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아버지와 아들 (4)
기사에 달린 댓글을 훑어보던 차용석은 피식 옅은 숨을 내뿜었다.
조회수 1위에 빛나는 관심만큼이나 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댓글 몇 개가 보였다.
-한태주 연기는 믿고 봅니다. 차기작도 기대 만발!
-그런데 KTS라는 방송국도 있었어요? 채널 번호도 잘 모르는데.
-드라마의 옥의 티가 방송국이네요. 인지도가 너무 떨어져서 사람들이 볼까 모르겠어요.
댓글을 보던 차용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줄 알았어. 다들 KTS가 어딘지는 모르는군. 베일릭스 쪽과 진작에 동시 방영 타진하길 잘했어.”
옆에서 듣던 태주가 귀를 기울였다.
“베일릭스와 동시 방영이라뇨?”
“우리 드라마의 유일한 단점이 인지도 없는 방송국이잖아. 그래서 베일릭스의 손을 빌릴려고. 그래야 본전을 뽑을 거 아냐. 게다가 베일릭스 시청자들이 본방송으로 넘어올 가능성도 있고.”
“결국, 사람들은 본방송으로 넘어오게 될 거예요.”
태주가 확신을 두고 중얼거렸다.
“작품이 재밌으면 시청자들은 어떻게든 방송국 채널을 찾아서 볼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 믿음으로 여기까지 온 거고.”
태주를 믿음직하게 보던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여주인공 캐스팅이 중요하겠네. 이 배역, 제대로 연기해야 때깔이 사는 캐릭터잖아.”
“그렇죠.”
태주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연쇄 살인의 범인을 주인공으로 의심하지만,그와 동시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연기해야 하니까요. 자신의 약점을 주인공을 통해서 채우는 듯한 느낌이랄까.”
“솔직히 ‘굿맨’ 캐릭터들이 연기만 기막히게 하면 참 배우 커리어에 길이 남을 연기가 될 텐데. 그게 어려워서 그렇지.”
차용석이 혀를 차며 고민에 빠졌다.
“그럼 너랑 케미가 제법 잘 맞아야겠네. 연기 잘하는 건 물론이고.”
“그런 여배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김진수 대리의 말에 태주의 입이 답을 말하려는 듯 달싹였다가 다시 닫혔다.
그런 태주를 보던 차용석이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아, 그런 여배우가 있기는 하네. 제작사 측에서도 윤수안을 너 상대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일전에 함께 작품도 했었고, 케미도 잘 맞고.”
“윤수안 씨요?”
김진수의 말에 차용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시놉은 진작에 줬는데, 아직까지 확답이 없네.”
“저번에 윤수안 씨랑 작품 관련해서 통화하지 않으셨어요? 그때 출연 확답 못 받으셨나요?”
“확실하게 말을 안 하더라고. 고민하는 걸 보니 관심은 있는 것 같던데…….”
차용석이 태주 쪽을 힐끔거렸다.
“혹시 태주가 전화하면 드라마 확답을 주려나?”
그 말에 태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 또한 파트너로 윤수안을 원하는 마음이 스멀거렸다.
그녀만큼 연기 합이 잘 맞는 여배우는 없다고 확신했으니까.
“제가 한번 연락해 볼까요?”
“그럴래?”
차용석이 반색하자 태주가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요.”
태주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 * *
동 시각, 강원도의 한 시골.
발목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패딩을 입은 여자가 전원주택의 마당에 나와 있다.
한동안 마당을 왔다 갔다 했지만, 그녀는 오직 핸드폰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무표정인 윤수안은 핸드폰에 찍힌 수많은 부재중 전화들을 보았다.
대부분이 황재남 팀장의 연락이었고, 맨 마지막에 찍힌 건 장희재 대표의 문자였다.
-네 마음대로 해, 말 안 듣는 배우는 필요 없으니까.
최근에 부쩍 그녀에게 차가워진 대표님은 그녀가 막판에 재계약을 거부하자 이런 식으로 대꾸했다.
