은 매력이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재밌달까.
그리고 그림을 잘 모르는 태주의 눈에도 해당 컷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마치 수채화로 그린 듯 부드럽고 청량한 그림체가 인상적이었다.
빛이 들어오는 바다를 섬세하게 묘사한 디테일도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건 바로 웹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 인어 왕자의 존재감이었다.
청록색 꼬리를 팔랑이며 바다 밑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인간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인어 왕자의다채로운 표정이 태주의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그런데 늘씬한 팔다리와 섬세한 이목구비를 자세히 보던 태주는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네…….’
“어때요? 태주 씨.”
조심스레 묻는 마범수의 질문에 태주가 즉각 대답했다.
“이야기, 그림체, 작가님의 정성, 모든 게 완벽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정말 재밌습니다.”
“차 팀장은?”
차용석도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그냥 술술 읽히네요. 좋습니다.”
“다행이네.”
마범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거든요. 이번에 N사 공모전에 참가했다가 갑자기 기권한 거예요. 보니까 당장 생활이 급한 지망생이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잽싸게 낚아채 왔죠. 아무리 봐도 이건 정말 대단한 클래스거든요.”
“특히 인어의 움직임이 정말 자연스러워서 꼭 실제로 살아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 말로는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꼭 널 닮은 것 같은데?]옆에서 유심히 원고를 보던 이중협이 도인서를 빤히 바라봤다.
[눈썹 아치형으로 휘어진 거, 눈매가 살짝 올라간 거, 그리고 역삼각형으로 몸 잘 빠진 거. 너를 많이 닮았어.]도인서가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그… 그렇지만 전 저렇게 잘생기지는 않았는데….]이중협의 말에 태주는 막힌 궁금증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맞아요. 왜 인어 왕자가 이렇게 낯익은가 했더니, 눈매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딱 도인서 씨를 닮았어요!’
[그쪽이 잘생겨서 그런가, 어떻게 웹툰 캐릭터랑 똑 닮았냐.]이중협이 생각 없이 툭 던진 말.
하지만 그 말에 태주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으니.
‘혹시 도인서 씨가 찾는다는 그 여자분이, 이 웹툰 그린 작가님 아닐까요?’
[…네?]상기된 도인서에게 태주가 흥분한 듯 덧붙였다.
‘인어 왕자가 도인서 씨를 똑 닮았어요. 이건 그동안 인서 씨를 관찰해서 투영한 작가분의 노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그럼 그분이 인서 씨가 찾는 그 여자분일 가능성이 가장 크잖아요!’
그때, 태주의 귓가로 마범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시간 되시면 우리 회사로 오셔서 마저 이야기하실래요? 저희 쪽에서 보여드릴 것도 있고요.”
그 말에 차용석은 손을 내저었다.
“형님, 태주가 막 촬영을 끝내고 와서 피곤할 겁니다. 나중에 다시 약속을 잡아서….”
“갈게요.”
그러나 태주가 즉각 마범수의 제안을 승낙했다.
속셈이 있는 그의 눈은 유독 반짝이고 있었다.
“대신, 제가 이 웹툰 그린 작가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해당 캐릭터를 더빙하려면, 아무래도 원작 작가님에게 지도를 받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서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원작자만큼 캐릭터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아휴, 태주 씨가 아주 준비성이 철저하네.”
“아니, 굳이 안 가도 우리 쪽에 자료를 보내주면 태주가 준비할 수 있는데…”
차용석은 왠지 태주가 제작사에 가는 걸 머뭇거리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태주는 이미 제작사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 뒤였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