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오만과 편견 (5)
얼마 후, 집에 도착한 한유경.
“이렇게 내가 빠져도 되는 건지….”
한유경은 집에 도착해 태희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한 듯 차용석에게 연락했다.
수화음이 얼마나 울렸을까.
차용석이 급히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유경 씨, 걱정했잖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저녁때 맨날 통화했는데 오늘은 안 되고.
“용석 씨 말대로 장희재 대표가 직우리 집까지 찾아왔어요.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면서 저더러 태주가 재계약하도록 설득하라 하더라고요.”
-그래서요?
“용석 씨 조언대로 모든 건 태주에게 맡긴다고 했죠. 솔직히 장 대표가 날 대하는 태도가 불쾌했어요.”
당시의 대화를 회상하던 한유경이 어이가 없다는 듯 씩씩거렸다.
“내가 조카 팔아먹어서 돈 버는 돈독 오른 여자처럼 보였나 봐요.”
-진정하세요. 원래 장 대표는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수화기 너머 차용석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장 대표가 하필이면 제가 없는 날 거길 찾아가다니. 오늘은 태주가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라 여자들밖에 없었을 텐데…….
“그래도 타이밍이 좋았어요. 제가 장 대표하고 20분 정도 이야기했을 때 태주가 왔거든요.”
그 말에 차용석이 당황스러운 듯 말했다.
-그럼 지금 태주가 장 대표님이랑 단둘이 이야기 중이라는 건가요?
* * *
얼마 후.
두 남자가 구석에서 상반된 분위기를 풍기며 대치하고 있다.
태주의 재계약을 확정하러 온 장희재는 불안한 듯했다.
이미 거액의 계약금으로 태주의 고모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한 탓일까.
평소의 여유로운 태도는 증발하고, 급하고 초조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카드는 바로 절실함이었으니까.
의외로 한태주에게는 이런 태도가 먹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어쨌거나 한태주의 시작은 드림액터스였고, 그는 선배였던 이중협의 회사인 이곳에 로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내가 아무한테나 이러는 거 아니다, 태주야. 너는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거 아니? 거기에 오르는 것보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게 더 힘들다는 거.”
태주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장희재를 마주하고 있었다.
“아, 백시영 선배님처럼요?”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오냐!”
태주의 말에 장희재가 이마에 핏줄이 우뚝 솟았다.
그렇지만 한태주를 잡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는 간신히 분노를 참아냈다.
“톱스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기력, 스타성, 이미지. 이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져야 해. 그런 의미에서 용석이는 톱스타를 감당할 그릇이 못 돼.”
그 말에 태주가 날카로운 눈썹을 추켜 올렸다.
“무슨 소리십니까. 용석이 형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용석이는 작품 보는 눈이 없어. 막말로 너 지금 ‘스튜디오 S’에서 제안받은 그 드라마 말이야. 나 같으면 너 절대로 그거 안 시킨다.”
왜냐는 듯 태주가 의문이 담긴 시선을 보내자 장희재가 대꾸했다.
“사이코패스 주인공에, 신인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그건 위험투성이야! 모험은 ‘데스 게임’으로 족하잖냐.”
“그건 대표님 생각이겠죠. 저는 제가 선택한 작품들, 모험이 아닌 확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늘 연기합니다.”
얼굴이 시뻘게진 장희재가 버럭 화를 냈다.
“그놈의 똥고집은! 네가 그래서 선구안이….”
“누구 선구안이 더 좋을지는 이제 곧 밝혀지겠죠.”
그들의 머릿속에 내년에 방영될 ‘데스 게임’, ‘청룡검신’, 그리고 영화 ‘탈출’, ‘조선패션왕’이 스르륵 지나갔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이중협이 혀를 끌끌 찼다.
[장 대표는 하여튼 자기 생각을 강요하며 윽박지르는 건 여전하구만. 배우의 생각을 존중하는 법을 모르는 건가?]‘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아무튼, 저는 마음을 정했어요.’
태주는 할 말이 다 끝났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대표님도 이만 돌아가시죠.”
이를 악문 장희재가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잘 생각해라, 너.”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너희 아버지, 강씨 집안 사람이라는 거 밝히면 아주 시끄럽고 좋겠다, 그치?”
그 말에 발걸음을 옮기던 태주가 벌컥 뒤를 돌았다.
그의 살벌한 표정에 장희재가 움찔했지만 이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가 아는 한태주는 누구보다도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분명 그는 가족의 사생활을 지키고 싶어서라도 자신에게 굽힐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나 태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대표님 뜻대로 하세요.”
“…뭐?”
“그런데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둘 중에 누가 더 피해를 볼지는, 아마 대표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그의 태연한 태도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장희재가 한껏 흔들렸다.
“너… 네가 이래서 좋을 게 하나도 없을 텐데. 도대체 왜 이래?”
“글쎄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태주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인 순간.
장희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그 헛소리 어디서 들었어?”
“헛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대표님이 그리 당황하시는 걸 보니. 아무튼, 저도 준비한 것들이 있거든요. 대표님한테 눈 뜨고 코 베일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태주의 얼굴에 냉정한 미소가 흐르자.
“그러니까 잘 생각하십시오, 대표님. 제가 실수로 이걸 아는 기자들한테 불지도 모르잖아요?”
장희재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제껏 연기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던 한태주한테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 * *
다음날, 스타 뉴스.