“오히려 잘됐지, 뭐. 미련 없이 헤어지는 게 차라리 나아.”
미련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드림액터스에서 그녀를 버리는 패 취급하는 것이 제법 씁쓸했을 뿐.
그러나 자신을 소중히 하지 않는 그곳과 재계약할 생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예계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서였다.
열심히 일했더니 돌아오는 건 접대에 나가라는 말이라니.
그래도 그녀가 마음잡고 다시 일하기 시작한 건, 역시 연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하지 않았던 액션 스릴러 영화에 도전하는 것도 그 일환이었고.
예전에는 회사의 제재로 로맨스 연기만 했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이미지 변신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 그녀가 최근 고민하는 게 하나 있었으니.
“이건 어떡할까?”
드라마 ‘굿맨’은 그녀가 봐도 참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주인공을 사랑하면서도 범인으로 의심하는 두 가지 결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커피를 후룩거리던 그녀의 핸드폰이 울린 순간.
발신인을 확인한 윤수안의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 끝끝내 울리는 전화를 결국 받았다.
“태주 씨.”
-수안 씨, 제 말 좀 들어 봐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그의 목소리는 급해 보였다.
-용석이 형한테 받은 드라마 대본, 봤죠?
“네? 아, 네….”
-그거 꼭 나랑 같이해요. 남한테 좋은 일 시키지 말고요.
다소 망설이던 윤수안의 눈이 반짝인 순간이었다.
평소 신중한 태주에게서 들을 수 없는 확신에 찬 말투.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이번 대본이 얼마나 재밌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편, 초조하게 윤수안의 대답을 기다리던 태주.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깐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나긋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태주 씨는 배우의 심리를 잘 아네요. 그런 돌직구로 절 흔드는 걸 보니.
그 말에 태주는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윤수안을 도발하려 던진 말이 맞았다.
응당 배우라면 남에게 좋은 작품을 뺏기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만큼 이 작품에 제가 자신이 있으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좋은 작품을 좋은 배우와 함께하고 싶기도 하고요.”
-흠흠.
윤수안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대본은 재밌었어요. 그런데 여주인공 역할이 좀 어렵긴 한 것 같아요. 정의로운 경찰 역할인데 연쇄살인범으로 의심되는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감정을 세밀하게 연기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제껏 제가 그런 복잡한 감정선을 연기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요.
“그래서 수안 씨한테 제의드린 겁니다. 수안 씨는 세밀한 감정표현을 정말 잘하잖아요.”
-……그것뿐이에요?
“그리고 뭐, 같이 연기해 본 여배우 중에서도 수안 씨가 합이 제일 잘 맡기도 하고요.”
태주는 솔직한 돌직구를 다시 한 번 던졌다.
어차피 윤수안한테는 포장하는 말 따위 안 통한다는 걸 알았다.
그녀를 안 지 오래되었고, 연기 합을 맞춰본 시간도 많았지만, 그녀와의 연기는 늘 설렜다.
자신의 연기에 어떻게 반응할지 매 순간 궁금해지는 배우였다.
초조하게 윤수안의 답을 기다리는 태주에게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에 영화를 찍으면서 깨달은 건데, 새로운 연기에 도전한다는 게 참 큰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아, 저번에 말했던 그 영화요? 그래도 수안 씨 잘하고 있잖아요.”
-모르겠어요, 잘하고 있는지.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제가 안 해본 연기를 도전하는 거라 어렵네요.
그녀가 멋쩍게 웃는 웃음에 태주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윤수안이 주연으로 출연을 확정 지었다는 독립영화는 제법 유망한 신인 여감독의 2번째 작품이었다.
삶의 밑바닥에 있던 여자가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구하는 내용이었는데, 윤수안은 여기서 주인공 여자 역을 맡았다.
윤수안의 이러한 결정에 사람들은 제법 놀란 반응이었다.
