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6
26화
마지막 콘서트 (2)
태주가 알바를 하는 카페.
카운터에 서 있는 태주가 손님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피르마 단편영화제라고, 제가 출연한 영화가 현재 상영 중이거든요. 내일은 오후 2시 타임이에요.”
한 여자가 새침하게 태주에게 물었다.
“그럼 내일 오후 2시에 가면 태주 씨가 출연한 영화 볼 수 있는 건가요?”
“네. 저랑 감독님이랑 함께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할 예정이니까, 꼭 보러 오세요. 정말 재밌습니다.”
여자 손님들이 가자 중학생 남자애들이 태주에게 온다.
“형, 폐막식이 이번 주 금요일이라고 했죠?”
“맞아. 그런데 너희, 수업 빠지고 오는 건 아니겠지?”
“그날 개교기념일이라, 갈 수 있어요. 그럼 그날 봐요!”
한참이나 손님들에게 설명한 태주.
한가해지자 가까스로 한쪽 테이블로 향했다.
서동락과 심은설이 그를 힐끔거렸다.
“이야, 한태주 인기 대단하네. 카페 손님들까지 영화제로 이끄는 클라스 보소?”
“한 명이라도 우리 영화 더 보면 좋지. 나는 이제 2일밖에 안 남은 영화제를 위해 관객들 유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너는?”
“우리 누나들 셋에 부모님. 그리고 친가랑 외가, 도합 30명 넘는 관객들 동원했는데? 우리 친척 중에 이 영화 안 본 사람 없어, 제주도에서 올라와 준 사촌도 있다고.”
동락의 말에 태주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심은설이 핸드폰 화면을 가리켰다.
“얘들아, 이 기사 봤어? 스타뉴스에서 피르마 영화제에 관해 쓴 기사인데, 우리도 나왔어.”
태주는 그들 사이에 끼어 기사를 읽었다.
스타뉴스의 우성림 기자.
저번에 GV에서 인터뷰 요청을 다짜고짜 했던 사람.
“매년 열리는 ‘피르마 단편영화제’이지만 올해는 특히 재밌는 작품들로 눈길을 끌고 있다. 꽃미남 스타 임강현이 출연한 ‘포에버 러브’와 열혈 복싱선수 이야기 ‘마지막 승부’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홈페이지에서 진행되는 인터넷 투표에서 두 작품은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침을 삼킨 동락이 기사를 마저 읽었다.
“마지막 승부는 승리를 향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신선하고 열정적인 연출, 그리고 주연배우의 열연은 전체적인 작품의 격을 더해준다.”
태주는 우성림의 기사에 다소 놀랐다.
‘GV 때 그렇게 헤어져서 이런 호의적인 기사를 써줄 줄은 몰랐는데.’
얼굴이 상기된 동락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거 꿈 아니지? 우리 과에서 아무도 기대 안 한 작품인데, 이렇게 극찬받다니.”
“이렇게 된 이상, 상이라도 하나 타고 싶다. 30 작품 안에서 5등 안에만 들면 되는데!”
심은설이 주먹을 꼭 쥐었다.
“아무도 기대 안 한 언더독이 상 타는 거, 얼마나 멋진 그림이니!”
“자, 자. 모두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태주가 동락과 심은설을 보고 씩 웃었다.
“일단은 이 순간을 즐기자.”
* * *
피르마 영화제 폐막을 하루 남겨 놓은 이때.
늦은 밤까지도 심사위원들이 한 방에 모여있다.
다들 피곤한 안색이었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이번 작품들은 제법 재밌는 것이 많아서 좋습니다.”
“수준이 높아졌어요. 완성도에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예요.”
“한국예대 영화과 애들이 많이 출품했더라고요. 졸업생들이 대부분인데, 그중 재학생도 몇 명 있고요.”
“어쩐지, 이형곤 감독님이 결과에 특히 관심을 가지더니만.”
영화제의 심사위원장, 최준모 감독이 피식거렸다.
몇 날 며칠을 심사한 탓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쓰리 샷 커피를 마시며 그가 내뱉은 말.
“다들 조금만 더 수고합시다! 파이팅하시고!”
그의 격려가 통했는지 심사에 한껏 속도가 붙었다.
곧이어 그들의 손에 남은 두 작품.
마지막까지 결정을 미루던 작품들이었다.
‘포에버 러브’, 그리고 ‘마지막 승부’였다.
“이제 이 두 작품만 남았네요.”
최준모가 심사위원들을 쓱 훑어보았다.