스타들의 SNS를 염탐하느라 바쁜 기자들이 아웃패치에서 터뜨린 기사에 입을 쩍 벌렸다.
아웃패치의 조삼식이 쓴 이 기사는 백시영을 거론한 것만으로도 큰 조회수를 끌어모았다.
최준모 감독의 영화, ‘언더커버’에서 백시영의 연기가 미쳤다고 다들 인정했다.
그러나 ‘광대’에서 한태주의 연기력도 만만치 않게 관객들에게 인상 깊이 남았다.
“이야, 이번에 흑룡영화상 볼 만하겠다. 백시영과 한태주라니! 신구의 대결이잖아?”
“역시 흑룡영화상은 다른 건 안 보고 배우의 연기력만 본다니까. 백시영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데는 여기밖에 없을걸. 사생활 문제 때문에 다른 데는 거론도 안 되던데.”
“솔직히 ‘언더커버’에서 백시영의 연기만 건진 건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그 연기가 한태주를 이길 만한 연기인지는 흠…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번에 시청률 쏠쏠히 나오겠다.”
그때.
홍은지가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 주위로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홍 기자, 뭔가 큰 거 터뜨리려는 거지?”
“우리한테만 가르쳐 주라. 같은 식구끼리 뭘 감추냐?”
“감추긴 뭘 감춰요.”
“한태주가 넥스트 엔터테인먼트로 간다는 거, 그거 확정이지?”
“성림이가 쓴 기사에서는 드림액터스 3팀 배우들이랑 직원들이 전부 넥스트 엔터로 이적한다던데.”
“임강현이랑 고성열도 넥스트 엔터로 이적했더라고.”
“그런데 그중에 한태주만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나중에 직접 기사로 확인하세요.”
여유로운 태도의 홍은지는 핸드폰을 들고 일어나 휴게실로 향했다.
우성림이 쏘아 올린 공을 그녀가 화려하게 마무리할 차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인터뷰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건 홍은지.
“네, 스타뉴스에 홍은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2시에 박송훈 대표님과 차용석 대표님 인터뷰하기로 한 거, 시간 확인 차 전화드렸습니다.”
그러자 전화 너머에서 송유리 대리의 쾌활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 그래도 저희 쪽에서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기자님. 박 대표님, 차 대표님 말고 또 한 분이 인터뷰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넥스트 엔터 관계자이신가요?”
-한서경 부회장님께서 직접 한태주 씨의 이적에 대해 코멘트하고 싶으시다고 하셔서요.
그 말에 홍은지는 벌떡 일어났다.
“한… 한서경 부회장님이요?
-네! 이번에 한태주 씨 소속사 계약 관련해서 기사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러면 자기도 한 마디 덧붙이시겠다며 흔쾌히 자리에 함께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저야 감사하죠. 곧 뵙겠습니다.
잔뜩 흥분한 홍은지가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이거, 특종 중에 특종이 나오는 거 아냐?”
* * *
서울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
의류 브랜드 모델 계약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현재 인터넷을 달구는 한 기사에 주목하고 있다.
배우 한태주가 ‘보드레’의 단독 모델로 발탁됐다.
‘보드레’ 측은 “고급스러움과 청량함을 동시에 뽐내는 팔색조 매력의 배우, 한태주가 감각적인 브랜드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밝히며, 앞으로 ‘보드레’의 얼굴이 될 한태주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스타뉴스, 황유나 기자-
기사를 읽던 태주가 눈썹을 씰룩였다.
“화보도 찍기 전인데 벌써 모델 발탁 기사부터 나다니 신기하네요.”
옆에 있던 차용석이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쪽에서 스타뉴스한테 부탁 좀 했지. ‘보드레’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지금까지 한 번도 단독 모델을 쓴 적 없었는데, 브랜드 론칭 20년 만에 처음으로 단독 모델을 쓰기로 한 게 너니까.”
한편, 맞은편에 있던 ‘보드레’ 관계자들은 태주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들 중에는 ‘보드레’ 창립자 소연희의 동생이자 공동 경영자인 소원영도 있었다.
“이런 완벽한 뮤즈를 찾기 위해 그동안 우리가 단독 모델을 쓰지 않았던 거야.”
“세련된 분위기와 시크한 모습이 브랜드 이미지와 딱 맞아요.”
의류 브랜드 ‘보드레’.
한국의 남성복 브랜드이자 한국 최초로 파리 백화점에 진출한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하이엔드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보드레’는 배우 한태주를 뮤즈로 낙점, 전속모델로 발탁한 것이다.
그들의 전속모델 제의에 태주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었다.
원체 협찬을 안 한다는 ‘보드레’ 측이 드라마 ‘데스 게임’에서 파티 씬의 의상을 그에게 협찬해 주었을 때부터, 관심의 시작이었을까.
그쪽에서 보낸 꾸준한 관심이 전속모델 계약까지 이어진 건 확실했다.
한데 모인 사람들이 이야기를 끝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난 태주는 맞은편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눴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눈을 빛내던 관계자가 태주에게 믿음직한 눈빛을 보냈다.
“화보 촬영이 기대되네요.아, 그리고… 미리 꽃다발이라도 사무실에 보내드려야 하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일 있을 흑룡 영화상에서 태주 씨, 상 받을 거 확실하잖아요.”
소원영은 얼굴이 발개진 태주를 보고 웃었다.
“받을 게 확실하니까 미리 축하해 주려고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