데뷔작부터 대부분 상업영화의 주연만 맡아온 윤수안이 독립영화의 주연을 하는 건 신기한 일이었으니까.
사실 드림액터스와의 결별 수순을 밟게 된 것도 그녀가 이번 독립영화에 출연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회사로서는 리스크한 결정보다는 안정적인 상업영화에 들어가 계속해서 광고를 끌어오길 바랐다.
하지만 윤수안은 연기의 발전을 원했고, 태주는 그런 그녀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잖아요, 수안 씨. 그래서 그 영화도 택한 거 아니신가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번에 저희 드라마, 같이 해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여배우는 수안 씨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과 의심이라는 복잡한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태주 씨는?
“네, 믿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맞춰드릴게요. 그런 감정선이 자연스레 나올 수 있도록. 그러니까 저 믿어 봐요, 수안 씨.”
마지막 말에 윤수안은 재채기하듯 기침했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그럼 해보죠, 뭐.
시원스레 나온 대답에 태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분 좋게 전화를 끊은 태주가 차용석과 김진수가 기다리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윤수안과 통화한다고 나간 그를 그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윤수안이 뭐래?”
태주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한대요.”
“진짜로?”
“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두 남자가 태주를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차용석이었다.
“어떻게 설득한 거냐? 효과가 직빵인데?”
“되게 좋은 배역이니까, 좋은 일 남 시키지 말라고 했죠.”
“그래도 그렇지. 둘이 뭔 사이길래 네 말 한마디에 윤수안이 오케이 하냐?”
“무슨 사이긴요. 평범한 동료 사이죠.”
태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고 자리를 뜨자, 뒤에 남은 남자들은 눈을 크게 떴다.
“평범한 동료가 저렇게 길게 통화한다고요?”
“그리고 확답을 저렇게 빨리 준다고? 수상해, 둘이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한태주랑 윤수안이랑 이번 드라마에서 뭉치면, 또 일 나겠는데요?”
“이 조합으로 진행하자고. 마 대표한테도 전달해야겠어.”
차용석은 확신에 찬 눈초리로 덧붙였다.
“아무리 KTS라도 한태주랑 윤수안 조합이면 반드시 투자자들은 물론, 시청자들이 붙게 되어있단 말이지.”
* * *
며칠 후, ‘스튜디오 S’ 대표실.
통화를 이어 나가던 마범수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수안 씨, 이렇게 직접 연락해줘서 고마워요. ‘굿맨’ 드라마를 하겠다니 진짜 기쁘네요.우리 드라마의 은인이에요. 아, 한태주 씨가 수안 씨를 설득했다고요? 역시, 태주 씨가 복덩이라니까요. 아, 네.”
기분 좋게 통화를 마친 마범수가 옆에 있던 비서에게 신나서 말했다.
“윤수안이 우리 드라마를 한다네.”
“네? 진짜요?”
“그래.”
마범수는 흥분한 듯 손을 비볐다.
“이제 우리 드라마도 날개를 달았어. 원래 드라마는 배우가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고 하잖아. 그런데 한태주랑 윤수안이라니! 그 둘 케미는 ‘낭만 고양이’에서 봤듯이 두말할 필요 없지.”
“그 둘의 연기력도 한입으로 말하면 섭섭하죠.”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리고 한태주와 윤수안 캐스팅으로 화제성도 더 많이 끌어모을 수 있겠어요. 솔직히 KTS 방송국 방영, 스튜디오 S 제작으로는 화제성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니까요.”
“거기다 베일릭스 동시 방영까지 하면 완벽하지.”
시계를 확인하던 마범수가 눈을 크게 떴다.
“베일릭스 측 관계자가 올 시간이군. 회의실 준비됐지?”
“진작에 준비해뒀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직원이 보고했다.
“대표님, 베일릭스 측 관계자분 오셨습니다.”
“전쟁을 치를 시간이군.”
마범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일어나 회의실로 향했다.
귀신 보는 배우님