다들 신중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4년 동안 피르마 영화제에서는 대상이 없었죠. 상에 걸맞은 작품이 없으면 선정하지 않는다는 게 영화제의 원칙이었고요.”
“그렇지만 이 두 작품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최 감독님도 망설이시는 거 아닙니까?”
“흠…. 두 영화가 각축을 벌이는 건 사실이니까요.”
현직 배우들과 감독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
그중 연기파 배우의 대명사인 주세진이 입을 열었다.
“‘포에버 러브’는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죠. 주연으로 출연한 임강현이 시한부 남주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어요.”
“워낙에 연기를 잘하는 친구니까요. 아역 때부터 안정적으로 잘했죠.”
“인터넷 투표를 보면 ‘포에버 러브’가 1등이더라고요.”
“압도적 1등은 아닙니다. 2등인 ‘마지막 승부’와 불과 60표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요.”
최준모는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 승부’가 투표수를 이 정도로 따라잡은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에버 러브’는 임강현 팬들의 화력이 셌다는 점, 다들 인정하시죠?”
“내 생전 피르마 영화제에 그렇게 팬들이 미어터지는 건 또 처음 봤습니다.”
“마지막 승부 쪽 팬들도 많던데요? 누구더라? 한태주였던가, 그 친구 연기 보러 온 관객들도 많았어요.”
“작품이 좋으니까요. 몇 번을 봐도 안 질리던데.”
어느새 대화는 ‘마지막 승부’로 흘러갔다.
“주연배우가 연기를 참 잘했어요. 계산해서 하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인물이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연출이 세련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신선한 면들이 있어요. 특히 명현석이 러닝 훈련하다 누군가 던진 사과를 받는 장면이 위트있고 좋더라고요.”
“처음 봤을 때는 스토리가 너무 평범한 게 아닌가 했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진부한 게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감독이 참 재밌는 게, 우리들의 원초적인 욕구를 건드린 거더라고요, 그게.”
가만히 듣고 있던 최준모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부하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았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죠.”
“이 영화는 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주연배우의 연기 하나면 다 끝납니다.”
주세진이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다들 동의하잖아요. 이 영화에 우리가 빠져드는 건 배우의 연기 때문이라는 걸.”
“연기를 참 잘해요. 너무 과잉되지도, 너무 소심하지도 않게.”
“처절하게 주먹을 맞대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더라고요. 연기에서 간절함이 보이는 게 참 좋았어요.”
“이 친구, 이게 데뷔작이라고 했나요?”
“프로필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괜찮은 친구네요. 첫 데뷔작인데 작품을 휘어잡아 끌고 가는 힘도 있고.”
“자, 자, 여러분. 다들 의견 정리합시다.”
최준모가 심사위원장으로서 모두의 의견을 모았다.
“포에버 러브와 마지막 승부, 둘 중 어떤 작품에 대상을 줄지 투표로 결정하겠습니다.”
* * *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끝난 심사.
심사위원들이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홀가분한 표정의 최준모 감독이 주세진과 함께 나와 담배를 문다.
“에잉, 이래서 우현이가 심사위원 직을 나한테 넘겼구먼. 아주 피곤하고 눈 아파 죽겠네.”
툴툴거리는 주세진을 최준모가 빤히 바라본다.
“원래 손우현 씨가 먼저 피르마 영화제 심사위원 직 제안받았다고 했었죠?”
“원래는 그랬었죠. 그런데 지금 뭐 독립영화 찍는다고, 거기 집중해야 한다며 나한테 넘겼어요.”
“하하, 우현 씨답네요. 그래도 세진 씨, 이번에 심사하면서 재밌어하시지 않았어요? 특히 ‘마지막 승부’에서 복싱하는 장면 보고 흥분하신 것 같던데.”
“한태주란 친구, 나중에 만나면 복싱했는지부터 물어보려고요. 어쩜 그렇게 주먹을 잘 치는지…… 딱 내 스타일인데.”
주세진이 흐흐 웃었다.
그는 자선 격투단체의 회장으로, 복싱 마니아였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던 최준모 감독.
고개를 들더니 불현듯 되뇌었다.
“그 한태주란 친구요. 중협 씨랑 좀 닮은 것 같지 않아요?”
“중협이? 이중협이요?”
“네. 예전에 중협 씨가 저랬잖아요, 첫 데뷔작부터 충격적으로 연기를 잘했었는데.”
주세진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는 이중협과 같은 극단에서 동고동락한 선배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후배를 생각하니 괜히 기침이 나왔다.
“크흠. 중협이도 연기를 참 잘했죠. 모든 힘을 다해서, 자신을 내던지는 스타일의 연기도 참 잘했고.”
“그런 면이 한태주랑 닮았네요.”
“외관은 전혀 안 닮았습니다. 중협이는 상남자도 그런 남자가 없었죠. 그런데 태주 쟤는 선이 제법 곱잖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세진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저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중협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주세진의 한숨에 최준모도 덩달아 긴 숨을 내뱉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중협 씨, 그렇게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배우였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과거의 기억에 젖은 최준모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따라 중협이, 참 보고 싶네요. 그 녀석도 살아있었으면 여기서 심사 보고 있었을 텐데요.”
“한태주 같은 후배 배우가 나온 것을 참 재밌어했겠죠. 그리고 귀여워하며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줬을 테고요.”
주세진은 허무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 너무 아깝게 갔어요.”
허망한 침묵이 흘렀다.
슬픔 대신 담배를 삼키며 한동안 말이 없던 둘.
최준모가 문뜩 고개를 들었다.
“그때 중협 씨 사귀던 사람도 있지 않았어요? 같은 배우였던 것 같은데.”
“둘이 비밀연애였는데, 최 감독도 아네요?”
“그분 맞죠? 염수정?”
주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준모가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사실이었군요. 톱스타시고 중협 씨 돌아가시고도 티를 안 내서 잘 못 알고 있는 건가 했는데. 요즘에도 작품만 안 하지, 광고는 계속해서 찍잖아요?”
“말도 마세요, 그때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 후로 선우 씨 회사로 옮겼잖아요.”
주세진이 시선을 뚝 떨어뜨렸다.
“중협이 장례식장에서 몇 번이나 혼절했어요. 선우 씨가 케어하느라 고생했지.”
“이선우 씨가 상주였었죠? 중협 씨가 가족은 없어도 친구는 잘 뒀다고 맨날 자랑했었는데.”
“그럼 뭐합니까. 세상을 떠난 자도, 세상에 남은 자도 불쌍한 거죠.”
“그게 벌써 5년 전이네요.”
주세진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넘어갔지만, 마음속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중협을 만났을 때.
그는 분명 무언가로 속앓이하고 있었다.
* * *
피르마 영화제 폐막식 당일.
오늘은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태주는 일찌감치 서동락 및 스탭들과 함께 폐막식이 열리는 용산 영화관에 도착했다.
패션 감각이 있는 고모 덕에 태주는 그럴듯한 시상식 패션을 완성했다.
길고 늘씬한 몸에 맞는 검은 양복, 목에 맨 캐주얼한 보우타이, 자연스레 이마를 덮은 머리.
주변 사람들이 모델 같은 그를 힐끔거렸지만, 태주는 동락에게 관심을 쏟았다.
왁스로 머리를 바짝 넘겨 힘을 준 동락은 긴장으로 덜덜 떨고 있었다.
“아흑…… 태주야, 나 좀 살려줘. 이렇게 잘 빼입고 아무것도 못 받으면 너무 쪽팔릴 것 같아.”
“뭔 소리야. 오늘 시상자가 최준모 감독님이라니까 이렇게 잘 입은 거 아냐?”
“맞아. 최준모 감독님은 내 우상이야. 그분한테서 상을 받는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아. 태주야. 우리 영화, 상 받을 것 같냐?”
동락의 물음에 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있지만, 확신은 없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했으니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지.”
“마지막 승부 팀 여러분, 이쪽으로 오세요!”
진행요원의 안내를 따라 영화관 한쪽에 마련된 포토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임강현이 서 있었다.
“포에버 러브 팀 다음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옆에서 동락이 기웃거렸다.
“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많아?”
“임강현이 스타는 스타네. 이런 단편영화제에도 기자들이 저렇게나 많이 오고.”
수많은 카메라와 조명이 그에게 집중됐다.
인터뷰 질문의 대부분이 임강현을 향하는데, 기자단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스타뉴스의 우성림 기자입니다. 이곳 피르마 영화제에서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역 때 라이벌이었던 한태주 배우님이요. 그때도 라이벌이셨는데, 피르마 영화제에서도 두 분의 작품이 대상을 놓고 다투는 상황이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말에 임강현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수군거린다.
“한태주가 누구야?”
“옛날에 쌍갑동 식구들에 나왔던 그 아역?”
“진짜 한태주가 여기 있다고? 어디?”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